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무죄, 김건희 임성근은 감형… 오세훈은?
◼ 건재한 윤석열의 판사들… 하나 둘 모습 드러내
◼ 제2의 윤석열 꿈꾸는 조희대, 국감 발언도 비슷
◼ 조희대 중심 사법부의 내란…맞을수록 맷집 커져
이재명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사법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사법부 독립이란 명분 아래 대통령에게 사실상 반기를 드는가 하면, 윤석열 및 내란 관련자들에 대한 판결이 하나둘 뒤집히고 있다. 이럴 경우 윤석열의 내란 재판마저 알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사법부 구성을 보면 윤석열 정부에서 요직을 맡은 판사들이 적지 않다. 윤석열이 파면당하는 바람에 이들의 영향력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이다. 정권 초에는 여론의 눈치를 보던 이들이 여론이 바뀌자 본인들의 속성을 드러내는 조짐이 보인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며칠 사이 쏟아진 세 건의 항소심 판결과, 1년 넘게 이어진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갈등을 <선데이저널>이 한자리에 놓고 흐름을 짚어봤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서울고법 형사7부(구회근 부장판사)는 7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민중기 특검팀이 윤석열에게 징역 4년, 명 씨에게 징역 3년을 구형한 사건이다. 혐의의 뼈대는 이렇다. 윤석열이 김건희 여사와 공모해 2021년 6월부터 2022년 3월까지 명 씨로부터 약 2억 7천만 원어치, 58회의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받았다는 것이다. 1심은 이 가운데 명 씨가 결과를 부부에게 직접 전달한 14회를 유죄로 봤다. 여론조사 비용만큼의 정치자금을 명 씨가 부부에게 기부한 것으로 판단했고, 부부가 얻은 재산상 이익을 2,792만 원으로 산정했다. 나머지 44회는 직접 전달이 없어 합의에 따른 제공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무죄로 봤다. 형량은 윤석열 징역 2년, 명 씨 징역 1년 6개월이었다.
항소심 판단은 정반대였다. 재판부는 부부가 명 씨에게서 받은 것은 여론 동향 등 정치적 조언과 유력 정치인 소개 같은 조력이며, 여론조사는 그 수단이나 근거의 일부로 제시됐을 뿐이라고 봤다. “정치적 이익으로 볼 순 있을지언정 재산상 이익으로 환산할 것은 아니”라는 논리다. 한 발 더 나가 “여론조사 실시나 무상 제공에 대한 의뢰나 협의 등 의사 합치가 있다고 볼 실질적 증거가 전혀 없다”며 고의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1심이 인정한 ‘암묵적 의사 합치’를 정면으로 뒤집은 셈이다. 재판부는 여론조사가 미래한국연구소 측의 전적인 의사와 판단으로 실시됐고, 그중 일부만 부부에게 전달됐으며, 명 씨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등 다른 정치인에게도 조사 결과를 제공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선고 직후 장면도 눈길을 끌었다. 윤석열은 무죄가 나오자 웃으며 변호인단과 인사를 나누고 퇴정했고, 공동 피고인 명 씨에게는 “이제 다른 사건은 없으신 겁니까, 가족분들 다”라고 말을 건넸다. 방청석 지지자들은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무죄”를 외쳤고, 일부는 눈물을 흘렸다. 명 씨는 복도에서 “형사보상 청구해야지”라고 했다. 변호인단은 입장문에서 “범죄사실은 추측이나 가능성이 아니라 증거에 의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돼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한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특검은 상고하겠다는 입장이다.
뒤집히는 판결 나올 수도
비슷한 흐름은 다른 재판에서도 확인된다. 김건희는 알선수재 사건 항소심에서 징역 5년과 추징금 2,440만 원을 선고받았다. 1심 징역 7년보다 2년 줄었다. 서희건설 회장에게서 사위의 인사 청탁과 함께 받은 5,560만 원짜리 목걸이 등 귀금속, 이우환 화백의 그림 등 대부분은 유죄가 유지됐다. 그러나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장이 건넨 ‘세한도’ 복제품과 로봇개 사업자 서성빈 씨가 건넨 3,990만 원짜리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는 무죄로 바뀌었다. 재판부는 복제품은 한지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홍보 목적으로 보이고, 시계는 “서 씨에게 구매 대행을 요청했다”는 김 여사 측 주장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특검은 무죄 부분을 대법원에서 바로잡겠다고 했고, 김 여사 측은 유죄 부분을 상고심에서 다투겠다고 했다.
윤석열과 같은 혐의로 먼저 기소된 김건희의 여론조사 사건은 이미 1·2심에서 모두 무죄가 나왔고,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이날 윤석열 재판부의 판단과 같은 논리, 즉 명 씨와 윤석열 측 사이에 여론조사 의뢰나 협의가 없었다는 판단이 이미 김건희 재판에서 깔려 있었다는 얘기다. 김 여사 재판부는 명 씨가 부부에게 주려고 조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구소 영업활동 차원에서 조사를 돌렸으니 부부가 재산상 이득을 얻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구명 로비 의혹과 관련해 국회에서 위증한 혐의를 받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도 바로 다음 날 항소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1심이 선고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에서 형량이 줄고 실형을 면했다. 항소심은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와의 면식, 쌍룡훈련 초청 관련 발언은 위증이 아니라고 봤다. 이 전 대표와 임 전 사단장이 친분이 있었다고 볼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고, 두 사람이 만났다는 취지의 관련자 진술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휴대전화 비밀번호 발언은 1심과 마찬가지로 허위라고 판단했지만, 양형 이유에서 “구명 로비 의혹이 결국 사실로 밝혀지지 않은 점과 국가를 위해 헌신해 온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가 “거짓 주장의 확대 재생산을 멈추지 않았다”고 질타했던 사안이다. 윤석열 무죄, 김건희 감형, 임성근 감형. 며칠 사이 나온 세 건의 항소심이 모두 같은 방향이다. 1심보다 가벼워졌다.
대통령과 대법원장, ‘불편한 동거’
이 흐름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시각이 나오는 배경에는 사법부 수장과 대통령의 오랜 충돌이 있다. 발단은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3월 서울중앙지법이 윤석열의 구속취소를 결정했고, 5월에는 대법원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민주당 안에서는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요구가 쏟아졌고, 탄핵까지 거론됐다. 정청래 당시 민주당 대표는 “대선 때 후보도 바꿀 수 있다는 오만이 재판독립이냐”며 사퇴를 요구했고,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내란범을 재판 지연으로 보호하고 있다”고까지 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 나온 조 대법원장은 여당 질의에 한마디 답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재판을 이유로 법관을 증언대에 세우면 재판이 위축된다는 이유였다.
올해는 대법관 인사를 두고 정면충돌이 벌어졌다. 조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구를 거부하자 청와대는 “헌법상 문서주의와 부서제도에 흠결이 있는 것처럼 사실관계를 왜곡한다”고 공개 반박했다. “국민이 대법원장에게 바라는 것이 사법부 독립이라는 대의 아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라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날 선 표현도 나왔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달 16일 세종법률문화상 시상식에서 “법은 통치의 수단이 아니다.”라고 했고, 17일 아·태 대법원장회의 환영사와 18일 폐회사에서 거듭 “사법권의 독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흘 연속이었다.
같은 날 이재명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를 묻는 질문에 “국가기관들에 독립성을 부여하는 이유가 뭔지를 좀 생각해 봐야 될 것 같다”고 받아쳤다. 여권에서는 박지원 의원이 “대통령 선거에 나오려고 인지도를 높이는 작업”이라는 이른바 ‘대권설’까지 꺼냈다. 반면 신율 명지대 교수는 “조희대 대법원장은 절대로 정치할 사람이 아니다”라며 여권의 논리라고 일축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사법부 구성 자체를 문제 삼는다. 윤석열 정부 시절 요직을 맡았던 판사들이 여전히 재판부와 법원 지휘부에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정권 초 여론이 압도적일 때는 몸을 낮췄던 이들이, 대통령 지지율이 흔들리고 정치 지형이 바뀌는 분위기를 읽고 ‘본래 성향’을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대통령은 사법부 독립의 이유를 되묻고, 대법원장은 독립을 외치고, 아래 법원에서는 내란 관련자들의 판결이 가벼워지는 구도가 한 시기에 겹쳤다는 점이 이런 의심에 불을 지핀다. 앞으로 남은 일정이 중요하다. 윤석열 특검의 상고, 김건희 정치자금 사건 상고심, 그리고 윤석열의 내란 재판 자체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23일에는 명태균 씨가 연루된 오세훈 서울시장의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 사건 항소심 선고도 예정돼 있다. 1심은 오 시장이 여론조사 5건을 명 씨에게 의뢰하고 비용 2,100만 원을 후원자 김 씨에게 대납하게 했다고 인정해 벌금 1천만 원과 추징금 2,100만 원을 선고했다. 같은 명태균 여론조사 사건에서 윤석열 2심이 ‘재산상 이익 아님’이라는 논리로 무죄를 선고한 직후여서, 이 사건의 항소심이 어떻게 나올지에 법조계의 시선이 쏠려 있다.
우연? 필연?
분명히 짚어둘 대목이 있다. 이 모든 판결은 재판부가 각자 사실관계와 법리를 따져 내린 결론이고, 판결문에는 근거가 적혀 있다. 김건희는 감형됐을 뿐 여전히 징역 5년이며, 임성근도 위증 일부는 유죄다. 여권이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충돌을 ‘서초동 정치’, ‘대권설’로 몰아가는데 대해서는 정치권의 압박 자체가 사법부 독립을 해친다는 반론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그러나 윤석열이 법정에서 웃으며 걸어 나왔다는 사실, 그리고 같은 시기 대법원장이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는 사실이 한 시기에 겹친 것은 분명하다. 이것이 판사들 각자의 법리 판단이 우연히 같은 방향으로 모인 결과인지, 아니면 ‘분위기’가 바뀐 징후인지는 앞으로 나올 상고심과 내란 재판이 말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