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김태호 전 경남지사 총리 지명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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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이후 레임덕이 왔다는 소리까지 들었던 이명박 대통령이 반격을 위한 회심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개각을 통한 국정을 쇄신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 그 중심에는 김태호 국무총리 지명자가 서있다. 그는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게 될 경우 자민련 김종필 전 총재 이후 약 39년 만에 40대에 총리로 기용된다.
이 대통령의 이번 개각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먼저 40대 총리를 국정 전반에 내세움으로써 보수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세대교체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차기 대권 경쟁에서 김 지명자를 박근혜 전 대표의 대항마로 키우려는 후계구도를 위한 포석이다.
청와대와 여권은 이번 개각을 소통을 위한 깜짝카드라고 설명했지만 <선데이저널>의 취재 결과 이번 개각은 이미 한 달 전부터 결정되어 지방선거 이후를 기다린 개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김 내정자가 청와대 인근 종로구 내수동에 은연 중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청와대와 여러 차례 물밑교감을 나눴다는 것이 <선데이저널> 안테나에 잡혔다.
개각을 발표하기 며칠 전까지 아무것도 몰랐다는 김 내정자의 발언은 사실이 아닌 셈이다.
이번 8·8 개각의 막전 막후를 <선데이저널>이 취재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오래전 낙점

사실 김 전 지사의 총리 지명은 이미 한 달 전에 이미 이뤄졌다는 것이 정치권 인사들의 전언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김태호 전 지사와 지난 6.2 지방선거 전부터 수차례 극비 회동한 사실이 암암리에 알려지면서 김태호 지사의 지사 불출마와 총리지명설이 꾸준하게 회자 되었다.
특히 김 전 지사가 식구들과 중국 여행을 하기 직전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기자들 사이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기자들은 김태호 총리설에 대해 거의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불과 약관의 47세의 김태호 전 지사를 총리로 지명할 것인지에 대해 믿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김태호 총리내정자는 총리 내정 소식에 ‘뜻밖이다’라며 내숭을 떨었지만 이미 MB와 김태호 전지사간의 물밑 접촉은 수개월 전부터 정치권에 회자된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결국 그동안 청와대 주변에서 나왔던 박세일 서울대 교수나 김덕룡 국민통합특보, 김진선 강원도지사 총리발탁설은 사실상 정치적인 쇼였던 셈이다.
김태호 전 지사는 지사 불출마 후 청와대와 인접한 종로구 내수동에 자신의 사무실을 마련하고 수시로 이명박 대통령과 극비 접촉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
만약 이런 사실이 총리 청문회에서 밝혀진다면 정권 차원에서도 치명적인 타격이 예상되는는 대목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구상과 정권 재창출 시나리오의 서곡은 이렇듯이 김태호 카드로 시작된 것으로 보이지만 정치권에서는 아직 김태호 전지사가 정치적 입지가 다져지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에서 ‘MB가 너무 일찍 카드를 뽑은 것이 아니냐’는 우려석인 말들도 많지만 상대적으로 약점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오히려 승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 여권의 분석이다.


김태호 누구

1962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난 김태호 내정자는 소 장수를 하던 아버지 김규성 씨(76)의 3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당초 그는 중학교만 졸업하고 농사를 지을 생각이었지만 ‘농사를 지어도 농약병에 적힌 영어는 알아야 한다’는 부친의 말에 따라 거창농고에 입학했다.
김 내정자는 고교를 졸업하고 동일계 진학 방식으로 서울대 농업교육학과에 들어갔다. 그는 농고에서 다른 학생들이 대학 진학 준비를 하는 것을 보며 대학 입학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대학 시절 부친의 고향친구인 고 김동영 의원(1991년 작고)의 집에서 아이들 공부를 도와주며 얹혀 지내면서 정치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당시 김 의원의 집은 ‘민주산악회’의 본산이었다. 작은 심부름도 하고 상도동계 정치인들을 따라 무거운 음식 배낭을 지고 산을 오르며 정치의 현장을 옆에서 배워 나갔다고 한다.
그의 정치 역정은 다소 무모할 정도의 모험으로 요약된다. 1998년 지방선거에서 경남도의원에 당선된 데 이어 4년 뒤 2002년에는 거창군수에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거창에서는 ‘현직 군수에게 도전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평가가 많았으나 그는 현직 군수를 제쳤다. 불과 2년 뒤인 2004년에는 경남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해 42세의 나이로 ‘최연소 지사’가 됐고 2006년 재선에 무난히 성공했다.
지사 재임 시절에는 낙동강 대운하(4대강) 사업을 적극 지지했으며 ‘남해안 벨트 프로젝트’(부산-경남-전남을 이어 남해안을 거대 경제권으로 개발하겠다는 계획)를 추진했다. 그러나 그는 2010년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않으면서 3선 도전을 포기했다.
김 내정자는 2004, 2006년 경남지사 선거공보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찍은 사진을 썼다. 그런 만큼 친박계로 분류됐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는 이명박 후보가 당시 김 경남지사의 행보에 불만을 내비쳤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하지만 2008년경부터 친이계와 관계가 호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장 재직시절 눈도장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직 당시 전국 시·도지사협의회장이었다. 그 때 경남지사로 일하던 김 내정자를 처음 알았다. 자수성가한 그의 이력에 관심을 가진 것도 그 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의 오랜 측근은 “그 뒤로 2006년에 김 내정자가 전국공무원노조와 ‘불법에 무릎 꿇으면 나라가 흔들린다’고 하면서 싸우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저런 젊은 정치인이 많이 나와야 보수세력에 미래가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한 뒤로 경남지역에 내려갈 일이 있으면 거의 김태호 지사와 함께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며 대화를 나눴다. 특히 작년 4대강 사업 낙동강 기공식 때 김 지사가 4대강 사업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불순한 세력에 흔들리면 안 된다”고 한 즉석연설을 인상 깊게 기억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내정자의 대중 연설을 몇 차례 직접 본 뒤 “저 친구 대중성도 대단하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올 초 청와대에서 시·도지사 간담회 참석차 올라온 김 내정자와 독대(獨對)를 하면서 중용할 뜻을 밝혔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대권 주자 반열

김 내정자는 이제 명실상부한 차기 대권 주자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주변에서도 그가 2012년 대선 도전을 꿈꿀 것이라고 관측하는 사람이 많다. 그는 평소 “나는 누구 뒤에 줄을 서는 것이 아니라 내 뒤에 줄을 세우고 싶다”고 말해왔다. 특히 40대 총리라는 점은 그에게 세대교체의 기수라는 정치적 동력을 부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그는 경남지사 시절부터 대권 행보에 대한 의욕을 적지 않게 내비쳤다. 이 때문에 구설수에 오른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실제로 람사르 총회에 이어 세계합창대회, 유엔사막화방지총회 등 ‘통 큰’ 행사를 많이 유치해 이벤트 좋아하는 지사로 비아냥도 받았다. 대한민국 식량기지로 러시아 연해주 농장을 개척하고 남북교류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온 것도 대통령급 행보라는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이 중앙정치에 뜻을 내비쳤다.
김 내정자는 지사 시절에도 이틀 이상 서울에 머무른 주가 많았다. 딱히 서울에 일이 많았다기보다는 서울에 올 일을 만들었다. 그래서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나 밥도 먹고, 술도 마셨다. 그는 오래전부터 중앙정치를 꿈꿔왔다.김 후보자는 지사 시절에도 이틀 이상 서울에 머무른 주가 많았다. 딱히 서울에 일이 많았다기보다는 서울에 올 일을 만들었다. 그래서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나 밥도 먹고, 술도 마셨다.
하지만 여권 일각에선 아직 김 내정자가 자신만의 정치력이나 행정력을 보여준 것이 거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여권 주류 진영이 세대교체를 앞세워 대선후보 구도를 재편하기 위해 김태호 카드를 던졌지만 자칫 역풍을 불러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대권 구도 다각화

이러한 비판을 떠나 김 내정자의 총리지명으로 인해 차기 대권 구도가 요동칠 것이라는 예상을 어렵지 않게 해 볼 수 있다.
우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맞설 만한 친이명박계 대항마의 하나로 그가 선택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은 젊고 참신한 그의 이미지와 잇단 선출직 경험을 거치며 행정능력을 인정받은 점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그가 한나라당이 최근 들어 열세를 보인 PK 지역 출신이란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김 내정자자와 비슷한 정치 역정을 지닌 김두관 경남지사 등 야권 차세대 주자들에 대한 견제 의미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지난 6·2 지방선거 직후 청와대 참모들에게 “여권에는 왜 이광재·안희정 같은 사람이 없느냐”며 여권에도 ‘젊음’과 ‘도전정신’이 요구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래저래 김 내정자의 총리 지명을 비롯한 이번 개각은 이명박 정권 후반기의 국정 운영 방향과 차기 대권을 미리 점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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