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력취재]명예를 중시한다는 김종인의 뻔뻔스런 과거와 간교한 흔적들

■ 노태우 때는 실명제 반대…김영삼 때는 실명제 추진

■ 1991년 수서택지 특혜분양 때는 정부부처 압력행사

■ 1993년 동화은행 2억 1000만원 뇌물수재 2년 복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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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욕 불태우며 비굴하게
정권에 빌붙어 호사 누렸던

늙은 카멜레온의 ‘검은 초상화’

김종인“난 명예를 위해 산 사람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비례대표 파문으로 인해 자신의 업무를 거부하는 동안 기자들과 만나 한 말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파문이 자신에게 모욕을 주는 당 일각의 세력에서 비롯됐으며, 명예를 중시하는 자신에게 모욕감을 줬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명예란 단어를 여러 차례 사용하며 자존심을 세웠다. 그렇다면 과연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그의 주장에 걸맞게 명예로운 삶을 살아온 사람인가. 김 위원장의 이력을 따라가 보면 그렇게 말하기 어려운 행적들과 추악한 흔적들이 수두룩하다. 유명한 전두환 국보위 경력이나 동화은행 뇌물수수 사건은 물론이고 30년 전 신문을 보면 그가 했던 부끄러운 일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에 본지는 과거 김 위원장이 정치권 실세로 활동하던 시절의 신문기사를 찾아 그가 어떤 일들을 해서 언론의 비판을 받았는지 하나하나 들쳐봤다. 30년 세월동안 철저하게 권력에 빌붙어 호화호식하며 살았던 김종인의 부끄럽고 비겁한 시간들을 짚어 보았다.
리차드 윤(취재부기자)

김종인은 일단 며칠간의 잠적을 끝내고 3월 23일 당무에 복귀하며 ‘자신은 일생동안 명예를 중시하고 살아 온 사람이다’ 라며 비례대표 2번 배정과 관련한 비판에 대한 일성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2시 기자회견을 열고 “고민 끝에 일단 이 당에 남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국민 여러분께 지난 이틀간 중앙위 회의 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날 비대위원장직 사퇴불사를 외치며 강경한 자세를 보인데서 한 발 짝 물러선 모양이다. 하지만 김 대표의 이번 강수로 그동안 숨겨왔던 본인의 발톱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본인은 비례대표 14번을 거부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했던 일을 비판했지만, 과연 그가 본인을 김 전 대통령과 같은 반열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정통야당의 본원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부끄러운 과거 기록들 남아 있는데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경력 중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전두환 정권 국보위 참여를 했던 경력이고 다른 하나는 동화은행으로부터 억대의 뇌물을 받은 사건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전두환 정권 시절에 정계에 입문해 노무현 정권 빼고는 줄곧 정권의 편에 서서 권력을 향유했다. 과연 그의 카멜레온같은 화려한 이력은 과연 그가 명예롭게 살아왔다는 것을 정당화할 만한 자격이 있는 것일까.

▲ 1990년 3월 17일자 경향신문을 보면 당시 김종인 경제수석에 대해 ‘김종인 청와대 경제수석, 실명제 강력반대한 교수 출신’이란 설명을 달았다.

▲ 1990년 3월 17일자 경향신문을 보면 당시 김종인 경제수석에 대해 ‘김종인 청와대 경제수석, 실명제 강력반대한 교수 출신’이란 설명을 달았다.

이것뿐만 아니다. 본지가 과거 몇 십 년 간의 신문기사를 찾아본 결과 김 위원장은 국민 앞에 떳떳하기 어려운 과거 흔적들이 적지 않았다.
일단 그는 김영삼 정부의 경제수석으로 일하면서 금융실명제를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 노태우 정권에서는 금융실명제 도입을 반대하기도 했다. 군사정권에서 문민정부로 바뀌자 정책에 대한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바꾼 것이다. <선데이저널>이 입수한 1990년 3월 17일자 경향신문을 보면 당시 김종인 경제수석에 대해 ‘김종인 청와대 경제수석, 실명제 강력반대한 교수 출신’이란 설명을 달았다. 노태우 정권에서 실명제를 강력하게 반대했으나 정권이 바뀌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김영삼 정권에서 실명제를 추진한 것이다.
1991년에는 수서택지 특혜분양이 문제될 당시 정부부처에 전화를 걸어 더 이상 문제 삼지 말 것을 요구했다가 당시 신문들이 대서특필했던 사실도 <선데이저널> 취재 결과 밝혀졌다. 다음은 1991년 2월 7일 한겨레 보도 ‘청와대 김종인 수석 선처 압력’ 기사의 일부분이다.

<국회 건설위의 한 관계자는 6일 “지난해 12월 건설위 청원심사소위가 ‘수서지구 주택조합 건설택지공급요청’에 관한 청원을 심의할 때 김종인 청와대 경제수석이 전화를 걸어 잘 처리해주도록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건설위가 수서지구 주택조합의 청원을 지난해 12월 11일 청원심사 소위로부터 넘겨받아 전체회의에서 하루 만에 전격처리 했을 당시 일부 민자당 의원들이 원안대로 의결하는 데 대한 문제점을 거론하려 했으나 오용운 건설위원장이 회의에 앞선 간담회에서 “청와대 김종인 경제수석비서관이 선처를 당부해왔다”고 제지하는 바람에 문제점을 따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용운 건설위원장은 김종인 청와대 경제수석의 압력전화에 대해 부인했으나 건설위 관계자들은 청원심사 과정에서 청와대의 압력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기사내용대로라면 김 위원장이 당시 여당의원들의 비리를 덮기 위해 정부 부처에 전화를 건 셈이다.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으로서 상상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당장 김 위원장의 이런 행동은 그의 대항마로 새누리당에 영입된 강봉균 전 장관의 행보와 대조된다.

신군부 때 강봉균과 대조적인 길 걸어

특히 김 위원장 이력에 가장 큰 오점을 남긴 국보위 참석 이력에서 이런 면모가 드러난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을 피로 물들인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임시행정기구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기구를 꾸렸다. 위원장은 최규하 대통령이었지만 실제로는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전권을 휘둘렀다. 정권 장악을 위한 징검다리 성격의 국보위는 당시 정부와 학계의 유능한 인사들을 대거 차출했다. 경제기획원의 핵심보직인 예산정책과장을 맡고 있던 강봉균 전 의원도 합류를 지시받았다. 국보위에 발탁되는 것 자체가 출셋길이 보장된 터라 이를 마다할 관료는 없었다. 그러나 당시 강 과장은 “사표를 내는 한이 있어도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차출을 거부할 경우 바로 공직을 떠나야 했지만 강 전 의원의 능력을 아까워한 기획원은 강 전 의원 대신 다른 인물을 보냈다. 그러나 공무원도 아닌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였던 김종인 위원장은 국보위 재무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훈장까지 받았다. 이듬해 민정당 전국구를 시작으로 전국구를 연달아 두 번이나 지냈다. 강봉균 전 장관이 국보위 참여를 거부하는 사이 김 위원장이 이 자리를 꿰차고 들어가 그 이후 승승장구를 한 셈이다. 김 위원장은 2004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선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로 다시 국회에 입성하는 등 한 번도 어렵다는 비례대표를 정권을 넘나들면서 네 번이나 하는 초유의 기록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김 위원장은 1993년 당시 동화은행에서 2억 1000만원의 뇌물을 공여받은 혐의로 2년간 복역한 바 있다. 이에 대해 2011년 김 위원장에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영입되자 그 해 12월 28일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은 평화방송 라디오에서 당시 한나라당 비대위원인 “뇌물죄는 증거 잡기 어려운데 확연한 증거가 있었고 당시에 재벌 개혁을 이야기하시면서 다 쓰러져가는 은행에서 2억 1000만원을 받았다는 것은 정말 낯 뜨거운 범죄라는 얘기가 있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동화은행 뇌물사건으로 2년 복역

김 위원장은 자신의 이런 과거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국보위 참여 경력만 사과했을 뿐, 동화은행이 뇌물 수수 사건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해명 없이 정치를 계속하고 있다. 수서 비리 외압 의혹이나 금융실명제에 대한 말 바꾸기는 아직 외부에 알려지지도 않은 그의 부끄러운 과거들이다. 그는 이러한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그저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만 잘못됐다며 비판하고 있다.

▲ 1991년 2월 7일 한겨레 보도 ‘청와대 김종인 수석 선처 압력’ 기사 전문이다.

▲ 1991년 2월 7일 한겨레 보도 ‘청와대 김종인 수석 선처 압력’ 기사 전문이다.

김 대표가 자신의 비례대표 순번에 집착하는 이유는 어떠한 ‘사심’이 있다기보다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여전히 부족하다. 특히 김 대표가 “(13대 총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 떨어지고 국회의원이라도 해야겠는데 돈이 없어서 앞 번호를 못 받고 12번 받았는데 평민당 여러분이 안 찍어주면 김대중이 국회도 못 가니 표를 달라’고 했다”고 말한 것은 오히려 불난 여론에 기름을 끼얹었다. 자신의 비례대표 순번에 대한 생각을 전달하려고 행보를 달리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끌고 왔지만 오히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전직 대통령을 욕보인 결과만 낳았다는 얘기가 나왔다. 마치 자신을 김 전 대통령과 동급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런 김 위원장의 생각에 대해서는 반발이 터져 나올 수 밖에 없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이 김 대표의 발언에 대해 “비례대표 후순위를 받아 당 지지를 호소했던 DJ를 폄하하면서 ‘그런 식으로 정치하지 않겠다’고 한 말에 분노한다. DJ의 비례대표 공천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당의 지지율을 올려 정권교체를 하기 위한 정치행위였다”고 분을 터뜨린 것도 그런 의미에서 나온 것이다. 박 의원은 “자기가 정한 비례대표 순번이 관철이 안 된다고 ‘당의 정체성이 맞지 않는다, 노인네 취급을 한다’는 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서 정치를 배운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라고 김 위원장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비록 탈당한 박 의원의 발언이라 해도 그의 발언은 야당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60년 야권의 상징과 같은 인물을 ‘꼼수’의 정치가로 비난한 것은 참을 수 없는 모욕에 가깝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일단 김종인 체제로 총선을 치르기로 했지만, 김 위원장의 지금 성향으로 보면 오히려 새누리당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훨씬 높아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을 일컬어 여왕 리더십이라고 비판하지만 간교한 김종인 위원장의 독재습성은 박근혜 대통령 보다 더하면 더했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사위 이상균의 상습마약 복용과 허준영 전 경찰청장과의 문제로 납작 고개를 숙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최근 김종인의 과거행적 발언이 주목받는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풀이된다.
‘어용경제학자 출신 김종인에게 더 이상 지켜야할 명예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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