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현대판 성노예였다” “인생 파멸의여행이었다” (인터넷 통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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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현지 업주 ‘뒷거래’…성매매 업주가 말하는 해외행 참혹한 실상은 무엇인가. 최근 한국인들의 해외 원정 성매매가 국제적인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성을 사기 위한 한국 남성들의 해외 원정 성매매는 말할 것도 없다. 외국 현지에서 성매매를 하다가 적발되는 한국 여성들의 사례도 심심찮게 알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성매매에 관한 한 ‘베스트 코리아’란 우스갯소리까지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다. ‘성매매 수출국’이란 국제적 망신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게다가 돈을 벌기 위해 해외행을 택한 한국 성매매 여성들의 참혹한 실상이 알려지면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성매매를 강요받는 건 일반적인 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불법체류자 신세로 전락해 감금과 폭행에 시달리면서 창살 없는 감옥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것은 한국과 외국 현지를 잇는 브로커 조직과 현지 한인 업주의 ‘선불금’ 거래가 있기 때문으로 사실상 ‘현대판 인신매매’인 셈이다. 원정 성매매에 나섰던 한 20대 여성은 “나는 짐승만도 못한 성노예였다”면서 “순간의 선택은 결국 파멸로 가는 여행이었다”고 절규했다. 인터넷 언론 ‘브레이크 뉴스’가 보도한 내용을 가추린다.


-편집자












“짐승만도 못한 쓰레기 생활이었다”


지난 2004년 ‘9·23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1년 반이 지났다. 역대 시행된 성매매 관련법 가운데 가장 강력한 법이란 평가만큼이나 도심 곳곳에 만연했던 대규모 성매매 업소들이 초토화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성매매에 대해 ‘범죄’라는 시민 의식이 높아진 점은 주목할 만한 성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찮다. 드러내놓고 영업을 하는 성매매 업소는 줄어들고 있지만 소위 ‘풍선효과’로 표현되는 음지의 성매매는 단속의 사각지대에서 성업 중이다.
이 같은 성과와 부작용이 나타나는 이면에서 전혀 생각지 못한 문제가 불거지고 있었다. 해외 원정 성매매로 국제적 망신살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성매매특별법 시행으로 성매매가 막힌 남성들이 해외 원정 성매매에 나서는가 하면 일자리를 잃은 성매매 여성들이 고소득을 보장한다는 말에 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역효과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것.
심지어 성매매 업소가 된서리를 맞자 일부 성매매 업주들까지 외국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한국식 성매매’ 형태를 그대로 외국으로 옮겨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불금’ 뒷거래






그렇다면 구체적인 실태는 어떨까. 기자는 여러 경로를 통해 해외 원정 성매매 실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만남은 쉽지 않았다. 대부분 아직까지 성매매 업종에 있는 사람들인 탓에 괜한 구설수에 시달리고 싶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던 중 기자는 지난 2004년 성매매특별법 시행에 따른 성매매 종사자들의 시위 현장에서 알게 된 성매매 업주 김아무개(48·남)와 연락이 닿았다.
김아무개는 현재 성매매 업소를 그만두고 지방의 한 도시에서 주점을 운영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해외 원정 성매매 실상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운영하던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던 3명의 여성 모두가 해외행을 택해 떠난 장본인들이었던 이유에서다. 김아무개는 “이런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성매매특별법 시행 당시부터 예견됐던 것 아니냐”면서 “애들이(성매매 여성) 외국 나가서 만신창이가 되어 들어오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기자는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전해 듣기 위해 지난 3월21일 오후 김아무개를 만났다. 이날 만남 자리에는 얼마 전까지 외국에서 성매매 여성으로 생활했던 A(29·여)가 동석하기로 약속되어 있었지만 신변상의 이유로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하지만 A의 현지 생활상은 김아무개를 통해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파멸로 이끈 고통의 여행


김아무개에 따르면 성매매특별법 시행 직전부터 이미 많은 성매매 여성들이 해외행을 택했다. 성매매 영업이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판단이 한몫 했지만 국내 사정에 비해 고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유혹도 해외행에 불을 붙였다. 일부 성매매 업주들이 성매매 여성들을 데리고 발빠르게 일본행을 택한 사례는 성매매 업계에선 잘 알려진 얘기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가 등장했다. 성매매 여성들과 같은 유흥업소 여성들을 외국 현지 업소로 보내는 해외 불법 송출 브로커는 198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활동하고 있었지만 이 시기에는 주로 성매매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적인 브로커 조직까지 등장했다는 것이다. 당시 경찰에 해외 불법 송출이 빈번하게 적발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브로커를 통해 해외로 나가는 데는 1천만~3천만원 정도의 수수료가 필요한데, 돈이 없는 성매매 여성들의 경우는 주로 자신이 일할 외국 현지 업소에서 ‘선불금’ 형식으로 부담한다.
브로커와 현지 업주들 간에 성매매 여성을 사고파는 사실상 현대판 인신매매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지금도 성매매 여성들의 해외행에는 브로커와 현지 업주 간의 뒷거래가 빈번하다는 게 김아무개의 설명이다.
김아무개는 “미국이나 일본, 호주만 해도 한국 성매매 여성들이 어림잡아 2만 명은 넘을 것”이라면서 “외국 현지에서 성업하고 있는 마사지 업소나 출장 성매매 업소는 거의가 한국인 업주들이 운영하는 곳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외국 현지 업소로 나간 성매매 여성들의 참혹한 실상이다. 미국과 일본의 성매매 업소에서 1년 가까이 성매매를 하다가 최근 국내로 되돌아온 A는 현지 생활에 대해 “짐승만도 못한 생활이었다”고 김아무개에게 토로했다고 한다.


변태 성매매도 강요


A의 현지 생활상에 관한 김아무개의 전언에 따르면 A는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전에 서울의 한 대형 유흥가 룸살롱에서 일했다. 가정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져 전문대학을 1년 남짓 다니다 휴학하고 유흥가로 돈벌이에 나섰던 것이다. 3년 가까이 룸살롱 업소를 전전하던 A는 계속되는 술자리로 몸에 무리가 왔고, 이 과정에서 급전을 당겨쓰면서 1천만원이 넘는 빚을 졌다. 난처한 상황에 몰려 있던 A는 결국 성매매 업소로 자리를 옮겼다. 그 후 6개월 남짓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던 그는 성매매특별법 시행 직전 서울 강남 유흥가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해외 불법 송출 브로커 최아무개를 알게 됐다.






최아무개의 제안은 솔깃했다. 미국에 가서 한인 업주가 운영하는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면 성매매 여부와 관계없이 한달 평균 5백만~6백만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고, 거기에 성매매까지 한다면 한달 평균 2천만~3천만원의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밀입국에 필요한 2천만원의 초기 비용은 미국 현지 한인 업주가 ‘선불금’ 형식으로 부담하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A는 그렇게 미국행을 택했다. 그러나 현지에 도착하자 실상은 180도 달랐다.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말은 어찌 보면 사실이었지만 그만큼 성매매를 해야 하는 강도는 컸다. 하루에 적게는 5~6명, 많게는 20명 가까이 상대해야 하는 혹독한 일상이 두달 넘게 반복됐다.
결국 석달 동안 두 번이나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혹독한 일상을 견디고, 밀입국 비용과 한국에서의 빚을 당겨 받은 선불금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A의 몸은 만신창이가 된 뒤였다. 빚을 갚은 뒤부터는 업주와 50:50의 수익 구조가 가능했지만 망가진 몸 상태로는 영업을 할 수 없었다. 결국 미국에서도 또다시 새로운 빚이 생기고 말았다. 다급해진 A는 미국 내 한인 업주의 소개로 또다시 일본행을 결심하게 됐다. 2개월만 일하면 최소 5천만원을 손에 쥘 수 있다는 제안에서다. 그러나 이도 현지 실상은 달랐다.





밀입국을 통해 일본에 도착한 A는 일본 내 한인 업주가 운영하는 출장 성매매 업소에서 일했는데, 도착한 첫날부터 신분증까지 압수 당하고 사실상 감금상태에 놓였다. 심지어 한인 업주는 최대 폭력조직인 ‘야쿠자’의 비호 아래 성매매 여성들에게 엄청난 강도와 변태적인 성매매를 강요하고 이에 반감을 나타내면 폭력까지 서슴지 않았다. 특히 한국식 운영방식을 그대로 적용해 생활비까지도 모두 빚으로 불려 A를 비롯한 성매매 여성들을 옭아맸다. 빚만 늘어나는 악순환은 반복됐고, 창살 없는 감옥 생활로 A는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유학생도 성매매


결국 A는 두달여의 우여곡절 끝에 일본 경찰에 A가 속해 있던 업소가 적발되면서 피해를 인정받아 추방 형식으로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김아무개는 “A가 미국과 일본에서의 성매매 생활은 성매매 여성 대부분이 성병에 시달리면서도 치료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는 짐승만도 못한 쓰레기 같은 생활이었다고 절규했다”면서 “순간의 선택이 결국 자신의 몸과 마음을 파멸로 이끈 고통의 여행이었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한편, 성매매를 위해 해외행을 택하는 한국 내 성매매 여성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해외 현지에서는 유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성매매를 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다. 미국 LA에 살고 있는 교민 김아무개(39·남)는 지난 3월21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아웃콜(출장 성매매)에 유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활동하는 사례가 최근 크게 늘었다”면서 “한인 신문에 버젓이 유학생 성매매 여성 모집 광고를 내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아무개는 또 “미국 사회에서 최근 한국인 성매매가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인데, LA의 주변만 하더라도 성매매 조직이 적발되면 대부분이 한국인들일 정도”라면서 “국가 이미지 실추와 함께 교민들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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