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없는 램지어 교수와 하바드대에 유물기증 철회 통보
‘학문의 자유’ 빙자
‘추악한 거래’ 질타
마크 램지어(J. Mark Ramseyer)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위안부’ 망언 논문에 대한 전세계적인 규탄 운동에서 미주 독립운동의 지도자 도산 안창호의 외손자 필립 안 커디(66,Philip Ahn Cuddy) 씨는 원래 하버드대에 추진하고 있던 도산과 안수산 여사의 유물 기증을 전격 취소해 국내외 주목을 받았다.(본보 1155호, 2021년 3월 7 일자 보도) 도산 외손자 커디 씨는 지난 1일 본보에 하버드대 로렌스 바카우 총장(President of Harvard University, Lawrence S. Bacow )에게 보낸 항의 서한 전문(별첨 참조)을 보내 오면서 “램지어 교수와 하바드대는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번 램지어 교수 논문 철회를 위한 투쟁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필립 커디씨는 도산의 외손자이며, 도산의 맏 따님인 안수산 여사의 아들이다. 그는 도산 연구가로 권위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주한인독립운동사 연구가로도 정평을 받고 있다. <성진 취재부 기자>
금번 필립 안 커디 씨가 하버드대 총장에 보 서신 내용은 단순한 항의 편지가 아니다. 문제의 램지어 교수가 속한 하바드 대학 로렌스 바카우 총장에게 ‘왜 하바드 대학이 책임을 져야 하는 분명한 논리를 펴고 있다. 필립 커디 씨는 본보에 서한을 제공하면서 “하버드대는 교직원들이 ‘학문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위안부’ 문제에 관한 역사적으로 명백한 허위 주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허락했다”며 “그런 하버드대에 어떠한 사료도 기증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일본군’위안부’가 매춘부라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과, 하버드대의 소극적 대응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그는 바카우 총장에게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에 엄연히 ‘위안부’에대한 정의로운 역사가 기록 되어 있다”면서 “역사 왜곡을 두둔하는 하버드대의 입장은 반듯이 고쳐져야 한다”고 강조 했다. 이어 그는 서한에서 도산과 어머니 안수산 여사가 미국 역사속에서 어떻게 살아 왔는지 배경도 설명했으며 일제강점기에 도산이 일본에 의해 고문을 당하며 순국을 했는데 그런 유산을 일본의 선전도구로 추락한 램지오 교수의 논문을 두둔한 하버드대에 어떻게 사료를 기증할 수 있는가 반문했다.
특히 커디씨는 램지어 교수의 “부적절한 학술적 글쓰기에 대한 직접적인 대가”라고 설명했다. 그는 바카우 총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우리 가문의 유물과 일본이 제국주의 강점기에 우리 가문과 한국에 저지른 짓을 고려하고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직접적인 대가를 치르게 하는 차원에서 사료 를 하버드대에 기증하는 것과 관련한 모든 논의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커디씨는 도산과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사료를 이전하는 방안을 두고 그간 하버드대와 협상을 진행해왔다. 그는 “진실을 추구하지 않는 것, 역사를 옹호하지 않는 것, 개인적 이익을 위해 역사를 수정하는 것의 대가가 무엇인지 교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왜곡 대가에 따른 교훈 얻어야
커디씨는 램지어 교수와는 별개로 하버드대와 논문이 게재된 학술지인 ‘인터내셔널 리뷰 오브 로우 앤드 이코노믹스’를 향해서도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학술적 자유라는 허울 뒤에 숨어 충분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며 “하버드대 교직원들이 학술자유라는 명분으로 자유롭게 숨어 위안부 여성과 관련해 그처럼 뚜렷하게 잘못된 의견을 토해내도록 내버려 두는 걸 보면 하버드 대는 우리 사료를 보관할 장소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램지어의 행동, 그 행동에 따른 대가 때문에 하버드대와 하버드대 공동체에 있는 많은 이들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필립 커디씨의 외조부 도산 안창호 선생은 1902년 부인 이혜련 여사와 함께 미국에 유학생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왔으나 동포들이 상투 끈을 잡으며 싸우는 모습에 유학 생활 대신 동포 계몽 운동과 함께 ‘공립협회’(1905), ‘대한인국민회’(1910), ‘흥사단’(1913)을 창설해 이민 1세대로서 미주 독립운동을 주도 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운 인물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한 도산은 정치가, 교육자, 계몽 운동가로 살다가 독립이 찾아오기 전인 1938년 일본의 고문에 순국했다. 필립 커디씨의 어머니 안수산 여사는 1915년 LA에서 출생 1942년 미국 해군에 입대한 사상 첫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미 해군 학사장교(OCS)로 임관해 미 해군 최초의 여성 방공포격술 장교이자, 미군 최초의 동양인 암호해석 전문가였다. 2020년 7월에는 미국 국무부가 외교 정책과 가치를 소개 하기 위한 사이트인 ‘셰어 아메리카’에서 안수산을 ‘선구자, 용감한 장교, 공동체 지도자, 한국계 미국인인 안 여사는 미국의 영웅’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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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커디 씨가 로렌스 바카우 하버드대 총장에게 보낸 서한 전문]
일본 전범기업 장학생 램지어 교수 두둔하는 바카우총장
삐뚤어진 역사관…부끄러운 줄 알아야
로렌스 바카우 총장님께, 저, 필립 커디는 코로나19 때문에 중단됐던 귀 대학 쉴레싱어 도서관(Schlesinger Library)과의 귀중한 역사자료 기증에 관해 이번에 교섭을 중단하게 된 것과 관련하여 총장님께 편지를 드립니다. 이 역사 자료들은 저의 할아버지 도산 안창호와 저의 어머니 수잔 안 커디(안수산)에 관한 유산의 일부입니다. 이 두 분은 한국과 미국 양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들입니다. 내 조부모님은 1902년에 한국에서 미국에 온 첫 한인 부부였습니다. 도산은 미주 독립운동 기간 중 일제강점기에 맞서 싸운 한국의 가장 주요한 독립운동가였습니다. 그는 미주 한인사회에서 가장 민주적인 개혁가였고, 1900년에 여성 인권사상을 한국에 소개 했습니다. 저의 할머니는 미국 땅에 발을 디딘 두번째 한국 여성이었습니다. 그 분은 한국과 미국에서 학대와 차별을 당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1915년 로스 앤젤레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분은 최초로 미국 해군에 입대한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이었습니다. 그분은 해군에서 제대하여 미국가안보회의에서도 근무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역사에 대한 거짓과 속임수에 많은 경험을 지니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독립기념관에 있는 한국의 초기 근대사 자료 중 우리 집안에서 기증한 소장품이 가장 많이 전시돼 있습니다. 이 소장품은 가장 위대한 한국 애국자 중 한 명인 도산 안창호와 그의 가족의 유산을 상세히 보여줍니다. 1984년에 대한민국에 기증된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우리 집안의 가치 있는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관들이 제가 보관하고 있는 종류의 자료들을 더 기증 받고자하는 것은 기정 사실입니다. 최근 호르헤 도밍게즈(Jorge Dominguez) 사례에 대한 총장님의 진술을 읽었습니다(2/4/21). 총장님께서는 40년간 괴롭힘과 차별당한 역사적 상황과 마주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에게 꽤 유익한 방향제시를 하는 조언자들 패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총자님을 인터뷰한 BBC 방송 진행자가 당신을 과거의 몇몇 이슈에 대해서도 알려줍니다. 그 과거의 논란이 됐던 문제를 다루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계속해서 저의 책상 위에 놓여진 과거에 대해 부담을 갖고 있습니다. 또 2020년 5월 30일자 ‘내가 믿는 것’이라는 귀하의 진술을 읽었습니다. 총장님께서는, “나는 그 사회의 정의의 척도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그 사회가 어떻게 취급하느냐 라고 생각한다.”고 썼습니다. 저는 그와같은 총장님의 의견과 입장 그리고 증언에 감명받았습니다. 여기서 제가 생각하는 총장님의 견해를 가지고 존 마크 램지어 교수에 대해 제가 믿고 있는 바를 총장님께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총장님의 신념에 비추어보면 램지어 교수는 명백한 모순을 담고 있습니다. 램지어 교수의 글에서는 ‘위안부’를 ‘정의’로 판단되고 있지 않고 ‘매춘부’로 왜곡했습니다. 특히 그의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는 모두 일본의 선전술의 표징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램지어 교수의 빈약한 기존의 저작물들의 역사적 충격에 문제 제기를 하였습니다. 하버드의 전설적인 한국학과는 오래전에 이 가슴 아픈 위안부 여성 문제의 기틀을 마련했을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램지어 교수는 ‘정의’의 실패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근 하버드대 교지인 크림슨(Crimson)의 기사는 ‘국제법경제리뷰(IRLE, The 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에 실리기로 된 램지어 교수의 논문의 심각한 결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현재 IRLE편집장인 엘스비어가 출판 여부를 우려하고 있는 졸작 외에도 친일본 논문을 저술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램지어 교수가 학대와 차별 및 악성 정보를 유포하는 곳에 가담하고 있다고 생각 합니다. 1990년부터 저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 중에 자행한 ‘성노예’ 행위를 부정하는 사건을 타파시기는 캠페인에 관여해 왔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샌프란시스코 위안부 여성상 건립에 참여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일본계 미국인 시민단체가 글렌데일에 세워진 ‘소녀상’ 철거를 시도하려는 것을 중단 시켰습니다. 저는 우리 가족의 역사적 유산을 통해 일본정부의 뜻에 따르는 선전술의 모든 것을 겪어 왔습니다. 램지어 교수는 ‘정의’에 대한 판단없이 위안부에 대하여 일본 정부가 하는 거짓말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한국의 역사적 사례에 전통적으로 더 친일기관들의 장벽에 주먹으로 대항하는 시도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진실에 대한 램지어 교수의 자가면책의 결과로 행동조치를 취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위안부 여성에 대한 램지어 교수의 편협한 가르침이 이 비인간적 이슈의 터무니없는 허위 진술을 낳게 한 댓가를 치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행동과 그 결과는 하버드대학과 하버드 커뮤니티 및 그 밖의 많은 곳에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저의 행동은 위안부 여성에 대한 램지어 교수의 부적절한 학문적 저술에 기인한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최근 의료체계와 정치위기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램지어 교수가 진실 존중 악화가 영구화된 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명문 대학으로 존경받는 하바드 대학에서 이런 램지어 교수 같은 목소리가 진실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아마도 치명적인 손상과 장기적으로 해로운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저는 램지어 교수가 일본정부와 미쓰비시 기업의 지원을 받아 일본의 선전도구로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인터뷰에서 그가 언급한 것처럼 이전에 하버드대학에 150만불 기부금으로 조성된 것 이외의 더 많은 지원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야후 2/8/21참조). 오늘날 ‘돈받고 하는(paid to play)’ 연구들이 아주 많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하버드대 총장실과 국제법경제리뷰 및 엘시비어가 하버드 대학 램지어 교수의 역사에 대한 허위 진술을 적절히 해결하기 위해 “학문적 자유”라는 명분으로 온전히 숨을 수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더 많은 학자들의 연구 결과와 모순되는 적절한 지식과 연구 및 고증과 증거 없이 작성된 논문을 진술을 할 때 학문적 자유로 비껴 갈 수는 없다는데 동의합니다.
이 경우에 있어서, 저는 제가 어떠한 정의를 분석할 자유가 제게도 있다고 확고히 믿고 있습니다. 아마도 진리를 탐구하지 않고, 역사를 지지하지 않으며, 개인적 이익을 위해 그것을 각색하는 결과 에 대해 교훈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저의 가족의 유산과, 일제 강점기 시대에서 일본이 저의 가족과 한국에 저질렀던 참상을 회고하면서,직접적인 램지어 교수의 말의 결과로 인해 저는 하버드 대학에 자료기증 추진에 그 어떤 모든 논의를 취소하고자 합니다. 램지어 교수가 지지하는 일본은 내 할아버지 안창호를 투옥시켰고, 고문했고, 끝내 살해했습니다. 저는 3.1독립운동 평화시위 당시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하다 일본 경찰에 의해 난타당한 여성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위안부 여성도 만났습니다. 위안부 여성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거침없이 토로하며 학문적 자유의 뒷전에 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직원들의 행위를 허용하는 하버드대에 저의 어떠한 소장 사료도 보관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고 단언하는 바입니다.
배카우 총장님, 저의 가족의 소장 사료 기증을 위해 지난동안 진행시켜 왔던 하바드 대학과의 기증 철회는 분명히 하버드의 존 마크 램지어 교수의 잘못된 ‘위안부’ 논문의 결과임을 분명하게 다시 한번 밝히는 바입니다. 2021년 2월 17일 필립 안 커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