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본인 앞에서 얘기했는데도 “국민 속였다” 유감
◼ 이“수사 기소 분리” 발언, 유 “당연히 그래야” 맞장구
◼ 친노·친문 세력 이재명 선 긋기, 결국 차기 대권 싸움
◼ ‘굴러온 돌이 감히? 이 바닥에선 우리가 왕’ 이전투구
여권이 정권 출범 1년 반도 지나지 않아 진흙탕 싸움에 자멸하고 있다. 그것도 현직 대통령과 여권 지지층의 ‘신경안정제’라 불려 온 대표 스피커 유시민 작가의 정면충돌이다. 심지어 유 작가가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국민을 속였다”고 했다. 현직 대통령을 향해 “속였다”고 말한 건 둘이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단 뜻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검찰개혁 의지를 왜곡했다며 공개 유감을 표했고, 민주당 안에서도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나왔다. 급기야 시민단체는 유 작가를 고발했다. 그렇다면 과연 유 작가의 주장처럼 이재명 대통령이 검찰개혁과 관련해서 대통령 취임 전과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1년 반 전 이 대통령과 유 작가가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한 이야기에 답이 나와 있다. 본국 언론에서는 아직까지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지만 본지의 확인 결과 노무현재단 유튜브에 함께 출연한 두 사람은 검찰 개혁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검찰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한다”라는 이재명 후보의 말에 유 작가가 격하게 공감하는 장면이 나온다. 즉 이 장면만 보면 유 작가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이 검찰 개혁의 최대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말이 오히려 더 거짓에 가까운 것이다. 그렇다면 유 작가는 왜 이런 말로 이 대통령을 공격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 대통령은 정말 국민을 속였는가? <선데이저널>이 기록을 뒤졌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이재명 대통령은 9월 18일 기자회견에서 애초 구상했던 검찰개혁의 최대치를 설명하며, 수사 검사와 기소 검사를 나누고 법무부 안에서도 수사 기관과 소추 기관을 분리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지금의 개혁은 거기서 더 나아가 검사가 아예 수사를 못 하는 단계까지 왔다는 게 요지였다. 그러자 나흘 뒤 유시민 작가가 미디어오늘 유튜브에 나와서 이를 반박했다. 법무부 안에서 수사·기소를 나누는 게 검찰개혁의 최대치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고, 자신과 민주당 지지층이 알던 검찰개혁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이 대통령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유 ‘이 대통령을 사기꾼으로 묘사’
그런데 시계를 2025년 4월 15일로 돌려보면 웃지 못할 장면이 나온다. 대선 경선에 나선 이재명 당시 전 대표가 노무현재단 특별대담에 앉았다. 맞은편에는 누가 있었나. 재단 이사장을 지낸 유시민 작가, 그리고 도올 김용옥이었다. 유시민이 집권 후 검찰 운영과 정치보복 가능성을 묻자, 이재명 작가는 이 부분에서 검찰개혁을 이야기했다. 당시 대화의 일부분을 옮겨본다.
유시민: 지난 윤석열 정권 아래에서 또 내란 국면에서, 또 지금까지 수장부터 시작해서 범죄 조직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래서 검찰은 개선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완전히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 분리해서 공소로 가야 된다 이런 게 이제 정권 교체를 원하는 분들의 대세예요. 근데 어떤 얘기가 있냐하면 “야 지금까지 민주당이 그렇게 해왔는데, 저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검찰 계획 스톱시키고 음 자기 말들을 사람 검찰총장 꽂고 이렇게 해 가지고 칼 들고 와서 다 죽이는 거 아니야” 이게 있는 거 같다.
이재명: 저 검찰 수사권 문제는 어쨌든 기소하기 위해서, 수사하게 허용해서 안 된다. 원칙적으로 수사와 기소를 분리를 해야 돼요. 그게 법무부 안에 있든 어디에 있든 수사 담당 기관, 기소, 공소유지 담당 기관은 분리하는 게 맞습니다. 그 수사기관끼리도 서로 견제해야 돼요. (중략) 지금 국가수사본부도 좀 독립도 강화하고, 역량도 강화하고, 그다음에 공소과 수사청을 분리한다고 하면 이것도 철저하게 분리해서 견제하게 하고 또 수사기관끼리 상호 견제하게 만들어 놔야 됩니다.
유시민: 국민의힘 지지자 여러분. 국민의힘 의원 여러분 지금 말씀 들으셨죠? 지금 검찰 개혁은 수사와 기소권의 완전 분리로 갑니다. 검사 여러분도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유시민 작가는 이 대통령이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야 한다고 언급하는 부분에서 “당연히 그래야한다”며 수차례 맞장구를 쳤다. 유시민이 “들어본 적 없다”던 바로 그 구상을, 이재명은 1년 5개월 전 유시민 본인의 코앞에서 공개적으로 말했다. 그때 유시민은 대화를 정리하며 이재명 정부의 검찰개혁은 수사와 기소권의 완전 분리로 간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후인 2026년 3월 16일, 이 대통령은 SNS에 검찰개혁 입장을 다시 못박았다. 대선 전보다 한발 더 나간 내용이었다. 개혁의 핵심은 수사·기소 분리를 통한 검사의 수사권 배제이며, 검찰이 직접 수사하거나 다른 수사기관 수사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다. 수사·기소 분리와 검찰의 수사 배제는 국정과제로 이미 확정됐고 되돌릴 수 없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보완수사권 문제만은 남용 우려 등을 따져 충분히 논의하자며 여지를 남겼을 뿐이다.
유시민의 이재명 때리기
다시 말하면 2025년 4월 이미 유 작가 앞에서 큰 그림이 나왔고, 2026년 3월, 대통령이 직접 수사권 배제를 선언했다. 두 번 다 유시민은 “국민을 속였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와서야 갑자기 유 작가가 “대통령이 국민을 속였다”고 한 것이다. 유 작가가 생각하는 혹은 이해하는 최대치가 뭔지인지 알 수 없고, 그 최대치가 달랐다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공개된 걸로만 보면 이 대통령이 검찰개혁 관련해서 국민을 속였다거나, 유 작가가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말은 오히려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실 유 작가가 이 대통령을 공격한 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수 차례 이 대통령을 비판했다. 6월에는 “민주진영 지지자가 원한 건 기존 집에 한 층 더 올리는 ‘증축’인데, 이 대통령은 집을 허물고 ‘재건축’을 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는 것이다. 외연 확장 자체를 반대한 건 아니라면서도, 그 과정에서 기존 민주개혁 진영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친노·친문을 때리면 정치적 점수를 딴다는 뜻의 ‘문까산점’이라는 신조어까지 꺼냈다. 7월에는 대통령의 정치적 선택을 “필연적인 실패의 길”이라 규정했다.
검찰개혁이 늦어지는 것도 대통령이 완전한 수사·기소 분리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책임을 대통령 개인에게 돌렸다. 8월에는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정부와 놀라울 만큼 닮았다고까지 했다. 재건축 → 필연적 실패 → 윤석열 정부와 닮은꼴 → 국민 기만. 한 달 한 달 계단 밟듯 올라간 이 수위는 검찰개혁의 진척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정확히 들어맞는 곡선은 따로 있다. 이재명이 친노·친문의 울타리를 넘어 중도·보수로 판을 넓힐수록, 유시민의 언어가 거칠어졌다는 곡선이다. 검찰개혁 때문에 둘 사이가 벌어진 게 아니라, 둘 사이가 벌어지자 검찰개혁이 몽둥이로 쓰이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점이다.
文에겐 순한 양, 李에겐 맹수
비교 대상은 멀리 있지 않다. 문재인 정부도 공수처를 만들고 검경 수사권을 조정했지만, 수사·기소 완전 분리는 이루지 못했고 검찰의 직접수사권도 남겨뒀다. 지금 유시민의 잣대라면 문재인이야말로 “국민을 속인” 대통령이어야 한다. 같은 성적표를 받아도 문재인에겐 “검찰이 문제”, 이재명에겐 “대통령이 사기꾼”이 된 셈이다. 본지가 보기에 이 싸움의 밑바닥에 깔린 질문은 검찰개혁이 아니라 문패다. 민주당의 주인은 누구이며, 민주개혁 진영의 방향타는 누가 쥐는가. 노무현에서 문재인으로 이어진 친노·친문의 적통이 30년 가까이 이 진영의 ‘정통’을 자처해왔다.
그 적통의 대표 스피커가 유시민이다. 그런데 그 계보 밖에서 올라온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더니, 친노·친문의 집을 ‘증축’이 아니라 ‘재건축’하겠다고 나섰다. 적통의 입장에서 이건 노선 차이가 아니라 왕권 찬탈이다. 그래서 이번 “국민을 속였다”는 발언은 이렇게 번역해 읽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당신이 됐을지 몰라도, 이 바닥의 왕은 여전히 우리다.” 물론 유시민 본인이 그렇게 말한 적은 없다. 그러나 1년 반 전 자기 귀로 들은 말을 이제와 “처음 듣는다”며 기만이라 몰아세우는 장면에서, 정책 논쟁 이상의 무언가를 읽지 않기란 어렵다.
유시민 작가는 오랫동안 여권 지지층의 불안을 달래는 신경안정제였다. 위기 때마다 그의 입은 진영을 결집시켰다. 그런데 그 안정제가 이제 현직 대통령을 향한 흥분제가 됐다. 정책을 두고 싸우는 거라면 얼마든지 싸워도 좋다. 보완수사권을 남길지 말지, 공소청을 어디에 둘지는 치열하게 논쟁할 일이다. 그러나 기록이 멀쩡히 남아 있는 발언을 두고 “국민을 속였다”라며 대통령의 정직성 자체를 겨누는 건 다른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