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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전대통령 (오른편)과 박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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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대검 중수부는 대선자금을 수사했던 그 멤버였다. 안대희 중수부장과 문효남 수사기획관, 남기춘·유재만 중수 과장들은 모두 “나오면 무조건 수사한다”는 입장이었다. 특검 수사 때 꼬리가 잡힌 현대 비자금은 검찰에서 캐면 캘수록 나오는 ‘고구마 줄기’였다고 한다. 정 전 회장으로선 수사가 어디까지 번질 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대북사업과 회사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특히 대북사업은 정 전 회장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유업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정 전 회장은 유서에서도 측근인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에게 대북사업을 부탁했다. 김씨는 “회장님이 모든 걸 안고 갔다”며 통곡했다. 정 전 회장의 사망 이후, 검찰은 현대 비자금과 관련된 모든 수사를 사실상 접었고, 현대그룹과 대북사업은 기사회생했다. 정 전 회장이 마지막 검찰 조사(8월 2일)에서 천기를 누설했기 때문에 죽음으로 몰렸다는 의혹도 있었다. 이와 관련, 당시 수사팀은 “천기 운운할 정도의 진술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박지원씨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할 수 있는 진술을 했었다”고 했다. 그 진술을 조서로 남겼으면 박씨가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왜 안 남겼냐”는 질문에 검찰 관계자는 “정식 조사를 끝내고 귀가하기 전에 잠시 쉬면서 한 말이라 다음 소환 때 조서를 받으려 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누가 죽을 줄 상상이나 했겠느냐”고 되물었다. 정 전 회장은 박지원씨에 대해 상당히 고마워했다고 한다. 2000년 현대건설이 대북송금 등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을 때 정부가 ‘회사채 신속인수제’ 등으로 현대를 도운 배경에는 박씨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박씨가 자신의 진술 때문에 구속됐다는 사실이 정 전 회장을 괴롭혔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 관계자는 “정 전 회장은 자살로 몰렸다고 본다”며 “그 이유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가지, 아니 수십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정 전 회장의 진술 직후 3000만달러 ‘송금 영수증’을 검찰에 보내겠다며 미국으로 출국한 김충식씨의 행적도 의문으로 남았다. 2003년 7월 31일 미국으로 출국한 김씨는 도착 후 팩스로 영수증을 검찰에 보내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김씨가 약속한 8월 4일 오전 9시10분쯤(한국시각)에서 몇 시간 전에 정 전 회장은 주검으로 발견됐고, 김씨는 이후 영수증을 보내지 않고 행방을 감췄다. 김씨는 2004년 11월 비밀리에 귀국, 검찰에서 3000만달러 부분을 조사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김씨가 송금영수증을 가져왔는지와, 영수증에 기재된 수취인(3000만달러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검찰은 입을 다물고 있다. 김씨는 검찰 조사를 받은 뒤 그 해 12월 다시 출국해 미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진짜 수취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한 검찰 관계자는 “현대 비자금이 실세들에게 전달된 시점을 눈여겨보라”고 말했다. 150억원이 박지원씨에게 전달됐다는 시점은 2000년 4~5월 무렵이고, 200억원이 권노갑씨에게 건너간 시점은 이보다 한 달 앞선 3~4월이다. 3000만달러는 이 두 시점보다도 앞선 같은 해 2월 26일이다. 액수나 송금 시기 면에서 박씨나 권씨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송금 순서와 3000만달러를 계좌추적이 어려운 스위스연방은행 계좌로 보냈다는 점을 상기하면 수취인이 누구인지를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란 얘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