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북핵협상” 왜 강경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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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5월부터의 한.미.일 3국정상간 일련의 대북정책 조율이 끝나기 무섭게 미국은 단호한 행보로 대북 ‘추가적 조치’를 하나씩 취해가는 요즈음이다. 일본도 기다렸다는 듯 부분적인 대북 제재조치를 취하기 시작해 ‘평화.외교해결’노력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난 인상마저 풍겨준다. 이런 시점에서 미국의 당돌한(?) 것 같은 잇딴 강수는 왜 나왔으며 그것을 가능케 한 요인은 무엇이었던지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밝혀진 여러 사실들과 내외의 시각들을 참조, 정리해 본다. [편집자 주]

미, 작년전반에 북측 핵개발 감지

미행정부는 작년 전반부터 북한이 영변 핵 시설에 손질을 하기 시작한 것을 탐지, 앞으로 도발적 언동으로 나올 가능성을 점차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작년 10월 상순 평양을 방문(표면적으로는 대표부 설치문제 협의였지만)한 켈리 국무차관보에게 북측은 우라늄농축에 의한 핵무기개발계획의 존재를 시인했다. (이 또한 켈리의 추궁 결과였지만)

부시행정부는 중국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을 막아보려고 방침을 세웠다. 그것이 작년 10월 장쩌민 당시 중국주석을 텍사스목장으로(장의 멕시코 방문길)초청한 10.25 미중 정상회담이었다. 장 주석은 10월22일 전용기로 시카고에 도착 후, 텍사스로 갈 때 안내역으로 동승한 랜트 주중미국대사를 자기 방으로 불러 대략 다음과 같은 생각을 전했다고 한다.

* 북한의 농축우라늄 핵무기개발계획을 몰랐다.
*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존재는 인정하지 않는다.
* 북한이 미국과의 군사충돌을 초래할 언동으로 나간다면 이를 지지하지 않겠다.
* 평화적 해결을 향해 적극적으로 나서겠다.
장쩌민은 또 북한과의 관련도 설명했다. 90년 등소평을 따라 중국공산당 총서기로서 평양에 갔었다. 그 전해에 김일성 당시 주석이 중국에 와서 경제나 군사원조의 증액을 요청했던 것. 등소평은 협력을 약속하면서 개혁.개방에 의한 경제발전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고.
중국지도부가 북한의 평화적발전을 그전서부터 바라고 있었음을 비친 에피소드인 셈. 이때부터 미국은 중국의 협력방침을 확인했다. 정상회담후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장 주석은 “ 계속해서 긴밀히 협의하여 평화적해결을 위해 미.중이 함께 일하자고 합의했다.” 부시 대통령도 “ 한반도의 비핵을 지키기 위해 미.중이 긴밀히 협력할 찬스이다.”
장 주석( 현 군사위원회 주석)의 이 방침은 국제공약이 된 것이었다.


중, 북한을 회의장으로 끌어내

올들어 중국의 움직임이 표면화되었다. 1월에 북한이 NPT탈퇴를 표명하자 장 주석은 곧장 부시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 찬성하지 않는다’고 통고했다. 2월에는 중국 동북부에서 북한으로 공급되는 중유공급 송유관을 3일간 중단했다.(표면이유는 보수 공사였지만 압력용)
3월초 전기심 부총리(외교 담당)를 당시 지방출장 중이던 김정일 총서기에게로 급파, 다국간협의에 참가하라고 직접 설득케 했다. 중국은 이때까지 영향력 행사를 요청 받을 때마다 “강하게 요구하면 역효과가 난다”는 핑계를 댔었으나 이제 방침을 적극적으로 바꾼 것이다.
이에 관해 중국통인 하바드대 에즐러 보겔 교수는 두 가지 원인을 지적했다. “ 중국은 미국과 잘 지내자는 방향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대만의 독립을 막기위해서도 효과가 있다고 여긴 것이다. 두 번째로 장씨는 (후진타우에의 권력이양을 앞두고)중.미관계의 중추에 자리잡고 있는 게 앞날 지위구축에도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부시 대통령도 그 점을 눈치채고 북한문제에서의 협력을 조건으로 장씨를 초대했다고 생각한다.”

김정일 “체제보장 안해주면 핵계발 계속하겠다” 엄포에 미국 “맘대로해” 일축

한.미.일 3국정상 연쇄회담에서 대북협상 형식은 “ 5자 협의”로 가닥 잡혀, 미국이 이를 중국을 통해 북한에 공식 제의한 바… 아직도 북한은 묵묵부답의 ‘장고’상태. 왜냐하면, 김정일이 이번에도 (다른 루트를 이용한답시고) 앞에 나섰다가 보기 좋게 일축당했기 때문.

일본 시사통신이 지난주말 북경발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김정일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중재를 요청했다고. 부시 미 대통령에게 메시지를 보내 달라는 것인데. 그 내용은 “체제보장을 해달라. 아니면 핵개발을 계속하겠다”는 애걸형 엄포조. 또 협상형식에 관해서는 “다자 협의에 응할 용의가 있지만 그전에 (한번 더) 미국과 직접 담판하자”고 계속 물고 늘어지기 식 전법. 이에 미국측이“ 양보 안해”라고 일축했다고 단막극의 시종이라는 게 중국측부터 전해져…

북, 북경협상때 총력외교태세로

지난 4월23~25일의 북경의 미.북.중 3자 협의에서 북한측은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대표로 나온 이근은 외교부 부국장에 지나지 않아 제일 격이 낮았지만, 뒤따라 북경에 온 조명록 군사위 부위원장(김일성의 빨치산 동료, 북한 서열 3위, 2000년12월 김정일 특사로 방미, 클린턴 당시 대통령과 회담)이 뒤에서 수시로 휴대전화를 통해 지시를 내렸었다.

23일의 협상 경과를 보면, 먼저 중국대표인 부영 외무부아시아국장이 “ 한반도는 비핵이어야 한다”고 단언했다. 켈리 미 대표도 “ 북한이 상황을 에스컬레이드 시키면 (중대한)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이근 북한 부국장은 ‘핵 시설(복수)’을 폐기하는 조건으로 “미국에 의한 조일관계 정상화의 보증” 등 10개항의 요구조건을 제시했다. 이때는 ‘핵무기’라는 어휘도 쓰지 않았다. 이 대표는 또 무기급 풀루토늄 양산으로 이어지는 핵 연료 폐시봉의 재처리가 “거의 끝났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대표는 회의중 끊임없이 휴대전화로 지시를 받는 모양이었다.

그는 자주 미 대표와의 1대 1 협의를 요청했는데 미측은 일체 응하려 하지 않았다.. 켈리 대표는 일.북한정상화문제에 대해 “ 일본에 지시할 수는 없다. 일본이 이 협의에 참석해야 한다”고 응수했더니 이 대표는 “ 미국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일본과 한국의 참석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하고 일본인 납치자 문제에는 “ (납치피해자)5명을 귀국시켰더니 (일본정부에 의해 )납치당했다. 일본은 비열하고 신용할 수 없다.” 고 응수했다.

1차 회담(이것으로 끝났지만) 후 저녁식사가 끝나서 중국대표가 먼저 퇴장한 것을 보고나자 이 대표는 켈리 대표에게 접근, 창가로 끌고 가서 통역을 통해 “ 나는 평양으로부터의 지령과 메시지를 갖고 있다”고 전제하고 나서 “ 우리는 핵무기(복수)를 보유하고 있다. 재처리 능력을 갖고 있으므로 핵무기를 더 만들 수 있고 물질적인 증명이나 이전도 할 수 있다. 주권국가로서 그럴 권리가 있다. 그것을 폐기할 수는 없다. 그것들을 실험하는가, 수출하는가, 증산하느냐 아니냐는 미국하기 나름이다.”고 말하였다. 그 어조에는 회담 때의 애매모호함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이 장면을 미 고위당국자는 후에 이렇게 묘사했다. “ 통역을 통해 모국어의 원고를 읽었다. 김정일 씨가 지도한 문건임에 틀림없다. 핵실험이나 핵무기수출을 생각케 하는 애매한 표현은 듣는 쪽의 상상에 맡기고 후에 부정할 여지를 남기는 의도적인 ‘협상술’이겠지. 장외에서 한 것은 중국대표가 직접 듣게 하고 싶지 않아서이고 , 제지당하는 걸 겁내서인지도 모르겠다.”

미. 북측의 ‘보유’발언에 회의적

그러나 미국은 북한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무기급 우라늄제조에는 아직도 몇 년이 걸린다고 보고 있다. 풀루토늄 원폭(나가자끼형)은 “ 1~2 개 가지고 있다”(테넷 CIA국장)라는 견해도 있지만, “ 확실성이 높은 건 1~2 개분의 무기급 풀루토늄 보유이다. 완성품은 1~2개는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수준. (북경 협의 후 정보를 재검토한 후에도)그것이 미 정보관계자들의 공통 인식이다.”(미 고관의 말)라는 것이 미 정부측의 견해이다.

풀루토늄 원폭이 실험단계인가의 여부는 기폭실험의 성공여부에 달려있다 한다. 일본정부 측서는 북한이 기폭실험을 “몇 십번” 한 것으로 알고 있다지만 미국측은 “ 기폭실험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러시아인 전문가의 말을 믿는 쪽이다.
설령 그렇다고 쳐서 핵무기 1~2개 보유가 심각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나 북한측의 전략면에서는 충분한 게 못 된다고 미국은 보고 있다. 즉, 북한이 만약 그것을 쓰면 당장 반격에 의한 궤멸을 각오해야 된다.
그들로서는 군사적 공격을 막을 수 있게 10개든 20개든 더 가지고 싶어 할 것이다. 이러한 인식과 평가를 바탕 삼아 핵 연료봉을 둘러싼 재처리시설의 재가동을 레드 라인으로 설정한 미국은 냉철하게 앞날 추이를 주시할 태세로 있는 것이다.

미국, 한국에 “미운짓” 계속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북경협의’의 중재역이며 중국대표인 부영 아시아국장은 지난11일 “ 회담의 틀을 에워싸고 미.북한 쌍방의 주장이 크게 다르다”며 난항을 시사하면서 “ 중국은 (미.북한)쌍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통점 찾기에 노력하고 있다”고 의욕을 보였다.
허나,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추이를 보면 연쇄 정상회담으로 전열을 가다듬었을 이쪽 진영에도 미묘한 엇갈림이 차차 커져 가며 서로 등을 돌리다시피 하는 ‘대응의 불일치’가 드러나기 시작해 심히 우려스러운 현상으로 지적되기에 이르렀다.
첫 사태는 노무현 대통령이 방문을 마친 다음날인 9일, 일본에서 벌어졌다. 이날 동해쪽 니이가다항에 입항 예정인 북한의 말썽 많은 만경봉 92호에 대비한 일본측 경계와 대응은 “전시”를 방불케 했다. 북한측이 원산출항을 취소했을 정도. 미.일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추가적 조치” 발동의 첫 케이스였다. 부시 미 대통령이 일본에 부탁한 추가적조치의 경제제재에 관한 일본판은 ‘만경봉호 봉쇄’와 ‘조총련계 송금저지’였으니 말이다.(한일정상회담 때, 고이즈미 총리가 ‘추가적 조치’의 토의를 요구했으나 노 대통령은 대화 진행중임을 내세워 거론조차 반대했다. 귀국도중 노 대통령은 이를 방일 최대성과라고 뽐낸 바 있다.) 이즈음 아미티지 미국무부 부장관이 일본에 왔었다. 그는 가와구치 일 외상을 만나 이문제에 약간 언급했는데 별로 대수러운 것이 아닌 걸로 코멘트했었다.(그는 소리없이 귀미) 한편 미국이 긴급소집을 요청한 마드리드 PSI실무회의가 11일 개최됐다. 일본과 호주를 포함 11개국이 모인 회의에는 미국에서 존 볼턴 국무부차관이 참석 핵, 생화학, 미사일부품 등을 실었다고 의심이 가는 선박이나 항공기를 공해상에서 나포하는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였다. 주안은 말할 것도 없이 북한미사일과 마약수출의 차단에 있었다. 또 미국방부의 실무책임자인 울포위츠 부장관은 서울에 와서 미8군 사령관등과 협의하며 해외주둔미군의 세계적 재배치에 따르는 현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이즈음 그 내용의 공개여부로 한.미간에 실랑이도 있은 것으로 전해졌지만, 미 강경파 네오콘의 핵심 인물인 그는 거리낌 없이 제2사단 병력의 한강이남 재배치문제도 공언하고 한국측에 현대전장비 구입을 촉구해, 국방부측에 요격장비에 다른 독자적방안도 있다는 등 간접응수의 신경전도 있었다.
한.미일 3국의 공식 정책조정기구인 TCOG 회의 가 12 하와이에서 열렸었다. 이 자리에서 미국측은 경수로공사의 중단을 요구해 한국측을 당황케 했다. 한국의 이 차관보는 “9억 달러가 들어간 공사인데..”라며 일시 중지를 청하는 등 여러 면에서 마찰은 계속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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