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1923년 9월1일 ‘관동 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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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1923년 9월 1일은 조선에서 3.1운동이 일어난지 4년 6개월이 지난 때였다. 이날 도쿄 일원의 간토(관동)지방은 대지진으로 인하여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고, 민심과 사회질서가 대단히 혼란스런 상황이었다. 일본내무성은 계엄령을 선포하였고, 각 지역의 경찰서에 지역의 치안유지에 최선을 다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런데, 이때 일본 내무성이 각 경찰서에 하달한 내용 중에 “재난을 틈타 조선인들이 사회주의자들과 결탁하여 방화와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획책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 내용은 매일신문 등 일부 신문에 보도되었고 보도내용에 의해 더욱더 내용이 과격해진 유언비어들이 신문에 다시 실리면서 “사회주의자들의 교시를 받은 조선인들이 폭도로 돌변해 우물에 독을 풀고 방화약탈을 하며 일본인들을 습격하고 있다”는 헛소문이 각지에 나돌기 시작했다.

▲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일본 자경단의 조선인 학살장면.

▲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일본 자경단의 조선인 학살장면.

1923년 9월 10일자 매일신보에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이 폭동을 조장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글로 전면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소문은 진위여부를 떠나 일본 민간인들에게 조선인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을 유발하였다.
이에 곳곳에서 일본 우익이 주동이 된 민간인들이 자경단을 조직해 불시검문을 하면서 조선인으로 확인되면 가차없이 살해하는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죽창이나 몽둥이, 일본도 등으로 무장하였고, 일부는 총기로 무장하기도 하였다.

우선 조선식 복장을 한 이는 바로 살해당하였으며, 여자들은 윤간당하였다. 학살 사실을 알고 신분을 숨기기 위해 일본식 복장을 한 조선인들을 식별해 내기 위해서 조선인에게 어려운 일본어 발음 시켜보아 발음이 이상하면 바로 살해하였다.

조선인 노동자들을 밧줄로 한데 묶어 강물에 던지고는, 헤엄쳐 나오려는 사람들은 도끼로 찍어 죽였으며, 임산부 역시 강간하고 죽창으로 배를 찔러 죽였다. 심지어 죽지 않은 사람들은 산 채로 기름을 부은 뒤 태워죽이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일부 조선인들은 학살을 피해 경찰서 유치장으로 까지 피신하였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경찰서 안까지 쳐들어와 끄집어 내어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일본 경찰은 학살에 묵인 동참하였다. “조선인들이 폭동을 저지르려고 한다””는 소문이 헛소문 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혼란 수습과 질서 회복의 명분하에 자경단의 난행을 수수방관한 것도 모자라 적극적으로 학살을 주도해갔다. 뒤늦게 경찰과 군부가 학살 저지에 나섰으나 이미 수많은 조선인들이 학살당한 후였다. 자경단의 살상 대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으며 상당수는 암매장되었다. 학살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도쿄에 흐르는 스미다 강과 아라카와 강은 시체의 피로 인해 핏빛으로 물들었다고 한다.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으로 희생자 수는 약 6,000명 혹은 6,6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수만명의 희생자가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 정부는 최종적으로 유언비어를 공식확인하였으나 피해자의 수를 축소발표하고, 자경단 일부를 연행, 조사하였으나, 형식상의 조치에 불과하였으며 기소된 사람들도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방면되었다. 학살 사건으로 인한 사법적 책임 또는 도의적 책임을 진 기구는 전혀 없었다. 일본 정부도 모른척 했다. 단 한 사람, 일본 국적의 변호사 후세 다쓰지는 전후 한국 언론에 사과 하였다. 이전 한국 교과서 등에는 이 조선인 학살극의 피해규모를 6,000여 명으로 수록했다.

그런데 우리는 일본의 위안부, 독도, 교과서 등은 사죄와 책임을 요구하면서 왜 ‘관동대지진 학살극’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가? (성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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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대학살의 현장이었던 아라카와 하천 인근에 세워진 추도비

▲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대학살의 현장이었던 아라카와 하천 인근에 세워진 추도비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래된 일도 아닌데 / 깡그리 잊어버린 일이 있다.
먼곳의 일도 아닌데 / 아득히 제쳐 놓은 일이 있다.
남의 일도 아닌데 / 누구도 생각않는 일이 있다.

그러나 언제인가 그런 일은 새록새록 숨어서 숨을 쉬는 법이다.

때만되면 억세게 튕겨져나와 / 만갈래 비사를 외치게 한다.
의리가 없어서 잊어버리고 / 있었던 것은 아니다.
머리가 나빠서 까먹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람이 좋아서 없는 걸로 해두었던 것은 아니다.

새록 새록 그것은 우리속에서 숨쉬고 있었다.
잊고 싶어도, 까먹고 싶어도 / 아예 없었던 걸로 해두고 싶어도
그것은 이제 너무도 억세어서 / 고스란히 잠재울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분명히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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