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민 나성영락교회 은퇴 목사’ 어이없는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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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의 일부 단체들이 두 쪽으로 갈라저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병폐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이제는 목사님 장례까지 두 쪽으로 갈라져 따로 따로 개최하는 지경에 이르러 비탄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스캇 펙 박사가 쓴 현대인에게 죽음에 대한 메시지 “Denial of the Soul”(한글 제목:이젠 죽을 수 있게 해줘)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다.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가능할 것 같지 않았던 용서와 화해를 이루며 커다란 성장을 불러온다. 죽음은 배움과 영혼의 성장을 위한 기회가 되어 주기도 하는 것이다.”

교회와 총회가 장례 따로따로

지난 4월 26일 오전 3시 “LA한인 교계의 거목” 박희민 나성영락교회 은퇴 목사가 향년 86세로 별세했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인 1988년 초 당시 나성영락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한 박희민 목사와 한결 같이 교제를 나눈 송정명 목사(미주 성시화운동 공동 대표)는 “고 박 목사님은 이 시대 한인교계의 큰 별이요, 위대한 지도자였음을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이구동성으로 인정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추모의 글을 남겼다. 이어 송 목사는 “그 보다 더 귀한 것은 그분의 삶이 참으로 아름다웠고 향기가 짙게 묻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의 장례식도 화해 차원에서 진행해 줄 것을 부탁하셨다니 얼마나 귀한 마음인가?”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고 박희민 목사 장례식이 하루 걸러 두 곳(5월 11일과 12일)에서 따로따로 개최한다는 사실에 많은 동포들과 신자들이 어리둥절하는 사태가 야기된 것이다. 박 목사의 장례식 주관을 알리는 부고 광고가 미주중앙일보에 하나는 나성영락교회(담임 박은성 목사) 이름으로, 또 하나는 해외 한인장로회 총회(총회장 박상근 목사) 이름으로 각각 따로따로 게재됐기 때문이다. 고 박희민 목사는 나성영락교회 제 2 대 담임 목사를 역임했으며, 한편으로는 나성영락교회가 주축이 되어 조직한 해외한인장로회총회를 섬긴 목회자이기도 했다. 그러면 서로 합쳐서 장례식을 하면 될 것이 아닌가. 그게 좀 복잡하다. 애초 나성영락교회와 해외한인장로회총회는 한 집안 식구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성영락교회가 해외한인장로회총회에서 일방적으로 탈퇴를 하는 바람에 두 단체가 법정소송까지 벌리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따로따로” 장례식을 두고 보다 못한 원로 목사인 이상기 목사(평강교회)가 기독교 언론에 칼럼을 게재하기에 이르렀다. <이상한 것은 고인의 장례식을 각기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이름으로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침 일찍 배달되는 신문을 읽다가 이거는 아닌데 하는 생각에 칼럼을 쓰고 있다. 신문에는 고인이 섬기셨던 해외 한인장로회 총회가 주관하는 고 박희민 목사 총회장 장례 광고가 5단으로 실렸고 다른 하나는 같은 신문 다음 페이지에 고인이 2대 담임으로 19년 동안 섬기셨던 나성영락교회가 신문지 한 페이지 전체에 고 박희민 목사 장례식을 나성영락교회장으로 한다는 부고였다. 교회와 총회가 각기 다른 장소에서 장례예배를 갖기에 그래서 마지막 가시는 고인과 작별의 인사를 드리는 장례를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고민은 일반 조문객 만이 아니라 유가족과 평소 고인을 존경하던 많은 분도 다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잠시 정쟁 머추고 고인 추모에만

송정명 목사가 남긴 추모의 글 중에 고인은 임종이 가까운 것을 아시고 가족들에게 장례식을 화합 차원에서 교회와 총회가 하나되어 해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했다. 이상기 원로 목사도 유가족 대표가 고인의 이 같은 간절한 마지막 바람을 전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런데도 고인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그래서 두 장소에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장례식을 치르게 되는 것이고, 고인은 세상을 떠나시면서까지 자신이 섬기셨던 나성영락교회가 교단과 화합을 이루는 모습을 보기 원하셨을 것이라며 매우 안타까워 했다. 나성영락교회는 미주 이민 교회의 대표적인 교회 중 하나이다. 그 교회가 소속한 해외 한인 장로회 총회 역시 장로교회를 대표하는 교단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교회와 교단을 주목하고 있었다.

서로가 큰 교회요 큰 교단이기에 큰 다툼이 없이 세상 법정에 의지 아니하고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랐다. 하지만 이들 교회와 교단은 지금 세상 법정에서 ‘네 탓이요’라면서 소송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편 박 목사는 지난 1988년 나성영락교회에 2대 담임 목회자로 부임했다. 이후 2003년 은퇴까지 목회 활동을 하면서 한인교계의 영적 버팀목 역할을 담당했다. 1992년 4·29폭동 직후 박 목사는 흑인 목사 방한 사업을 추진했다. 갈등 해소를 목적으로 LA지역 흑인 교계 지도자 80여 명을 초청, 두 번에 걸쳐 한국 방문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나성영락교회에서 시무할 당시 1000만 달러 장학기금 모으기 운동도 펼쳤다. 1세대에서 끝나는 그 장학금으로 목회하는 동안 3000명 이상의 학생을 도왔다.

안타까운 것이 있다면 고 박희민 목사가 20년 이상 섬겨왔던 재미한인기독교선교 재단 (KCMUSA) 이사장직을 후임에게 물려주기로 하고 취임식 일정을 5월 8일로 잡아 두고 있었는데 그 취임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또 한인 이민 120주년을 기념하여 심혈을 기울여 이민 사회에서는 처음으로 방대한 “미주한인 교회사”를 최근에 완성 발간하고, 5월 9일 출판 감사예배를 드리려고 일정을 잡아 두었는데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 박희민 목사의 장례를 두고 화해를 위한 칼럼을 쓴 이상기 원로 목사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와 교단이 고인의 뜻을 받들어 잠시 정쟁을 멈추고 고인이 생전에 그토록 사랑하시고 자랑으로 섬기셨던 교회와 교단이 잠시라도 하나 되어 가시는 마지막 길을 감사하면서 가실 수 있게 해 드릴 수는 없을까요? 그런 모습을 진심으로 보고 싶습니다.”라고 적었다.
“그런 모습을 진심으로 보고 싶습니다”라는 바램은 우리 모두의 기원이라고도 말하고 싶다.
<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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