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범 칼럼 – “국가정보원의 과거사 진상규명… 저의가 의심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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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바꿈하려면 가까운 과거부터 밝혀야

지금 한국에선 이런일이…

노정권 비리·DJ정권 의혹사건부터 진상규명 필요
야당 파괴목적 안기부의 98년 북한인 납치사건도

낡은 정치보복 최근까지… 순수 정보기관으로 거듭나야
과거사 규명 제도 개혁으로 이어질때 진정한 의미 담아


국가정보원이 과거사 진상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를 구성하고 최근에는 세 명의 차장을 바꾸었다.

변신을 꾀하려는 안간힘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낡은 버릇과 틀은 그대로 둔 채 눈속임을 하고 오늘과 최근의 문제는 덮어두고 시선을 먼 과거로 돌리려는 저의가 엿보이기 때문에 곱게 봐줄 일만은 아니다.

근본부터 다시 세워야

대통령은 최근 한미관계에 대한 가벼운 발언으로 또 한번 망신을 샀다. 부시 미국 대통령이 개성공단에 같이 가자고 하는 자신의 제안에 동의했다고 자랑을 했는데 백악관 대변인이 곧바로 그런 일 없었다고 부인한 것이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의 정보기관이다. 개성공단에 대한 미국의 속내가 무엇인지 파악해서 대통령이 잘 대처하도록 도왔어야 했다.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은 벽에 부닥칠 가능성이 크고 미국으로서는 적극성을 띨 수 없다는 것쯤은 파악해서 보고했어야 한다. 대통령의 실수에 대해 그러므로 국정원은 큰 책임을 느껴야 한다.

정보기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물론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도 얼마 전에 정보기관 개혁에 착수했다. 그런데 한반도 주변정세가 긴박해지면서 제대로 국제정보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기관의 필요성은 한국에도 절실한 형편이다. 따라서 차장들을 바꾸는 인사 정도가 아니라 기관의 해체와 재조직을 포함해 전면적인 점검을 하여야 할 때다.

현재와 DJ 5년의 문제부터


『과거사 진상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를 만들어 의욕적으로 나섰지만 이것도 앞뒤가 바뀐 것이다. 진실로 탈바꿈을 하겠다면 먼 과거보다 현재, 가까운 과거의 문제부터 진상을 밝히는 것이 순서이기 때문이다.

DJ 납치사건이나 민청학련 사건 등 밝혀질 만큼 밝혀진 사건에도 아마 더 조사해볼 부분이 남아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사 진상 규명이란 구실로 이런 사건들이나 다시 조사하겠다고 나선다면 당시 수사 관련자들을 벌 주어 한풀이 카타르시스를 꾀하거나 정치적 목적으로 재탕한다는 의심을 살 우려가 있다.

먼 과거사보다도 현재의 난맥상은 없는지 먼저 철저히 조사하고 현직에 있는 사람들의 책임도 과감히 물어야 한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DJ정권이 출범한 직후인 1998년 4월에 국정원은 입맛에 맞지 않는 직원들을 대기발령하고 이어 직권면직, 명예퇴직 종용 등으로 무더기로 해직했다. 모두 600여명에 달하는 인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중 60명 가까이 소송을 제기해 34 명은 승소가 확정되었고 22명은 항소 또는 최종심에 가있다는 것이다.

이런 곡절 끝에 일단 복직을 한 요원 중 5명을 국정원은 계급정년을 이유로 1년도 되지 않아 다시 퇴직시켰는데 이들은 해직 당한 기간은 정년을 계산할 때 빼야 한다고 하며 소송을 내서 2004년에 들어 1심에서 승소를 했다.

해직, 승소, 복직, 계급정년 퇴직, 승소로 이어진 드라마 같은 무리한 인사물의는 어떤 경위로 추진되었고 대상자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지 조사하고 또 그로 말미암아 빚어진 소송비용 따위를 예산으로 댔을 테니 그런 낭비에 대한 책임 소재도 밝혀야 하지 않겠는가? 무더기 처형이나 해직을 하다 보면 사감으로 희생당하거나 억울한 이가 적지 않은 법이니 말이다.

작년에 월간조선이 심층 취재를 해 보도한 “DJ의 노벨상 수상 로비와 국정원의 역할”에 대한 의혹도 그렇다. 국정원은 과연 결백한가 밝혀야 할 때이다. 입 닫고 있다고 세상의 뒷말이 가라앉지는 않는 것이다.

DJ정권 5년 동안 국정원이나 직원들이 관련된 물의는 이것만이 아니다. 인사에 있어 지역간의 균형을 잡는답시고 무리를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고 부패관련 물의에다 인권을 침해하는 과거의 타성을 버리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었다. 문제는 현재의 원장이 취임하고 기관을 쇄신하기 위해 이런 것들을 조사하고 결과를 은폐하지 않고 시정했는가 하는 것이다.

98년의 북한인 최인수 납치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소속 ‘무역일꾼’ 최인수를 DJ 정권이 중국에서 납치해 왔던 사건도 조사해야 옳다. 이 사건은 1998년 7월에 일어났는데 당시의 야당의 핵심과 필자는 그 해 가을에 사건 내용을 파악하고 공개방안을 논의한 일이 있었다.

신동아 2001년 8월과 12월호는 이 사건이 야당의 이회창 후보가 관련되었다고 안기부가 몰아댄 이른바 총풍 사건을 입증하기 위해 최 씨를 납치해 온 것이라고 보도했다. 야당 총재를 제거하기 위해 국정원의 전신이 국제납치사건까지 일으켰다는 것이다. 최 씨는 모 항공사 승무원 복장을 입혀 출입국 기록도 없이 납치해 왔는데 이 사건으로 항공사 지점장으로 위장 투입되었던 원 모 씨가 중국에 구금되기도 했다.

최인수는 그 해 7월 16일 밤 안기부에서 고문을 당하고 안가(安家)를 탈출하다 다리가 부러졌다. 그러나 택시를 타고 한나라당 당사에 갔지만 들어갈 수 없자 중앙일보 본사로 갔다. 여기서 다시 안기부에 장악된 최 씨는 6개월 뒤에 안기부에 의해 중국으로 밀송되었다가 북한으로 송환되어 생사가 불명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국정원은 이 사건을 수습하느라고 중국과 교섭하면서 중국 내 정보망의 상당부분을 잃었다고 알려졌는데, 당시에 야당이 이 사건을 크게 쟁점화했더라면 대통령 선거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런 야당파괴공작 사건이야말로 밝혀야 할 과거사이다.

노 정권도 정치 보복

1998년 12월 말에 공개되어 국회 529호실 사건으로 알려진 안기부의 정치사찰의혹 사건이나 1999년 10월에 비판 언론을 손보려고 했다는 비난을 받았던 언론문건 사건도 정치공방 끝에 진상이 모두 밝혀지지 않았다.

국정원 요원이 국회 529호실을 무단으로 사용하며 59건의 정치권 관련 첩보보고서를 작성한 것이 밝혀졌는데도 도리어 사건을 맨 먼저 공론화한 필자를 5년이 지나 국정원 명예훼손으로 기소했다. 진상규명이 아니라 도리어 정치보복에 나선 것이다.

작년 12월 3일 4차 공판을 앞두고 국정원 측 고소인 최 모 씨는 선서증언을 피하려고 고소 취소장을 냈다. 그러자 재판부는 공소장에 피해자로 열거된 국정원에 처벌을 원하는지 아닌지를 밝히라고 사실조회서를 보냈다. 5차 공판일인 1월 12일을 앞두고 국정원은 “의견이 없음”이라고 써냈다.

“의견이 없음”은 국가기관이 무엇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쓴다는 것을 필자는 군사독재 하에서 경험한 바 있다. 1983년 초에 시국사건 복역자라고 필자에게 여권발급을 거부하자 국제적 물의가 일었는데 계엄군사재판 당국이 의견서를 내게 하여 재심의 명분으로 삼아 단수여권을 발급했을 때의 일이다.

그 때 군 검찰은 공문에”여권발급에 대하여 의견이 없음”이라고 썼다. 그러나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논할 수 없다는 반의사 불벌죄인 명예훼손 형사 기소 사건에서 국정원이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고 의견이 없다고 한 것은 한심한 코미디이다.

이를 보면 증거도 없이 필자를 기소하고 짓밟는 국정원의 횡포와 인권유린은 옛날 버릇 그대로이다. 검찰이 공소장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연기를 신청해 재판은 1월 26일로 미루어졌는데 이런 현재진행 중인 권력남용부터 조사해야 하지 않을까?

유형별 접근을 권한다

과거사 진상규명이 국정원의 무능과 일탈행동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는 우민정책으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주인 격인 독재자는 용서하고 종업원 격인 하급 공직자나 공격하고 제물 삼는 소시민적 가학취미로 악용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제도개혁을 목표로 접근하면 좋을 것이다.
예컨대 민청학련 사건만 떼어내 조사하기 보다는 1970년대의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들이 어떻게 무슨 목적으로 조작되었고 원작자가 누구였는지 밝히는 것이다.

1971년의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그 뒤의 전남대생 내란음모사건, 고대 한맥회, 한사회 내란음모사건, 민청학련 내란음모사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은 7,80년대에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고문으로 조작한 사건들이었다.

이 사건들에서 국민의 눈을 속이고 관련자들의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몰려고 북한과 관계도 없는 학생들에게 국가보안법이 악용된 것도 한결같다. 혁명정부를 세우려 했다고 조작하고 국가보안법의 반국가단체 결성으로 몰았던 것이다.

이렇게 유형별로 밝히고 제도개혁으로 귀결되는 진상규명은 의미가 있다. 예컨대 배심원재판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해서 상식에 어긋나는 정치보복과 공권력 남용을 막을 수 있게 한다든지, 민간법원을 설치할 수 없는 지역과 상황에서만 군사재판을 허용한다든지 하는 제도개혁을 논의하는 단초를 만든다면 건설적일 것이다.

아울러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파리 실종사건과 비밀처형의혹 같이 잊혀진 사건도 조사해야 할 것이다. 이런 진상규명을 계기로 차라리 원죄가 많은 국정원을 해체하고 수사권을 분리하고 순수 대외 대북 정보기관을 창설하는 계기로 최근의 문제부터 과거까지 철저히 파헤치겠다면 적극적으로 권할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국정원장이나 차장들이 그런 큰일을 해낼 인물들인지 믿음이 가지 않으니 문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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