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LA 원로기자 김운영 극지보도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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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main현재 LA한인사회에서 현역 최고령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 사진기자로, 그리고 산악인으로 뛰고 있는“노익장”인 김운영(89, 전한국일보 사진부장) 전 뉴시스 LA특파원이 국내 영월미디어 기자 박물관(관장 고명진)의 초청으로‘에베레스트-북극-남극 역사적인 기록사진을 담은 극지 보도 사진전’에 초청을 받아 국내외 언론사와 산악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우고 있다.「도전하는 한국인, 그 역사적인 순간」이라는 부제를 단 <아, 에베레스트! 여기는 북극 남극!> 보도사진전이2021년 12월 20일부터 2022년 1월 10일까지 강월도 영월 동강사진박물관에서 열린다. 주인공 김운영 기자는 1977년 9월 15일 낮 12시 50분.‘77 에베레스트 한국원정대’의 고상돈 대원이 해발 8848m 에베레스트 정상에 우뚝 섰을 당시 이 장면을 최초로 세계에 보도했던 한국일보 사진기자였다.김운영 원로 사진기자는‘77에베레스트에서 미국 다날리(매킨리)까지’의 기념비적인 극지보도취재했다. <성진 취재부 기자>

이번 ‘극지 보도사진전’은 과거 한국일보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했던 고명진 관장과 동료 사진 기자들이 모여 김운영, 김택현(작고) 두 선배 기자의 기념비적인 극지 보도사진을 한곳에 모아 전시해 보자는데 함께 뜻을 모아 기획 되었다.고명진 관장은 사진전을 통해 보도사진이 갖는 의미를 되짚어 보고 아울러 40여전 한국인의 도전 정신을 되새겨 보고자 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강원문화재단의 전문예술단체 문화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이번 사진전은 최근 영월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문화 예비도시로 지정받은 것을 축하하는 전시회를 겸하고 있다. 이번 사진전은, 한국 최초이자 세계에서 8번째 국가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등정한 <77한국 에베레스트원정대>의 등정 사진들(1977년)과 대한민국 탐험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 나갔던 <한국극지탐험대>의 북극(1978년) 남극(1980년)의 사진들을 전시한다.

김운영 기자는 당시 한국일보 기자로서 고상돈(작고) 대원의 역사적인 에베레스트 등정 장면을 촬영하였다. 필름 무게만 60kg에 달했던 김운영 기자의 사진들은 <히말라야, 그 신비의 거봉들>, <원정대와 大카라반>, <베이스캠프에서 아이스폴, 웨스턴쿰으로> <8,848m 에베레스트 정상 공격>, <역사적인 순간, 여기는 정상이다>, <영광의 얼굴들> 등 6개의 장르로 구성되어 전시될 예정이다. 1977년 당시 고상돈 대원이 태극기를 들고 두 팔을 번쩍 치켜든 모습은 두고두고 한국인의 도전 정신을 상징하는 역사적인 사진으로 남겨져 있다.또한 김택현 기자는 당시 중앙일보 기자로서 북극 남극 탐험대에 합류하여 탐험대와 북극과 남극의 모습들을 촬영하였다. 김택현 기자의 사진들은 <한국극지탐험대>의 1978년 북극 탐험 사진과 1980년 남극 탐험 사진으로 구분하여 전시될 예정이다.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은 지난 2016년에도「국내 최초의 북극, 남극 탐험 보도사진가 김택현 기자의 삶과 흔적」이라는 주제로 작고한 김택현 기자의 추모 보도사진전을 개최하기도 하여 주목을 받았었다. 한편 이번 사진전을 기획한 고명진 관장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한 청년이 태극기 앞으로 뛰어나오며 절규하는 장면>의 사진을 촬영했던 당시 한국일보 사진기자이다. 연세대생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는 사진과 함께 6월 민주항쟁을 대표하는 그 사진은 AP통신 선정 ‘20세기 100대 보도사진’에 선정된 바 있다.

에베레스트 등정의 한국인 도전정신

1977년 9월 15일 낮 12시 50분. ‘77 에베레스트 한국원정대’의 고상돈 대원이 해발 8848m 에베레스트 정상에 우뚝 섰다. 한국인 최초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고상돈과 세르파 펨파 노르부는 정상을 밟은 세계 56번째와 57번째 산악이이 됐다. 그런데 원래 고상돈은 2차 공격조였다. 1차 공격조였던 박상렬 부대 장과 세르파 인앙 프르바가 1977년 당시 9월 9일에 공격조로 나섰으나 산소통 부족으로 정상 도전을 포기했다. 이어 원정대는 9월 15일에 고상돈과 세르파 펨파 노르부에게 정상 공격을 맡겼다. 고상돈 대원은 원래 산악 훈련에 열심이었고, 1차 공격조였던 박상렬 부대장이 실패후 고상돈에게 “나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라”라는 그의 말을 명심하고 정상을 드디어 올라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라고 소리첬다.

지난 2005년 정해왕이 ‘세계의 지붕에 첫발을 딛다’라는 책에서 당시의 상황이 구체적으로 언급 하고 있다. 당시 한국 원정대가 이룩한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은 새로운 산악 역사에 신기록을 수립했다. 첫째 한국 원정대는 램상고에서 베이스 캠프까지 21일만에 카라반을 끝냈는데 보통 다른나라 원정대는 30일정도 걸렸다. 둘째로 한국 원정대는 가장 적은 캠프(5개)를 설치했다. 그 이전에는 6개가 가장 최소였다. 세번째는 가을철 등반 원정대중 사장 일찍 정상을 정복했다. 한국이 세계에서 8번째 에베레스트 정복을 성공하고 1977년 10월 6일 김포 공항에 개선했다.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저 나와 18명의 원정대원 영웅들을 열렬히 환영했다. 사람들은 에베레스트 등정이 고상돈 대원 한사람의 공이 아니라 모든 대원이 뜻을 모아 이룩된 것임을 잘알고 있었다. 한편 당시 서울 미도파 백화점에서 한국 원정대 에베레스트 등정 사진전이 열렸다. 50일 동안 계속된 사진전에 근 100만명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다. 이 사진전에 전시된 사진들 대부분이 바로 김운영 기자가 찍은 것이다.

히말라야 정복 사진전 100만명 관람 기록

원래부터 산을 좋아 했던 김운영 기자는 2001년 미국에 이민한 이후로도 이곳 산악인들과 산을 타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지난 2007년 4월 1일 한국 에베레스트 등정 30년을 맞아 네팔 카트만두에서 열린 산악인 합동 천도재에 어려운 걸음을 하여 현지에서 남다른 감회에 젖었었다. 그는 1971년 로체 샤르부터 75년에베레스트 정찰, 76년 마나슬루, 77년 에베레스트 정복, 79년 매킨리까지 한국 해외원정 등반 초기, 울고 웃어야 했던 대부분의 현장을 지키며 카메라에 역사의 현장을 담았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1977년 에베레스트 원정 때 김운영 기자는 카메라를 목에 걸고 한국일보 보도대원으로 역사의 현장을 기록했다. 당시 그는 나이로 치면 원정대의 둘째형이었지만 당시 김영도 대장은 김운영 기자를 두고 “기자라기보다 대원 이상의 역할을 하는 산악인 이었다”라고 회상한 적이 있다.

4그런 그가 30년 만에 히말라야를 다시 찾았으니 마음이 어떠했으랴. 등정 30주년 기념식 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트레킹을 다녀온 그는 당시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활기찬 모습이었다. “에베레스트의 ‘용안’을 한번 뵙고 싶어서 칼라파타르까지 올라가려는데 너무 날씨가 나빠서 모습을 보지 못하고 그만 돌아내려왔습니다. 이제 다시 가 볼 기회가 있을는지 모르겠는데, 그게 좀 아쉽지요. 77년 당시에는 베이스캠프까지 한 달 여 상행카라반을 했었는데, 이번에 6일 만에 올라가게 되니 세상이 바뀌었음을 실감하겠더군요.” 그리고 김운영 기자는 “산이야 변한 것이 없는데 동네는 너무 달라져 옛 모습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며 소회에 잠겼다. 농담 섞인 말로 에베레스트를 ‘용안’이라 부르지만 그 속에는 사뭇 한 시대를 가슴으로 오르고 온몸으로 기록해야 했던 젊은 산악인의 피가 아직도 흐르고 있었다. 이제 44년 전 그와 함께 100일간의 장정에 올랐던 젊은 대원들도 이제는 대부분 백발에 주름살이 깊어졌지만, 아직도 그의 가슴에는 주마등처럼 스치는 푸릇한 얼굴 하나가 남아있다. 에베레스트 정복 때 함께 산을 올랐고, 다시 2년 후 79년 그와 함께 앨라스카 디날리(매킨리)를 오르고 하산 길에 추락한 고 고상돈 대원이었다.

에베레스트에서 미국 디날리(매킨리)까지

에베레스트 등반 사진으로 특종을 한 김운영 기자는 특종의 명수였다. 그가 특종을 한 사건 사진중에는 1967년 북한 중앙통신 이수근 부사장이 판문점 북측 지역을 탈출해 남측으로 귀순하던 사건도 있다. 당시 김운영 기자가 사진 캡션에 적은 글이다. “자유가 그리웠소. 김일성은 오늘 밤 분해서 편히 못 잘것이오.”1967년 3월 22일, 이수근 북한중앙통신 부사장이 판문점 북측 지역을 탈출해 남측으로 귀순하며 내뱉은 첫마디였다. 오후 5시, 제242차 남북군사정전위원회가 끝나는 순간 이수근은 재빨리 유엔군 대표 밴 크러프트 준장의 세단에 올랐고 40여 발에 이르는 북한 경비병의 총탄을 피해 자유 대한의품에 안착했다. 남한에서 결혼과 반공 강연을 이어가던 그는원했던 자유 생활과 달리 중앙정보부의 감시와 마찰이 계속되자 회의를 느껴 다시 탈출을 감행했다. 1969년, 여권을 위조해캄보디아로 향하던 이수근은 이중간첩 혐의로 중정 요원들에게 체포됐고 그해 5월 항소심도 받지 못한 채 형장의 이슬로사라졌다. 2005년‘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는그의 이중간첩 혐의를 조작이라 판단했고, 3년 후 서울고등법원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했다. 판문점에서 귀순한 이수근이 헬기 편으로 용산 미군기지에 도착하고 있다.

김운영 기자는 이번 국내 사진전을 위해 준비를 끝내면서 “에베레스트 원정대 참가가 어제와 같았는데 벌써 44년이 지났다”면서 “국네 사진전에서 그날의 감동을 되살리고 차세대들에게 꿈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지난 1977년 한국의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후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맹호장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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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영 (金云瑩 Un Young Kim) 기자 산악 약력

1959년 세계일보사(당시 민국일보) 사진기자 공채 입사
1961년 조선일보사 사진기자
1965년 한국일보 사진기자
1971년 네팔 (Nepal) 히말라야 Lhotse Shar 원정대 참가
1973년부터 77 Everest 원정을 위한 동계훈련 (지리산, 설악산, 한라산)
1975년 한국 에베레스트 (Everest) 원정 1차 정찰대 참가
1075년 Everest 1차정찰 히말라야 사진전 (신세계백화점)
1976년 네팔 히말라야 마나술루 (Manaslu)한국원정대 참가
1976년 한국일보사 편집국 사진부장 취임
1977년 77한국원정대 보도 대원으로 참가 (고상돈 대원 등정)
1977년 체육훈장 맹호장 수훈 (Everest 김영도 대장과 고상돈대원 청룡장)
1977년 11월 에베레스트 등정 사진전 (미도파 백화점-전국 대도시 순회전시), 사진집“Everest”한국일보 발행
1979년 북미최고봉 맥킨리 (McKinley) 원정대 참가 (고상돈대장 이일교대원 조난)
1980년 한국산악사진가회회장, 서울특별시산악연맹 부회장, 서울문화사학회 이사 역임
1981년 한국일보 정년퇴직
2001년 미국 이민 LA 거주 미주대한산악연맹 고문, 자문위원 역임
2003년 이민 100주년 기념 CA. Mt. Whitney, 하와이 Mauna Kea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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