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콘 핵심 AEI 잡지 “중국 견제위해 강한 일본 키워야” 최근 한국을 비롯, 일본·중국 등 아시아 6개국을 순방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노골적으로 ‘일본 띄우기’를 했다. 그는 독도 문제로 발칵 뒤집힌 한국에 와서 우리 국민들의 감정은 고려하지않고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공개적으로 찬성했다. 다음은 그의 글을 요약 일정 기간의 쇠퇴를 거친 뒤 테러와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일 양국의 안보 동맹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 또 이 활기찬 동맹은 군사 강국으로서 중국의 부상에 대처할 수 있는 의미있는 수단이다. 이 동맹은 안보 정책의 협력, 미사일 방어체제 협력, 그리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자신의 이해를 확증하려는 일본의 노력에 대한 미국의 지지 등을 포함한다. 미국 정책가들은 이런 발전을 환영해야만 하며 강한 우방국으로서 일본의 등장을 계속 지지해야 한다.(블러멘털의 요약글) |
표류했던 10년 냉전이 끝난 뒤 미·일 동맹 관계는 길을 잃고 헤맸다. 1991년 걸프전쟁 때 일본이 재정적인 지원 외에 다른 지원을 망설이고 1993~94년 북핵 위기 때 정보 및 병참 지원을 요청한 미국의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미·일 관계는 절망 상태로 빠져들었다. 새 진로의 설정 : 9·11과 그 이후 그러나 2001년 4월 총리에 취임한 뒤 얼마 안돼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의 국제무대에서의 정당한 역할은 미·일 관계의 밀접한 안보 협력을 통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
미일 동맹과 중국 중국의 힘이 강화되면서 일본은 중국의 대만 침공 같은 지역 분쟁에 대응해 법적·정치적 체계를 구축했다. 특히 MD를 통해 미·일 군사 통합을 강화시켰다. 대 중국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고이즈미는 대중적 지지를 구축하고 중국의 압력을 견뎌내야 했다. 고이즈미는 일본의 대중국 정책의 아킬레스 건인 ‘역사카드’를 오히려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이용했다. 정치적 함의 현재 동아시아는 20세기에 들어설 때 유럽을 휩쓸었던과 비슷한 전략적 변화를 겪고 있다. 강대국들은 영향력 확보를 위해 경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