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챔피언” 박선영의원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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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영의원이 LA를 방문해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미주동포들의 성원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고, 탈북자 인권에 대한 한국국민들의 정의감에 희망을 지니는 눈물이다. 
박 의원은 워싱턴DC에서 북한인권회의 참석차 가는 길에 LA를 방문해 지난 7일 JJ 그랜드 호텔 에서 개최된 LA동포간담회에서 지난 4년간의 의원 생활의 마감을 앞두고 자신이 체험한 북한 인권운동을 보고했다. 특히 박의원은 자신이 왜 11일간의 단식투쟁을 감행한 동기를 설명하면서 “죽음을 담보로 한 단식에 국민과 미주동포와 세계인 격려를 보내주어 새로운 희망을 지니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약 80여명이 참석해 진지한 감동속에 진행 됐으며, 박의원과 함께 눈물을흘리기도 했다. 이날 행사는LA평통(회장 최재현), 국군포로송환위원회(회장 정용봉), 자유대한지키기국민운동미서부지회(회장 김봉건),육군종합학교전우회(회장 정용봉),  재미 남가주 이북도민총연합회(회장 최창준), 9.28수복동지회(회장 안재득), 6.25전쟁납북자 가족 협의회LA지부(회장 김경환) 등이 공동주최했다. 이자리에서 이창건 LA평통 부회장은  “박의원의 탈북자 인권운동은 우리사회에 많은 귀감을 주고 있다”면서 “LA평통도 탈북자 지원에 많은 관심 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봉건 회장은 박의원을 “철의 여인”이라면서 “연약한 여성의 몸이지만 그 신념과 행동이 강하다”고 평가하면서 재미동포를 대신하여 박의원의 인권운동을 기억하는 기념패를 증정했다. 다음 내용은 이날 박의원이 눈물로 호소한 내용 이다.  <편집자주>


 내가 단식투쟁을 한 동기는  ‘매우 급박한 상황’이라 다른 대안이 없었다. 시시각각으로 탈북자들이 체포되어 북송되는 과정이라 하루 한 시각이 급했다. 그래서 나의 몸을 던져서라도 이 사실을  알려 단 한사람의 탈북동포라도 구하려는 마음 때문에, 남편에게도 알리지 않고, 당에도 알리지 않고 그저 중국 대사관 건물이 있는 길거리로 뛰처 나갔다.
매일 브리핑을 해도 관심갖는 언론도 없고, 정치인들도 없었다. 그런데 단식투쟁을 하자, 미국 언론 CNN을 포함해 AP 등 이 보도하면서 세계로 소식이 전해졌고, 차인표, 이성미 등 연예인들이 동참 하면서 시민들도 찾아 오기 시작했다.

나는 제3당인 자유선진당의 비례대표 초선의원이다. 하지만 그는 4년전 국회의원이 되면서 3가지를 결심했다. ‘국회의원으로서 하지 말아야 하는 3가지’와 ‘국회의원 으로서 해야 할 3가지’ 를 정했다.
‘하지 말아야 하는 3가지’는 첫째,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 둘째, 밀실 야합을 하지 않는 것, 세째, 검은 돈을 받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지켜야 할 3가지’는  첫째, 법 절차를 제대로 지키자, 둘째, 국가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 셋째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 등이다.




바로 두번째 ‘국가의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탈북자 문제를 포함해 국군포로, 납북자, 위안부 , 사할린 동포, 무국적 한인동포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게됐다. 이들의 문제는 국가가 나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이들이 “역사의 조난자”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들 동포를 잊어버리고 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전세계 200여 국가들 중에서 민주화 산업화를 가장 빠르게 이룩한 국가이지만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 바로 이들 “역사의 조난자”들이다.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은 우리 헌법정신을 실천하는 길이다. 우리 헌법은 잘 제정되어 있으나 지키지를 않고 있는 것이다. 마치 헌법을 거추장스런 존재로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저 자신 나라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 중에서 독도 지키기 운동을 선택했다.
지난 4년을 통해 국군포로도 한국으로 송환시켰고, 납북자 문제에도 관여했다. 6.25전쟁 이후의 납북자에 대한 정책은 있으나, 6.25전쟁시 납북자에 대한 법도 없었다. 이승만 초대정부 시절 통계에서는 전시 납북자를 10여만명으로 추산했으며, 미국무부 통계에 따르면 전시 납북자는 8만여명이다. 그러나 미신고 대상자까지 합하면 12만명으로 추산된다.

국회에 처음 들어가서 전시 납북자 법을 만들려고 했는데, 심지어 당시 한나라당도 반대했다. 
그동안 국군포로, 탈북자들을 위해 중국, 러시아, 캄보디아, 미얀마, 태국, 라오스, 몽골 등을 자비로 여행을 하면서 국군포로와 탈북자들을 수없이 만났다.
지난해 미국의회에서 처음으로 북한인권에 대한 단독의제 결의안 국군포로, 납북자 탈북자들에 대한 결의안이 최초로 통과됐는데 일부나마 나의 노력이 함께해 보람도 느꼈다.


















 ▲ 박선영 의원이 에드로이스 의원(왼편)과 만나고 있다.
오른쪽은 정봉용 국군포로송환위원장


무조건 중국대사관으로”


김정일 사망후 지난 연말을 기해 북한은 300명의 특별 정찰국 소속 대원을 중국으로 파견해 기획적으로 탈북자들을 체포하는 작전에 나섰다. 이들 정찰국 대원들은 탈북자로 가장해 브로커와 접선하든가, 다른 탈북자들과 동행해 탈북자들을 중국 공안원에게 신고하는 방법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탈북자들은 중국내에서 이동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기차나 버스를 탈 경우, 승차권에 인민증 (중국에서 신원증명서) 번호를 함께 기록하기에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것이 힘들어 졌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브로커들이 몰래 제공하는 승합차나 아니면 걸어서 숨어서 이동해야 하는 처지다.
이같이 북한측의 특수 정찰대원과 공조하는 중국 공안원 때문에 탈북자들의 체포가 급격히 증가 했다. 이로인해 태어난지 20여일 밖에 안된 아기도 산모와 함께 체포되기도 했다.

이같은 급박한 상황을 알려여 하는데 국내는 4월 총선으로 정신이 없고 해서 무작정 중국 대사관으로 가서 건너편 옥인교회 주춪돌 밑에 주저앉아 매일 오후 2시에 언론 브리핑을 했으나 국내 언론은 귀를 귀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외국 언론들이 다가 오면서 국제사회로 이 소식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일반 시민들이 다가 오기 시작했고, 하루에 천 명 이상이 찾아와 위로해주면서 “탈북자들이 이처럼 고통을 받는지 몰랐다”고 했다.  나는 이들 시민들의 위로를 받으며 ‘우리사회의 정의는 마르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했고, 믿을 것은 국민들임을 깨달았다.

내가 친 텐트는  25,000원짜리 싸구려였다. 단식 11일 동안은 한평생 받았을 성원을 다 받은 기분 이었다.  단식 11일만에 병원으로 실려갔는데 백혈구 수치가 1000이었다. 일반 성인의 경우 4000이었다.위험한 지경이었다. 난생 처음 단식을 했는데, 단식을 하려면 소금은 먹어야 한다는데 그것도 몰랐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고 병원 측은 밝혔다. 아픈 몸을 끌고 스위스로 갔다.

스위스 제네바 유엔 북한인권위원회는 원래 1월에 가기로 계획했는데, 탈북자 문제가 급박해 예정을 미루고 있었는데, 3월에도 가지 못하면 내년까지 인권위원회의를 기다려야 하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자비 여행으로 가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국회 측에 한국 국회 대표단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다.
내 임기 중 처음으로 국회에서 승인이 나왔다. 그 전에는 국회에다 국군포로, 납북자, 탈북자들의 조사 활동비 등을 청구했으나 전혀 반응이 없었던 국회가 이번에는 스위스 파견 대표단 제안을 승인했다. 새누리당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을 대표단장으로 하여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 의원으로만 대표단이 구성됐다. 민주통합당은 아예 참가하지 않았다.

우리 대표단은 유엔 북한인권위원회 소속 회원 국가들을 위한 많은 자료를 가지고 갔으며, 가능한 많은 국가 대표단을 만나의원 외교로 설득했다.
지난 3월23일 유엔 북한인권위원회에서는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유엔 역사상 북한 관련 탈북자 포함한 인권 결의안이 토론도 없이, 표결도 없이 본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 됐다.  주목할 사실은 북한이나 중국이 크게 이의를 걸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측은 ‘우리가 인권이 열악한 점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이나 강대국들의 제재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이들이 인권이 열악하다는 점을 처음으로 시인한 것이다.

















 ▲ 박선영의원(오른쪽 두번째)이 간담회에서 보고를 하고 있다.

중국 측은 ‘결의안 내용이 조금 과장됐다’ 정도로 언급했다. 친북한 측인 짐바브웨는 ‘사실 근거 없다’라고 했고, 미얀마 측은 ‘북한 인권보고서는 북한에도 안들어가고 만든 보고서다’라고 했다. 하지만 유엔 북한인권보고관인 다루스만 담당관이 안들어 간 것이 아니라 북한측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기적과 같은 일이…


이처럼 유엔 역사상 최초의 북한인권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은 전세계를 통한 북한인권 운동의 결과인 것이다. 이를 통해 나는 작지만 우리사회가 목소리를 내고 정의로운 행동을 할 경우, 사회는 움직이고, 국제사회도 우리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한국의 언론들은 이를 과소평가했다. 일부 언론은 고작 우표딱지 정도의 작은 기사로 취급했다.
또 한가지 특이한 일이 일어났다. 서울에서 개최된 핵안보정상회의에 온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과 이명박 대통령간의 정상회담 후 공개보도와 비보도문이 있는데 그 내용이 주목을 받았다. 중국측은 공개보도문에서 ‘북한이 로켓이나 핵개발을 할 것이 아니라 민생문제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했다. 중국측이 그동안 북한측에 대해 ‘민생문제’를 거론한 적이 전혀 없었는데, 인권문제 에 진일보한 성명을 내논 것이다. 그리고 비공개 보도문에 따르면 ‘중국내 한국공관에 있는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핵정상회담이 끝난후 4월1일에 중국의 한국 공관에 장기간 머물고 있던 국군포로 가족들 13명이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다는 사실이다. 중국측이 세계여론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한달 이내에 이런 일들이 생겨난다는 것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또 다른 일도 일어났다. 지난 연말 중국 동북3성에 파견된 특수 정찰대원도 여성대원만 남고 모두 북한으로 철수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중국측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북한 정권은 지난 4월1일자로 각 부처에 명령서를 통해  ‘체포된 탈북자들을 공개처형 하지 말고 내부적으로 조용히 조치하라’고 했다. 공개처형은 국제인권법에 위반되는 사항이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희망을 갖게됐다.



북한 정권은 탄순 탈북자들에 대해서는 노동연대 등에서 노역이나 기타 처벌로 하고 있으나, 만약 탈북해 중국에서 한국으로 가려고 시도했거나, 기독교를 믿거나 교회와 접촉한 사실이 있는  경우는 대부분 공개총살형에 처했다. 기독교 신앙을 접하려고 한 경우는 예외없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어 혁명화구역이나 종신구역으로 가게된다. 만약 수용소에서 배교를 하지않을 경우 예외없이 총살이다. 배교했다는 증거로 성경을 밟고 지나가게 하거나, 묵주 등을 부셔버리게 한다는 등 행위를 보여야 한다.

북한의 ‘공개처형’은 미성년자도 참여시켜 공개적으로 처형하는 행위다. 탈북자 신동혁씨는 최근 자신의 수기를 미국에서 펴냈는데, 자신이 11세때 어머니와 형이 공개처형하는 것을 직접 본 장본인이다. 신씨는 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난 특이한 주인공인데 밤중에 자다가 어머니와 형이 탈북하는 계획을 몰래 듣고 다음 날 아침 보위부에 고발한 장본인이다. 나중 자신의 처지를 새롭게 느껴 탈북했다.

미국 등 여러 곳에서 중국의 탈북자강제북송 반대시위가 거세어지자 미국의회도 발빠르게 탈북자청문회를 개최해 중국측을 압박했다. 북한측과 가까운 캄보디아에서도 택시 등에 ‘중국의 탈북자강제북송반대’라는 배너를 달고 다닌다. 그곳의 한국동포와 캄보디아 시민들이 합동으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같은 일련의 일들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높은 곳에서의 섭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들이 비록 힘이 없으나 정의로운 일에 하나로 뭉쳐 목소리를 낸다면 큰 일을 성취할 수 있음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특히 미국 등 해외 한인들의 성원이 커다란 역할을 만들어 냈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4월 10일 전세계 59곳 중국 공관이 있는 곳에서 낮12시 한인들이 탈북자와북한동포의 인권을 위한 시위는 역사상 큰 의미를 지닌다. 과거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대해 목소리를 냈으나, 북한인권을 위해서 한인들이 세계 여러나라 중국공관 앞에서 한자리에 모여 한날 한시에 기도와 인권운동을 외치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중앙일보 여론조사 보도에서 ‘탈북자 강제북송은 안된다’에 답한 국민이 82.6%로 나왔다.  놀라운 결과다. 남녀노소 관계없이 대부분 국민들이 탈북자 강제북송에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는 것은 국민들이 정치인들 수준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을 믿는다. 그리고 희망을 지닌다. 더 이상 울지 않으려고 한다. 











“박근혜도 탈북자인권에 침묵”

대북 풍선은 북한주민에게‘자유의 바람’이다


문: 한국에서 탈북자들의 위치는 어느 정도인가
박: 많은 탈북자들이 자신들은 “4등국민”으로 생각하고 있다. 1등시민은 원래 한국인, 2등시민은 ‘조선족 동포’ 3등시민은 ‘이주민’(동남아 등지에서온 외국인노동자), 4등시민은 탈북자로 취급 받는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한국정부가 탈북자들에 대한 맞춤형 정착교육이나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에 온 탈북자들이 북한 가족에게 보낸 돈만 10만 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 한국의 정치인들의 탈북자 관심과 대책은,
박:  민주당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도 일부 의원들을 제외 하고는 별반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민주당은 종북세력인 통합진보당 눈치를 보고 있다. 여당의 박근혜 대표도 탈북자 인권을 스스로 밝힌 적이 없다. 지난번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질문에 “중국 후진타오 주석 에게 서신을 보냈다”고 했는데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밝히지 않았다. 우리정부나 일부 정치인 들은 ‘조용한 외교’라는 명분으로 인권문제를 회피하고 있다. 인권문제는 이념으로 볼 것이 아닌 인간 고유의 존경받은 권리다.
문: 유엔 반기문 총장에게도 건의 등을 했는가.
박: 유엔에 여러번 건의도 하고 했다. 반기문 유엔총장도 할 일이 있을터인데 답답하다.
문: 대한민국을 법치국가인데 지난번 ‘최루탄사건’의김선동 의원이나, 폭거를 자행한 강기갑의원 등은 마음대로 법을 파괴했는데, 이들은 국회의원이라서 법의 저촉을 받지 않는지 의문이다. 법을 전공한 박의원의 입장을 들려달라.
박: ‘최루탄 사건’의 김의원은 자신이 ‘한나라당에 대한 항거’라고 주장했는데, 나는 이 행위가 국민에 대한 폭거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위임을 받아 대신 국회에서 논의하는 자리에서 일어난 김 의원이 한 행위는 분명히 국민을 향해 한 폭고이다. 나는 국회의장이나 사무총장이 당연히 김 의원을 고발하리라 믿었다. 그런데 고소할 기간이 2주간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기까지 아무런 조치가 없음을 알고, 국회의원 20명의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자유선지당 동료 의원 15명 중 11명 서명을 받았으나 나머지가 문제였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 전원에게 일일히 전화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실망이었다. 가장 많은 답변은 “생각해보겠다”였다. 내일이 마감인데 ‘생각해 보겠다’고 하니 답답했다. 두번째는 “우리 지역구 사무실에 농민들이 시위를 할지몰라서….” (당시 FTA문제로 시끄러울 때였다) , 세번째 돌아온 답변이 나를 기겁하게 만들었다. “내 보좌관하고 상의해보겠다”였다. 국회의원은 독립적인 헌법기관인데 어떻게 보좌관에게 자신의 의사 결정권을 위임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하여간 그날밤 간신히 20명을 채웠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3명의 의원으로부터 “빼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17명 의원의 서명만 있어 3명이 모자랐다. 나는 울면서 기도하면서 다시 의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돌렸다. 오후 2시가 되면서 5명의 의원들이 동참했다. 그 당시 나는 성경 말씀에서 “의로운 사람 5명만 있어도 멸망하지 않으리라”라는 구절이 새롭게 마음을 움직였다. 우여곡절 끝에 김의원 고발장을 정식으로 제출했는데 이번에는 국회측에서 논의한다는 일정을 잡고 있지 않았다.
문: 북한으로 날려보내는 대북풍선 등의 효과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박: 최근 만나본 탈북자들 중에 풍선에서 날라 온 비라를 본 사람이 있다. 이제 북한에서 풍선 전단을 통해서 많은 주민들이 남쪽 사정과 세계 사정을 더 알게 됐다고 한다.  ‘천안함 사건’이 북측에서 일으킨 것도 알고 있다고 한다.
문: 이번이 국회의원으로서 마지막인데 앞으로의 활동은,
박: 원래 비례대표를 하면서 한 임기만을 약속했다. 5월말로 의원직을 마감하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간다. 사회인으로 북한인권문제는 계속 노력해 나가겠다. 국회의원으로서 외국에 나가 의원외교로 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대학교수로서도 사회참여를 할 수 있는 한 펴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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