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선생만 있고 애국선열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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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축사… 입에 침이 마르도록 도산선생만 칭송
미주 애국 선열들… “지하에서 통곡한다”

도산 선생만 있고 애국선열은 없나

대한인국민회관은 조국이 일본 식민지 압제하에 있을 당시 미주 한인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이 역사적인 회관은 조국이 독립된 후에는 통일 조국을 위한 협력의 기지였다. 그 후 새 이민의 시대가 오면서 국민회의 시대적 사명이 끝나 해산하면서 역사의 장소로 남게 됐다.

환영축사… 입에 침이 마르도록 도산선생만 칭송
미주 애국 선열들… “지하에서 통곡한다”

도산 선생만 있고 애국선열은 없나

대한인국민회관은 조국이 일본 식민지 압제하에 있을 당시 미주 한인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
이 역사적인 회관은 조국이 독립된 후에는 통일 조국을 위한 협력의 기지였다. 그 후 새 이민의 시대가 오면서 국민회의 시대적 사명이 끝나 해산하면서 역사의 장소로 남게 됐다. 그리고 이 회관은 초기이민 당시의 귀중한 유산이 남겨진 채 소유권은 회관과 한 울타리에 있는 초기 이민자들의 신앙 중심지인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로 넘겨졌다. 70년대부터 이 회관은 법정소송에 휘말리면서 관리가 부실해져 황폐해갔다. 이 회관은 1991년 10월 LA시 역사문화유적지로 지정됐음에도 불구하고 보존에 많은 문제점을 지니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최근 ‘국민회관 복원위원회’가 구성되어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복원위원회(회장 홍명기)는 복원하는데 그치지 않고 회관 운영권까지 탐을 내는 바람에 한인사회에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 놓았다. 이 같은 이유로 역사적인 복원기념행사는 선조들을 기리는 행사가 되지 못하고 부끄러운 추태의 행사로 추락하고 말았다.

[본보 특별취재반]

국민회관 복원… 문은 열었지만 이념·전통·역사의식 상실

국민회관 복원 아쉬움 속에 재개관

지난 9일 개최된 국민회관 복원기념식에 대해 타운에서 말들이 많다. 이날 행사장에는 150여명이 참석했다. 마땅히 참석해야 할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복원위원회 관계자들은 “국민회관이 후세들에게 뿌리교육을 알려주는 기념관”이라고 강조했으나 이날 행사장에는 2세들의 모습은 “가물에 콩나듯”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마땅히 1.5세나 2세 단체들과 사전에 협력을 했어야 했다. 또 국민회와 관련이 있는 단체 인사들과 그의 후손들이나 초기 이민세대들의 단체들과 후손들 그리고 독립운동 유족 단체들도 마땅히 초청됐어야 했다. 이들을 초청치 않고 어떻게 복원 기념식을 치루었는가?

이날 환영사, 인사 그리고 축사들을 행한 10여명의 인사들도 하나같이 ‘도산 안창호’에 대해서만 칭송을 하고 국민회 이름아래 활동한 수많은 애국선열들을 거명하지도 않았다.

이민100주년 남가주 기념사업회의 윤병욱 회장은 축사에서 ‘도산 예찬론’을 펄쳤는데 “도산이 만약 애브라햄 링컨이 통치할 수 있는 미국 땅에서 태어났으면 링컨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 됐을 것”이라고 인용했다. 이날 축사순서에 나온 재외동포재단 이광규 이사장도 “…도산 선생이 앞날을 예견한 듯 이 자리에 회관을 세우셨다…”고 설명했는데 사실 국민회관이 세워진 1938년 4월 17일에는 도산 선생이 순국(1938년 3월 10일)한 후 1개월이 지난 때였다.

이날 행사 내용도 국민회의 이념이나 업적을 기리기 보다는 복원위원회의 사업을 추켜 세우는데 더 열성들이었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복원위원회는 국민회관의 운영권을 갖기 위한 명분에만 급급했다. 그들은 “제2차 복원사업에 들어간다”고만 밝혔다. 이말뜻은 계속 자신들이 국민회관에 대해서 영향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국민회관 복원기념식이 열렸지만 외관상 복원이지 가장 중요한 국민회의 이념과 전통은 복원되지 못했다.
“복원”의 진정한 의미는 원상대로의 회복을 말하는 것이다. 무엇이 복원됐는가. 귀중한 국민회의 사료들은 계속 썩어 나가고 있는데 건물만 개축했다고 복원이 되는가? 복원위원회 자체가 역사의식이 부족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복원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잊혀진 선조들

복원기념식을 위한 준비와 식순 진행 절차에도 하자가 많았다. 이날 주차장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태극기는 단상 오른쪽에 위치했는데, ‘리본 커틴’시에는 반대로 왼쪽에 자리잡게 했다. 미 주류사회에서 마크 리들리-토마스 주 하원의원이 참석했는데 아무도 두 의원을 안내하지도 않았다.
나중 사회자가 이를 발견하고 인사는 시켰는데 자리도 없어 뒤에 서서 식을 지켜보기도 했다. 식순에는 LA시장를 비롯한 주류사회 귀빈들의 순서가 있으나 참석치 않았다. 특히 회관을 유적지로 지정한 LA시 문화국 관계자들이나 역사회 등에서도 참석치 않아 북원위원회의 준비가 얼마나 소홀했는가를 보여주었다.

또 이날 마이크앞에서 말하는 인사들의 말에서도 잘못된 역사관들이 나타났다.사회자는 소개말에서 “국민회관 기념관이 미주한인 1백년 (“….Korean National Memorial Hall represents 100 years Korean American presence in the US….”)을 대표하는 유적이라고 설명했는데 이는 잘못된 설명이다. 미주에서 한인의 이민역사는 100년을 훨씬 넘는다. 미국인들이나 2세들이 들으면 미국 땅에 한인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이 100년 밖에 안 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을 역사적인 국민회관 복원식 사회를 맡긴 것도 복원위원회측의 실수이다.
이날 복원위원회의 홍명기 회장도 환영사에서 “…구한말인 1903년, 사탕수수밭의 102명의 사탕수수밭 농부로 시작된 미주한인 이민사회는…”라고 말했다. 이민사회는 1903년 이전에 이미 시작됐다. 그 자신 리버사이드 도산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는데 도산 안창호가 1902년에 이미 미국대륙에 도착해 애국활동을 벌였다는 사실을 망각했다.

사탕수수밭에 처음 도착한 한인은 102명이 아니라 86명이었다. 이날 홍 회장은 한국말 환영사에 이어 영어로 환영사를 하면서 복원위원회 위원들의 이름을 모두 낭독해 복원위원회를 강조하기도 했다. 사회자도 덩달아 참석자들에게 복원위원회 위원들을 위해 박수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진정 박수를 보내야 할 대상은 국민회관을 건립한 선조들과 그 회관에서 애국활동한 선조들을 다시 오늘날 기억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복원이 아닌가?

이날 식에는 대한민국 정부의 보훈처장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국회에서 예산심의가 진행중이라 나오지 못했다는 설명이 있었다. 한국정부 인사로는 이윤복 LA총영사와 보훈처의 단장급이 고작이었다.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의 뿌리인 상하이 임시정부 태동의 주역인 대한인 국민회관의 복원기념식에 부시 미국대통령은 축하 메시지를 보냈으나 노무현 정부는 잊어버렸다. 그리고도 “참여정부”라고 할 수 있는가.

흥사단의 수치

최근 국민회관 운영권 문제로 마찰을 빚고 있는 흥사단의 백영중 미주위원장은 축사 순서에 이르자, 사회자는 “아주 짧지만 좋은 말씀을 들어 보겠다”고 요청 했으나 정작 그는 길고 가시돋친 말을 장황하게 늘어 놓아 참석자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백 위원장은 “프로그램에 나온 축사문과 내가 하는 말은 다소 틀림을 양해 해달라”고 전제한 다음 국민회관과 흥사단과의 밀접한 관계를 거론하면서 흥사단이 회관 운영문제와 관련해 엉뚱한 오해를 받고 있다고 해명성 발언을 이어 나갔다. 또 흥사단이 복원사업에 참여치 못한 것을 지적, 자신의 뜻이 왜곡됐음을 사과하였다.

한편 이와 관련해 “일부의 편견과 무지가 저를 누르고 있다”면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는데, 과연 그런 불만을 복원기념식에서 쏟아 내야만 했었는지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과연 도산의 정신인가?’라는 자조섞인 말도 나오기도 하였다.

이날 인사말씀 순서에 나온 하기환 LA한인회장은 “…우선 이름을 보면 ‘대한인국민회기념관’이라고 되어 있는데 처음에는 “대한민국이란 글자가 활자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한참 생각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소위 LA한인회장의 직책을 지닌 사람이 ‘대한인국민회’ 존재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LA한인사회의 수치이다. 그는 또 자신이 젊기 때문에 국민회의 역사를 잘 모른다고 실토했다.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다.

미주한인회 총연합회의 최병근 회장도 인사말에서 “미주 땅에서 한인들의 영욕으로 점철된 세월이 100년이 흘렀다…”고 말했다. 총련회장 자신도 미주의 한인역사가 고작 100년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이날 최 회장은 미주 땅의 동포인구를 250만으로 부풀리기도 했다.

한편 LA평통의 金광남 회장은 “…너무 더운 것 같고 너무 지루한 것 같아 간단히 말하겠다”면서 “여기 독립기념관 복원사업에 관계하신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회관’과 ‘독립기념관’을 혼동하는 실수를 범했다. 이날 원래 식순에는 LA평통회장의 인사 순서는 없었다. 즉석에서 집어 넣은 것으로 보인다. 다른 많은 단체장들을 제외하고 유독 LA평통회장을 우대한 것은 이해할 수가 없는 처사이다.

평통이 한인사회의 대표단체인가? 국민회관 복원기념식에 과연 평통이란 단체가 다른 단체보다 더 깊은 관련이 있는가? 당시 그 자리에는 국민회의 서기를 맡았던 인사도 참석했으며 독립투사유족회장 등 독립운동에 관련된 단체 인사들도 있었으나 무식한 주관측의 눈에는 제대로 보일리가 없었다. 이 광경을 본 한 참석자는 “홍 회장이 LA평통회장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한마디를 던졌다.

마지막으로 축사순서에 나온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의 이송원 목사는 교회 자체도 100주년기념관을 별도로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도 최근 논쟁이 되고있는 국민회관의 사료문제에는 일체 언급이 없었다. 이 교회는 지난번 국민회관 다락방에서 발견된 사료에 대해 보관에 무책임한 면을 노정시켰다. 교회측은 사료가 발견된 후 한인사회의 공개요청에 대해 “사료관리”문제를 이유로 허가치 않아 왔다. 그러나 교회측은 지난 8일 AP기자의 요청에 사료 일부를 공개했다. 이 같은 행위는 아주 위험한 조치였다. 한인사회 요구를 거절했던 교회측이 미국 주류언론에는 함부로 공개한 처사는 ‘사료보존’을 억망으로 하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복원위원회의 흑심

2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행사에 지친 참석자 앞에 등단한 잔 서 사무국장은 “복원위원회는 2차 공사에 들어 가겠다”면서 복원위원회가 운영위원회처럼 계속 행세할 뜻을 표명했다. 그리고 그는 기부금 낸 사람들을 일일히 거명했다. 그는 “겔릭호에서부터 몽골리아 호로 하와이에 이민 온 7200명을 기념해 국민회관 기념관에 모금할 사람도 7200명까지 받겠다”며 계속 기금 모금에만 강조했다.

이번의 기념식을 맞아 복원위원회가 발간한 기념책자가 국민회 정신보다는 복원위원회를 과시하는 책자로 만들어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책자를 받아 본 한 참석자는 “역사적인 ‘대한인국민회’나 ‘국민회관’에 대한 사항 보다는 복원위원회 선전물이나 다름 없다”고 지적하면서 불만을 나타냈다.

44페이지 짜리 기념식 책자는 그 내용부터 정말로 허술했다. 국민회관을 복원하면서 기념책자에는 국민회에 대한 내용은 한글 1페이지와 이를 영어로 번역한 1페이지가 고작이다. 그리고 전체 페이지의 약 50% 정도는 홍명기 복원위원회 회장 환영사를 비롯해 기관 단체장 등 14명의 인사와 축사들로 채워졌다.

또 복원위원회에 관한 사항도 6 페이지나 됐다. 즉 복원위원회 임원 명단과 지난 2년 동안 복원위원회 연혁을 5 페이지에 걸쳐 수록했다. 사진화보가 2페이지 나머지는 광고 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본보 지난호(12월 7일자)에서 지적한 ‘국민회관기념사업회’라는 비영리단체등록의 의혹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국민회관기념사업회는 사무실을 국민회관에 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홍명기 회장의 개인회사로 주소와 전화번호를 두고 있다. 국민회관과 관련된 모금관리를 자신들이 계속 장악하겠다는 속내를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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