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조용기 목사 86년 영욕의 삶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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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이름 팔아 악행 일삼아…’ 육신과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지고

‘입술과 혀만 천국에…?’

목사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14일 오전(서울 시간) 85세를 일기로 소천하자 국내 언론들은“조용기 목사, 세계 최대 교회 이룬 목회자” ,“한국교회 큰 별‘조용기 목사’”, 등등으로 애도 했다. 조 목사는 1958년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설립한 천막교회를 지금의 교인 수 80만여명에 이르는 세계 최대 교회로 키워내며 선교의 신화를 쓴 인물이다. 특히 그는 미국 등 세계 선교에도 힘써 한때 브라질에서 부흥회 때는 150만명의 군중을 모으기도 하여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조 목사는 당회장직에서 물러난 후 사실상 막후에서 교회의 전권을 행사하고, 그의 가족들이 교회 관련 단체들을 통해 교회를 사유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그 중에는 수천억원에 이르는 교회 공금 유용과 횡령으로 실형으로 선고받기도 했으며, 젊은 시절 조 목사와 불륜관계에 있던 내연녀 정귀임(일명 파리의 나비부인)씨와의 치열한 법정공방전을 벌이기도 했으며 <선데이저널>이 특종 보도한 장남 조희준(전 국민일보 회장)과 일본인 처 유리꼬와의 추잡하고 추악한 이혼 비사와 국민일보 자금을 횡령 일본으로 도피했다가 체포되자 교회자금으로 50억원에 이르는 보석금을 납부하고 폴려나기도 했으며, LA지역의 베데스다 대학과 관련해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한국과 미국검찰의 조사를 받기도 하는 등 파란곡절의 영욕의 삶을 살았다. 과연 조용기 목사는 사후 천국으로 갔을까, 지옥으로 떨어졌을까하는 것이 세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특별취재반>

조용기 목사의 순복음교회의 역사는 한국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한강의 기적’과도 같은 역사를 닮았다. 조용기 목사는 그 기적에 뛰어들어 뜨겁게 삶을 불태웠던 한국 현대사의 인물이었고 한국 교회를 세계에 알린 인물이었다. 지금도 LA를 비롯해 미국내 여러 곳의 많은 신자들은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유튜브나 이메일로 통해 듣는 신자들이 많다. ‘시작은 작았으나 나중은 장대하리라’라는 성경 말씀처럼 작은 교회에서 시작해 단일 교회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로 성장시킨 조용기 목사가 14일 오전 86세의 일기로 소천 했다. 1936년 경남 울산에서 5남 4녀 중 맏이로 태어난 고인은 고교 2학년 때 폐결핵으로 죽음의 고비 를 넘기던 당시 병문안 온 누나의 친구를 통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1956년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해 같은 학교에서 만난 최자실(1915~89) 전도사와 함께 대조동 공동묘지 근처에서 신자 5명으로 공동 목회를 시작했다. 천막교회 신자가 불어나자 1962년 서울 서대문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전신인 순복음중앙 교회를 개척했다. 교인 수가 급증하자 1968년 당시 모래벌판이던 서울 여의도의 약 1만㎡(3천여평) 부지에 교회를 세워 1973년 입당했다. 조 목사는 그 사이 1965년 김성혜씨와 결혼해 3남을 두었다. 조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도 성장을 이어갔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79년 신자 수 10만명, 1981년 20만명, 1984년 40만명, 1992년 70만명을 잇따라 돌파하며 세계 최대 교회로 자리 매김 했다.

신화의 역사 이면에는 그늘진 어둠 역사도

3‘한강의 기적’ 처럼 그의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 단일교회’로 한국 선교의 신화의 새 역사를 기록했다. 1970년대부터는 최자실 목사(작고)가 설립한 LA나성순복음교회에서한 때 당회장도 맡으면서 미국 선교에도 힘썼다. 지금도 미국 곳곳에 그의 전도에 따른 순복음교회들이 성장하고 있다. 한겨레는 14일자에서 <천막에서 세계최대 교회로 ‘선교 신화…’ 교회 사유화 논란도>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과’ 부분을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 조 목사는 2008년 5월 당회장직에서 물러나 이후 원로목사로 활동했다. 상당수 대형교회 설립 자들이 담임직을 자식에게 세습해주는 상황에서 당회장을 이영훈 목사에게 물려줌으로써 호평을 받았다. 조 목사는 당회장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사실상 막후에서 교회의 전권을 행사하고, 가족들이 교회 관련 단체들을 통해 교회를 사유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1년엔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 29명이 조 목사가 당회장 시절 교회 돈을 빼돌려 장남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이 주식 투자에 수백억원을 사용하게 했다면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 지검에 고발했다. 교회에 131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된 조 목사는 결국 2017년 대법원 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형이 확정됐다. 조 목사는 지난 2011년 4월 26일 교회 사유화 논란이 일자 여의도순복음교회 강단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하기도 했다.

한편 고인의 정치적인 발언도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박정희 대통령의 삼선개헌 논란이 한창이던 1969년 9월 “기독교인은 성서의 가르침을 따라 날마다 그 나라의 수반인 대통령과 영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2011년엔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등과 함께 우파 성향의 기독교정당 결성을 추진했고,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초대형교회 목사들이 자신을 밀고 있다고 주장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처럼 고인은 세계 최대 교회를 일구며 교회 성장의 신화를 썼으나, 신학적 이단 시비와 정치적 시비를 일으키고, 교회 사유화와 비리로 유죄 판결을 받는 등 영욕의 삶을 동시에 살았다. 뉴스엔조이는 14일자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 별세>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세웠지만…교회 돈 배임, 일가 문제로 오명>이라며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 조용기 목사는 살아생전 ‘5중 복음’과 ‘3박자 축복’을 주창하며 목회해 왔고, 등록 교인 80만 명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일궜다.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장, <국민일보> 회장 등을 역임하며 등 교계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 목사는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여라 나라를 돌아다니며 부흥 성회를 인도했고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쳤다. 조 목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세우고 유명해졌지만, 이면에 그림자도 존재했다.

배임 탈세 횡령으로 실형 ‘법의 심판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거금을 들여 세운 학교와 기관 등에는 조 목사 일가가 포진했다. 영산조용기자선재단 조희준 사무국장(장남), <국민일보> 조민제 회장(차남), 한세대 조승제 이사 (삼남) 등이 대표적이다. 부인 고 김혜성 명예총장은 교회 돈으로 미국 베데스다대학교를 운영하기 도 했다. 조 목사 역시 재정 문제로 사회 법의 심판을 받기도 했다. 2013년 조 목사는 교회 돈 131억원 배임, 35억원 세금 포탈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재판 과정에서 탈세 혐의는 벗었지만, 배임은 유죄로 인정됐다. 2017년 대법원은 조 목사에게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확정했다. 또 조 목사는 퇴직 당시 교회에서 선교비 600억원, 퇴직금 200억원을 받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경향신문도 14일자에서 <조용기 여의도순복음 교회 원로목사 별세… 교회성장, 교회권력의 상징>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조 목사는 천막교회 때부터 ‘현실적 필요의 충족’을 목회 방향으로 잡았다. ‘삶의 문제 해결’이 신도 호응을 얻었다. 현세의 성공과 건강을 강조했다. 설교와 목회의 중심 주제는 ‘삼중축복’이었다. “영혼이 잘 되면, 범사가 잘 되고, 나아가서 육체가 건강해지는 ‘잘 됨’”을 강조했다. 영혼이 잘 되면 만사형통해 사업과 직장에서 성공하고, 육체의 질병도 치료되는 은총을 누린다고 설파했다.

‘교회 권력’, ‘보수 개신교’ 상징 인물’

교회의 양적 성장과 성공이 오명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한때 세습과 권력 다툼, 비리 문제로 시끄러웠다. 가족들이 교회 돈으로 세운 기관과 학교에서 주요 보직을 맡으면서 재정비리가 불거져 나오고 급기야 잘로들이 나서 ‘교회바로세우기 장로기도모임’을 결성 수천억원에 이르는 재정비리를 폭로했으며 이로인해 130억원대의 배임 횡령 협의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서고 받기도 했다. 그리고 2011년 5월 당시 조용기 원로목사가 국민일보 회장과 발행인, 국민문화재단 이사직 사표를 제출 했다. 부인 고 김성혜씨를 비롯해 가족들도 주요 직책에서 물러나면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사태’는 정리되는 듯했다. 이후 교회 신도 400여명이 조 목사의 가족들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라고 서명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또 다시 교회 장로 30여명이 2011년 9월 조 목사 등을 배임 등 혐의로 고발했다. 이듬해 ‘교회 의혹 진상조사 특별위원회’가 조 목사와 가족이 교회에 손해를 끼친 의혹이 일부 사실이고, 손해액은 355억원 이라고 발표했다. 대법원은 2017년 조 목사와 장남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에 대해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장례식2조용기 목사의 순복음교회의 역사는 한국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한강의 기적’과도 같은 역사를 닮았다. 조용기 목사는 그 기적에 뛰어들어 뜨겁게 삶을 불태웠던 한국 현대사의 인물이었고 한국 교회를 세계에 알린 인물이었다. 지금도 LA를 비롯해 미국내 여러 곳의 많은 신자들은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유튜브나 이메일로 통해 듣는 신자들이 많다. ‘시작은 작았으나 나중은 장대하리라’라는 성경 말씀처럼 작은 교회에서 시작해 단일 교회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로 성장시킨 조용기 목사가 14일 오전 86세의 일기로 소천 했다. 1936년 경남 울산에서 5남 4녀 중 맏이로 태어난 고인은 고교 2학년 때 폐결핵으로 죽음의 고비 를 넘기던 당시 병문안 온 누나의 친구를 통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1956년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해 같은 학교에서 만난 최자실(1915~89) 전도사와 함께 대조동 공동묘지 근처에서 신자 5명으로 공동 목회를 시작했다. 천막교회 신자가 불어나자 1962년 서울 서대문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전신인 순복음중앙 교회를 개척했다. 교인 수가 급증하자 1968년 당시 모래벌판이던 서울 여의도의 약 1만㎡(3천여평) 부지에 교회를 세워 1973년 입당했다. 조 목사는 그 사이 1965년 김성혜씨와 결혼해 3남을 두었다. 조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도 성장을 이어갔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79년 신자 수 10만명, 1981년 20만명, 1984년 40만명, 1992년 70만명을 잇따라 돌파하며 세계 최대 교회로 자리 매김 했다.

신화의 역사 이면에는 그늘진 어둠 역사도

‘한강의 기적’ 처럼 그의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 단일교회’로 한국 선교의 신화의 새 역사를 기록했다. 1970년대부터는 최자실 목사(작고)가 설립한 LA나성순복음교회에서한 때 당회장도 맡으면서 미국 선교에도 힘썼다. 지금도 미국 곳곳에 그의 전도에 따른 순복음교회들이 성장하고 있다. 한겨레는 14일자에서 <천막에서 세계최대 교회로 ‘선교 신화…’ 교회 사유화 논란도>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과’ 부분을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 조 목사는 2008년 5월 당회장직에서 물러나 이후 원로목사로 활동했다. 상당수 대형교회 설립 자들이 담임직을 자식에게 세습해주는 상황에서 당회장을 이영훈 목사에게 물려줌으로써 호평을 받았다. 조 목사는 당회장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사실상 막후에서 교회의 전권을 행사하고, 가족들이 교회 관련 단체들을 통해 교회를 사유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1년엔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 29명이 조 목사가 당회장 시절 교회 돈을 빼돌려 장남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이 주식 투자에 수백억원을 사용하게 했다면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 지검에 고발했다. 교회에 131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된 조 목사는 결국 2017년 대법원 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형이 확정됐다. 조 목사는 지난 2011년 4월 26일 교회 사유화 논란이 일자 여의도순복음교회 강단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하기도 했다.

한편 고인의 정치적인 발언도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박정희 대통령의 삼선개헌 논란이 한창이던 1969년 9월 “기독교인은 성서의 가르침을 따라 날마다 그 나라의 수반인 대통령과 영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2011년엔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등과 함께 우파 성향의 기독교정당 결성을 추진했고,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초대형교회 목사들이 자신을 밀고 있다고 주장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처럼 고인은 세계 최대 교회를 일구며 교회 성장의 신화를 썼으나, 신학적 이단 시비와 정치적 시비를 일으키고, 교회 사유화와 비리로 유죄 판결을 받는 등 영욕의 삶을 동시에 살았다. 뉴스엔조이는 14일자에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 별세>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세웠지만…교회 돈 배임, 일가 문제로 오명>이라며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 조용기 목사는 살아생전 ‘5중 복음’과 ‘3박자 축복’을 주창하며 목회해 왔고, 등록 교인 80만 명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일궜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장, <국민일보> 회장 등을 역임하며 등 교계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 목사는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여라 나라를 돌아다니며 부흥 성회를 인도했고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쳤다. 조 목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세우고 유명해졌지만, 이면에 그림자도 존재했다.

배임 탈세 횡령으로 실형 ‘법의 심판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거금을 들여 세운 학교와 기관 등에는 조 목사 일가가 포진했다. 영산조용기자선재단 조희준 사무국장(장남), <국민일보> 조민제 회장(차남), 한세대 조승제 이사 (삼남) 등이 대표적이다. 부인 고 김혜성 명예총장은 교회 돈으로 미국 베데스다대학교를 운영하기 도 했다. 조 목사 역시 재정 문제로 사회 법의 심판을 받기도 했다. 2013년 조 목사는 교회 돈 131억원 배임, 35억원 세금 포탈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재판 과정에서 탈세 혐의는 벗었지만, 배임은 유죄로 인정됐다. 2017년 대법원은 조 목사에게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확정했다. 또 조 목사는 퇴직 당시 교회에서 선교비 600억원, 퇴직금 200억원을 받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경향신문도 14일자에서 <조용기 여의도순복음 교회 원로목사 별세… 교회성장, 교회권력의 상징>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조 목사는 천막교회 때부터 ‘현실적 필요의 충족’을 목회 방향으로 잡았다. ‘삶의 문제 해결’이 신도 호응을 얻었다. 현세의 성공과 건강을 강조했다. 설교와 목회의 중심 주제는 ‘삼중축복’이었다. “영혼이 잘 되면, 범사가 잘 되고, 나아가서 육체가 건강해지는 ‘잘 됨’”을 강조했다. 영혼이 잘 되면 만사형통해 사업과 직장에서 성공하고, 육체의 질병도 치료되는 은총을 누린다고 설파했다.

‘교회 권력’, ‘보수 개신교’ 상징 인물’

교회의 양적 성장과 성공이 오명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한때 세습과 권력 다툼, 비리 문제로 시끄러웠다. 가족들이 교회 돈으로 세운 기관과 학교에서 주요 보직을 맡으면서 재정비리가 불거져 나오고 급기야 잘로들이 나서 ‘교회바로세우기 장로기도모임’을 결성 수천억원에 이르는 재정비리를 폭로했으며 이로인해 130억원대의 배임 횡령 협의로 2년 6개월의 실형을 서고 받기도 했다. 그리고 2011년 5월 당시 조용기 원로목사가 국민일보 회장과 발행인, 국민문화재단 이사직 사표를 제출 했다. 부인 고 김성혜씨를 비롯해 가족들도 주요 직책에서 물러나면서 ‘여의도순복음교회 사태’는 정리되는 듯했다. 이후 교회 신도 400여명이 조 목사의 가족들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라고 서명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또 다시 교회 장로 30여명이 2011년 9월 조 목사 등을 배임 등 혐의로 고발했다. 이듬해 ‘교회 의혹 진상조사 특별위원회’가 조 목사와 가족이 교회에 손해를 끼친 의혹이 일부 사실이고, 손해액은 355억원 이라고 발표했다. 대법원은 2017년 조 목사와 장남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에 대해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용기 목사 관련한 <선데이저널> 보도는 본지 웹사이트에서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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