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LA 콜걸이 되었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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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뒤 돌아 보지않고 무조건 앞만 보고 죽어라고 달렸다. 금새라도 미국 이민국 직원이 뒷머리 채라도 잡을 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 속에 오로지 어떻게 하든지 미국 땅을 밟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작동 했다. 옆을 쳐다보니 일행 6명이 모두 나와 똑같은 심정인 것 같았다. ‘쟌’ 은 우리보다 2백미터는 족히 앞을 달리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같이 뛰던 동료 한명이 넘어졌다. 예림이라는 언니였다.

나는 그 언니를 일으켜 세우고 같이 뛰기 시작했다. 그 언니도 울고 있었다. 아마도 그 순간 우리 모두의 심정은 누가 뭐라고 할 것 없이 똑같았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 번갈아 쳐다보며 암흙 같이 어두운 미국 국경을 그렇게 북받히는 서러움을 삼키며 넘고 있었다. 다행히 낙오자는 한 명도 없었다. 모두들 이마에서는 송송히 땀이 베어 있었고 숨을 가쁘게 몰아 쉬고 있었다. 얼마를 달렸을까? 족히 한시간은 된 기분이었다.

멀리 자동차 한 대가 서 있었다. 그리고 미리 도착한 쟌과 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나는 그가 스티브라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숨을 몰아 쉬어가며 넋을 잃은 기분으로 그를 처다 보았다.
그를 보는 순간 갑작스럽게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한참 동안을 보고 있으니 스티브가 다가와 나를 안아 주었다. 나는 어떻게 할 기력조차 없이 그의 품안에 안겨 차라리 눈을 감고 기대었다. 그가 밉다는 생각 보다는 오히려 내가 그렇게 바보스러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스티브, 시간 없어! 빨리 가자” 쟌이 성급하게 소리 질렀다.
“가자, 지숙아. 가면서 이야기 하자” 스티브는 내가방을 들면서 오른 손으로는 내 어깨를 감싸 주었다.
미니 밴에 먼저 오른 일행들은 의아한 듯이 스티브와 나를 번갈아 바라 보면서 회포는 나중에 풀고 빨리 차에 오르라는 분위기었다. 나와 스티브는 맨 뒷좌석에 앉었다. 운전은 쟌이 했다. 우리 일행은 서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적만이 감돈 채 우리 일행을 태운 자동차는 질주하기 시작했다.

묘한 분위기를 의식한 듯 쟌은 우리를 향해 “애들아 이제 안심해라. 여기서부터는 미국 땅이니 맘 놓고 눈을 붙혀라. 지금부터 쉬지 않고 달려도 3일이 걸린다” 쟌은 한 손으로 담배를 피워가며 익숙하게 한 손으로 운전했다.
“고생 많았지. 보고 싶었어 지숙아” 스티브는 다정스럽게 나의 볼을 만져주며 위로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에게 기대어 눈을 감았다. 미국 땅을 밟았다는 안도감 보다는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깜깜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된 결정을 한 것 같았다. 너무 스티브를 믿었다는 후회가 오면서도 아무런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어 눈을 감았다.
벌써 새벽이 오고 있었다. 밖은 온통 산과 벌판 뿐이었고 전봇대의 전기줄 그리고 간간히 스치고 지나가는 요란한 자동차 소리, 그것이 내가 그 순간 기억하는 것이 전부였다.

스티브의 변신

우리는 이틀 만에 LA에 도착했다.
처음 본 한인 타운… 온통 한글 투성이 간판을 보는 순간 여기가 정말 미국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인타운은 한국 지방의 소도시를 연상시켜 정겨웠다. 도착 즉시 한국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동안 미국 사람은 구경도 못하고 전부 한국사람끼리 한국 말로 떠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여기가 말로만 듣던 코리아 타운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오랜 긴장감과 피곤 탓에 제대로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식사를 하는 도중 동갑내기 채현이가 앞으로 일정이 어떻게 되냐고 궁금한 듯이 물었다.

쟌은 미소를 지으며 “나는 약속대로 너희들을 미국에 데려다 주었으니 할 일을 다 했고 앞으로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자리를 원하면 나이트 클럽에 소개시켜 줄 수도 있다는 식의 여운을 남기며 빈정거리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나는 당연히 스티브와 같이 갈 것이라고 생각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스티브가 미덥지 못해 보였다. 순간적으로 지금껏 나를 대하는 태도가 가식적이고 지극히 형식적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가면서 걱정이 앞섰다.
약간은 귀찮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간간히 신경질을 내기도 하고 그렇게 다정다감하던 한국에서의 예의 바르고 매너 좋은 태도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조차 없었다. ‘피곤해서 그렇겠지’라는 위안조의 생각조차도 그의 변화된 태도를 받아들이기에는 충격적이었다.

우리 일행은 식사를 마친 후 인근의 모텔로 갔다. 모텔로 들어가자마자 쟌은 우리 일행을 모아놓고 수속비조로 남은 잔금을 달라는 것이였다. 나를 제외한 일행들은 체념한 듯이 돈을 주었다. 내가 쟌에게 캐나다 이민국에 예치시킨 4천불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보자 “그건 나와 상관이 없고 나는 캐나다 국경만 통과시키는 조건이라며 내가 알 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런 쟌의 이야기를 듣고도 스티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딴청만 피우고 있었다. 나는 듣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황당하고 분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돈이 어떤 돈인데…
하물며 입국시 가져온 1만불 중 4천불은 캐나다 이민국에 예치했고 쟌에게 5천불을 주고 나면 나에겐 단돈 천불 밖에 남지 않는다.

정말로 하늘이 노랗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다.
이제 거지나 다름이 없고 다시 남은 것은 몸뚱이 하나 뿐이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내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쟌에게 지금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나중에 주겠다고 했으나 막무가내였다. 스티브는 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도 끝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겉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둘이서 우리를 이용해 돈벌이를 했던 것이다. 배신감에 이글거리는 눈초리로 스티브를 쳐다보자 그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그런 나는 어떻게 달리 할 수 조차 없었다. 지금 돈을 주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빼앗을 분위기였다. 더우기 만에 하나라도 일이 잘못되어 이민국 직원들에게 발각이라도 된다면 한국으로 추방당할 수 밖에 없다는 예림이 언니의 귀뜸에 나는 무력하게 돈을 쟌에게 건네 주고 말았다. 돈을 받은 쟌은 금새 볼일이 끝났으니 간다는 말만 하고는 방을 나가 버렸다.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수중에 소지하고 있는 돈이라고는 8백불밖에 없으니 정말로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문득 나의 막연함이 무서운 결심을 하도록 돌변했다.
‘그래. 보라는 듯이 해 낼 거야. 나는 어떻게 하든지 미국에서 살아 남을 것이다’라고 다짐하면서 악착같이 좌절하지 않고 살 것을 다짐했다.
스티브는 그 날 모텔로 들어 오지 않았다. 나는 그가 이미 나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가 나를 철저히 이용했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그를 믿고 미국으로 건너온 나의 짧은 생각을 탓했다.


인질로 남다

일행 중 제일 큰 언니인 유빈 언니 친구가 모텔로 찾아왔다. 그때가 새벽 3시가 다 되었을 때였다. 술에 취한 언니 친구는 횡설수설 하면서 “무엇 하러 미국에 왔느냐”고 하면서 “X같은 미국 땅까지 기어와서 ‘나가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푸념어린 목소리로 넋두리를 늘어 놓았다. 그 언니도 우리와 똑 같은 처지인데 자기는 멕시코를 통해 들어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 언니를 통해 여러 가지 정보를 들을 수가 있었다. 최악의 경우 룸살롱에라도 나갈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 잘만 하면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듯 했다.

그날 유빈 언니와 예림이 언니는 우리와의 작별을 너무나 아쉬워 하며 “다시 연락해 만나자”라는 말을 남기고 그 언니를 따라서 그 언니의 아파트로 간다고 했다. 벌써 미국에 오기 전에 연락이 있었던 것 같았다. 동갑내기 채현이와 나만 남아야 했다.
나는 그 언니에게 전화 번호를 달라고 했다. 언니는 아무 때고 일을 하려면 연락을 하라고 하며 두 언니와 함께 방을 나갔다.

채현이와 나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캐나다에서부터 정이 들었던 사이였기에 언니들의 빈 자리는 너무도 허전하게 느껴졌다. 아니 정을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언니들이기에 상당히 심적으로 의지 해왔는데 갑자기 떠나가 버리고 이제 남은 것은 채현이와 나…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더우기 채현이는 성격이 내성적이라 말수가 적고 숙기가 없었으며 표정에서는 두려움과 앞으로의 걱정에 그늘이 져 있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티브는 끝내 돌아 오지 않았다. 그리고 채현이와 나는 애써 잠을 청했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채현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채현아. 자니” “….” 채현이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는 척 했다.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은 듯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채현이가 소리내지 않고 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똑같은 심정이었다.
막막한 그 심정…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도 할 수도 없고 집도 절도 없는 상황이라…
또다시 미국 땅에서 앞으로 살아갈 생각을 하니 혼란스러웠다.

‘그래.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내일 태양은 내일 떠오를 것이다’라고 나를 위로하며 LA의 첫날밤을 그렇게 보냈다.
얼마쯤 자고 일어났을까… 시계를 보니 아침 9시가 넘었다. 그러나 당장 지금 일어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며 뒤척이고 있는데 채현이는 벌써 일어나 있었다. 두 손을 머리를 쥐어 잡은 채 무엇인가 골몰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무척 생각이 많은 것 같았다.
잠시 후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덜컥 겁이 났다. ‘혹시 이민국 직원이 들이닥치는 것이 아닐까? 올 사람이 없는데… ‘라는 생각과 함께 머리가 쭈삣쭈삣해졌다.
“누구 세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스티브씨 연락을 갖고 온 사람 입니다”

깜짝 놀랐다. 스티브도 아니고 스티브의 연락을 갖고 온 사람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문을 열어 주지 않은 채 문을 사이에 두고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잠시 뵙고 가겠습니다. 드릴 말씀이 있으니 문을 열어 주세요”

나는 채현이에게 일어나 옷을 입으라고 하고는 곧 문을 열어 주었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약간 건달끼가 있어 보이는 태도로 방에 들어 오자마자 의자에 걸터 않고는 말문을 열었다. “스티브에게 이야기 들었지?” 그 사람은 이내 명령적인 말투로 나를 쳐다보며 반말로 지껄여 대었다. “무슨 이야기요? 아무런 말도 없었는데요”
“무슨 소리야. 어제 나한테 돈까지 받아가며 아침에 여기로 찾아가면 된다고 했는데” 그 사람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금새 주먹이라도 날릴 것 같은 태도였다.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스티브가 돈을 받아 갔다는 소리는 무엇이며 이 사람은 왜 나를 찾아와서 큰소리를 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빨리 짐을 챙겨 나가자고 서둘렀다. 나는 “내가 왜 당신을 따라가야 하느냐”고 소리를 질러 대었다.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그 사람은 금새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이 X년이. 어디라고 큰소리야!”라고 소리 치면서 세차게 내 얼굴을 후려쳤다.
나는 땅바닥에 나가 떨어졌다. 채현이는 놀랜 나머지 “살려 달라”고 울면서 애걸을 했다. 하지만 곧 건장한 두 사내가 문을 박차고 들어 왔다. 이제 도망갈 수도 없고 도망을 간다해도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 지 모르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에 자포자기 하게되었다. 더우기 그들에게 대들어 보았자 힘으로도 이길 수 없으니 그저 눈물만 하염없이 나왔다. 그러면서도 ‘스티브가 나를 밑천삼아 이들에게 모종의 뒷거래를 했구나’ 하는 생각에 그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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