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의힘 잠룡, 2% 모자란 틈 타 대망론 꿈꾸는 조희대
◼ 전례 6명 중 검사출신 대통령 단 1명, 그마저 탄핵파면
◼ “맞아야 몸값 커진다” 여권 도발 유도하는 윤석열 전략
◼ 사태의 발단은 대법관 인사…계속되는 대법관 후보 거부
대한민국 사법부 수장이 현직 대통령과 이렇게까지 정면으로 맞붙은 적은 없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법관 후보 재제청 요구를 “헌법상 근거가 없다”며 걷어찼고, 국정감사장에서는 직접 써온 원고를 꺼내 대통령의 요구를 위헌이라고 못 박았다. 여당은 탄핵과 국정조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결국 국정조사 카드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여권이 때리면 때릴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보수 진영 일각에서 “조희대를 대통령으로”라는 말이 슬금슬금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대망론의 진원지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들어가 있는 사법연수원 동기들의 카카오톡 단체방으로 알려졌다. 해당 톡방에는 지금 조희대 대법원장의 행보가 대권으로 가기위한 서사를 만드는 것이란 내용도 올라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들이 말하는 서사는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다 대통령이 된 윤석열, 바로 그 공식이다. 공교롭게도 조 대법원장을 사법부 꼭대기에 앉힌 사람이 윤석열이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이 하나같이 2% 모자란 지금, 보수 진영의 허기가 ‘조희대 대망론 ’이라는 신기루를 키우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냉정하다. 대망론을 등에 업고 청와대까지 간 사람은 윤석열 단 한 명뿐이었고, 그 윤석열의 끝은 파면과 내란 재판이었다. <선데이저널>이 ‘조희대 대망론 ’의 실체를 해부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사태의 발단은 대법관 인사였다. 청와대는 지난 8월 28일 조 대법원장에게 대법관 후보 재제청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조 대법원장은 이를 거부했다. 청와대가 “사실관계를 왜곡한다”며 두 차례 입장문으로 반박하자, 조 대법원장은 이튿날 다시 언론 공지를 내고 “재제청 요청의 사유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기재돼 있지 않다”며 청와대가 내세운 ‘절차적 흠결’ 사유는 “수긍하기 어렵다”고 받아쳤다. 이틀 연속 대통령과 공개 설전을 벌인 것이다. 9월 중순에는 아예 연설로 메시지를 쏟아냈다.
16일 세종법률문화상 시상식에서 “법은 통치의 수단이 아니다.”라고 했고, 17일과 18일 아시아·태평양 대법원장회의에서 연달아 “사법권의 독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외쳤다. 사흘 연속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국가기관들에 독립성을 부여하는 이유가 뭔지를 좀 생각해 봐야 될 것 같다.”고 받아치자 판은 더 커졌다. 정점은 10월 6일 대법원 국정감사였다. 지난해 국감에서는 여당 질의에 입도 뻥긋하지 않고 자리를 떴던 조 대법원장이, 이번엔 직접 준비한 원고를 꺼내 들었다. 헌법상 대법관 제청에 대통령이나 국회가 관여할 근거가 없으며, 따라서 재제청 요구 자체가 위헌이라는 논리였다. 그리고 결정타. “대법원장이 협의를 하지 않아도 헌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말하자면 대법관 인사에서 대통령은 빠지라는 얘기다. 사법부 수장이 국회 한복판에서 대통령의 헌법 해석을 공식적으로 뒤집은, 전무후무한 장면이었다.
어부지리 노리는 조희대의 생각
여권의 반격은 거셌다. 범여권에서는 탄핵론이 불붙었다. 조국 조국혁신당 혁신정책연구원장은 “민주당은 ‘닥치고 통합’하고 조희대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며 민주당이 내부 권력투쟁에 시간을 허비해 탄핵 적기를 놓쳤다고 몰아붙였다. 민주당은 결국 27일 의원총회에서 탄핵 대신 국정조사를 먼저 하기로 했다. 재제청 거부, 업무추진비 부당 집행, 국감 증인 선서 거부, 그리고 지난해 대선 직전 이재명 후보 사건 파기환송 경위까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탄핵 찬성이 34%로 반대 39%보다 낮게 나온 것이 신중론에 힘을 실었다.
국민의힘은 기다렸다는 듯 반격에 나섰다. 정점식 원내대표는 “대법원장을 악마화하고 괴롭히는 폭력적인 이지메 정치”라며 “강력한 범국민 저항에 나서겠다”고 했다. 바로 이 구도에서 ‘조희대 대망론’이 싹텄다. 여권이 공세를 퍼부을수록 일부 보수층에서 그를 차기 주자로 거론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여권도 이 냄새를 맡았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검찰총장 윤석열처럼 조 대법원장도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대통령 선거에 나오려고 인지도를 높이는 작업을 하는 것 같다”며 이를 ‘서초동 정치’라고 불렀다. 여권 일각에서는 조 대법원장이 대선 직전 이재명 후보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장본인이라는 점을 들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물론 조 대법원장 본인은 정치 참여나 대선 출마 의사를 단 한 번도 밝힌 적이 없다. 오히려 그런 질문에 모욕이라고 답했다. 정치권에는 ‘난가병’이라는 말이 있다. “다음 대통령은 난가?”를 줄인 풍자다. 권력과 싸우는 고위 공직자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띄워주고, 그러다 본인도 어느새 거울 속에서 대통령의 얼굴을 보게 되는 병이다. 조 대법원장이 이 병에 걸렸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최근 행보가 윤석열이 걸었던 길과 묘하게 겹친다는 점은 분명하다.
윤석열이 남긴 성공 공식
윤석열의 공식은 단순했다. 살아있는 권력과 싸운다. 권력이 나를 때린다, 때릴수록 내 몸값이 오른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던 그는 조국 수사와 추미애 법무장관과의 갈등을 거치며 여권과 정면충돌했다. 여권의 공세가 거세질수록 그의 이름은 대선주자 조사 상단으로 치고 올라갔다. 결국 총장직을 던지고, 국민의힘에 입당하고, 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됐다. 이 과정에서 그를 때린 추미애에게는 ‘보수의 어머니’라는 조롱 섞인 별명까지 붙었다. 조 대법원장의 지금 모습은 이 공식의 복사판이다. 상대가 문재인에서 이재명으로, 무대가 대검찰청에서 대법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의 말이 “사법권 독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로 바뀌었을 뿐, 권력에 맞서는 원칙주의자라는 서사는 똑같다.
그리고 이번에도 여권이 판을 깔아주고 있다. 탄핵을 외치는 조국, 국정조사를 밀어붙이는 민주당, “대권 행보”라고 손가락질하는 박지원. 여권이 ‘조희대 대망론’의 가장 열성적인 홍보대사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대망론이 자라는 토양은 따로 있다. 국민의힘의 인물난이다. 당 지지율이 올라도 정작 대선 주자들의 인물 경쟁력은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분석이 보수 언론에서조차 나온다. 면면을 보면 하나같이 뭔가 모자란다. 장동혁 대표는 최장수 당대표를 앞두고 있지만 대중적 확장성에서 물음표가 붙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명태균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 2심에서 무죄를 받아 한숨 돌렸지만, 특검의 상고가 남아 있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당원게시판 사건으로 제명돼 당 밖에 있고, 딸 스펙 의혹 재수사 요구까지 다시 불거졌다. 지난 대선에서 패한 김문수 전 장관은 이미 한 번 쓴 카드다. 누구 하나 “이 사람이면 이긴다.”는 확신을 주지 못한다. 보수 진영은 이런 때마다 같은 짓을 반복해왔다. 당 안에서 사람을 키우지 못하니 바깥에서 ‘엘리트 관료’를 수입하는 것이다. 검찰총장, 감사원장, 국무총리, 유엔 사무총장. 권력과 싸웠거나 국가기관에서 이름을 쌓은 사람을 데려와 대권 주자로 포장한다. 그리고 그 명단에 이제 대법원장이 이름을 올리려 하고 있다.
대망론 6명 중 대통령은 1명
그러나 대망론의 역사는 잔혹하다. 비정치권 고위 공직자 출신으로 대망론이 크게 일었던 대표적 인물 여섯 명을 보자.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월성원전 감사로 문재인 정부와 충돌하며 보수의 새 얼굴로 떠올랐다. 감사원장에서 물러난 지 불과 37일 만에 대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국민의힘 후보 경선의 문턱도 넘지 못했다. 판사 출신의 한계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덕수 전 총리는 탄핵 정국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으며 민주당의 집중 공세를 받았고, 그 덕에 ‘한덕수 대망론’이 일었다. 총리직을 던지고 출마까지 했지만 당원들은 그를 택하지 않았다. 지금 그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1심 징역 23년, 항소심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상고심을 기다리는 신세다.
한때의 대망론은 ‘대차게 망한 대권론’이라는 조롱으로 돌아왔다. 고건 전 총리, 황교안 전 총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대망론의 정점에서 줄줄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반기문은 귀국 후 검증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한 달도 안 돼 짐을 쌌다. 여섯 명 중 대선 출마를 선언한 사람은 셋, 대통령이 된 사람은 윤석열 단 한 명이다. 확률로 치면 17%다. 대망론이 뜨는 것과 대통령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얘기다. 더 뼈아픈 건 그 유일한 성공 사례마저 처참하게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맞을수록 커진다.’ 공식으로 대통령이 된 윤석열은 임기 반환점을 막 돈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헌법재판소는 그를 만장일치로 파면했다.
지금 그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항소심 법정에 서 있다. 정치를 모르는 검사가 정치판에 들어와 대통령이 됐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국민은 이미 혹독한 대가를 치르며 배웠다. 조 대법원장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그가 정말 대권을 꿈꾼다면, 그가 따라가는 길은 당선까지만 ‘성공 공식’일 뿐이다. 그 뒤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윤석열이 온몸으로 보여줬다. 국민은 ‘권력에 맞선 원칙주의자’라는 포장지에 한 번 속았다. 같은 포장지에 두 번 속을 만큼 순진하지 않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가 지금 휘두르는 무기는 ‘사법부 독립’이다. 사법부 수장이 대통령과 싸우는 명분이 정치적 야심으로 읽히는 순간, 그 무기는 칼날을 거꾸로 돌려 자신을 찌른다. 대법원장이 정치판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가 사흘 연속 외친 “사법권 독립”은 대권 출사표의 서문으로 전락한다. 여권이 노리는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대통령과 노골적으로 각을 세우며 여권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그 포화 속에서 보수 진영 일각은 그를 차기 주자로 띄우고, 인물난에 허덕이는 국민의힘의 허기가 그 대망론에 바람을 넣고 있다. 겉보기엔 윤석열의 성공 공식 그대로다. 그러나 그 공식으로 대통령까지 간 사람은 역사상 윤석열 한 명뿐이었고, 그 윤석열은 파면당했다. 최재형은 경선에서 떨어졌고, 한덕수는 수의를 입었고, 고건·황교안·반기문은 출발선에서 돌아섰다. 정년 퇴임, 3년의 공백, 조직 없는 판사 출신, 그리고 ‘사법부 독립’이라는 명분의 자기모순. 조희대가 정말 그 길을 꿈꾼다면, 그것은 대망(大望)이 아니라 개꿈이다. 본지는 조 대법원장이 끝내 법복을 지킬지, 아니면 신기루를 좇아 여의도로 걸어 들어올지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