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정치력 신장과 한미 양국의 다리 역할을 할 것”
불굴의 투혼과 의지로 일궈낸 집념의 역사창조
미국 공화당의 기대주인 영 김(58‧한국이름 김영옥)후보가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끝내 가주 39지구 연방하원 의원 당선을 확정했다. 영 김 당선인과 함께 이번 선거에서는 캘리포니아 제 48지구에서 당선된 공화당의 미셸 박 스틸(은주), 워싱턴 제10선거구에서 당선된 민주당의 메릴린 스트릭랜드(순자) 등 한국계 여성 세 명이 연방 하원에 입성하는 쾌거를 거뒀으며, 뉴저지 제3선거구에서 재선에 성공한 민주당의 앤디 김 하원의원을 포함해 총 4명이 미 연방 하원의회에 입성해 미주 한인 이민사에 새로운 장을 펼치게 되었다. 연방하원 438명 중 한인계 4명(민주 2명, 공화2명)으로 미연방 의회 역사상 가장 많은 한인계가 진출하는 역사가 창조되었다. 영김 당선자는 승리가 확정된 직후 ‘이민자로서 오늘 저의 당선을 통해 미국의 약속이 입증되었으며 당파를 초월해 미래를 향한 협력과 종조로 미국을 그리겠다’라며 당선 일성을 알리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지난 주 미셸 박 스틸 의원의 인물 탐구에 뒤이어 두번째로 영김 당선자의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불굴의 정치적 발자취를 짚어 보았다. <성 진 취재부 기자>
영 김 당선인은 2년 전인 2018년 5월 당시는 처음 연방하원에 출사표를 내고 자체 사무실을 개설하고 예선(6월 5일)을 준비하고 있을 때, <선데이저널> 기자와 만나 “LA코리아타운은 저를 캘리포니아 주 하원으로 보낼 때도 큰 힘이 되어 주셨으며 당선된 후 저를 포함해 공직 당선 한인들을 위해 베풀어 ‘코리안 나이트’ 빅토리 파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면서 “이번에는 연방하원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호소했다. 비록 그해(2018)에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지난 2년을 다시 착실히 준비해 이번(2020)에 숙원이던 연방하원 입성의 꿈을 성취했다. 이번에 캘리포니아주 제 39선거구에 출마한 영 김 후보는 13일, 17만 2천 253표(득표율 50.6%)를 얻어 16만 8천 108표(49.39%)를 득표한 민주당 길 시스네로스 현역의원과 접전 끝에 승리를 확정지었다. 그녀는 2018년 치뤄진 연방하원의원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처음 캘리포니아주 제39 지구 하원 의원에 출마해, 잠정 개표 결과 당선이 유력했으나 막판 우편 투표가 개표되면서 시스네로스 의원에게 4,000표 차로 아쉽게 낙선했는데 이번에는 그 4,000표차로 이겨 대선에서 설욕한 셈이다.
‘한미 양국의 다리 역할을 할 것’ 포부 밝혀
김 당선인은 13일 “지금까지 응원해 준 한인 커뮤니티에 감사를 드린다”면서 “앞으로 한인 정치력 신장과 한미 양국의 다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평소 신앙심이 투철한 영 김 당선인의 승리를 위해 기도와 성원을 아끼지 않았던 남가주 목회자들은 당선 소식에 일제히 기뻐하며 미국사회에 올바른 목소리를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교계 목회자들은 “영 김 의원은 평소 신앙인으로나 정치인으로나 매우 훌륭한 면모를 보여왔다”며 “미국과 한인사회 뿐만 아니라 에스더와 같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크게 쓰임 받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공화, 민주 양 당에서 한인 정치인들이 배출됨에 따라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며 “젊은 한인 정치인들의 미국 정치 입문의 길을 크게 열어 주길 희망 한다”고 전했다.
영 김 당선인에게는 워싱턴의 의사당에 입성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녀에게는 워싱턴의 의사당이 전혀 낯설은 곳이 아니다. 그녀는 에드 로이스 전하원외교위원장의 정책 담당 보좌관으로 21년이란 오랜 세월을 보내면서 의사당에서 활동해 왔기에 의사당이 자신의 사무실이나 다름없었다. 주위의 다른 의원들 보좌관들이나 관계자들도 한 식구처럼 지냈다. 그런 보좌관이었던 영 김 당선인은 이제 당당히 미국 유권자들이 뽑은 연방하원 의원으로 당선 된 것이다. 보좌관이 아닌 국회의원으로서 내년 1월부터 활동하게 된다. 1962년 한국 인천에서 태어난 김 당선인은 어린 시절을 서울에서 보낸 뒤 1975년 가족들과 미국령 괌으로 이주했다. 괌에서 중학교를, 하와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USC에 진학해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김 당선인은 대학 졸업 후 금융계에서 일하다 의류 사업가로 변신했으며, 선거 컨설턴트이자 한미 연합회(KAC) 전국
회장을 지낸 남편 찰스 김씨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했다. 김 당선인은 친한파 공화당 중진이자 캘리포니아 39선거구에서 13선을 한 연방하원 외교위원장 인 에드 로이스(Ed Royce) 의원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해 23년을 보좌했으며, 2014년에 캘리포니아 주 의원에 당선돼 캘리포니아주 의회에 입성했다. 그는 에드 로이스 의원의 아시아 정책보좌관으로 활동할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 북한 인권 현안 법안, 위안부 문제 등과 관련한 정책을 도맡으며 한국 정계에도 이름을 알렸다.
23년 보좌관 생활 넘어 의원으로
이번 영 김 당선인의 승리에는 한인사회의 전폭적 후원이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미전국공화당에서 가장 공들인 활동 중의 하나였다. 전국 공화당은 지난 2년전 석패를 안타까워하면서 이번 선거 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고, 또 이길 수 있는 선거라고 생각하면서 전국에서 승리해야 할 1순위 지역구로 선정을 하고 많은 공을 들이면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또 영 김 당선인의 승리에는 지역구인 39지구의 공화당의 구조적 체질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공화당 하면 골수 백인 남성들만의 공화당인 그런 이미지가 강했었는데, 이번에는 지난해에 있었던 선거(election)에 의해서 처음으로 30대 라틴계 여성이 공화당 의장으로 당선 됐다. 그리고 부의장도 50대 중국계 남성이 당선돼서, 현재까지 있었던 백인계 기득권층이 사라 지고, 이제는 실전에 강한 실무형 리더들로 공화당의 체질이 전체가 개선된 것이다. 이런 변화들이 영 김 당선인의 선거 팀원들과 실무적인 차원에서 협력하면서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2년 전과 또 특별히 다른 점이라면, 영 김 당선인과 상대하여 뛰고 있는 현역 의원은 정치 초보자가 아니다. 1년 반, 거의 2년을 일하고 있는 현역 의원이면서, 2년 전에 선거 때 공약을 한 약속이 많은데, 그것이 과연 지켜지고 있는지 안 지켜지고 있는지, 도전자(challenger)로서 영 김 당선인이 그것을 부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무엇보다 영 김 당선인이 과거 주 의회에서 일하면서 지켰던, 공약을 이뤄내는 그런 의원의 이미지를 가지고, 기록을 가지고 1-1로 싸울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영 김 당선인이 이번에 다시 현역 의원 시스네로스와 리턴 매치에도 상당한 고민이 있었다.
2018년 첫번 도전에서 안타깝게 석패했지만 그녀가 다시 도전을 마음을 정하면서 다시 뛰겠다고 결심하자 2018년도에 같이 뛰었던 다른 공화당 후보들이 한결같이 ‘그래 영 김이 다시 도전한다면 우리는 적극 도울거야’라는 격려에 새삼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리고 지난 2018년 선거전에서 상대자인 민주당의 시스네로스 후보가 복권 당첨자로서 재력도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상대로 경쟁한다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나 전국 공화당 위원회에서는 영 김 당선인이 재도전할 경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이 같은 환경에서 이번 예선 때 2018년 도처럼 치열한 예비선거를 무난하게 치루고 오직 처음부터 11월 대선을 목표로 뛸 수 있었던 것도 주효했다. 영 김 당선인은 정치적 스승인 에드 로이스 전 하원 외교위원장의 아시아 정책 보좌관으로서 많은 것을 배웠다.
영 김의 승리는 한인사회의 저력 드러낸 것
특히 정책보좌관으로서 한미 관계 업무, 미국-아시아 관계 업무,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한미 의원연맹협의회의 실무자로서 활동을 포함해 북한 인권 문제를 논의하는 사항 이외에도 위안부 문제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어왔다. 따라서 영 김 당선인은 앞으로 의회에서 미국과 한국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또 도움을 받으며, 함께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게 한국계 미국인(Korean-American)으로서 미 의회에서의 가교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는 한국과 미국이 경제, 무역으로 협력하는 사항을 포함해서 한미 양국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외교 정책을 세우는 데 노력을 할 것
이라고 그는 다짐했다. 또 과거 의회에서 로이스 전외교 위원장과 함께 논의한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해서 앞으로 의사당 에서 계속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북한이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되고, 북한에서는 핵 무기가 모두 폐기돼서, 한반도가 새로운 평화의 상징이 될 수 있도록 협력하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 김 당선인은 자신의 의원 사무실을 통해서 많은 젊은이들이 인턴쉽이나 펠로우쉽 등을 통해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부여할 것이고, 한인들이 더욱 더 정치에 관심을 갖고, 미국 에서는 주인 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한다면, 미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주도적 역할을 할 수가 있는 지도자들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영 김 당선인의 정치적 스승인 에드 로이스 전 하원외교위원장은 미 고위 정치인중에서 처음으로 글렌데일 소녀상을 참배했으며, 미의회에서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선언했으며, 마이크 혼다 전 하원의원과 함께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킨 주역이었다.
또한 그는 북한인권법 통과에도 앞장 섰다. 특히 지역구인 오렌지 카운티는 약 30만명의 한인이 밀집한 곳이어서 로이스 위원장은 미 의회 내 지한파 의원 모임인 ‘코리아 코커스(Korea Caucus)’ 공동 의장을 맡으며 한국 관련 이슈에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2007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공동 발의하고 하원에서 만장일치 채택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위안부 결의안 통과 10주년 행사에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2013년부터 하원 외교위 위원장을 맡은 이후 북핵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며 대북제재 법안 통과도 주도했다.
이민자로서 한미양국의 이익 도모 우선
그는 한미 관계 교류와 협력에 이바지한 공로로 2015년 한미협회의 한미우호상을 받았다. 로이스 위원장은 지난번 은퇴 성명에서도 “나는 한인들과의 인연을 깊게 생각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음력 설, 미주 한인의 날, 독립기념일, 다른 많은 지역 행사에서 한인을 포함한 모든 친구들과 함께 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영 김 당선인이 한인사회에 부탁하는 메시지가 있다.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은 영 김이나 미셸 스틸이나, 현역 의원으로 일하고 있는 앤디 김이나 이런 사람들이 정계에 진출하고, 정계 현실에서 일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정치 세미나나 컨벤션에서 저희들과 만나면서 일하면서 고무되고, 또 자원봉사자나 스태프로 일하든지 하면서, 직접 선거운동을 하면서, 경험을 얻어가면서,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한인들이 각자가 자발적으로 선거 캠프에 참여해서 자원봉사하고 유권자 등록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투표하면서 정치 참여할 때, 우리 한국계 미국인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미국시민들과 마찬가지로, 한인 이민자로서 한인 커뮤니티에 특별히 중요한 이슈들을 파악하고, 그런 문제를 현역에서 일하는 의원들에게 전달하고, 또 그 분들을 초청해서 토의(round table discussion)하면서 그 분들의 의견을 듣고, 이러면서 현안 문제들을 의회에서 반영할 수 있도록 한인들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선거에 투표를 하는 게 우리가 할 의무사항이다. 투표는 곧 힘이다. 정치 지도자들은 당연히 투표하는 커뮤니티에 신경 쓰게 돼 있다. 이번 선거를 통해서 당을 떠나서 우리 한인들이 미국 의회에 한인 정치인을 많이 배출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