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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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중국 사람들은 대체로 시끄럽습니다. 홍콩에서 마카오로 가는 페리를 탔다가 ‘시껍’을 한 적이 있습니다. 떠드는 사람들은 주로 여자들인데, 어찌나 소리를 질러 대는지, 배가 뒤집히는 줄 알았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온 서양인 관광객들은 서로 쳐다보며 헛웃음을 지었지만, 중국인 승객들은 도무지 오불관언이었습니다.
중국의 소도시나 농촌의 주택가에서도 여자들이 내 지르는 이런 마르치알레 풍의 ‘소음’과 만나는 일이 흔하다고 들었습니다. 주택가 골목에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 중 압권(?)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너 죽고 나 죽자”며 집안에서 악악 싸우는 소리라지요. 외국인들에게는 생소한 중국만의 뒷골목 풍경입니다.
아더 스미스라는 사람이 쓴 <중국인의 성격>이라는 책에는 세상에서 가장 요란하게 싸우는 중국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의 ‘고부(姑婦)갈등 스토리’가 재미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싸우면서 흘깃흘깃 집 밖을 내다보다가, 눈에 띄는 사람 중에 자기편을 들어 줄만한 사람을 발견하면 잽싸게 그를 불러들입니다. 그리고는 시시비비를 가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경우 대체로 “남의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며 손사래를 치고 물러나는데, 중국인들은 기꺼이 그 자리에서 잘잘못을 가려 준다네요. 그게 관습이고 예의라고 합니다. 심판이 내려지면 대개의 경우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결과에 승복하고 싸움을 끝냅니다. 그리고는 다시 정겨운(?) 일상의 고부관계로 돌아갑니다.
아더 스미스의 ‘중국 뒷골목 견문기’는 한참 전에 쓰여 진 기록이라 요즘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있게 마련인 고부간의 갈등을 제3자인 이웃사람들의 판단과 조정에 맡기고, 그 결과에 양자가 모두 승복하는 중국인의 전통관습은, 오늘날의 배심원재판이나 국민참여재판의 원초적 형태 같아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참여재판, 하려면 제대로 해야


미국에 이민 와 시민권을 받으면 누구나 배심원의 의무를 지게 됩니다. 한국에 국방의무가 있듯이 미국엔 18세 이상 성인이면 심각한 병자가 아닌 이상 누구나 배심원이 돼야하는   귀찮은 의무가 있습니다. 종업원 없이 혼자 가게를 지켜야 하는 한인 자영업자 중엔 배심원 소환장이 겁 나 시민권 취득을 미루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영미계인 미국과는 달리 대륙계 법 체계인 한국은 배심제 대신 판사가 단독으로 판결하는 사법제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을 ‘새끼’라 부르고 김일성 시신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돌아 온 ‘좌빨’ 피고인을 “경로사상이 투철한 존경스런 한국인”으로 치켜세우며 ‘무죄 방망이’를 두드리는 이념과잉 판사들이 넘쳐납니다. 자기 부모뻘인 피고인한테 “늙으면 죽어야 한다”라는 식의 악담을 퍼붓는 함량미달 판사도 수두룩합니다.
그래서인지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판결의 신뢰성을 높이겠다며 2008년 도입한 게 국민참여재판 제도입니다. 피고가 원하는 재판에만 채택된다는 점에서 미국의 배심제와 독일의 참심제를 절충한 제도입니다. 미국의 배심제도에서는 배심원들이 유무죄를 평결하고 판사는 형량만 결정하지만, 한국의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들의 유무죄 판결과는 엇갈린 판결을 판사가 독자적으로 내릴 수도 있습니다.  미국이 배심원 전원합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비해 한국의 참여재판은 단순 다수결을 따르고 있어 배심제의 왜곡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한국의 국민참여재판이 이념이나 여론의 지배를 받는 ‘감성(感性)재판’의 위험이 크다는 우려가 나오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문재인의 배심원 앞 쇼,쇼,쇼


친노계 시인으로 알려진 안도현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엊그제 전주지법에서 열렸습니다. 지난 해 대선 때 문재인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동한 안도현은 트위터를 통해 박근혜 후보를 여러차례 비방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배심원들은 이날 그에게 전원일치 무죄평결을 내렸습니다. 문재인은 만사를 제치고 전주로 내려가 “안도현 시인에게 미안하다”고 배심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전주는 지난 해 대선에서 문재인에게 86.25%의 몰표를 몰아 준 곳입니다. 여기서 7명의 배심원을 뽑았으니 적어도 6명, 어쩌면 7명 전원이 문재인 지지자일 겁니다. 문재인은 이들 배심원 앞에 당당히 버티고 앉아 “나를 봐서라도 무죄평결을 내려달라”는 ‘무언의 시위’를 벌였습니다.
미국 같았으면 문재인은 이날 경찰에 의해 법정 밖으로 끌려 나오는 수모를 당했을 겁니다.  그가 이날 보인 행동은, 마치 마피아 두목 재판에서 칼잽이 총잽이 부하들이 떼 지어 몰려와 배심원들에게 ‘보복’을 위협하며 무죄평결을 강요하는 꼴이었습니다. 명색이 변호사에다 대통령 후보인 문재인의 이날 일탈 행동을 본 많은 국민들은 “역시 대통령 감은 아닌 것 같다”는데 공감했을 겁니다.
안도현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는 도난당한 안중근 의사의 유묵(遺默)을 훔쳐 소장하고 있거나 도난에 관여돼 있다”는 취지의 글을 17차례나 트위터에 게시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이 유묵은 안 의사가 여순 감옥에 있을 때 쓴 글씨로 국가지정 문화재 보물 제569-4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아무런 증거 제시도 없이 야당의 선거대책위원장이 상대방인 여당 대선후보를 국가문화재나 훔치는 도둑이거나 이를 불법 소장하고 있는 장물아비로 몰아 부친 것은 지나쳤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의견이었습니다. 이날 재판부는 “배심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야 하지만 법관은 헌법과 법률, 직업적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며, 배심원 평결과 다른 판결을 내릴 수도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재판부는 배심원 평결 직후 내리게 돼있는 판결을 이례적으로 다음 달로 연기했습니다.


자칭 ‘국민시인’ 안도현의 위선


문재인 진영은 지난 대선 때 안도현을 ‘국민시인’으로 치켜세우며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영입했습니다. 나는 이 자칭 국민시인의 시를 유감스럽게도 한 편도 읽지 못했고, 그가 국민시인으로 불리는 것도 왠지 불편합니다. 야당 대선후보의 선대위원장이라는 어울리지 않은 감투를 얻어 쓰고, 시인의 그 여린 감성과 상상력을 상대후보에 대한 욕설-비방질에나 써먹은 ‘속물 정치시인’이 국민 시인이라니요. 문재인은 그제 기자들 앞에서 안도현을 “우리나라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을 3~4명을 꼽으라면 그 안에 드는 세계적인 시인”이라고 추켜세웠습니다. 노벨상위원회가 기겁을 할 노릇입니다.
안도현은 지난 7월 돌연 절필을 선언했습니다. “박근혜가 대통령인 나라에서는 시를 한편도 쓰지 않고 발표도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박근혜 이명박 따위가 대통령인 나라에서는 나는 차라리 욕먹는 종북세력이 되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그는 지난 2010년 “이명박 따위가 주는” 창작지원금 1000만원을 알뜰히 받아 챙겼습니다. 안도현은 우석대 교수 월급과 여러 권의 시집 인세수입으로, 시인 중에서는 최상위의 소득을 올리는 이른바 ‘강남 좌파’급 글쟁이입니다. 한국에서는 1000만원이 아니라 10만원도 없어 끼니조차 때우지 못하는 문인 1000여명이 매년 이 창작지원금을 받으러 몰려듭니다. 이 중 겨우 80여명이 지원금을 받는데, 신청자 중엔 이 창작지원금이 유일한 ‘목돈’인 전업 시인도 수두룩합니다. 안도현 정도의 위대한(?) 국민 시인이면서 노벨상 후보 급의 ‘세계적인’ 시인이라면 1000만원 쯤의 창작지원금은 마땅히 하루 끼니도 막막한 후배 시인들에게 양보했어야 옳았습니다.
11월 7일로 연기된 안도현 선거법 위반 국민참여재판 판결이 기다려집니다. 이 재판이 박근혜의 텃밭인 부산이나 대구에서 열렸다면 안도현은 당연히 유죄평결을 받았을 겁니다. 문재인의 안방 격인 전주에서 열렸기 때문에 ‘당연히’ 무죄평결이 났습니다. 누구 말 마따나 ‘메뚜기 마빡’만한 나라에서 동일한 사건이 지역에 따라 이렇게 정반대의 배심원 평결이 나온다는 것은 비극이자 희극입니다. 선거법 위반 재판은 참여재판에서 원천 배제하고, 다른 침여재판에서도 배심원의 선정기준과 방법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등의 배심원제도 개선이 시급합니다. 11월 7일 열리는 안도현 재판이 국민참여 ‘재판’이 될지 ‘개판’이 될지, 많은 양식 있는 국민들이 비상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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