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훈 칼럼]금배지 노리는 재미동포 ‘아무나’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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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한창 잘나가던 국민의 정부 시절입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소통령 소리까지 듣던 김대중 정부 실세 중의 실세인 그를 어느 날 청와대에서 만났습니다.
청와대 대변인과 홍보수석, 정책수석, 문화부장관 등을 두루 거친 그는 레임덕으로 고전하는 임기말 DJ와 운명을 함께 할 이른바 순장조(殉葬組)를 자임하며 비서실장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는 소통령, 왕수석, 황태자 등의 닉네임으로 불리며 권력의 이너서클을 둔중한 존재감으로 꽉 채우고 있었지요. 불과 3~4년 사이에 정부와 청와대의 거의 모든 요직을 섭렵하며, 햇볕정책 등 주요 정책 수립과 추진에 깊숙이 개입한 DJ의 책사(策士)였습니다.
그날 그가 불쑥 이런 말을 하더군요. “실세고 뭐고 다 부질없습니다. 그 옛날 국회의원 하던 때가 호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박지원은 14대 국회에서 비례대표로 처음 금배지를 달았습니다. 초선인데다가 지역 대표성이 없는 전국구여서 별 존재감 없이 4년의 임기를 마쳤지요. 96년 15대 총선에서 지역구로 나섰지만 낙선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금배지를 단 기간은 92년에서 96년까지 4년이 고작이고, 그것도 힘 못쓰는 초선의 비례대표였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거머쥔 권력의 질량만으로는 총리보다 한수 위인 그가, 별 볼일 없던 비례대표 초선의원 시절이 제일 좋았다고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권력자의 공연한 ‘입찬소리’ 만은 아닌 것처럼 들렸습니다.


DJ정부 소통령의 고백


미국에서는 변호사를 조롱하는 유머가 많은데 한국은 국회의원을 모멸하는 우스개 소리가 인터넷 공간에 넘쳐납니다. ‘국회의원과 거지의 8대 공통점’은 국회의원 개그의 고전이지요. 이를 따라해 ‘국회의원과 개의 6대 공통점’, ‘국회의원과 어린 아기의 6대 공통점’ 같은 짝퉁 공통점 시리즈가 인터넷에 떠다니고 있습니다.
“주뎅이(입)로 먹고 살면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정년퇴직과 출퇴근이 없고, 현행법으로는 다스릴 재간이 없는 골치 아픈 쓰레기”인 점이 국회의원과 거지의 닮은 점이라네요.
한국의 국회의원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권한이 막강하고 예우와 처우가 월등합니다. 반면 권한에 비해 책임이나 의무의 속박은 거의 없습니다. 헌법45조의 면책특권과 44조의 불체포 특권은 국민의 대표로서 직책을 성실히 소신껏 수행하도록 국민이 위임한 특권입니다.
헌데 이들은 이런 특권을 국리민복보다는 정파싸움과 권력남용, 경제적 잇속 챙기기 등 법적부패 행각에 ‘반풍수 집안 망치듯’ 악용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과 어린아기의 공통점’ 유머에는 “하는 일 없이 먹고 자고 논다”라는 게 있는데, 많은 의원들이 그 짝이지요.
이 감투 저 감투 다 써 본 DJ 정부 ‘소통령’의 고백은 반어법(反語法)일 테지만, “감투 중의 제일은 국회의원이더라”였습니다. 성경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패러디하면 “의원도 좋고, 장관도 좋고, 수석도 좋고, 실장도 좋지만 그중의 제일은 의원이라”가 되겠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듯 말이죠.


‘재외동포 비례대표 6명’은 뻥?


“내년 4월 총선에선 해외동포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여섯 명 정도 나온다는데….”
김창준 전 연방하원의원이 최근 한 칼럼에 쓴 내용입니다. 그 동안 워싱턴을 방문한 여야 국회의원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니 그 쯤 될 것 같다는 추산입니다. 의원 299명의 2% 정도 되지요. 내년 양대 선거에서 투표권이 주어지는 재외동포는 전체 700만 명 중 230만 명 쯤 됩니다. 한국 전체 유권자의 6% 정도 되지요. 숫자만으로는 6명의 비례대표 할당도 가능하지만 문제는 투표율입니다.
현행 선거법대로라면 유권자는 재외공관에 선거 등록하러 한번, 투표하러 한번, 두 번 씩이나 직접 나가야 합니다. 시카고 총영사관은 비행기로 한두 시간, 자동차 드라이브로 대여섯 시간 이상 걸리는 너른 지역 14개주를 관할하고 있습니다. 어떤 지역의 유권자는 등록이나 투표를 한 후 하룻밤을 호텔에서 묵고 가야할 정도라지요. 부부싸움 하다가 동네 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 나가 한 표 찍은 후, 다시 돌아와 부부싸움 연장전을 벌이는 좁은 땅 한국과 이곳 미국은 딴판입니다.
우편투표나 전자투표를 허용해야 한다고 동포사회는 한 목소리지만, 부정투표 망령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국 정치권과 선거 당국은 막무가내입니다. 결국 이대로 선거가 치러지면 투표율은 많이 잡아야 10%로 총 투표자는 한국 전체의 1%도 안 될 것입니다. 이정도로 해외동포 몫의 대의성(代議性)을 주장하거나 비례대표 국회의원 할당을 요구하기는 낯 뜨거운 노릇이지요. 더구나 불을 보듯 뻔한 동포사회의 갈등과 분열 등 부작용까지 감안하면, 여야 정치권의 ‘해외 비례대표 할당’ 운운은 공연한 ‘립 서비스’ 일망정 함부로 공약할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투서 청문회’ 막 오르나


한국의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지난 7월 18일 재외국민 위원장에 LA동포 남문기 씨를 임명했습니다. LA한인회장과 미주한인회총연합회 회장을 지낸 남 씨의 한나라당 주요당직 임명을 놓고, 내년 총선 비례대표 자리를 이미 담보 받은 것 아니냐는 섣부른 추측까지 나돌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과연 미주 이민사상 최초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동포사회에서 탄생할 수 있을지, 어떤 면면들이 본국 정계 진출을 위해 뛰고 있는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남문기로 낙점된 한나라당 재외국민 위원장 자리를 놓고 LA에서만 두세 명, 미주 전체에서는 대여섯 명 이상이 각축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벌써부터 동포사회 분열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남씨는 아직 임명장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시민권이 걸림돌이 돼 시민권이 완전 정리되는 3개월 이내엔 현재의 어정쩡한 신분 상태가 바뀔 것 같지 않습니다.
시민권 보다는 다른 복잡한 이유로 재외국민 위원장 임명이 늦어지거나 어쩌면 임명자체가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런 전망도 나옵니다. 좋지 않은 소문과 투서 때문입니다. 한나라당에 전해진 투서 중에는 그가 과거 한인회와 상공인 총연, 한인회 총연 회장시절 발생한 여러 분쟁의 핵심 당사자라는 것, 부동산 사업과 관련해 100여건의 소송을 당한 전력, 그외 확인되지 않은 사생활 관련 루머 등이 전해집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내에서도 일부 문제제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내년 양대 선거를 발판삼아 본국정계 진출을 노리는 인사 중엔 각 지역 한인회장 출신과 이들의 연합체인 ‘총연’회장 출신이 많습니다. 동포 대다수가 외면하며 기피하는 대상들이지요. 별로 하는 일 없이 쌈박질만 하는 한인회와 총연 회장 경력을 내세워 동포사회 대표성을 주장하는 그들의 낯 두꺼움을 역겨워하는 동포들이 많습니다.
비례대표 말고도 이들의 정치적 탐욕을 채워줄 기회나 자리는 또 있습니다. 총선 8개월 후 치러질 19대 대통령 선거입니다. 유력후보의 대선 캠프에 들어가 해외특보 등의 요직을 맡았다가 ‘대박’이 터지면 한자리 꿰차는 일종의 감투 입도선매(立稻先賣)지요. 박근혜, 손학규 등 여야 지도자, 그리고 최근 심상찮은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노무현의 멘티’ 문재인 등이 이들의 주 공략 대상이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장관 등 최고위 공직자가 되려면 인사청문회라는 이름의 혹독한 검증의례를 거쳐야 합니다. 해외동포 정치지망생들도 나름의 엄혹한 검증의례를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각종 음해성 투서가 날아들고, 인터넷과 트위터에는 “전직 한인회장 아무개, 전직 총연회장 아무개를 벗긴다”라는 식의 ‘카더라 통신’이 난무하겠지요. 국회청문회에서는 잡아떼거나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만, 허물 많은 전직 단체장 출신들이 변명할 길도 없는 이 같은 무차별 ‘사이버 청문회’를 과연 이겨낼 수 있을지, 그 과정에서 동포사회가 입을 분열과 갈등의 상처는 얼마나 깊게 패일지 걱정입니다.
국회의원 개그 하나만 더 알려드리지요. 금배지와 견공(犬公)의 공통점 중 일부입니다.
-가끔 주인을 못 알아보고 짖거나 덤빌 때가 있다.
-미치면 약도 없다.
-먹을 거만 주면 아무나 좋아한다.
                                                                                                                           <2011년 8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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