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훈 칼럼]욕쟁이 할머니 가라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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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2007년 대통령 선거때 이명박 후보의 당선에 기여한 한편의 TV광고가 있었습니다. 욕쟁이 할머니로 유명세를 얻은 강종순 씨(71)가 나오는 광고입니다.
하루하루 세상살이가 고달픈 서민 유권자들한테 강하게 어필한 그 광고에서 할머니는 이렇게 욕설을 퍼부어 댔지요. “…쌈박질 그만해라, 이눔아.. 국밥 푹푹 퍼처먹고 경제나 살려라…”
‘이놈’이 딱히 이명박 후보 한사람만 지칭한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정치하는 놈들 중의 하나’인 그가 어쨌든 대통령이 됐고, 그리고 3년이 흘렀습니다. 강남에 있는 한 포장마차 집 주인인 욕쟁이 할머니는 아직도 쌈박질만 해대며 서민들 살림살이엔 나몰라라인 정치권을 향해 이놈 저놈 욕을 해대며 그놈의 국밥을 열심히 말고 있습니다.
강종순 할머니의 ‘포차’는 한동안 관광명소처럼 북적댔습니다. 국밥보다는 대통령을 만든 그 유명한 욕을 한번 얻어먹어 보겠다고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이 제법 많았다고 하지요. 그러다보니 ‘짝퉁 욕쟁이 할머니’가 여기저기 생겨났습니다.
일산 욕쟁이 할머니, 강릉 욕쟁이 할머니 하는 식이지요. 사람들은 국밥 한 그릇에 욕 한 사발까지 푸짐히 얻어먹고 욕쟁이 할머니 식당을 나섭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이를 ‘욕쟁이 신드롬’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머 처물래?”, “니가 가져다 처묵으라”, “생긴 것처럼 잘도 처묵네” 이런 식의 욕을 하는 욕쟁이 할머니가 있는 허름한 식당의 음식 맛은 실내장식이 고급스럽고 종업원들이 친절한 유명 식당보다 음식 맛이 오히려 낫다는 소문이 나 있습니다. 국밥을 손님 테이블에 거칠게 내려 놓으며 “처 묵으려면 묵고, 싫으면 말그라”라고 호통을 처대는 욕쟁이 할머니들의 그 엄혹한 자존(自尊)은 음식 맛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지요.
그래서 식당마다 욕쟁이 할머니들의 ‘호통’ 개그가 넘쳐나게 됐습니다. 절에서 백일불공을 드리고 있는 보살님도, 교회에서 날마다 새벽기도를 드리는 권사님도, 일단 자기네 밥집 주방에 들어서면 부처님 예수님 대신 이놈 저놈 망할놈부터 찾는 재미있는 세상이 됐습니다.
지난 2월 어느 날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강남에 있는 욕쟁이 할머니의 ‘포차’를 방문해 강씨와 재회했습니다. 대통령이 다녀간 며칠 후 SBS의 뉴스 카메라가 강 할머니의 포차를 찾았습니다. 8시 뉴스에 얼굴을 비친 원조(?) 욕쟁이 할머니는 “가게 집세를 7개월치나 못 냈다”면서 “주인이 나가라는데 집세가 워낙 올라 갈 곳이 없다”고 한탄했습니다.
할머니는 가게 벽에 이대통령의 사진을 걸어놓고 있는데 “대통령의 사진을 떼는 게 장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충고하는 손님이 많다”고 흉흉해진 세상민심을 들려줬습니다.
포장마차 벽에 걸려있는 사진이 수모를 당할 정도로 이명박 대통령의 인기가 요즘 폭락세입니다. 지난주 실시된 <리얼미터>의 정기 여론조사에서 MB의 국정지지율은 27.3%를 기록했습니다. 50% 안팎을 유지하던 지지율은 반 토막이 났고, 20%대까지 지지율이 주저앉은 건 2년 만에 처음입니다.
요즘 한국뉴스를 보면 5000만 국민이 저마다 욕쟁이 할머니를 쫒아 대통령을 향해 분노의 삿대질을 해대는 모양새입니다. 미국에 사는 동포들은 조국의 방방곡곡에서 들려오는 정치적 엉머구리들이 도무지 낯설기만 합니다.
과학도시는 뭐고 혁신도시는 어떤건지, 비지니스 벨트라는건 또 뭐고 가덕도 신공항이란건 어떤건지, LH는 무슨 회사길래 경상도 진주와 전라도 전주가 이명박 타도까지 외치며 서로 빼앗겠다고 싸워대고 있는지….
‘쥐구멍에 홍살문’이라고 했던가요? 가당찮은 일들로 대한민국이 아프리카 부족국가처럼 찢기고 쪼개져 총성 없는 내전(內戰)이 벌어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님비현상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저마다 나만, 내 고장만 편히 잘 살겠다고 아우성입니다. 수조원씩 투자되는 개발 사업은 모두 우리 것이고 화장장이나 쓰레기장 같은 혐오 위험 시설은 모두 너희가 가져가라며 ‘님비(NIMBY)’에 ‘뺑덕어멈 심보’까지 보태진 망국적 지역 이기주의가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포장마차 장사 잘하려면 벽에 걸린 대통령 사진부터 떼라고 윽박지르는 토라진 민심은 전라도와 경상도 쪽으로 내려가면 소경 매질처럼 점점 더 험악해지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한나라당 강세 지역인 경상도조차 요즘 지역구 여당의원들의 사무실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사진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대통령 이름 놓고 뻥치기


며칠 전 LA 한인타운에서는 희한한 행사 하나가 열렸습니다. ‘재외국민미주총련’이라는 이름의 낯선 단체가 회장(유영) 취임식 겸 문화의 밤 행사를 열었지요. 헌데 본국에서는 포장마차에서 조차 수모를 당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보냈다는 축하화환과 축하 메시지와 사진이 수상한 이 단체의 회장 취임식에 당당히 등장했습니다.
팜플렛에는 “유영 회장의 취임을 축하합니다. 2011년 4월 29일 대통령 이명박”이라는 문구와 함께 대통령의 사진까지 실려 주위를 놀라게 했지요. 헌데 이모두가 사기였습니다. 대통령을 상대로 감히 뻥을 치다니 사기치고는 통 큰 사기입니다.
<선데이저널>의 취재에서 회장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는 군요. “청와대에 이메일로 축사를 부탁했으나 연락이 없어(암묵적) 승인으로 알고 축사를 넣었다”고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포장마차에서도 떼어내는 대통령 사진을 우리가 넣어줬으니 오히려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청와대에 항의 공문이라도 보낸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재외국민 투표가 실시됩니다. 재외국민의 권익신장과 정체성 확립을 위해 마련된 새 선거법에 따라 240여만의 재외 유권자들은 4월 총선에서 비례대표(전국구) 투표부터 하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자생적 단체 형태의 선거조직이 여기저기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2009년부터 미국, 일본, 중국 등에 재외국민위원회와 연계할 ‘녹색성장포럼’을 결성해 왔지요. 민주당도 지난해부터 자생단체 형태의 해외연계조직인 ‘세계한인민주회의’를 출범시켰습니다.
여야가 해외에 정당 지부 등 공조직을 만들 수 없도록 한 현행 선거법망을 피하기 위해 자생단체 형식을 빌려 사실상 정당 조직을 만드는 편법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겁니다.
본국의 정당들은 비례대표 득표율을 높이기 위해 ‘해외표’에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반면에 해외 교포사회의 ‘정치 해바라기’들은 혹시 생기게 될지도 모를 비례대표 자리 하나를 노리고 도처에서 세 과시와 충성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재외국민 미주총련’ 해프닝은 빙산의 일각이고 앞으로도 이 같은 유사한 사태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동포사회에서 계속 벌어질 겁니다.
해외 참정권이 교포들의 권익신장보다는 일부 인사들의 감투욕 신장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역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투표참여 캠페인 대신 불참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할 판입니다.
욕쟁이 할머니를 등장시킨 다음과 같은 불참 캠페인 광고는 어떨까요?
“감투욕심 그만 내라 이눔들아! 국밥 푹푹 퍼처먹고 교포들 사는 걱정이나 해라, 이눔들아”
                                                                                                                         <2011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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