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용 대기자의 특종 발굴] 프레이저보고서에서 드러난 서울지하철리베이트 게이트

■ 42년전 서울지하철 도입하면 일본서 250만달러 뇌물

■ 1971년 대선 때 120만달러 1973년 130만달러 받아

■ 외환은행 뉴욕지점 입금 수표-전표-계좌내역등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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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차 도입하면서 日 종합상사 김성곤에게 250만 달러의 리베이트

‘김성곤은 배달책에 불과
박정희 혼자 독식했다’

박정희정권이 40여년전 일본 종합상사들로부터 서울지하철 객차를 구입하면서 250만 달러의 리베이트를 받은 사건과 관련, 일본 측이 김성곤 전 공화당 재정위원장에게 전달한 수표와 김성곤의 외환은행 뉴욕지점계좌 내역, 입금전표 등이 발견됐다. 특히 이 자금 중 최소 1백만 달러가 다시 일본으로 송금됐음을 입증하는 송금전표 등이 발견돼 박정권이 정권유지를 위해 일본 정계거물들에게 뇌물을 줬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본 종합상사들이 발행한 수표와 김성곤의 계좌내역 등 생생한 증거를 통해 서울지하철 객차구입 커미션의 이동경로를 밝힌다.
안치용(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식 (제일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이 양택식 당시 서울시장)

▲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식 (제일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이 양택식 당시 서울시장)

지난 1968년 서울시민들의 발이었던 전차가 사라짐으로써 일대 교통 혼란이 발생했고, 전차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지하철이었다. 서울시장 윤치영과 김현옥이 지하철건설을 구상했지만 실행에 옮겨진 것은 김현옥의 후임인 양택식 서울시장 시절이었다. 철도정창을 지낸 양택식의 지하철건설주장에 김학렬 경제부총리가 반대했지만 박정희 전대통령이 양택식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일본과의 기술제휴를 통해 서울지하철이 탄생한 것이다. 1970년 6월 서울지하철건설본부가 출범했고 10개월 뒤인 1971년 4월 공사에 돌입, 1974년 8월 15일 지하철이 개통됐다. 특히 이 지하철 개통일은 육영수여사가 문세광에게 저격, 피살된 날이기도 하다.

김형욱이 의혹제기 日 국회 조사로 드러나

박정희정권 때 대부분의 대규모사업은 정치자금이라는 명분하에 검은 돈이 개입됐다. 서울지하철처럼 대규모 국책사업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1977년 7월 일본 요미우리신문에 서울지하철 리베이트의혹을 제기했고, 일본 국회가 대대적인 조사에 나서면서 1977년 12월 그 큰 줄기가 드러났다.

▲ 김성곤 전 공화당 재정위원장

▲ 김성곤 전 공화당 재정위원장

미쓰비시와 마루베니, 니쇼-이와이, 미스이등 4개 종합상사가 서울지하철 객차 186량을 납품하면서 각각 62만5천 달러 씩, 250만 달러를 한국의 정계실력자에게 리베이트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계실력자는 김성곤 공화당 재정위원장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이 사건의 전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리베이트는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 전달됐을까. 그동안 대략의 시기와 금액 등이 간헐적으로 언론에 보도됐지만, 그 돈의 흐름을 생생하게 밝혀줄 수표와 은행계좌내역 등이 프레이저보고서 부록에 수록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코리아게이트를 조사한 프레이저보고서는 국내에는 종합보고서 1권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종합보고서외에 부록이 2권, 부속보고서가 8권에 달한다. 프레이저종합보고서에는 서울지하철리베이트관련 내용이 447페이지중 반페이지도 채 안 되는 13줄에 불과하지만, ‘부록1’에 그 상세한 증거가 수록돼 있는 것이다.

일본국회 조사에 의하면 미쓰비시 등은 1971년4월 120만 달러, 1973년 1월 1백만 달러, 1973년 5월 30만 달러 등 3차례에 걸쳐 250만 달러를 한국외환은행 뉴욕지점계좌에 입금한 것으로 추정했었다. 프레이저청문회는 은행문서보존기관이 5년이어서 1971년의 입금증거는 확보하지 못했지만 1972년7월부터 1975년 3월까지의 김성곤 계좌내역과 수표, 입금전표 등을 모두 확보한 것으로 드러났다. 프레이저청문회는 외환은행 뉴욕지점에 자료제출을 요구했고, 1978년 5월 11일 외환은행측은 19건의 관련증거를 제출한 것이다.

지하철 리베이트 김성곤 통해 박정희에 전달

외환은행이 제출한 증거에 따르면 1973년 1월 29일 미쓰비시의 미국현지법인이 도쿄은행 뉴욕지점에 개설한 자사계좌를 통해 외환은행 뉴욕지점 김성곤씨 계좌에 입금하라며 25만 달러 수표를 발행했음이 확인됐다. 수표번호는 111135였으며, 수취인은 김성곤을 의미하는 SK KIM으로 기재돼 있다.

▲ 1973년 5월 2일 미쓰이은행이 발행한 7만5천달러짜리 수표, 수취인이 SK KIM 김성곤으로 기재돼 있다.

▲ 1973년 5월 2일 미쓰이은행이 발행한 7만5천달러짜리 수표, 수취인이 SK KIM 김성곤으로 기재돼 있다.

또 니쇼-이와이도 같은 날 25만 달러 수표를 외환은행 뉴욕지점에 보냈으며, 수표번호는 17913이었고, 역시 SK KIM 이 수취인이었다. 이처럼 1973년 1월 29일 서울지하철 객차를 납품한 일본 4개 종합상사가 각각 25만 달러씩 도합 1백만 달러를 김성곤에게 입금한 것이다.

그러나 이 돈은 외환은행 뉴욕지점에 입금되자마자 일본 쪽으로 다시 흘러갔음이 드러났다. 외환은행 뉴욕지점은 일본 종합상사가 1백만 달러를 입금한지 이틀만인 1973년 2월 1일 외환은행 동경지점으로 이 돈을 송금했고, 이 돈은 다시 체이스맨해튼은행의 동경지점으로 이체된 것으로 확인됐다. 바로 이 대목에서 박정희가 정권유지를 위해 서울지하철 리베이트 250만달러 중 1백만 달러 정도를 일본 정계실력자들에게 뇌물로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가능성은 박정권의 일본 내 비자금계좌 존재가능성이다.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아들 이동훈은 이후락이 일본 내에도 2백만 달러규모의 비자금계좌를 관리했다고 증언했음을 감안하면 이후락이 관리하던 일본 비자금계좌로 흘렀을 개연성도 있다.

▲ 1973년 5월 2일 외환은행 뉴욕지점  7만5천달러짜리 입금전표, 수취인이 SK KIM 김성곤으로 기재돼 있다.

▲ 1973년 5월 2일 외환은행 뉴욕지점 7만5천달러짜리 입금전표, 수취인이 SK KIM 김성곤으로 기재돼 있다.

외환은행 뉴욕지점 증거에 따르면 1973년 5월초, 일본 종합상사 4개사가 각각 7만5천 달러씩, 30만 달러를 역시 외환은행 뉴욕지점의 김성곤계좌에 입금됐음이 확인됐다. 당시 미쓰이뱅크 뉴욕지점은 1973년 5월 2일 액면가 7만5천 달러의 수표를 발행했으며, 수표번호 5021의 이 수표는 외환은행 동경지점 김성곤계좌에 입금된 뒤, 다시 이 돈이 외환은행 뉴욕지점의 김성곤계좌로 이체된 것으로 밝혀졌다. 외환은행 뉴욕지점이 김성곤계좌에 이 돈을 이체한 관련전표도 발견됐다.

외환은행-미국은행에 예탁한 시점 정확히 일치

또 같은 날 도쿄은행 뉴욕지점이 김성곤 앞으로 발행한 액면가 7만5천 달러짜리 수표도 발견됐으며, 수표번호는 126582였다. 역시 이 돈이 입금됐음을 입증하는 외환은행 뉴욕지점 입금전표, 외환은행 뉴욕지점이 이 돈이 입금되자 외환은행 도쿄지점에 김성곤계좌에 7만5천 달러가 입금됐음을 통보한 전문도 발견됐다.

그리고 이틀 뒤인 1973년 5월4일 도쿄은행 뉴욕지점은 김성곤 앞으로 7만5천 달러짜리 수표를 발행했으며 이 수표번호는 127255였고, 역시 외환은행 뉴욕지점 김성곤계좌에 입금됐다. 또 같은 날 니쇼이와이뱅크는 외환은행 뉴욕지점 김성곤계좌에 7만5천달러를 입금하라는 입금지시서와 함께 수표를 외환은행 뉴욕지점에 보내왔고, 그 입금전표도 발견됐다. 즉 1973년 5월 30만 달러는 5월 2일과 5월 4일 이틀간 김성곤계좌에 입금됐던 것이다.

▲ 1973년 5월 2일 도쿄은행이 발행한 7만5천달러짜리 수표, 수취인이 SK KIM 김성곤으로 기재돼 있다.

▲ 1973년 5월 2일 도쿄은행이 발행한 7만5천달러짜리 수표, 수취인이 SK KIM 김성곤으로 기재돼 있다.

또 당시 외환은행 뉴욕지점은 그날의 돈을 미국은행인 마린 미드랜드 뱅크에 입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외환은행이 마린미드랜드뱅크에 입금한 전표에 따르면 김성곤계좌에 입금된 다음날인 1973년 1월 30일 25만 달러짜리 수표 4개를 이 은행에 입금했으며 마린미드랜드 뱅크는 입금증명서를 발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마린미드랜드뱅크가 외환은행 뉴욕지점에 발행한 계좌내역서에 따르면 1월 30일 1백만1651달러97센트가 입금됐고, 바로 그 다음날인 1월 31일 1백만 달러가 빠져나간 것으로 돼 있다. 또 마린미들랜드뱅크 기록에 따르면 이 1백만달러는 체이스맨해튼은행 동경지점을 거쳐 ,외환은행 동경지점에 전달된 것으로 드러났다. 외환은행 뉴욕지점이 1월 31일 외환은행 동경지점으로 백만달러를 송금했고, 2월 1일 동경지점이 이 돈을 받았음이 입증되는 것이다. 외환은행 뉴욕지점에 수표가 입금된 내역과 외환은행이 미국은행에 돈을 예탁한 시점이 정확히 일치함으로써 돈이 오고간 시점과 액수는 정확히 밝혀졌다.

▲ 1973년 1월 30일자 외환은행 뉴욕지점의 마린미드랜드은행 디파짓슬립-25만달러짜리 수표 4매와 1651달러짜리 수표 1매를 입금한다고 적혀 있다.

▲ 1973년 1월 30일자 외환은행 뉴욕지점의 마린미드랜드은행 디파짓슬립-25만달러짜리 수표 4매와 1651달러짜리 수표 1매를 입금한다고 적혀 있다.

리베이트 전부 박정희 3선 정치자금 사용 가능성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김성곤은 1971년 4월 27일 제7대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재정위원장으로 선거자금을 조달하며, 박대통령을 세 번째 권좌에 올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면서 권력의 최고정점을 맞보게 된다. 그러나 권력욕에 취했던 때문일까. 같은 해 10월 2일 이른바 10.2항명사건을 일으킨다. 김성곤을 비롯한 4인체제가 박정희 지시를 무시하고 오치성내무장관 해임안에 찬성표를 던지도록 유도함으로써 그날로 김성곤의 세도도 끝이 나고 만다.
일본종합상사가 처음 120만 달러를 전달한 1971년 4월은 김성곤의 권력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로, 김성곤이 정치자금을 관리할 만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서울지하철사업이 국책사업으로 삼척동자도 리베이트를 아는 상황에서 김성곤이 독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대선정국이었음을 감안하면 박정희 당선을 위해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박정희 전대통령이 최종 수혜자인 것이다. 하지만 추가로 1백만 달러와 30만 달러가 입금된 1973년1월말과 5월초, 이때 김성곤은 이미 끈 떨어진 연 신세였던 것이다. 권력핵심은 고사하고 국회의원 자리도 뺐기고 권부핵심에서 멀어졌던 시기다. 이 시기에 김성곤이 서울지하철 리베이트를 관리했다는 것은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이때 외환은행 뉴욕지점 김성곤계좌에 입금된 돈이 이틀 만에 외환은행 도쿄지점으로 빠져나갔다는 사실도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외환은행에 입금된 수표와 전표, 계좌내역등은 모두 김성곤을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김성곤은 일본종합상사로 부터 서울지하철 리베이트를 받는 단순한 통로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김성곤이 실각한 뒤인 1973년 전달된 리베이트 130만 달러도 이후락이 관리하던 박정권의 일본 내 비자금 계좌로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지하철리베이트를 김성곤이 독식했다는 소문은 권력에서 밀려난 김성곤을 희생양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성곤은 이 사건이 알려지지 시작한 1977년 7월에는 이미 고인이었다. 2년 전인 1975년 이미 사망했기에 단 한마디의 항변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서울지하철 리베이트를 독식한 사람은 박정희 전대통령내지 박정희 정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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