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그들을 빨갱이라 불러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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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한국에서는 죽은 단어 즉 사어(死語)가 된 빨갱이란 단어가 요즘 다시 부활해 유령처럼 사이버 공간을 떠다니고 있습니다.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한마디씩 빨갱이라는 단어가 소생하고 있습니다.
지지난주 부산 국제신문과 인터뷰를 한 안철수 교수의 부친 안영모 옹이 빨갱이란 말을 썼지요. 지난주엔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이 ‘도둑놈 찍을까요, 빨갱이 찍을까요’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습니다. 지난 며칠 인터넷 매체들은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 부정사태를 다루면서 연일 좌빨(좌익 빨갱이) 세력에 맹타를 퍼부었습니다.
빨갱이의 사전적 의미는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입니다. 영어에서도 ‘the Reds’로 씁니다. 사전적 의미대로라면 한국에도 미국에도 빨갱이는 분명 존재합니다. 특히 한국은 지난 10여년 사이 빨갱이가 부쩍 늘었는데도 빨갱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금기어입니다. 북한에서 수령한테 충성서약을 하고 온 자들도 빨갱이 소리엔 손사래를 칩니다.
한국에서 빨갱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려면 특단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빨갱이 소리가 입에서 나오기 무섭게 “요즘 세상에 빨갱이가 어디 있느냐”는 핀잔이 돌아옵니다. 무식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꼴통 보수주의자로 낙인이 찍히지요.
빨갱이들을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은 지금 거의 죽은 법이 됐습니다. 웬만한 보안법 위반은 무죄방면입니다. 2~3년이나 3~4년의 징역형도 대부분은 실형대신 집행유예로 풀어주고 담당 판사는 ‘개념 판사’로 국민적 존경까지 받습니다.
안철수의 부친은 박원순이 분명 빨갱이라고 믿었습니다. 헌데 아들은 일언지하에 “박원순은 빨갱이가 아닙니다. 요즘 대한민국에 빨갱이가 어디 있습니까”라고, 8순의 부친에게 면박을 줬습니다. 과연 ‘요즘 세상에’ 대한민국엔 빨갱이가 없을까요? 차기 대한민국 대통령 권력에 가장 근접해 있는 후보중의 하나인 안철수의 안보관에 문제가 있다며, 지난주 몇몇 보수 단체들이 그를 규탄하는 광고를 일부 신문에 게재했습니다.
이 해프닝을 계기로 인터넷엔 ‘박원순 어록’이라는게 다시 떠올랐습니다. “공산주의 활동을 허용해야 한국사회의 다양성이 확보된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김일성 만세를 부르는 것도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다.” “김정일 정권의 고문여부는 북이 폐쇄적인 국가라 실태를 알 수 없다.”
이상은 인터넷에 떠도는 박원순 어록의 일부입니다. 안철수의 8순 부친 안영모 옹을 겁나게 한 바로 그 서울시장 박원순이 내뱉은 말들입니다.


‘좌빨’ 프리미엄 시대


지난 2월 동아일보 홍찬식 논설위원은 ‘이젠 진보대신 좌파로 불러도 된다’라는 칼럼을 썼습니다. 여야 정당이 저마다 ‘좌클릭’ 경쟁을 벌이고, 보수보다는 오히려 진보가 대접받는 현실에서 좌파를 굳이 진보로 위장ㆍ미화시킬 필요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사실 보수와 진보는 객관적인 구분은 아닙니다. 진보는 발전, 보수는 현상유지의 의미가 강하고 때로는 수구와 동일시 되기도 합니다. “보수와 진보의 틀은 보수세력에는 핸디캡을 안겨주고 진보세력에는 프리미엄을 부여하는 불평등 구도”라고 홍위원은 썼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진보를 좌파라 불러도 된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4.11 총선에서 지지율 10%를 넘게 얻은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 경선 부정이 들통나면서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습니다. 분당이나 당 해체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통진당은 선거부정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전방위적으로 획책했습니다. 반세기전 자유당 때의 부정선거와 북한 공산당식 공개 투표가 결합된 것 같은 대한민국 정당사상 최악의 선거부정입니다. 헌데 통합진보당의 소위 당권파는 부정투표 자체를 인정치 않고, 지도부와 경선 비례대표 전원의 사퇴를 촉구한 전국운영위원회의 결의까지 짓뭉개며 버티고 있습니다.
가령 우파정당에서 이 정도의 사태가 발생했다면 지도부의 총사퇴는 물론 부정선거에 개입된 모든 당사자들이 사퇴하거나 쫓겨났을 겁니다. 그러나 통진당의 극좌 당권파는 반성도 책임도 거부하고 오히려 진상조사단이 해당 행위를 했다고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알려진 대로 통진당의 당권파는 김일성 주체사상을 따르는 NL(민족해방) 계가 주축입니다. 이번 파동의 중심인물로 떠오른 비례대표 2번 이석기는 대법원이 반국가 단체로 규정한 민혁당의 핵심 간부 출신입니다. 이번 비례대표 경선에서 그는 엄청난 부정투표 덕에 1위를 했지만, 1번은 여성 몫이어서 2번으로 나서 당선됐습니다. 이석기는 이번에 온라인 투표에서 1만여표를 얻어 1등을 했지만 60%인 6천여표가 수백개의 인터넷 주소(IP)에서 중복 투표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를 당선시키기 위해 컴퓨터와 인력을 대거 동원한 부정선거가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얘기입니다.
통진당의 모태인 ‘전국연합’은 지난 2001년 이른바 ‘군자산의 약속’을 통해 3년내 민족민주정당 건설, 10년내 연방통일조국 건설 등을 선언했습니다. 2006년 이들은 민주노동당을 장악하면서 첫 번째 목표는 달성했지요. 두 번째 목표인 연방조국 건설을 위해 오는 12월 대선때 야권연대를 통해 승리한 후 공동정권을 구성하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석기 같은 투쟁성 강한 조직내의 ‘몸통’이 원내에 반드시 진출해야 합니다. 무리한 막가파식 선거부정이 저질러진 배경입니다.
이같은 분명한 목표를 눈앞에 두고 있어 절대로 당권을 내 놓을 수 없는게 이정희등 당권파의 입장입니다.


빨갱이와 더불어 살기


미국내에는 ‘재미동포 전국연합’이라는 친북단체가 있습니다. 이산가족의 북한방문을 위시한 모든 단체, 개인의 북한방문이나 접촉은 이 단체를 통하도록 창구가 단일화돼 있습니다. 오늘 아침 이 단체의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니까 “이정희 대표의 이유있는 항변” “중세의 마녀사냥, 이것이 사태의 본질” “진보당을 위기로 몰아넣은 이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남조선 얘기’가 실려 있습니다. 같은 피붙이인 통합진보당 형제들의 의로운 투쟁을 지지 격려하는 글들이지요. 김일성 탄생 100주년 행사인 4.15 경축행사에 다녀 온 재미교포 김숙의 ‘삶의 멋이 있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칼럼도 눈에 띕니다.
“… 노래와 춤이 있고, 체조가 있고, 교예가 있으며, 휘황찬란한 불꽃이 하늘에 수놓아지고…. 대동강의 옥류교와 대동교에서 불꽃의 폭포수가 쏟아지는 축제의 한마당…. 나라의 창건자, 수령님의 탄생 100돌과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장군께서 이룩한 정치 군사 문화 강국을 유감없이 자랑하는 축하와 흥이 넘쳐나는 자리…. 세상에 이렇게 전 인민이 정치 사상 문화 예술로 체화돼 있고 거기에 사랑이 있고 흥이 있고 맡겨진 일에 책임감이 넘치는 아름다운 인간성을 지닌 나라가 있을까.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재미 교포사화에도 친북인사들이 많습니다. 북한에 있는 가족 때문에 친북을 하는 위장친북, 북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얻어내기 위한 생계형 친북, 주체 사상에 심취한 진성(眞性) 친북….
친북도 여러 가지입니다. 의사나 변호사 같은 ‘브루좌 직업’을 가진 사람집에 초대되어 갔다가 서재 책장을 가득 메운 김일성 전집같은 북한서적을 보고 놀라 뛰쳐나왔다는 교포들의 얘기도 심심찮게 듣습니다.
한국도 이곳도 어쩔수 없이 놀라지 말고 그들과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됐습니다. 서울시장이라는 사람이 “광화문 광장…김일성 만세” 얘기를 하고, 판사들이 국가보안법을 무슨 교통위반 단속법 정도로 우습게 여기는 세상…. 그런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번 통진당 사건은 국민들이 폭력적이고 교조적인 친북좌파 세력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야 하는지를 성찰케 한 좋은 기회가 됐습니다. 동아일보 홍찬식 논설위원이 쓴 칼럼 제목 ‘이젠 진보 대신 좌파라 불러도 된다’에 한마디를 더 붙여보면 어떨까요?
“이젠 좌파를 빨갱이라 불러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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