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범 칼럼 : 헌법재판소까지 위협하는 막가는 정권 끝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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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이전 명운 건다는 대통령 공약
충청도 두 번 우롱, 포장 바꾼 기만책

대통령 퇴진 압박해야 할 야당 노선 흐릿, 혼미 부채질

“수도이전에 정권의 진퇴를 걸겠다”고 한 말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국민들은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 특별법이 위헌이라고 판결하였으면 대통령이 하야하고 여당은 사과하는 것이 순리에 따라 논란을 종식시키는 길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충청도의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하는 집권세력의 잔꾀와 책임 떠넘기기로 논란은 더 거세지고 있다. 여당 일각에서는 헌법재판소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관습헌법 논거에 대하여는 처음 듣는다고 발끈하기까지 했다.

<이신범 전 의워의 '한국으로 부터의 통신'>

판사출신 노무현 대통령, 계산된 수도이전 발표
위헌소지 사전에 알면서 충청표 의식한 선거공약

헌정질서 위협하는 권력


헌법재판소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탄생한 헌법에 따라 설치된 기관이다. 전에는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를 최종적으로 심사하는 기관은 대법원이었다. 미국식 제도였다.

그런데 법원의 위헌법률 심사는 법령이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나 할 수 있는 제한적인 권한이었고 또 그것도 박정희 정권 시절 국가배상법의 위헌판결로 군사독재의 사법권 유린의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를 따로 설치하여 심사의 범위를 넓히게 되었던 것이다. 법률용어로 하면 헌법제정권력인 국민의 결단으로 새로이 창설한 헌법기관이 헌법재판소이다. 따라서 이 기관의 권위를 부정하고 판결에 시비를 거는 것은 현행헌법질서를 부정하는 쿠데타적 발상이다.

그런데 8대 1이라는 압도적인 다수로 위헌판결이 내려졌는데 여당이나 대통령은 흔쾌하게 승복한다는 반응을 보이기 보다는 구차한 말장난을 늘어놓았다.

노 대통령은 “앞으로 국회 입법권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무력화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헌정 질서의 혼란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서 “결국 국회의 헌법상 권능이 손상되었고 정치지도자와 정치권 전체가 신뢰의 타격을 입었다”고 말했다. 헌재 결정의 법적 효력을 인정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지만, 헌재의 결정으로 인한 정치적 결과에 대해선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도 헌재 결정의 법적 효력은 인정하지만 마음으로부터 승복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그 당의 한 의원은 헌재 규탄 집회에서 “헌법을 지켜야 할 헌재가 삼권분립과 헌법을 훼손하고 있다. 헌법재판관을 그대로 놔둘 수 없다, 놔두면 또 어떤 엉뚱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비난했다. 그는 “헌법재판관들은 군사정권에 빌붙어 판검사의 경력을 쌓아 헌법 재판관이 된 사람들이며 이번 판결을 통해 기득권의 핵심 본산임을 드러냈다”고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했다. 이쯤 되면 폭언이나 다름없는 헌정 파괴적인 위협이다.

국회의 입법권을 견제하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임무인데 입법권을 무력화해서는 안 된다는 최고권력자의 말은 망언이나 다름없다. 헌재를 없애는 것이 낫다는 표현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관습헌법은 처음 듣는다고도 했다. 법과대학생들이 웃을 말까지 한 것이다. 게다가 군사정권에 빌붙어 판사의 경력을 쌓았다는 비난은 노 대통령도 피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지 않은가?

진퇴 건다는 공언 어디 갔나

▲ 수도이전 무산에 따라 제시되는 대안들.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최종적이다.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선서한 대통령으로서는 승복한다고 말해야 마땅하다. 구차한 말로 지지층을 선동하고 재판관들을 위협하기 보다는 깨끗이 승복한다고 말했어야 할 공직자들의 수준미달의 언행은 그런 까닭에 매우 실망스럽다. 그렇다고 친위 쿠데타라도 일으켜 재판소를 폐지시킬 배짱도 없지 않은가?

이렇게 부산을 떠는 저의는 초점을 흐려서 그 간 쏟아낸 무책임한 말들을 덮자는 것이다. 진퇴를 걸고,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한다고 했는데 이제 말 그대로 물러나야 될 것 아닌가? 헌재의 위헌판결 때문이 아니라 진퇴를 걸겠다고 대통령 자신이 한 말도 잊고 있으니 정치지도자에 대한 신뢰가 타격을 입는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결과적으로는 헌법에 위반되는 수도이전 약속을 걸고 두 번의 선거를 이겼다. 충청도 사람들을 두 번 우롱한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수도를 충청권으로 옮긴다고 해서 충청권의 지지를 받았고 몇 달 전 총선에서도 국회 다수당이 되었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어 책임을 느낀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용서를 구해야 도리이다. 충청권 여당 의원들도 의원직을 내놓아야 정상이다.

포장 바꾼 충청도 기만책

▲ 여당 및 야당 등에서도 각기 의견이 분분한 상태로 이견이 예상된다.

정치권이 충청권의 민심을 수습하겠다고 내놓고 있는 대책들은 충청도 사람들을 또 속이려는 것이다. 여당은 청와대와 국회는 서울에 두고 충청도에 행정특별시를 만들자는 말을 꺼냈다. 그 발상대로 대통령을 서울에 두고 장관들은 충청도에 가라고 하면 행정의 효율성은 떨어지고 출퇴근과 주말가족들의 이동으로 길만 복잡해질 것이다.

여권이 충청민심 수습책이랍시고 거론하는 방안이란 것은 위헌판결을 우회하여 수도이전 논란의 불씨를 살려두면서 다가오는 선거에서 충청도를 세 번째로 헷갈리게 해서 우려먹자는 속셈이다.

유통기간이 지나 냄새 나는 생선을 포장을 바꾸어 내놓고 소비자의 눈을 속여 팔아 보자는 악덕상술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일부 지역 정치인들과 야당까지 편승하고 있으니 더욱 걱정이다. 충청권 광역 단체장들이 위헌판결 뒤의 회견에서 노 대통령의 사과와 퇴진을 요구하지 못한 것은 그렇다 치자. 과천형 행정도시를 건설해 보자는 야당의 제안도 웃기는 얘기다. 수도가 온다는 기대에 부풀었다가 낙심한 지역민들이 행정도시로 양이 찰 이는 없다.

오히려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야당이라면 이 기회에 광역단체를 더 광역화하고 과감히 권한을 이양하는 지방분권화 행정구조 개혁을 통해 지방의 활성화를 이룰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제안해 봄 직하다.

야당은 선명하게 퇴진 압박해야

그러나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하여 국민을 오도한 정권의 책임을 준엄하게 추궁해야 할 한나라당은 특별법을 통과시킨 책임을 공유할 입장에 처했다. 위헌판결에 환호하는 야당을 보고 “해방된 뒤에 독립 운동하느냐”고 쏘아 부친 한 언론인의 질책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당론 결정을 늦추자 비주류 의원들이 수도이전반대 서명운동에 나서 92명의 서명을 받았다. 소속의원 121명의 3분의 2를 넘는 수로 반대당론을 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호언장담이 나올 만했다.

그러자 소장의원들 중심의 새 정치 수요모임이 10월 1일에 모여 “수도이전 반대 서명운동이 정부 여당 측에 대결적인 자세로 변질됐을 뿐 아니라 정략적인 요소도 개입되고 있다”고 하며 서명을 철회하기로 했다. 야당은 반대당으로서 입장이 분명해야 하는데 한나라당은 이처럼 제대로 반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지금에 와서도 절충안을 만들어 보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지난날 군사독재와 직선제 개헌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절충형 2중대 야당이었던 민한당은 1985년 신한민주당에, 또 노선이 혼미해진 신민당은 1987년 통일민주당에 의해 무너졌다. 입장이 불분명하고 흐릿한 노선의 야당은 변화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끝내는 국민의 버림을 받았다.

야당은 수도이전특별법 통과에 찬성한 과오를 사과한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바탕 위에서 노 대통령이 진정으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약속한 대로 퇴진할 것을 압박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이 법을 어겼다고 하면서도 탄핵은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대통령은 그 오기로 얼마 지나면 기고만장하게 다시 오만에 빠져 야당도 협박하고 우롱할 것이다. 그들의 헌법재판소에 대한 도전은 그런 전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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