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어느 화창한 수요일.
기자는 ‘무대포(Moodaepo)’ 바베큐 전문점으로 인기몰이에 성공하고 있는 브라이언 정 대표를 만나볼 수 있었다.
그를 만난 곳은 이른바 ‘디저트 부티크’로 불리며 젊은 1.5~2세 한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6가길 하우스(Haus) 카페.
이날 처음 방문한 하우스 카페 또한 정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신개념 문화공간이라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았다.
정 대표와는 7년 전 그가 횟집 ‘노량진’과 노래방 ‘고성방가’를 함께 운영했던 때부터 일면식이 있던 사이라 이내 그간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어떻게 미국에 처음 오게 됐느냐는 첫 질문에 정 대표는 주마등처럼 흘러온 쉽지 않은 과거사를 솔직히 털어냈다.
12살 어린 나이인 지난 1974년 괌 이민 길에 오르게 된 정 대표의 첫 미국 입성기. 그는 7살 때 모친을 여의었고, 12살 때 부친마저 돌아가시게 되자 큰 형, 누나와 함께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이민 1세대다.
이렇듯 어려운 환경이 그를 일찌감치 자수성가의 길로 이끌었다고나 할까. 13살 때부터 괌에 거주하며 한국마켓에서 하루 5달러의 일당을 받고 일선에 뛰어든 것을 시작으로 세차, 김밥배달에 이르기까지 정말 닥치는대로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사업수완을 익혔다.
1982년 괌을 떠나 로스앤젤레스에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정 대표는 “큰 형이 운영했던 보석가게에서 일하며 새로운 사업세계에 대한 눈을 뜨게 됐다”며 “어려서부터 산전수전을 몸소 체험하면서 ABC 기초부터 차곡차곡 배운 것이 현재의 사업관을 길러준 배경이 됐다”고 전했다.
이에 정 대표는 지난 1988년부터 독립해 보석 도매상 일을 도우며 사업의 꿈을 키웠고, 마침내 지난 1991년부터 10여 년간 LA인근 스왓밉에서 직접 금은 보석방을 운영하게 된다.
당시 직접 디자인하고 세팅한 보석 제품들이 스눕 덕, 제리 스텍하우스 등 미국 연예인과 농구선수에게 인기를 끌며 보다 큰 유명세를 타자 어느덧 주류사회를 공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어떤 사업이든 시작하든지 자신만의 브랜드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체험했다는 것이다.
실패는 도약을 낳고
10년에 걸친 보석가게의 성공, 그리고 6가와 뉴햄프셔길 ‘오렌지 피시 갤러리’라는 선물가게의 성공 등 말 그대로 그는 성공가도를 달렸다. 이에 힘입어 업종을 바꿔 크게 사업을 확장한 것이 바로 윌셔와 버몬트가 만나는 남동쪽 코너에 위치했던 오픈형 횟집 ‘노량진’과 노래방 ‘고성방가’였다.
당시 뻥 뚫린 공간에 콤보메뉴 형식 오픈형 횟집인 노량진의 등장은 한인타운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또한 가족단위 외식에 나선 이들을 위한 문화레저 공간으로 ‘고성방가’라는 다소 재미나는 명칭의 브랜드를 앞세운 노래방도 연달아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른바 ‘횟집+노래방’이라는 멀티 엔터테인먼트 요식업의 창시자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정 대표는 리스계약 문제로 그 꿈을 채 펼쳐보지도 못하고 사업체를 접게 된다.
그는 “요식업에 갑자기 뛰어들게 된 것은 그만큼 사업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업과는 무관한 외적인 부분에서 난관에 부딪혀 사업을 그만두게 되자 정말 어처구니없다는 좌절감만이 밀려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사업운영에서 손을 떼고 두문불출하던 시기에 남가주 임마누엘 교회 김대은 목사님을 만나 하나님을 영접한 것은 인생 변화의 큰 계기가 되었다. 바로 이때부터 그간 벌여왔던 사업이 돈을 수단으로 한 개인사업체적 성격이 강했다면, 이 시기부터 새로운 개념의 사업체 설립에 눈을 뜨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처음 탄생한 업체가 ‘무대포’다. 연이은 무대포 2호점의 성공도 이를 발판으로 한 것이었다. 오는 12월 무대포 플러튼점 오픈까지 거침없는 성공신화를 써나가고 있는 정 대표는 내친 김에 내년 무대포 어바인점 오픈을 이끌어낸 뒤 북가주인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뉴욕 등 타주로의 진출도 현실화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과거 최고의 보석재료와 세공기술을 앞세워 주류사회 유명인들이 즐겨 찾는 보석 거물이 됐듯, 무대포 역시 어느덧 입소문이 번져 마린보이 박태환, 이병헌, 황신혜 등 한국의 유명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들이 즐겨찾는 명소가 됐다.
역시 뜻이 있으면 한 길로 통한다는 격언과도 같이 다시 재기의 길에 들어선 셈이다. 한편 기자와 정 대표는 의외로 긴 얘기를 나누다 보니 두 사람 모두 다음 약속이 잡혀 있어 추후 인터뷰 약속을 기약한 채 잠시 이야기를 뒤로 미뤄야했다.
정 대표와의 두 번째 만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