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철 대표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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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이었던가. 정대철 대표의 정치입문은 아주 쉽게 이루어졌다. 외국 유학생활을 했던 그는 선친인 정일형 의원의 후광에 힘입어 단번에 국회에 진출했고, 그래서인지 유복한 배경을 가진 정치인이라는 시선이 그에게는 줄곧 따라다녔다.

그러나 막상 그의 정치적 후반기는 불운의 연속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대중 총재 시절 그는 당내 비주류 활동을 하다가 눈밖에 나, 당의 주변부를 계속 맴돌아야 했다. 김대중 정부 아래에서는 경성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되어 정치생명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이 계류중인 가운데도 그는 와신상담,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 선대위원장을 맡아 대선 승리를 이끌었고, 대선 이후에는 당 대표직까지 맡게 되어 정치적 재기에 성공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제 막 날개를 다시 펼 무렵, 다시 터져나온 굿모닝게이트 파문은 그를 다시 벼랑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제 그 벼랑에서 또 한번 떨어지고 나면 다시 일어서는 일은 쉽지않아 보인다.

정 대표 자신이 누구보다 그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음인지, 며칠 전 자신 관련 의혹이 언론에 보도된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한 지인의 집을 찾아가 밤새 통음했고, “검찰 사정의 희생양이 되는 것 같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는 이야기이다.

한마디로 답답하고 억울하다는 이야기이다. 사태를 대선자금 논란으로까지 비화시킨 ‘200억원 모금’ 발언도 그 억울한 마음을 가누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정 대표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생각이 들 법하다. 지난해 민주당이 친노(親盧)와 반노(反盧)로 갈라져 있던 어려운 상황에서 그는 선대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선거자금이 정상적으로 집행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들어온 돈들을 당에 넘겨주었다.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물심양면으로 뛰어 대선 승리를 이끌어냈는데, 이제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은 ‘비리 정치인’이라는 낙인이니, 이 상황 자체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낙마하게 된다면 씻기 어려운 불명예 속에 정치를 마감해야 할 상황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을 법하다.

결국 정 대표는 검찰 소환에 당분간 불응하겠으며 대표직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민주당은 신-구주류간의 갈등을 딛고 정 대표 문제에 관해서만은 결속하며 그를 적극 엄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집권 민주당의 의원총회장은 검찰성토장이 되고 있다. “검찰이 집권여당 대표를 이런 식으로 다뤄도 되느냐”, “정 대표는 정치제도의 희생양이다”라는 발언이 이어진다. 더 나아가 “더욱 굳은 각오로 동지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잊지 말자”는 당부까지 나온다.

한때 대표직 사퇴 불가피론을 말하던 일부 의원들도 목소리를 낮추고 정 대표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 대표가 지금 낙마하게 되면 신당추진이 안개속으로 들어갈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작용하고 있지만, 지금 민주당의 정서는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정 대표가 돈을 받아 개인적으로 착복한 것도 아니고, 대선자금으로 쓰게 한 것인데, 대선승리의 공신인 그를 어렵게 만들 수는 없다는 ‘의리론’이 민주당 내에서는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

정치적 의리를 중시하려는 민주당의 모습은 ‘200억원 모금’ 발언 파문에서도 나타났다. 기업체 등으로부터의 상당한 모금이 있었음을 공개한 정 대표의 발언이 있자, 여권 내에서는 ‘물귀신’ 작전으로 보는 비판적 시각이 팽배했다. 자기가 희생당한다고 해서 여권 전체를 어려운 지경으로 몰고가서야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이 역시 ‘의리론’의 또 다른 형태인 셈이다.

정치적 의리는 필요하다. 기본적인 정치적 의리가 지켜져야 서로간의 정치적 신뢰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하는 민주당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다른 장면들이 연상되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네가 모든 것을 지고 들어가라.”
“조직을 위해서는 입을 열어서는 안 되며, 네가 모든 것을 뒤집어 써라.”
“우리는 너를 지켜줄 것이다.”

민주당에게는 무례한 얘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조폭영화에서 많이 보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이렇게 말하면 집권당 내에서 지키려는 정치적 의리를, 어떻게 조폭조직의 의리에 비유할 수 있느냐는 반발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수준과 의미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의리는 자기집단 내부의 이기적 의리라는 점에서는 서로 닮아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정 대표가 민주당에게 있어서는 대선승리의 공신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민주당의 집안사정일 뿐 국민들과는 무관한 정황이다.

물론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정치인이 어디 정 대표 한 사람뿐이겠는가. 내용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아마도 탈법한 의원 숫자를 세는 것보다는 준법한 의원 숫자를 세는 것이 훨씬 빠를 것이다. 그러나 정치자금법을 준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해서, 당내경선에 사용한 2억원의 정치자금에 대해 영수증 처리도 하지 않은 일같은 것이 면책되기는 어렵다.

집권당의 의리가 조폭세계의 의리와 같은 방식으로 표현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지금 민주당은 집단내부의 의리 이전에 국민과의 의리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지난해 대선에서의 돼지저금통을 기억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 그들에게 실망과 상처를 안겨준 일련의 사태 앞에서, 지금 민주당이 취해야할 태도가 과연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민주당은 그냥 시간을 끌려할 것이 아니라, 국민앞에 좀더 적극적으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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