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의 숨은 1인치] 삼성 4조5000억 분식회계 대해부…이재용부회장이 또 위험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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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팔방에 적군…뒤엔 낭떠러지기

‘역성혁명’ 막기 위해 분식회계 택했나?

감독오늘날 삼성그룹이 이건희 – 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승계구도를 만들 수 있었던 최초의 프로젝트는 이른바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오너 일가가 헐값에 사들인 것이다. 삼성은 1996년 12월 에버랜드가 전환사채를 헐값에 발행해 이재용을 제외한 97%의 주주가 전환사채를 인수 직후 실권함으로써 이재용 부회장이 집중적으로 전환사채를 가질 수 있었다. 사실상 삼성 지주회사였던 에버랜드의 경영권을 이 부회장이 헐값에 사들이면서 오늘날 삼성 왕국이 공고하게 됐다. 이로부터 정확히 20년이 지난 2016년 삼성은 또 하나의 대형 범죄를 기획한다. 바로 삼성 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다. 최근 본국 금융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무려 4조5000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분식회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이 이같은 분식회계를 저지른 것은 결국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이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본국 언론이 지적하지 않았지만, 삼성그룹이 분식회계를 계획한 것은 경영권 승계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건희 회장이 갑작스럽게 쓰러진 이후 시점이었다. 이후 홍 씨 일가를 비롯한 경영권 분쟁이 벌어질 조짐이 보이면서 이 씨 일가는 무리를 해서라도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짓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내몰렸다. 이런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의 이유를 읽을 수 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그 이후 현재까지 이 회장은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회장이 갑작스럽게 쓰러지면서 그룹에 큰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다. 이 회장으로부터 이재용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가 단계적으로 이뤄지고 있었지만, 아직 이것이 마무리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당시 이 부회장에게 경영권 승계가 얼마나 시급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정황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재판 과정에서 나온다.

이재용이재용 부회장이 최순실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각종 의혹의 핵심에는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이 있었고, 그 중심인물이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다. 그는 2016년 말 검찰 조사와 1월 21일 특검 조사에서 최순실씨가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후계자가 돼야 국가 경제가 발전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박 전 전무는 최씨가 “홍라희 삼성리움미술관장이 이 부회장을 탐탁치 않아하고 이부진 호텔신라 회장하고만 친하다”며 “홍씨가 동생인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과 함께 실권을 잡으려한다”는 내용의 말을 했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시 본지에서도 몇 차례 보도했던 내용과 일치한다.

즉 이 발언은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가 오너일가 내부적으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이 부회장이 이런 점에서 불안을 느껴 최씨와 손잡고 승계에 도움을 받으려 했을 수 있다는 의혹도 떠오를 수 있다. 박 전 전무가 최씨가 이런 말을 들었던 시기는 최씨의 딸 정유라씨가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2014년 9월 이전에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발표되기 전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을 손에 넣지 않았던 때이다. 이때도 공교롭게도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직후였다.

결국 2015년 5월 삼성그룹이 합병을 발표했고 9월 합병을 마무리하면서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지배구조 정점인 삼성물산 최대주주에 올랐다. 2014년 개정된 상속법에 따르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사망할 경우 재산의 3분의 2가 홍라희 관장의 몫이 된다. 이건희 회장의 재산 가운데 핵심은 삼성전자 지분 3.54%인데 홍 관장이 삼성전자 지분 2.36%를 물려받을 수 있는 셈이다. 이 경우 홍 관장 지분은 기존 보유분을 더해 3.13%까지 늘어나게 된다. 여기에 이부진 사장이 물려받을 지분까지 더하면 두 사람이 확보할 수 있는 삼성전자 지분은 이 부회장 예상 지분(1.19%)은 물론 원래 이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보다도 더 많아진다. 상속세 납부 등의 변수가 있지만, 원칙적으로 홍 관장이 삼성전자 경영권을 쥐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던 셈이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이 부회장으로서 삼성물산 합병을 추진해 경영권 승계구도를 완전히 굳힐 필요성이 그만큼 절박하지 않았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분식회계로 지분가치 상승

따지고 보면 분식회계도 이 시점에 이뤄졌다. 지금 본국 보도를 보면 2015년 8월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삼성물산이 자체적으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삼성바이오로직스 재경팀과 긴밀하게 회계처리 방안을 논의하면서 사실상 분식회계 과정을 주도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삼성물산 합병 과정은 삼성바이오 ‘고의 분식’의 출발점이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경영권 승계 의혹의 몸통으로 지목되고 있다. 당시 삼성물산는 2015년 8월 5일 삼성바이오 본사가 있는 인천 송도를 직접 방문해 ‘(삼성물산) 합병 시 바이오로직스의 적정한 기업가치 평가’를 위해 안진회계법인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에서는 ‘(삼성물산의) 자체 평가액(3조원)과 시장 평가액(8조원) 괴리’에 따라 나타날 ‘합병 비율의 적정성, 주가 하락 등 시장 영향의 예방을 위한’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돼 있다.

▲ 문재인 정부가 한국 경제 위기 돌파를 우선순위에 놓는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 분식회계 관련 처벌 수위를 낮추는 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 문재인 정부가 한국 경제 위기 돌파를 우선순위에 놓는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 분식회계 관련 처벌 수위를 낮추는 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합병 당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1대0.35로 합병비율이 정해졌는데 제일모직의 가치가 실제보다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있었다. 당시 이재용 부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2%를 보유한 대주주였고, 제일모직은 삼성바이오 지분 46%를 갖고 있었다. 결국 삼성바이오의 기업가치를 부풀려서 모회사인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를 높이고 대주주인 이 부회장 등이 삼성물산 주주들보다 유리한 합병비율을 적용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삼성바이오의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에피스를 회계상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회계방식을 바꾸면서 삼성바이오에피스이 가치는 장부가액 2905억원에서 공정가액 4조8806억원으로 수직상승했고, 4년 동안 적자였던 삼성바이오는 2015년 당기순이익 1조9049억원의 흑자기업으로 변신했다.

본국 시민단체 등에서는 당시 제일모직이 최대주주로 있었던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 조작으로 우량회사로 평가 받으면서 이 부회장이 합병 후 통합 삼성물산 지분 16.5%를 보유하는 최대주주가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으로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이 확고해진 만큼 조직적인 분식회계 의도가 의심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그룹 총수 일가도 이번 수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승계와 관련된 경영 현안이 없었다”고 판단한 바 있다. 다만 대법원은 법률 적용의 적절성만을 판단하기 때문에 이 사건이 파기환송될 경우에만 새 증거로 심리가 가능하다.

과거 삼성물산의 주주였던 일성신약과 삼성이 치루고 있는 ‘합병무효’ 민사소송 2심에도 이번 수사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1심은 삼성 측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2심이 증선위의 판단에 무게 추를 둬 일성신약의 승소로 판결하면 삼성 측은 지배구조의 타격을 입게 된다.

문재인의 선택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가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사건으로 떠오른 만큼 문재인 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관심이다. 본지가 몇 차례 지적했다시피 문재인 정부 역시 삼성그룹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을 수차례 노출했다. 게다가 현재 한국 경제 성장률이 부진한 흐름을 보이며 실업률도 증가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삼성그룹에 갈수록 높은 기대를 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계열사의 연간 매출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20%에 육박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주력으로 하는 바이오의약품과 삼성전자 등 계열사가 담당하는 5G통신 및 인공지능사업은 삼성그룹 뿐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의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 폐지된다면 한국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997년 한국 경제위기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저마다 재벌의 힘을 축소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사실상 한 발 물러났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도 판단의 기로에 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한국 경제 위기 돌파를 우선순위에 놓는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 분식회계 관련 처벌 수위를 낮추는 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일단 검찰이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혐의 사건을 수사부서에 배당하고 고발 내용 검토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은 금융위원회가 외부감사에관한법률(외감법) 위반 등 혐의로 삼성바이오로직스 추가 고발한 사건을 특수2부에 배당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이미 지난 7월 금융위가 공시누락을 이유로 삼성바이오를 고발한 사건을 배당받고 수사해왔다. 앞서 증선위는 삼성바이오가 미국 바이오젠과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주식매수청구권(콜옵션) 계약을 맺고도 고의로 공시를 누락했다고 우선 판단해 지난 7월 이 부분만 먼저 고발한 바 있다. 공시누락과 회계처리 기준 변경은 모두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와 관련한 사항이므로, 같은 특수2부에서 수사를 하도록 맡긴 것이다. 검찰은 우선 증선위의 고발 내용과 금융감독원의 감리 결과를 면밀히 검토하며 고의 분식회계 혐의 내용을 들여다볼 전망이다. 법조계와 금융권에서는 검찰이 단순히 외감법 위반 혐의를 넘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 과정 연관성에 대한 수사로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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