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준비된 여성 정치인…연방하원 미셀 박 스틸

이 뉴스를 공유하기

민주당으로 정권 바뀌었어도… ‘공화당으로 당당히 입성’

‘LA한인여성 최초의 연방하원 당선’

캘리포니아주의 대표적인 한인 여성 정치인 미셀 박 스틸(Michelle Park Steel) OC수퍼바이저와 영 김(Young Kim) 연방하원후보가 이번 2020대선에서 크게 선전해 미주 한인 정치력 신장에 대표적 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미셸 박 스틸은 상대 후보 루다 현역의원이 패배를 인정해 당선이 확정됐다. 지금 미주 한인사회는 오렌지 카운티 선거구에서 진행되고 있는 영 김 후보의 공식적인 당선 공고를 기다리고 있다. <성 진 취재부기자>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4년 1월은 청 말띠해가 시작된 달이다. 청이라는 것은 푸름의 상징이고, 사계절 봄여름가을겨울 중에선 봄에 해당한다. 봄은 모든 생명이 태어나고 발전적으로 커가는 계절이다. 생동감 넘치는 힘찬 그 2014년 말띠 해가 시작된 1월 30일 오후 2시에 부에나 팍 6291 홈우드 에비뉴에 있는 세븐스 홈 카페에서 얼굴에 활짝 환한 웃음을 띈 두 명의 여성이 나타났다. “저희 두 사람은 미주 한인 이민사에 새 역사를 창조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한인사회를 대상으로 본격적인 미주류 사회로의 진출을 위한 선거 캠페인에 들어갑니다. 우리가 미주류 정치에 도전하는 것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고 우리의 후세들에게 길을 열어 주려는 것입니다.” 당시 두 주인공은 캘리포니아주 하원 65지구에 출마하는 영 김 후보와 오렌지카운티 제 2지구 수퍼바이저에 도전하는 미셸 박 스틸 후보였다. 두 사람 모두 공화당이다. 두 사람 모두 한인사회가 자랑하는 여성 정치인으로 오래 전부터 모두가 준비된 후보들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었다.

최초 여성으로 연방하원 입성 눈앞에

물론 공화당 전국본부에서도 많은 기대를 걸었다. 미셸 박 스틸과 영 김은 기대에 부응하여 영 김은 주하원의원에 당미셸박선됐으며, 미셀 박 스틸도 오렌지카운티 수퍼바이저 2지구에서 승리했다. 특히 미셀 박 스틸은 OC수퍼바이저 재선에서는 예선에 60% 이상 획득해 결선없이 당선되어 수퍼바이저 위원장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두 사람은 각자의 길에서 선전해 2020년 함께 미연방 하원에 도전했다. 영 김은 이미 2년 전에 먼저 도전했으나 근소한 표차로 실패했으나, 이번에 다시 도전한 것이다. 이번에 처음 연방하원에 도전한 연방하원 48지구 미셸 박 스틸 후보는 10일 현재 개표 상항에서 19만 7,256표로 상대인 현역 하원의원인 할리 루다에 7,346표 앞서가고 있어 계속 표차를 벌여 선거 관계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당선이 확정적’이라는 것이다.

한편 연방하원 39지구 영 김 후보는 10일 현재 개표 상항에서 16만 4,971표를 얻어 상대인 현역 길 시스네로스 의원과의 표차가 3,550표 리드한 상태이다. 계속 표차를 조금씩 벌이고 있어 당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영 김 후보는 오렌지카운티 개표 결과에서 11만 2,433표를 얻어 52.3%로 길 시네로스 현직 의원을 9,894표 앞서고 있다. 샌버나디노 카운티 개표에서도 영 김 후보는 1만 5,405표로 상대 후보보다 704표 많은 표를 받아 리드하고 있다.

하지만 LA 카운티에서는 3만 7,133표로, 4만 4,181표를 얻은 시네로스 의원에게 7,048표 뒤지고 있다. 영 김 후보 지역은 OC와 샌버나디노 그리고 LA 카운티까지 광범위하게 걸쳐 있는데, OC와 샌버나디노 지역에서는 리드를 하고 있으나, LA카운티 지역에서는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LA카운티 선거관리국에 따르면 미 개표분이 지난 6일 기준 61만 800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최종 개표까지 상당한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딘 로건 LA 카운티 선거관리 국장은 “이번 선거 개표결과가 최종 발표되기까지 약 3주가 소요될 수 있다”고 전했다.

공식 ‘당선’ 선고만 남은 미셀 스틸

미셸 박 스틸은 지금껏 공직선거에 도전해 한번도 실패를 하지 않은 “무패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바로 한인사회이다. 그녀는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묵묵히 지원해 준 한인 커뮤니티의 힘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지난 2006년 조세형평국위원 선거에서 60.5%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해 당시로서는 캘리포니아주 최고위 한인 선출직 공무원으로 한인들의 큰 자랑거리였다. 캘리포니아 조세형평국 (Board of equalization)은 캘리포니아주에만 있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캘리포니아의 IRS(국세청)로 보면된다. 판매세를 걷고 세금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판결하는 ‘세금 법정’(Tax court) 역할을 하는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조세형평국은 4명의 선출직 위원이 운영하고 있는데 3,400만 캘리포니아 인구를 감안할 때 조세 형평국 위원 한명은 850만명의 캘리포니아 주민을 대표하고 있는 셈이다. 미셀 박 스틸은 이런 임기 4년의 이 조세형평국 위원을 두번을 성공적으로 지냈다는 것은 그녀의 지도력과 능력을 유권자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는 증거이다.

▲ 미셀 박 스틸 당선인(중앙)이 남편과 동료 영김 후보로 부터 인사를 받고 기뻐하고 있다.

▲ 미셀 박 스틸 당선인(중앙)이 남편과 동료 영김 후보로 부터 인사를 받고 기뻐하고 있다.

그녀는 지난 2006년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지사의 선거위원회 명예의장도 맡았다. 지금까지 알려진 박 위원의 이력만 봐도 그가 미국 주류정치계에서 얼마나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지 짐작할 수 있다. 글로벌 포털사이트 ‘Yahoo’의 백과사전은 미셀 박 스틸을 ‘미주 한인사회에서 최고위직에 오른 한인 여성’으로 기록했다. 과거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리더십에서 많은 영감을 얻은 박 위원은 ‘야망’과 ‘기회’라는 두 단어를 신념으로 삼아 자신의 정치인생을 개척하고 있다. 그는 많은 동포들에게 희망과 도전 정신을 발판삼아 스스로의 야망을 실천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녀는 지난 30년 동안 한인사회 각계를 누비며 열성적인 봉사활동을 벌인 인물로도 유명하다. 영어가 부족한 동포들을 위해 무료 통역을 자청하기도 했으며 구직이 어려운 여성동포들을 위한 취업안내에도 힘썼다.

또 부당한 차별로 고통당한 한인들의 사연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팔을 걷어 부칠 만큼 인간적이라는 평을 얻고 있다. 이런 그녀의 선행은 소리 소문 없이 동포사회에 퍼져나갔다. 남몰래 청소년‧노인 단체에 적잖은 기부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의 드러나지 않은 선행이 알려지면서 동포사회에서는 그를 “커뮤니티의 진정한 대변자’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그는 한인가정상담소, 한인상공회의소, 한미식품상협회, 한미 연합회 등 수많은 동포단체에서도 활동하며 인지도를 넓혔다. 가출 어린이들을 돕는 옵션스 하우스(Options House)와 흑인 어린이들의 과외활동을 돕는 형제 자매연맹(Coal-ition of Brothers and Sisters Unlimited)등 청소년 단체를 위한 자원봉사 활동도 그 일부다. 그의 이력에는 백악관 아‧태 자문위원, 가주통상위원회 커미셔너, LA카운티 아동가족위원회 커미셔너를 거쳐 로스앤젤레스 공항국, 소방국 커미셔너, 현재 전국 아‧태 노인센터, 한미 공화당협회 이사 등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이후 OC카운티 수퍼바이저에도 당당히 당선되어 재선까지 성공적으로 지내고 연방하원에 도전장을 내밀어 이제 승리의 공식 선언만 남은 셈이다.

30여년 동안 커뮤니티 봉사가 주효

미셀 박 스틸은 독립지사였던 아버지와 수필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미국에 이민하여 페퍼다인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 등 3개 국어에 능통하다. 지난 1975년 부모와 함께 18세의 나이로 미국에 온 그녀는 원래 현모양처가 꿈이었다. 그의 남편 숀 스틸(Shawn Steel)은 캘리포니아주 공화당협회 의장 등을 역임한 유명 정치인이다. 그녀가 미국 정치에 뛰어들게 된 계기는 바로 1992년 LA 4‧29폭동이었다. “LA 폭동이 일어난 후 남편 친구들인 주상하원의원들이 집에와서는 한인들이 총을 갖고 나와 싸운다며 잘못했다고 얘기하는 것에 대해 한인들은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며 이는 한인들 잘못이 아니라 훔쳐가는 사람이나 불지르는 사람이 나쁜거다라고 항변했다. 다음날 이 정치인들이 언론에 나와 내가 얘기한 그대로 말하는 것을 보면서 ‘아, 나도 이렇게 영향력이 있구나’ 라는 것을 알게됐다. 집 안에서만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 좀 더 도와야 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때마침 1993년 LA 시장 선거에 당시 리차드 리오단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을 때 남편과 함께 선거운동을 도왔다. 결국 리오단이 시장에 당선된 후 LA소방국 커미셔너로 임명 받아 정치계에 발을 디디게 됐다.

나중 그녀가 조세형평국 위원에 출마하게 된 동기는 그녀가 학교다닐 때 어머니가 옷가게를 하다가 폐업하고 샌드위치 가게를 하였는데 조세형평국에서 세금을 덜냈다며 벌금 통지를 보내와 이에 부조리한 면을 보고 고쳐야겠다고 생

▲ 미연방 의사당에 미셀 박 스틸이 입성한다.

▲ 미연방 의사당에 미셀 박 스틸이 입성한다.

각해 도전했던 것이다. 한인들 30% 이상이 소규모 사업체들을 운영하기에 지난날 어머니가 당했던 것을 기억하면서 이들을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에서 도전했다. 그녀는 조세형평국 위원에 출마 후 선거자금을 모아 야 했고 하루에 20번 이상 선거 연설을 해야하는 때도 있었다.

어떤때는 너무나 힘들어 포기하려고도 했으나 무엇보다도 그녀 마음속에 ‘나는 이것을 해서 꼭 도와야 될 사람이 있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선거운동을 했고 그래서 결국이겼다. 무엇보다 그녀는 조세형평국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소규모 업소 납세자들로부터 공탁을 받은 4,200만 달러를 5,500 업체들에게 되돌려 주는 것으로 칭찬받았고, 한 때는 ‘iTax’라고 음악, 영화 등 다운로드하는 무형의 것에도 세금을 붙이자는 안이 나왔을 때 이를 저지해 납세자들을 돕고 세금을 안 오르게 하는 활동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CA주정부 세금정책에 공헌 인정

그녀의 명성은 이미 공화당 정계에서는 널리 알려졌다. 역대 공화당 대통령들은 처음 당선되면 한국 문제에 대해서 미셀 박 스틸과 한번쯤은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시 되고 있다. 그녀는 특히 부시 정권 당시 연방정부와 한인사회와의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부시 대통령 재임시절 연방정부의 고위관리들은 친분이 두터운 그의 제의로 한인타운을 찾아 동포사회의 발전상을 직접 보고 느끼곤 했다. 한 예로 지난 2004년 6월에는 톰 릿지 국토안보부 장관이 한인타운을 공식 방문했다. 국토안보부 장관자리는 2001년 9‧11 사태 이후 미국정부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서 중 하나이다. 당시 릿지 장관은 코리아타운 옥스포드 팔래스 호텔에서 한인 커뮤니티 대표 50여명을 포함, 타아시안 커뮤니티 관계자 100여명과 만나 아시안 커뮤니티 관련 이슈를 듣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미셀 박 스틸은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Korean American’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을 바라보면서 한국 정치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보다, 더 크게 미국정치를 봐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2세들이 여기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2, 3세들이 미국 주류에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호에 영 김 후보 편 계속)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

선데이-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