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수첩공주’와 ‘명바기’의 진검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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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일. 이제 대선까지 딱 400 일이 남았다.
내년 대선을 향해  뛰는 주자들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여전히 어수선한 가운데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권주자들은 각자 표밭 갈기에 여념이 없 다. 최근 발표되는 각종 여론조사의 결과대로라면 내년 대선은 해보나 마나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한나라당 당직자들은  표정관리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05년 이후  치러진 네 차례의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은 ‘40대 0’이라는 경이적인 승리를 거두고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 작은 전투에서 는 승리 하면서도 결국 큰 전쟁에서는 지고 마는 것 아니냐는‘패배주의’의 망령이 여전히 똬리를 틀고 있다.
지난 97년과 2002년의 두 차례 대선에서 여권의 끈끈 한 결집력과 악착같은 전투력 때문에 마지막 한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황 태 순
(정치평론가)


대선 D-400일이었던 지난 11월 14일 한나라당의 ‘빅-3’는 나란히 자기의 텃밭을 찾았다. 박근혜 전 대표는 경북 구미의 박정희 대통령 생가를 찾았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대구를 방문했다. 또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경기도 평택의 현곡 외투단지를 찾았다.


신화와 비전 VS 아버지의 이름
박근혜 전 대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89번 째 생일을 맞아 열린 ‘숭모제’에 3년 만에 참석했다. 박 전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을 이루려했던 아버지의 꿈을 생각한다. 아버지라면 지금 이 순간 어떻게 대처 했을까 생각해 본다”고 했다. 박 전 대표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겠다는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같은 날 이명박 전 시장의 팬클럽이 하나로 뭉쳤다. 그 동안 운영되어오던 13개의 팬클럽 소속 회원 1만 5천 명이 ‘MB연대’로 통합했다. MB연대는 4가지 실천 약속을 내걸었다. 그중 첫 번째가 ‘상대방 비방 금지 등 새로운 인터넷문화 선도’이다. 같은 시간 이 전 시장은 대구에서 특강을 하면서 ‘한반도 대운하 계획’을 마케팅하고 있었다. 경기지사에서 물러난 후 ‘민심대장정’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손학규 전 지사는 ‘4+2 민심대토론’의 깃발을 내걸고 2차 민심투어에 나섰다. ‘일자리, 노후, 교육, 주거’의 4대 현안에 ‘정치개혁과 안보’를 덧붙여 정책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한나라당 ‘빅-3’의 대선 전략의 기본적인 얼개가 무엇인지 대충 눈치 챌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미지를 자신의 이미지에 투영시키려 하고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은 샐러리맨으로서 성공과 청계천 복원의 ‘신화’를 부각시키려 한다. 손학규 전 지사는 정책과 비전으로 앞선 두 주자와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슈를 선점한 것은 이명박 전 시장이다. ‘한반도 대운하’를 화두로 잡은 이 전 시장은 계속해서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반도 대운하 심포지엄’을 열기도 했다. 이 전 시장은 “꿈만 있고 실천력이 없으면 ‘백일몽’이고, 꿈도 없이 일만 벌이는 것은 ‘악몽’일 뿐이다”고 했다. 자기 자신만이 꿈과 실천력을 갖춘 지도자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나 손학규 전 지사의 입장에서는 영 소태를 씹은 기분일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운하가 경제정책이라고 말하는 것은 조금 어폐가 있다. 그것은 어떤 건설의 계획안, 개인적인 안이라고 생각한다”며 짐짓 무시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손 전 지사도 “개발시대의 패러다임으로 21세기 선진강국을 이룰 수 없다. 새로운 국가운영체계를 만들어 국가체질을 바꾸어야 한다”고 이 전 시장의 예봉을 피하고 있다.
아직까지 ‘이거다’할만한 굵직한 화두를 내놓지 못한 박 전 대표나 손 전 지사로서는 ‘한반도 대운하’를 놓고 왈가왈부하지 않으려 한다. 괜히 이명박의 홈그라운드에 뛰어들어서 싸움을 벌려봐야 이기지 못할 것이 뻔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는 노무현의 ‘행정수도이전 공약’의 덧에 걸려 진을 빼다가 무너진 적이 있다. 박근혜와 손학규는 이회창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뜨거운 감자 오픈프라이머리
최근 이명박 전 시장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진 이재오 최고위원은 “정당정치의 근간도 유지하고 민의 수렴도 확대하는 방식의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를 도입해야 한다. 전 당원에 투표권을 주는 동시에 당원 숫자만큼 국민선거인단을 투표에 참여시키고 여론조사도 병행해야 한다”고 치고 나왔다. 이 최고위원과 가까운 공성진 의원이나 소장파의 원희룡, 남경필 의원도 오픈프라이머리로 당 인사들의 줄 세우기를 막을 수 있다며 동조했다. 
그러나 정작 강재섭 대표는 현행 경선방식(대의원20%+당원30%+일반국민 30%+여론조사20%)을 고수하겠다고 한다. 박근혜 전 대표 측에서는 “경선규정 개정논쟁은 이미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냉담한 반응이다. 손학규 전 지사 측도 “아직 거론할 시기가 아니다”고 유보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명박 전 시장 측에서는 “정권교체를 위해 가장 적합한 방식이 뭔지 당이 잘 선택할 것”이라며 우회적으로 당 지도부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 달 열린우리당에서 본격적으로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주장하고 나왔을 때 한나라당에서는 여당이 불임(不姙)정당이다 보니 내놓은 궁여지책이라고 비웃었다. 그렇다면 과연 한나라당이 그렇게 여유를 부려도 좋을까? 지금 한나라당은 여당이 죽을 쑤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어느덧 ‘상상임신’을 했고 이미 ‘옥동자’까지도 순산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지난 2002년 대선패배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이미 잊어버린 것 같다.











 
5년 전인 2001년에도 사정은 지금과 비슷했다. 줄 이어 터진 게이트로  DJ정권은 완전히 궁지에 몰렸었다. 10.25재·보선에서 완패하자 김대중 대통령은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총재직에서 물러났다. 그러자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을 중심으로 판을 뒤집을 묘수를 찾기 시작한다. 당의 지략가인 이강래 의원과 김영환 의원 등이 합세하면서 나온 수가 바로 ‘국민참여경선제’이다. 하루 날을 잡아 전 대의원들이 체육관에 모여서 후보를 선출하던 기존의 방식을 과감히 버린 것이다.
물론 훗날 당시 경선을 관리했던 김영배 국회부의장이 “국민을 상대로 한 희대의 사기극”이라고 일갈했으나 당시로서는 그만한 볼거리가 없었다. 두 달 가까이 전국을 돌면서 바람을 일으켰고 일반 국민들이 앞 다투어 여당의 대통령후보 선출에 참여했다. 한나라당도 뒤늦게나마 흉내를 냈으나 결과는 영 아니었다. 박진감도 없었고 심지어 이상희 후보가 이회창 후보에게 “총재님”하는 웃지 못 할 광경까지 연출되었다.
내년이 되면 여권은 정계개편을 통해 판을 흔들 것이다. 그리고는 위헌시비마저 있는 완전 오픈프라이머리(블랭킷프라이머리)를 통해 회오리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지금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실망 때문에 부동층으로 돌아서 있는 친 여당 성향의 유권자들이 뭉치기 시작할 것이다. 명분을 선점하여 거세게 몰아붙이기 시작하면 한나라당은 “어, 어”하다가 끝나고 말 수도 있다. 선거라는 것은 무당파 30%를 누가 선점하느냐의 게임이다. 어차피 골수 여당 35%와 골수 야당35%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자기 편을 찍게 마련이다. 


판도라의 상자 TV토론회
연말 정기국회가 끝나고 나면 본격적인 대선정국이 시작된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유력한 대권주자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각 언론사들을 중심으로 후보자 검증에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특히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TV토론회이다. 유력 대권주자들은 그 동안 잘 짜인 각본에 따른 인터뷰나 토론 프로그램에 나왔었다. 그러나 후보자 간의 TV토론은 그 것과는 전혀 다른 사생결단의 장이다. 시청자와 국민들 앞에서 ‘1대1’로 맞붙어 상대방을 꺾어야 한다. 5년 전인 2002년 1월 1일 한국갤럽은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통상의 경우보다 4배가 많은 3,157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였다. 이회창 총재 대 이인제 고문의 가상대결에서는 45.4% 대 34.8%로 이 총재가 앞섰다. 이 총재 대 노무현 고문과의 가상대결에서는 47.4% 대 31.3%로 차이가 더 났다. 나머지 여권의 후보들은 하프게임도 안 됐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은 정말 정신없을 정도로 TV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전국을 돌면서 7명의 경선후보자 토론회를 열었고 또 TV로 인터넷방송으로 중계했다. 후보자들 간의 불꽃 튀는 논쟁은 국민들의 관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3월 초 제주도를 시발로 ‘국민참여경선’이 진행되었고, 3월 23일 한국갤럽의 발표에 따르면 노무현 대 이회창의 가상대결에서 노무현 고문이 44.8% 대 33.7%로 전세를 역전시켰다. 바로 두 달 넘게 공을 들인 TV토론회의 숨은 힘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한나라당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을 지지하는 네티즌간의 싸움이 볼만하다. 이명박 지지자들은 박 전 대표가 측근들이 적어 준 것을 녹음기마냥 되풀이 한다며 ‘수첩공주’라고 깎아내린다. 박근혜 측 네티즌들은 이 전 시장을 ‘명바기’라고 부르며 돈 문제, 사생활과 관련된 억측들을 부풀리고 있다.
2007년이 시작되면 본격적으로 치러질 후보검증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과연  ‘수첩공주’인지, 이명박 전 시장의 한반도 대운하 계획이 겉만 번지르르한 과거 정주영의 ‘아파트 반값’과 같은 공약(空約)인지, 손학규 전 지사가 민심대장정의 결과물로 내놓을 수많은 정책대안들이 그냥 그런 백화점식 문제 제기에 불과한지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의 ‘빅-3’는 가급적 진검승부를 뒤로 미루려 한다. 진검승부에 대한 부담감도 있지만, 세 사람 모두 아직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이다. 지지율 10% 내외의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그냥 미적거리면서 시간을 벌겠다는 속셈이다. 그러나 여권은 정계개편을 통해 아주 빠르게 회복할 것이고, 그 속도는 아마도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단 여권이 회복한 다음에는 엄청나게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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