<단독입수> 조응천-박관천 문건유출 판결문에서 드러난 정윤회의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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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 1000호를 맞은 <선데이저널>은 그동안 권력의 반대편에 서서, 본국 언론이 다루지 않는 감춰진 부분을 파헤쳐왔다.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정권 비리 고발, 전직 대통령들의 혼외자, 삼성그룹 이재용·국민일보 조희준 등 재벌들의 비자금, 이명박 전 대통령의 BBK 의혹 등이 본지가 보도한 대표적 특종들이다. 본지의 특종 보도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멈추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회장과 최태민 목사의 사위 정윤회 씨 간의 권력투쟁이었다. 두 사람의 권력 투쟁은 정권 초반부터 물밑에서 있어왔고, 본지는 물고 뜯는 두 사람 간의 혈투를 끈질기게 추적해왔다. 이 사건은 박근혜 정부 2년차 후반이던 2014년 연말정국을 뜨겁게 달궜다. 세계일보 보도를 통해 본국 언론이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고, 결국 이 사건은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검찰 수사는 희한한 방향으로 흘렀다. 검찰은 어찌된 일인지 정윤회 씨에게는 면죄부를 주는 듯한 인상이었고, 사건의 또 다른 축인 박 회장은 소환조차 하지도 않았다. 예상대로 검찰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공소장대로 재판부는 권력투쟁 문건유출자인 조응천 전비서관에게는 무죄, 심부름꾼에 불과한 박관천 경정에게는 뇌물죄를 적용해 7년을 선고하고 사건 자체를 마무리하는 촌극을 연출했다.
결국 박근혜 정부 2년 간 나라를 뒤흔들었던 정윤회와 십상시들의 국정농단 사건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셈이 됐다. 국력을 허비하게 만든 사건이 허무하게 마무리 된 것이다. <선데이저널>은 두 사람의 판결문을 입수해, 이 사건의 숨겨진 장난질을 살펴봤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왼쪽)과 박관천 경정

밤의 대통령 정윤회와 이재만 안봉근 등 십상시들과 박대통령 친동생 박지만의 물고 물리는 권력투쟁 서막인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을 청와대는 민정수석실의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과 일부 경찰들의 장난질로 몰아갔다. 그러는 사이 한 경찰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 두 사람에 대한 1심 선고가 지난 10월 15일 본국 재판부에서 이뤄졌다. 조 전 비서관은 무죄, 박관천 전 경정은 징역 7년이 선고됐다. 그런데 이 사건의 판결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본국 언론에서는 마치 이 사건으로 연루되어 박 경정이 7년의 징역형을 받은 것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이는 검찰이 공소사실에서 장난질을 친 것일 뿐 사실 박 경정은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사실상의 무죄나 다름없는 선고를 받았다. 징역 7년은 별건으로 수사된 사건과 관련해서 선고된 것이다.

본말이 전도된 정윤회의 국정개입 수사

이 사건은 정권 초반부터 본지가 보도하면서 본국 정치권에서도 물밑으로 끊임없이 회자되었다. 그러던 차 ‘정윤회 문건’으로 불리는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내부 문건을 토대로 ‘비선실세’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세계일보의 작년 11월 보도를 청와대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면서 확대됐다. 문건과 보도의 진위를 따져 명예훼손 여부를 가리는 고소·고발 사건이었다.
하지만 문건 내용의 진위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커지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작년 12월1일 “문건 유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검찰 수사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서울중앙지검은 형사1부뿐 아니라 특수2부까지 수사에 투입했다. 신속하게 문건의 진위를 가려내고 청와대 문건이 유출된 경로까지 파악해 책임자를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이 정해진 이상 수사는 사건의 실체를 파고 들어가기에는 부족했다. 검찰은 사건 수사와 거의 동시에 정윤회씨의 국정 개입 의혹을 허위로 판단했다. 이른바 ‘십상시 회동’ 등 의혹을 뒷받침할 문건 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의혹 내용이 터무니없다는 청와대의 입장과 맞아떨어지는 결론이 신속하게 내려졌다는 점 때문에 논란이 적지 않았다. 검찰은 논란을 뒤로하고 문건 유출을 수사하는 데 주력했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지시로 박관천 경정이 ‘정윤회 문건’을 비롯한 청와대 내부 문건 17건을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 측에 수시로 건넸다는 결론을 내렸고 올해 1월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을 기소했다. 대통령기록물이자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문건을 밖으로 빼냈다는 혐의가 적용됐다. 9개월가량 이어진 1심 재판 끝에 법원은 조 전 비서관에게 무죄를, 박 경정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17건의 문건 중 유출 행위가 공무상 비밀 누설로 보이는 건 ‘정윤회 문건’ 1건뿐이었고 그나마 박 경정의 단독 범행이라고 법원은 판시했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는 아예 인정되지 않았다.

판결문 25페이지가 말해주는 것

본지가 입수한 판결문 중 박 경정과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면 박 경정의 징역형이 문건 유출과 무관하게 별도로 기소된 수뢰 사건 때문임을 알 수 있다. 판결문 24페이지를 보면 박 경정의 양형 이유와 기준이 나와 있는데 유죄로 인정된 두 가지 항목 중 공무상 기밀누설죄는 양형기준이 나와있지 않고, 뇌물죄는 양형기준이 최소 7년 이상이다. 즉 뇌물죄 하나의 양형기준이 7년 이상이라는 점은 공무상기밀누설죄만으로 기소됐다면 집행유예마저도 나오지 않았을 양형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청와대 문건 유출의 책임을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에게 물으려던 검찰은 1심 판결로 민망한 처지가 됐다.

  ⓒ2015 Sundayjournalusa

법원이 이렇게 판단을 내린 것은 검찰의 공소장이 애초에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서에서도 언급했듯이 검찰은 이번 사건의 두 핵심 인물인 정윤회 씨와 박지만 씨의 권력투쟁에 대해서는 보는 둥 마는 둥 한 채 문서를 다룬 사람들에 대해서만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이들을 수사하기 위해서는 결국 문건에 언급된 정윤회와 박지만을 수사해야 했기 때문에 애초에 수사를 제대로 진행할 수가 없었다. 결국 10년 가까이 지난 박관천 경정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별건수사를 했고, 이를 공소장에 함께 적시하면서 마치 박 경정이 혼자서 유언비어를 퍼뜨린 것처럼 눈속임을 했다. 이러한 의도가 담긴 공소장은 법원에 가서 사실상의 무죄가 됐다. 박 경정의 뇌물 수수가 인정된 만큼 법원은 그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언론이나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박 경정의 징역형에만 집중되어 정작 어떤 명목으로 유죄가 선고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들여다보기 어려웠다. 실제로 대부분 언론의 헤드라인은 ‘靑 정윤회 문건 유출 조응천 전 비서관 무죄·박관천 전 경정 7년 선고’로 장식됐다. 마치 박 경정의 유죄가 청와대 문건유출과 관계된 것처럼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올해 초 검찰 수사 당시 새누리당 대변인이 언급했던 두 사람의 자작극이라는 논평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사실상 검찰의 짜맞추기 수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응천 전 청와대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에 대해 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가운데 과거 새누리당 대변인을 맡았던 박대출 의원의 발언이 눈길을 끈다. 당시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 직후 국회 정론관에서 브리핑을 열었다. 박대출 대변인은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정국을 온통 흔들어놨던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은 ‘조응천 주연-박관천 조연’의 ‘허위 자작극’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어 박 대변인은 “속칭 찌라시의 폐해가 심각함을 두 가지 측면에서 여실히 드러낸 사례” 라면서 “하나는 풍설들이 정보로 포장되어 국정운영 최고기관의 문건으로 탈바꿈됐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문건이 언론에 유출 보도되어 개인의 명예가 훼손되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박 대변인은 “일각에선 용두사미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처음부터 뱀머리가 용머리로 부풀려 진 것”이라면서 “처음부터 황당한 의혹으로 점철된 ‘유령 찾기 게임’이었던 것”이라며 덧붙였다.

곳곳에 나와있는 부실수사의 흔적

검찰의 부실한 수사는 판결문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이 대통령기록물은 아니지만 자체적으로 생산한 정보들을 박지만 EG회장에게 꾸준히 보고했다는 점은 실제로 권력투쟁이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특히 본지가 보도했던대로 박지만 회장과 조응천 전 비서관과의 오랜 인연을 고려해봤을 때, 조 전 비서관의 박지만의 사람으로 청와대 내에서 움직였다는 것도 검찰을 고려했어야 했다.

 ⓒ2015 Sundayjournalusa

판결문에는 조응천 전 비서관이 박관천 경정을 통해 박지만 회장에게 각종 문서를 전달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박 경정은 박지만 회장의 측근인 전인식을 만나 문서를 전달했고, 전 씨가 이 문서를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 전달된 문서는 비서실장 교체설 및 경찰 인사 등을 포함한 다양한 내용이 언급되어 있었다.
판결문에는 언급되어 있는 문건내용을 보자. 다음은 판결문 45페이지 중 일부다.
“위 문건에는 ① 정윤회(정●●으로 처리)가 청와대 비서관 및 행정관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십상시’ 멤버들을 만나 청와대 내부사정, 현 정부인사 동향 등을 보고받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였다는 내용, ② 정윤회가  십상시 모임에서 정부 인사 및 청와대 내부 인력조정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청와대 비서관에게 전달하여 시행하도록 하고, 관련 정보의 유포를 지시하였다는 내용, ③ 정윤회가 십상시 모임에서 단기간 내에 대통령 비서실장을 그만두게 할 예정이라고 하면서 관련 정보의 유포를 지시하였다는 내용 등이 기재되어 있다”
즉 조응천 전 비서관과 박관천 경정은 친인척 비리 예방 차원에서 정보 내용을 박지만 회장에게 보고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는데, 박 회장에게 전달된 내용은 친인척 비리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내용들이다. 두 사람은 검찰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진술했다.

그렇다면 검찰 수사는 사건의 발단이 된 정윤회의 국정개입 의혹 등에 대해 보다 자세히 살펴보았어야 했으나, 검찰은 십상시 모임 등이 허위로 보인다는 지엽적인 부분만을 가지고 전체가 모두 거짓이라고 결론을 내어 버렸다.
조 전 비서관을 무죄로 결론낸 것도 검찰이 공소사실을 축소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즉 검찰은 정윤회 문건과 관련해서만 기소했을 뿐, 박 회장에게 전달한 다른 문건에 대해서는 기소하지 않았다. 이런 문건들을 검찰이 기소하기 위해서는 박 회장을 소환하거나 적어도 문건의 내용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깊이 있는 수사를 했어야 했으나 검찰은 애초부터 그런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판결문 58페이지에 이런 내용이 뒷받침되어 있다.
“결국 피고인 조응천(조○○로 표기)이 피고인 박관천(박○○으로 표기)으로 하여금 이 사건 각 전달 문건 중 대통령 비서실장 교체설 관련 문건을 제외한 나머지 문건을 전인식(전●●으로 표기)을 통하여 박지만(박●●으로 표기)에게 전달하도록 지시한 사실은 인정되나, 이 사건 비서실장 교체설 관련 문건의 전달을 지시한 사실은 인정되지 않는다.”
즉 검찰과 법원도 정윤회 관련 문건을 제외한 나머지 문건을 박지만 회장이 전달받은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투쟁 핵심들 모두 법망 빠져나가

다시 말한다면 박지만 회장이 권력투쟁의 한 축이 아니었고, 단순히 친인척비리 방지 차원이었다면 왜 이런 문서가 필요했을까.
결국 나라를 뒤흔들었던 이 사건의 두 주인공인 정윤회와 박지만 회장은 모두 검찰 수사를 비껴갔고, 그들에게 충성한 다한 사람들 중 일부만 엉뚱한 죄까지 탈탈 털어 유죄를 선고했다. 밤의 대통령이자 그림자 권력을 행세했던 정윤회, 화려한 마약쟁이 전력의 대통령 친동생 박지만 그리고 권력투쟁의 한 축이자 한 때 십상시로 불렸던 문고리 3인방 측근 비서관들이 모두 법원에 서는 일을 비껴간 것은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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