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야기]민병수 변호사‘구순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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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허락하는 한 커뮤니티 봉사 계속하고 싶다”토로

주류사회에 우리 권리 알려야 한다

■ “한인 2세들과 함께한 봉사가 기쁨이다” 진정한 리더십
■ “한인사회 중요 이슈에 항상 자리지켰다”부조리에 대항
■ “변호사 자격증을 불우한 한인위해 사용”권익보호 앞장
■ “LA한인사회 최고령 전설적 공익변호사”진정한 롤모델

민병수 변호사(90, William P. Min)는 LA코리아타운에서 현직으로 활동하는 최고령 한인 형법전문 변호사이다. 선데이저널은 지난 2013년 3월 10일자(지령 872호)에서“민병수 변호사 ‘팔순잔치’ 의미와 LA 한인사회”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그후 다시 10년의 세월이 흘러 이번에도 그를 따르는 1.5세와 2세들이 민 변호사 ‘구순잔치’를 더욱 의미있게 차렸다. 1.5세와 2세들은 지난 70회 생일 잔치부터 계속 준비해 오고 있다. 원래 민 변호사의 생일은 3월 5일이나 이번에는 지난 12일 (토) 오랫동안 민 변호사를 존경해 오는 박병철 회장(CEO, Everest Trading Corp.)이 자택을 생일 잔치 장소로 후원했다. 이날 정정한 모습으로 부인과가족들을 동반하고 나온 민 변호사는“건강이 허락하는 한 커뮤니티 봉사를 계속하고 싶다”면서 한인에 대한 혐오범죄 등 사회 현상에“인권 문제는 실패 없이 성공도 없다. 실패해도 계속 부조리함과 싸워야 한다. 이제 한인 사회는 돈도, 영향력도 갖췄다. 끈기를 갖고 집요하게 우리의 권리를 주류사회에 주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한인사회에 강조했다. <성진 취재부 기자>

이날 ‘구순잔치’에는 민 변호사의 어릴 적 모습과 청소년 시절 미국 생활 초창기 변호사 시절 등 현재까지 모습들을 담은 배너가 걸린 잔치 마당에서 1세, 1.5세 그리고 2세, 3세들 80여명이 모여 힘차게 “해피버스 데이!!”를 합창했다. 이 자리에 미셀 박 스틸 연방하원의원, 강석희 전 어바인시장 부부, 하워드 함 판사, 남윤호 중앙일보USA 대표 부부, 데이빗 류 전 LA시의원, 김도형 변호사, 그레이스 유 변호사, 이승호 변호사 부부, 올해 연방 34지구에 출마하는 데이빗 김 변호사 등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낮 12시 30분부터 알렉스 차 변호사의 사회로 진행된 생일잔치는 이번 구순잔치를 준비해 온 2세 캘로라인 심씨의 민 변호사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기도로 시작됐다. 이 자리에서 구순잔치 호스트를 맡은 1세 박병철 회장은 “민 변호사와의 인연은 지난 1985년 센추럴 라이언스 클럽에서 처음 만나 30년 이상의 인연을 맺어왔다”면서 “민 변호사는 특히 1.5세와 2세들과 함께 봉사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박 회장은 “민 변호사가 미주 한인재단에서 미주한인의 날 제정 등을 포함해 커뮤니티 봉사하는 열정에 존경하게 됐다” 면서 “민 변호사는 진정한 한인사회의 수호자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첫번 축사에 나선 1.5세 미셀 박 스틸 연방하원의원은 “민 변호사는 우리 한인사회의 진정한 롤 모델이다”면서 “항상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계셔 달라”고 기원했다.

그리고 강석희 전 어바인 시장은 “민 변호사는 한인사회 미래에 영감을 불어 넣어준 진정한 리더이다”면서 과거 자신의 어바인 시의원 첫 도전 당시 민 변호사가 수개월간 매주 토요일마다 글렌데일 자택에서 멀리 어바인까지 달려와 선거운동을 도와주어 첫번째 시의원이 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강 전시장은 “다음번 민 변호사 생일잔치는 100세를 맞이할 때 다시 큰 잔치를 벌이자” 고 하여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어 올해 LA연방 34지구 하원의원에 재도전하는 2세 데이빗 김 변호사는 “우리 한인사회에 민 변호사가 있어 자랑스럽다”면 민수무강을 기원했다. 정치 초년생 김 변호사는 지난 2020년 선거에서 현직 지미고메즈 의원과 결선에서 패했으나, 예상과는 달리 53% 대 47%라는 예상외 득표율로 많은 유권자들을 놀라게 했다.

한편 LA시의원 10지구에 도전하는 2세인 그레이스 유 변호사는 “민 변호사는 생애를 통해 70년 이상 한인커뮤니티를 위해 봉사한 롤 모델이다”면서 “그는 우리 타운을 지키는 일에 언제나 함께 하면서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갈 길을 제시했다”고 술회했다. 2세 변호사인 김도형 변호사(K.W. Lee Leadership Center 회장)는 “25년전 KYCC당시부터 민 변호사의 가르침을 받았다”면서 “지금은 같은 빌딩에서 일하고 있다”며 “그는 커뮤니티 봉사의 투사이다” 라고 말했다. 이어 2세로서 LA시의회의 최초 한인 시의원이었던 데이빗 류 전의원은 “민 변호사는 한인사회가 당면한 중요 이슈가 있을 때마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킨 리더”라면서 “내가 시의원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민 변호사의 지도와 성원이 큰 역할을 했다”고 술회했다. 또 류의원은 “민 변호사는 우리 한인 사회의 1세와 1.5세 및 2세들을 하나로 아우르게 만든 진정한 봉사자”라고 존경심을 표했다. 이날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마이크를 잡은 민 변호사는 약 15분간 정정한 목소리로 지나온 90 평생을 회고하면서 “변호사 생활보다 젊은 세대들과 함께 커뮤니티 봉사를 한 것이 더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고 술회했다.

2세들의 한결 같은 소망은 ‘만수무강’

▲ 한인 커뮤니티 중요 이슈에 항상 민병수 변호사(중앙)가 있다.

민 변호사가 커뮤니티 일에 매달리는 것은 그 자신이 미주한인 이민사의 한 밀알이기 때문이다. 사실 민 변호사의 한인 청소년 및 2세들을 위한 활동은 이미 1960년대부터 시작됐었다. 1960년대 2세들로 구성된 당시의 한인회(AKCO)를 시작으로, 1970년대 제인 김씨가 설립한 한인 타운 청소년회관 (KYCC)에도 관여하는 등 지속적으로 한인 단체와 함께 해왔다.

당시에도 자신이 올드타이머 1.5세로서 이민 1세들과 일하면서 ‘들판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난 2003년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이 끝나고 커뮤니티에 봉사정신과 애정을 가진 1.5세, 2세들을 만나게 되면서 그의 삶의 지표도 더욱 발전적인 방향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는 특히 한인 이름 최초의 초등학교 “‘찰스 H. 김 초등학교’와 중학교인 ‘김영옥중학교’의 명명 작업을 추진하면서 이들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민 변호사 자신이었지만, 타인종 커뮤니티 및 단체들을 제치고 이 이름이 선정되도록 치밀한 준비와 전략을 준비한 사람들은 1.5세, 2세였다는 것이다. 민 변호사는 “1.5세, 2세들은 순수하면서도 유능하고 특히 커뮤니티에 대한 애정이 많다”면서 “이를 1세가 인정하고 도와주면 큰일을 할 수 있고, 이들과 일하는 것이 요즘 내가 사는 기쁨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1년에 수 백 명씩 쏟아져 나오는 후배 변호사들에 대해 “인구에 비례해 1.5세와 1세가 이렇게 많이 진출한 것은 한인 커뮤니티 밖에 없다”면서“변호사가 많아지면 문제가 있을 때 법적으로 이를 대변할 인력이 많다는 뜻”이라며 긍정적인 시각도 보였다. 민 변호사는 한국인의 오기로 형법 변호사란 꿈을 키우게 된 동기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1960년 포모나의 기독 사립대학인 라번 유니버시티를 졸업했지만, 당시 차별적 정서로는 아시안 학생의 법대 입학이 거의 불가능했다. 웨스트코비나 통합교육구에서 15년간 교사로 일하며 꿈을 접지 않았던 그는 1975년 마침내 주경야독으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 당시는 백학준씨가 판사로 임명되고, 이후 판사가 된 장병조씨가 LA에서 개업하고 있던 상황으로 민 변호사는 캘리포니아주에서 3번째 한인 변호사이다. 변호사가 된 뒤 92년 LA폭동은 민 변호사에게 한인사회의 권익보호에 더욱 크게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폭동 이후 11명의 한인 변호사들과 함께 한인법률권익재단(KALAF)을 만들고 사재와 시간을 털어 리커 업주들을 대변해 LA시를 상대로 불합리한 조건부 영업제한(CUP) 조치에 대한 소송을 진행했었다.

“민 변호사의 고객은 80%가 한인이었다”

민병수 변호사는 2020년 9월 미주중앙일보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 첫번째 주인공으로 소개되었다. 그 연재물에 민변호사의 파라만장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물론 한인 이민사도 겻들어 있다. 이날 생일잔치에서 재미나는 문답 게임도 있었는데 “민변호사의 취미가 무엇인지 아는 분은 대답 하시라”라는 질문에, 임혜빈 FACE선교회 회장은 지체없이 “커뮤니티 봉사!”라고 말했다.

이에 사회 자인 알렉스 차변호사는 ‘정답’이라며 선물로 스타박스 선물권을 주었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는 민 변호사의 코리안 커뮤니티 봉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중 몇 가지만 소개한다. 지난해 12월에 성취된 코리아타운 선거구 재조정 문제는 지난 30년간 LA한인사회의 숙원사업이었다. 그 선거구 재조정 문제에 민 변호사는 항상 동포들과 함께하며 투쟁을 벌였다. 선거구 재조정이 결정되기전 민 변호사는 “나는 지금도 필요하다면 선거구 재조정을 위해 또 싸울 것“이라며 ”민권 문제는 실패 없이 성공도 없다. 실패해도 계속 부조리함과 싸워야 한다. 이제 한인사회는 돈도, 영향력도 갖췄다. 끈기를 갖고 집요하게 우리의 권리를 주류사회에 주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한인사회에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이 민 변호사는 형사법 전문 변호사인데, 어떨 때는 변호사인지 봉사자인지 구분이 잘 가질 않는다고 한다. 변호사로서 의뢰인을 위해서라면 상대방에게 무릎을 꿇는 것도 피하지 않았던 민 변호사는 “한인 커뮤니티 대변인으로 나갈 때는 당당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며 “다음 세대는 침해하고 뺏는 리더십이 아니라 서로 돕고 함께 번영하는 리더십이 중요하다. 태평양 동쪽(한국)과 서쪽(미주 한인)의 리더십이 합쳐져 새로운 시대를 맞는 날이 50년 안에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민 변호사는 “나는 비록 못 보고 가지만 아쉽지 않다. 사는 동안 최선을 다했고 이때까지 서러움은 다 씻고 간다. 행복한 삶이었다.”고 말했다. 민 변호사가 커뮤니티 봉사로 가장 인상적인 과업은 미국공립학교 명칭에 한국인 이름을 새겨 넣는 일이었다. 한국인의 이름을 딴 초·중·고등학교를 미국에 세우는 건 명실공히 100년 앞을 내다본 교육 프로젝트다. 이민 1세들은 떠나도 학교의 이름은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0년대 한인 이름을 명명한 학교가 줄줄이 탄생하자 타 아시안 커뮤니티도 한인 커뮤니티를 부러워했다. 이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특히 윌셔 불러바드와 6가 사이의 샤토에 세워진 중학교에 김영옥 대령의 이름을 명명하는 ‘김영옥 아카데미’ 프로젝트가 통과하기까지는 무려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닥터 새미리 매그닛 초등학교를 준비할 때는 암 수술과 항암 치료로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친 때였다. 그러나 민 변호사는 차분하게 자료를 준비했다. 그는 수 년 전 안암수술로 한쪽 눈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눈으로 자동차 운전면허를 새로 받을 정도로 환경에 적응했다. “한 눈으로 보는 세상은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그동안 내가 보던 사물의 중심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감사한 건 한 눈으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면서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됐다. 그래서 귀한 삶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 그는 비록 한 눈을 잃었서도 또 다른 세상을 보는 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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