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러시아 대통령 ‘전범재판’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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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개국, 러시아 전범 혐의 ICC공식 회부

“우린 이미 전쟁범죄 조사에 착수했다”

■ 교황, ‘민간인 학살 행위’라며 러 규탄에 동참해
■ 조 바이든, “푸틴을 전범재판 회부 시켜야 한다”
■ 러 제네바협약 위반 별도의 재판소 설치될 수도
■ 푸틴의 지시 등 선입증해야, 처벌까지 오래걸려

미국 등 서방이‘우크라이나 부차 민간인 학살 의혹’을 계기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전범 재판 회부’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실제로 국제사회의 법적 단죄가 가능할지 관심이 쏠린다. 이례적으로 교황까지‘민간인 학살행위’라며 규탄에 나서고 있다. 푸틴에 대한 전범재판 회부는 국제사법기구가 현장 조사 등을 통해 증거를 축적하고 미국 등 서방이 이를 뒷받침하면 기소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만, 전례를 감안하면 전쟁범죄를 입증해 처벌하기까지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리는 등 장애물도 도사리고 있다. <특별취재반>

부차 민간인학살 전세계가 경악

프란치스코 교황도 우크라이나 부차 민간인 학살 정황과 관련, “끔찍한 잔학 행위”라고 규탄했다. 교황은 6일 바티칸 바오로 6세홀에서 열린 수요 일반 알현에서 “최근 우크라이나 소식은 안도나 희망 대신 부차 학살과 같은 새로운 잔학 행위를 증언한다”며 “여성과 어린이 같이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을 대상으로 저질러진 도를 넘은 끔찍함”이라고 했다.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부차에서는 최근 총살된 민간인 시신이 다수 발견됐다. 국제 사회의 비난이 커지자 러시아는 ‘자작극’이라며 관련 혐의를 부인했지만, 교황은 이를 학살로 규정한 것이다.

이어 교황은 까맣게 그을리고 얼룩진 우크라이나 국기를 꺼내 “순교의 도시 부차에서 온 것”이라고 한 뒤 국기에 입을 맞췄다. 교황은 UN등을 포함 국제기구의 무력함도 비판했다. 그는 “오늘날의 지배적인 논리는 경제, 이념, 군사적 영향을 확장하며 자국 이익만을 주장하는 강대국들의 전략”이라며 “2차 세계 대전 이후 새로운 평화의 새 역사를 마련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강대국들이 경쟁하는 옛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유엔의 무력함을 목격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로이터통신은 4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전쟁범죄로 기소할 것을 촉구 했지만, 여러 도전이 가로막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선 러시아의 군사작전이 민간인을 겨냥했다면 이는 전쟁 범죄에 해당한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전시에도 따라야 할 인도주의적 법률을 규정한 ‘제네바 협약’에 대한 중대한 위반을 전쟁범죄로 정의하고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합법적인 군사 목표물을 공격했어도 민간인 사상자가 ‘지나치다면’협약 위반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본다. 앞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이 장악했다 퇴각했던 수도 키이우(키예프) 인근 부차 지역에서만 410구의 민간인 시신을 수습했다고 밝혔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를 러시아의 ‘집단학살’ 증거라고 밝혔다. 물론 전쟁 내내 민간인 겨냥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러시아는 부차 지역의 시신에 대한 영상과 사진이 우크라이나 정부의 또 다른 도발이라고 주장한다.

부차 지역에서만 410구의 민간인 시신

조사가 진행될 경우 일단 사건을 재구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목격자나 러시아군 포로 등으로부터 증언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목격자가 보복을 두려워해 증언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전시 중인 상황에서 당장 현지로 들어가 증거를 수집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증거를 수집했을 경우 피고가 유죄를 받으려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이 전쟁범죄 혐의에 대해 의도를 입증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특히 이번 사안의 경우 푸틴 대통령이 그 최정점이라는 사실을 밝혀내야 한다. 푸틴 대통령이 민간 학살 관련 불법 공격을 직접 지시했거나 그런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막지 않은데 대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로이터는 “전문가들은 부차에서의 활동이 러시아 최고위층 지시인지 말하기엔 너무 이르지만, 우크라이나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 잔학행위가 행해졌다면 최고위층의 지시 또는 그런 정책을 지적할 수 있다고 말한다”고 보도했다. ICC의 수석검사인 카림 칸은 개전 직후인 지난 2월 28일 전쟁범죄에 대한 조사를 열어 놨다고 말한 바 있다. ICC는 전쟁범죄라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면 그 대상이 푸틴이라도 체포영장을 발부할 수 있다.

하지만 ICC가 재판하려면 회원국 중 최소한 한 국가가 사건과 연관돼 있어야 하는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ICC 회원국이 아니다. 특히 러시아는 ICC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협력을 거부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게다가 ICC는 부재중이거나 물리적으로 구금되지 않은 이를 재판할 수 없기에 모든 재판은 피고가 체포될 때까지 연기될 것이라고 로이터는 설명했다. 그래서 별도 재판소가 꾸려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1990년대 초 발칸 전쟁과 1994년 르완다 대학살 당시 전쟁범죄 기소를 위해 별도 재판소가 설치된 바 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필립 샌즈 교수는 러시아의 국제적 책임을 묻기 위한 재판소 설치를 위해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 접촉 중이라고 밝혔다. 사건 관련 재판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도 알 수 없다.

대량 학살 혐의로 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에 기소돼 재판을 받아오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은 2002년 기소돼 재판이 시작됐지만, 그가 2006년 감옥에서 숨질 때까지도 재판은 진행 중이었다.밀로셰비치는 코소보전쟁(1998∼1999년), 크로아티아전쟁(1991∼1995년), 보스니아전쟁(1992∼1995년) 등 발칸반도에서 벌어진 60여 건의 전쟁 및 반인륜 범죄 혐의와 1995년 보스니아에서 7천 명의 이슬람교도 학살 혐의로 기소됐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부차 등지에서 러시아군이 저지른 민간인 대량 학살과 관련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범 재판에 회부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밝혔다.

ICC, ‘푸틴 체포영장 발부할 수 있다’

▲ 교황이 러시아군의 학살을 규탄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4일 기자들에게 “부차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지 않았냐”며 “이는 그(푸틴 대통령을)를 전범으로 규정하는 게 정당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그는 “부차에서 일어난 일은 너무 충격적”이라며 “우리는 전범 재판이 실제로 진행될 수 있도록 구체적 근거들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푸틴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해, 푸틴 대통령의 전범 재판 회부를 추진할 뜻을 밝혔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우리는 이게 무작위로 발생한 사건이라거나 특정 개인의 악행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이것은 (러시아군의) 계획의 일부”라고 말했다. 의도적이고 계획 적인 전쟁범죄 행위로 규정한 것이다. 그는 러시아군과 푸틴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는 방안을 동맹들과 협의할 계획이라며 “국제형사 재판소(ICC)도 전쟁범죄를 재판할 수 있는 곳이지만 다른 분쟁들에 대해서 이와 다른 기구가 세워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국제형사재판소가 만들어지기 전에 특정 지역 전범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구성됐던 특별법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전담하는 특별 법정을 만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직은 바이든 대통령 등은 부차 등지에서 일어난 일을 집단학살(genocide)로까지 규정하지는 않았다. 설리번 보좌관은 “우리는 잔학 행위와 전쟁범죄를 목격했다”면서도 “우크라이나인들의 생명을 체계적으로 박탈한 행위가 아직 집단학살의 수준까지 이른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앞서 부차 등 키이우 주변에서 러시아군이 철수한 직후 400명 이상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것으로 파악되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비롯해 스페인 등 일부 유럽 국가 정상들은 러시아군의 행위를 집단학살로 규정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러 추가 제재 방침도 재확인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추가 제재 내용을 이번주에 발표한다고 밝혔다. 일부 유럽 국가들은 미국처럼 러시아산 에너지를 전면 수입 중단할 것을 주장 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의 유엔 인권이사회 참여 자격 정지도 추진했는데 7일 이를 관철시켰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러시아가 인권이사회에 참여하는 것은 웃음거리”라며 유엔총회에 이를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유엔총회는 7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특별총회를 열고 러시아의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을 정지하는 결의안을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했다. 회원국 총 193개국 중 175개국이 투표에 참여했고 찬성 93표, 반대 24표, 기권 58표가 나왔다. 기권표 58표를 제외한 유효표 중 3분의 2 이상이 결의안에 찬성함에 따라 러시아는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을 박탈당했다. 러시아는 7일 외교부 성명을 통해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자진 탈퇴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날 미국 뉴욕의 유엔 총회에서 러시아의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지위를 박탈하는 결의안이 가결되자 이에 맞서 조기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유럽 쪽도 민간인 학살에 대한 강경 대응을 거듭 확인했다. AP 통신은 우르줄라 폰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우크라이나 검사들의 전쟁범죄 조사를 돕기 위해 조사관들을 파견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미국을 비롯한 40여개국은 우크라이나에서 발행한 전쟁 범죄 등 잔혹 행위를 조사하는 위원회를 출범시킨다는 유엔 인권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후속 작업에 동참하고 있다. 한편 뉴욕 타임스는 러시아 국방부가 자국군이 지난달 30일 철수한 뒤에야 주검들이 길거리에 놓여졌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위성사진을 비교한 결과, 부차 길거리에서 발견된 주검들은 몇주 동안 그곳에 방치돼 있었다고 보도했다.

UN 인권이사회 전쟁범죄 러시아 축출

한편 영국과 37개국은 2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전쟁 범죄 혐의 조사를 공식 요청했다. ICC는 즉각 수사를 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무장관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영국과 37개 동맹국은 우크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혹행위를 ICC에 회부했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ICC 역사상 가장 큰 규모라고 전했다. 트러스 장관은 “러시아는 불법적이고 정당성이 없는 우크라 침공에서 무고한 시민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무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정권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ICC 규정에 따르면 회원국의 공식 회부가 있을 경우 검찰이 ICC 재판부의 승인 없이 조사에 착수할 수 있게 된다. 절차가 빨라져 수사 기간을 몇 달 줄일 수 있다. ICC 검찰은 지난달 28일 재판부에 조사 개시 승인을 받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카림 칸 ICC 검사장은 트위터에 “39개국 요청으로 우크라에 대한 조사를 공식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와 현재 우크라 영토에서 일어난 전쟁 범죄, 반인륜 범죄, 집단 학살 혐의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요청국은 38개국이 아닌 39개국으로 명시했다. 우크라는 지난 2013년 말부터 ICC의 관할권을 받아들였다. 러시아는 2014년 3월 크름반도를 병합했고, 우크라 동부 돈바스 지역에선 친러 분리주의 세력과 우크라 군의 분쟁이 지속돼 왔다. ICC 검찰은 2020년 12월 우크라 동부에서 전쟁 범죄 등이 일어났다고 믿을 이유가 있다고 발표했지만, 완전한 수사 요청은 접수되지 않았다. 러시아는 2016년 ICC에서 탈퇴, 관할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ICC는 가해자 국적과 무관 하게 전쟁 범죄와 반인륜 범죄 혐의에 대해 조사할 수 있다.

앞서 우크라이나는 지난 3월 27일 ICC에 제소했다. 같은 달 24일 우크라를 침공한 러시아는 진공폭탄, 집속탄 등 금지된 무기를 사용하면서 우크라를 무차별 공격하고 있다. ICC는 지난4월 1일 성명을 내고 4월중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한 공청회를 연다고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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