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1] ‘미주 한인의 날 기념’ 특집-김치를 세계로…

이 뉴스를 공유하기

‘김치는 유형무형의 한국인 민족 DNA의 표상’

김치김치는 바로 한국인의 대표적 식품이다. 미국의 햄버거가 미국을 상징하는 것처럼 김치는 그 이상으로 한국을 대표하고 있다. 2013년 10월 23일 자로 김치를 유네스코에서 인류 무형유산 등재를 권고받았고 같은 해 12월 5일, 제8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김장문화가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김치가 문화유산이 된 것이 아니다. 김치 자체가 문화유산으로 등재를 못한건 김치와 같은 비슷한 음식이 있거나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비슷하게 먹기 때문이다. 한때 한국 정부 문화재청이 “김치와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됐다고 홍보했다가 유네스코에게 주의를 받기도 했다. 미주사회에서 한인 이민사 연구에 크나큰 족적을 남기고 있는 이자경 이민 연구가가 최근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세계김치연구소 주최로 열린 ‘김치 인문학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내용을 발췌 소개한다. 특히 100년 전 멕시코로 이민간 한인 선조들이 멕시코와 쿠바 땅에서 만들어 보존시킨 김치 이야기는 우리를 감동케 한다. 앞으로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이자경 이민연구가

정리-이자경 이민 연구가

필자는 지난해 5월 27일부터 6월 25일까지 한 달 동안 멕시코와 쿠바를 돌아보면서 다시 한번 김치를 통해 이민사의 거대한 역사적 물줄기를 느꼈다. 이민사회 김치 관련 자료수집 차 공항만 6차례 들락거린 답사기행은 가는 곳마다 감동의 연속이었다.

마이애미 → 멕시코(유카탄) 메리다 → 쿠바의 아바나(Habana) → 마탄사스(Matanzas) → 카르데나스(Cardenas) → 멕시코시티 등지로의 강행군이었다.

한인 후손들을 만나 그분들에게 처음으로 김치와 불고기를 대접하면서,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애국가와 아리랑을 부를 때 모두의 가슴은 같은 이민자의 정체성 하나만으로도 회한과 함께 감격으로 터질 듯 벅차올랐다.

물론 방문한 대부분 지역들이 배추와 무를 거의 재배하지 않거나(또는 생산량이 희소하거나) 아니면 생산지로부터의 유통과정이 힘들어 시연하기조차 부적절한 곳이란 전제하에서 처음엔 취재가 아예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양배추와 복 초이(청경채) 등 배추과에 속한 재료들을 통해 김치는 언제나 만남의 주체가 되어주었고, 필자는 김치 전도사로 환대받았다. 따라서 김치 관련의 물적 자료 수집은 너무 취약한 반면 이민 사적 시간과 기억 속에서 김치는 무형, 유형의 유전적 민족 DNA로 드러났으며 지금도 그들의 혈액 속을 흐르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민자의 혈액 속에 감추어진 김치의 DNA라는 주제로 전개할 경우, 해외에 장기간 거주하는 한국인(여행자 거나 이민자 거나) 가운데 조국이라는 중심축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허전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이민사적 미래와 김치의 세계화를 위해서 단연코 중요한 안건이기 때문이다.

현지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고통을 당하는 것과는 별개로 인간에겐 본질적으로 그런 허전함을 채우려는 욕망(조건 또는 단서)이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비단 나그네나 하숙생이 본토나 본집에 사는 것보다 허기를 자주 느끼는 ‘배고픔의 현상’은 뭔가 부족한 자기 정체성(identity)의 빈칸을 채우려는 본능인 셈이다. 식욕보다는 그런 빈칸의 ‘정서적 허기’라는 점에 방점을 찍고 싶다.

특히 이민자들에겐 특성상 국가 정체성의 빈칸은 곧 영토로 나타난다. 아울러 타국에 영구 체류하는 이민자의 경우는 보다 절실하게 국가를 구성하는 3대 요소인 ‘국민 주권 영토(영공 영해 포함)’ 중 영토를 영속적으로 상실하게 마련이다. 물론 시민권자, 영주권자, 서류 미비자 등 사회 신분을 초월해서 이런 현상은 동일하다.

돌이켜 보건대 이런 영토의 허기증은 자국의 영토를 벗어나 뜨내기 곧 나그네 생활을 해야 했던 20세기 이전부터 만주-시베리아는 물론 20세기 초의 하와이-멕시코 이민자들에게도 줄기차게 나타났으며, 곧 그 허기는 정체성을 입증하기 위해 충족의 어떤 상태를 찾으려는 정신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김치의 정체성’

만약 길을 떠난 한국인에게 허기라는 것이 김치라는 입맛으로 나타날 때 그것은 우리 속에 잠재된 집단적 입맛으로 내재화, 상징화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상실한 영토는 곧 입맛으로 상징성을 가지며, ‘나’를 ‘우리’로 존재토록 했던, 자신이 떠나온 집단(원형)의 맛이 계속 뇌리 속에 박혀 있다가 어떤 순간 형태화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이다. 김치를 매일 먹고 있거나 전혀 먹고 있지 않거나를 떠나서 이런 욕구는 집단적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김치는 해외 한인들의 입맛에 유전(중독)된 반찬(side dish) 가운데 제1위이면서 DNA로 낙인찍힌 민족의 전통음식으로서 존재감을 갖는다. 김치와 영토는 먼저 푸성귀와 흙이라는 형태론적 즉물 관계에 불과하나 허기와 상실이라는 민족적 내지 심리적 관계의 나사로 꽉 맞물려 주기 때문에 중독성이 한층 깊다 하겠다.

결정적인 단서로 미국과 멕시코 국경도시 티후아나(Tijuana)에 거주하는 이민 3세 리디아 라겔 킹 리(50, Lydia Raguel King Lee)는 변호사(민사)로서 현지 UABC대학에서 교육심리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김치’라고 던진 말 한마디에 금방 배를 어루만지면서 ‘아이고, 배고파!’라고 반응하는 것 에서 일단 파악된다.

따라서 김치가 잃어버린 영토의 원형을 순간적으로나마 채워줄 수 있는 언어(허기와 상실의)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의 외조부가 멕시코에 이민 온 지 111년째 되는 해에 나타나는 증상이다. 그러므로 입맛은 시공을 초월한다 하겠다.

입맛은 뇌에서 유전된 것을 언어를 통해 표현된다. 멕시코나 쿠바에 사는 후손들을 만나보면 먼저 김치, 깍두기, 불고기 등 음식 이름부터 마치 토해내듯 줄줄이 나온다.

거기서 그들의 선조들이 이민선을 타고 오기 전 한국에서 먹던 식단을 후손에게서 재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곧 자기 정체성을 선보이는 행위로써 선조로부터 내려온 음식 이름이 언어를 통해 후손들의 기억 속에 하나의 기호처럼 뿌리 박혀 있다가 드러나는 유아적 언어행위 현상이다.

다른 한국말은 전수받지 못했거나 전혀 할 수 없어도 음식 이름만큼은 그들의 유전 속에 확실하게 각인돼 최소한의 언어적 기능을 살려두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답사에서 보듯 김치는 해외 한인에게 맛의 언어기능으로서 존재하는 동시에 그들의 뇌 속에 새겨진 영순위(top priority) 기호로 유전돼 왔다고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는 기억의 한계점에 이를 세대까지 계속 유전으로 흐를 것이나 끊임없는 관계성을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하다고 본다.

멕시코 초기이민자들

▲ 멕시코 초기 한인 이민자들

김치는 맛의 언어

멕시코 후손들을 만나면 먼저 김치, 깍두기, 불고기, 만두, 떡국, 미역국, 부침개, 잡채, 콩자반, 더덕, 장조림, 고추장, 미역(국), 녹두부침개, 지지미, 수제비, 칼국수 등등 음식 이름부터 쏟아놓기 일쑤다.

멕시코 이민 2세로서 유일하게 자전적 이민사를 펴낸 최병덕(Jos Sanchez Pac)의 〈교포 역설〉에 따르면 이민선 내에서 한인들에게 배급된 음식은 밥, 김치, 고깃국 등이었다는데 맛은 전혀 없었고, 부엌은 일본인들이 맡고 있었다고 기술한다. 대부분 멀미로 밥조차 먹지 못하는 채였고, 또 병이 나서 밥 조차 입에 댈 수 없는 승객들도 많았다.

농장에 도착해서도 며칠은 소금과 설탕, 옥수수 등 음식을 만들 재료만 배급해 주었을 뿐이다. 일부 소수의 농장은 쌀(안남미)을 주긴 했으나 주로 한인들은 유카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통을 겪긴 마찬가지였다.

며칠간은 맨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는데 드디어 침대용 나무판자가 도착했다. 한인들은 그것으로 침대를 만들면서 서서히 농장 매점(tienda de raya)에서 생필품을 외상으로 구입할 수 있었다.

유카탄의 주식은 옥수수다. 옥수수로 만드는 음식은 토르티야(tortilla), 타말레스(tamales), 포솔레 (pozole), 아톨레(atole), 피놀레(pinole), 피빌우아(pibil-hua) 등이다.

그러나 옥수수 알갱이를 맷돌 (metate)에 갈아서 해 먹는 이런 옥수수 요리는 ‘메타테’란 말을 몰라 한인들은 엄두도 못 낸 채 옥수수를 그냥 삶아 먹었다.

4년 동안 농장 안에만 갇혀 지냈기 때문에 한인보다 이민 연도가 오래돼 노예에서 해방된 지도 오래된 중국인들의 야채장사나 세탁소, 식품점, 식당 등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며 지냈다. 주된 양념은 살사, 과카몰레(Guacamole), 라임 등이다.

특히 과카몰레는 아보카도 과육에 토마토, 레몬즙, 소금 등을 섞어 만드는 소스 중의 소스를 말한다. 멕시코에서 한국의 김치처럼 식사 때마다 식탁에 올라오는데 ‘숲 속의 버터’라 불리기도 한다.

한편 한인들은 대대로 수제비나 손칼국수 등을 잘 해 먹었는데 레판 농장의 3세 로헬리오 송의 손칼수를 보면 마야인들은 코리안 토르티야라고 부를 정도였다.

채무 노예제란 신스페인(Nueva Espana) 시대부터 내려온 것으로 봉건 영주제의 제도로서 엔코미엔다(위탁경영제)와는 달리 농장 내 매점을 통해 쌓여간 빚을 갚지 못할 경우, 영속적 노예로 농장이 붙들어 사용할 수 있었다.

채무 노예제로 농장이 이득을 가장 많이 취득한 지역은 유카탄과 미 남부 농장지대다. 유사노예제(quasi-slavery)라고도 불리는데 20세기 전반까지 흑인 노예제보다 훨씬 더 혹독하게 노예들을 다루었는데 한인이 바로 이 노예제에 묶인 것이다. 외상이 쌓이고, 결혼비용을 비롯해서 모든 관혼상제 때마다 농장 측에서 빚을 내어주니 그것을 얻어 행사를 치르다 보면 빚만 쌓여간다.

한인들은 4년 계약제였으나 미국 LA에서 황사용, 방화중 두 대한인국민회 위원이 가서 법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마야인들처럼 영속적 노예로 묶여 있었을 확률도 높았었다.

김치를 밥과 더불어 주식으로 삼던 한인들에겐 김치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메리다엔 배추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푸성귀를 줍거나 뜯어서 나물로 무쳐먹었다.

많은 농장에서 원예가가 양배추와 호배추 밭을 가꾸면서 시들한 잎들을 따서 담벼락 밖으로 던져버리기 일쑤였다. 초기엔 그걸 한인들이 주워선 김치를 담가먹었다. 또는 개에게나 던져주는 소의 간과 콩팥 등 내장을 개에게서 빼앗아 먹는 통에 마야인들로부터 암캐(pek, perras)라고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했다.

멕시코 초기이민자들1

▲ 선인장 밭에서 일하며 선인장으로 김치를 만들었다.

‘선인장 김치’도

선인장 김치는 요즘엔 손바닥처럼 생긴 노팔(nopal) 선인장을 가시만 쳐내고 나박나박 썰어서 각종 양념을 넣어 깍두기로 만들어 먹는 건데 당시엔 그것의 말랑말랑한 속살을 팔팔 끓여먹거나 기름에 튀겨먹었다고 한다.

특히 김치 가운데 벼락김치(rapido 김치)도 있다. 멕시코시티에 거주하던 김동필(Francisco Kim Cong)은 벼락김치란 말 그대로 벼락치기로 해 먹는 걸 말한다는데 물김치를 말하는 건지, 겉절이를 말하는 건지는 확실치 않다. 오이김치도 잘 해 먹고, 밥을 돼지기름에 비벼서 먹는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그는 “내 마나님의 어머님은 된장, 고추장을 잘 담갔지. 코앗사코알코스에 살았는데 한인 어부들이 회를 좋아했지, 이 나라(멕시코) 사람들도 회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된장과 고추장을 사러 가면 장모님이 팔지 않고 그냥 주곤 했지.”라고 말했다.

된장, 고추장은 대를 이어 담가먹었고, 특히 와하카(Oaxaca) 주내 투스테펙(Tuxtepec)이란 곳에 살던 엘비라는 어머니가 콩을 삶아서 네모난 덩어리(메주)로 만들어 햇볕에 말리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고 울컥한다.

이렇게 김치와 고추장은 전수되어 현재까지 이르게 된 반면 된장은 언제부터인가 한인 후손 사회에서 더 이상 담가 먹지 않게 된다. 김치, 고추장, 된장은 한국에서 가져온 전통 발효음식이나 된장 끓이는 냄새가 역했던지 된장은 1950년대(?) 이후 중도에서 끊어지고 말았다.

따라서 현재에 이르도록 후손들 가운데 아직 한인 피가 흐르는 여성이나 한인 남자와 결혼한 현지 아내들에게 시어머니로부터 김치와 고추장만 담그는 법을 전수받아 내려오는 가족들이 꽤 된다. 그리고 한식을 주식으로 삼던 시대의 한 끼의 식사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식단은 밥, 김치, 미역국이다.

메리다 박물관 관장 헤니는 쌀밥은 한국의 흰 쌀(국보)로 지은 밥은 후손들에겐 너무 차져서 소화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밥은 한국의 흰 쌀과 현지 쌀(안남미) 반반을 섞은 것이라는 것이다.

김치의 경우, 실란트로(cilantro)를 넣는 경우와 넣지 않는 경우로 나눠지는데 실란트로를 넣지 않는 경우가 우세한 편이다. 깍두기에도 실란트로를 많이 넣는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

선데이-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