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지지자들… 그곳은 곧 해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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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경남 김해 봉하마을 현장은 슬픔을 넘어 분노로 가득차 있다. 이 분노는 취재를 하는 취재진과 문상을 온 일부 정치인들을 향해 폭발했다. 군중들에게 폭행을 당한 기자가 있는가하면 물벼락을 맞는 정치인들도 있었다. 지지자들은 노 전 대통령을 자살로 몰고 간 원흉으로 꼽는 보수 언론 특히 조선·중앙·동아일보 기자들은 신분을 숨긴 채 다른 언론사 기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졌다.
문제는 지지자들의 이런 분노가 통제가 안 된다는 것이다. 워낙 봉하마을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든 탓에 한 사람의 돌발행동이 군중심리를 자극해 집단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것. 장례위원회나 노사모 측도 이런 돌발행동에 상당히 당황스러워 하고 있다. 만약 현장 조문을 온 이명박 대통령이 불상사를 당하게 된다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은 심한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분노는 봉하마을에만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분향소를 차린 서울 덕수궁 인근에서도 분노가 표출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시민들의 조문을 막아서는 경찰이 분노의 대상이다. 현재는 경찰이 맞대응을 자제하고 있지만 만에 하나 불상사가 잃어난다면 이는 곧 지난해 촛불정국과 같은 수많은 군중들의 집단행동을 불러오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특별취재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그 동안 검찰수사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봉하주민과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 등을 폭발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봉하마을 분향소에 조문이 이어지는 내내 여야 정치인들은 물론, 조선·중앙·동아일보 기자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렸다.
박희태 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는 지난 25일 아침 일찍 비행기로 김해공항에 도착, 버스를 이용해 낮 12시30분쯤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정몽준 허태열 공성진 박순자 송광호 박재순 최고위원과 안경률 사무총장 등 50여명이 동행했다. 박 대표 일행이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지자와 주민 100여명은 “무슨 염치로 이곳에 왔느냐”며 물병을 집어던지는 등 격렬히 항의했다.
‘살인마는 물러나라’ ‘박희태는 부끄럽지 않느냐’라는 구호도 나왔다. 박 대표 일행을 밀어내려는 이들과 제지하려는 박 대표 측 경호원 사이에 몸싸움도 벌어졌다. 결국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이 봉하마을 입구에서 박 대표를 만나 “큰 결례다. 분향소까지 모셔야 하는데 상황이 어렵다”고 양해를 구했고 박 대표는 “이해한다. 당을 대표해 대신 조의를 표한다”고 답했다. 박 대표는 이어 기자들과 만나 “문상하러 왔는데 이렇게…”라며 아쉬움을 표한 뒤 “조의를 표하고 명복을 빌기 위해 왔으며, 문 전 실장에게 고맙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정몽준 최고위원은 “조문을 하러 왔는데 못 뵙고 가서 아쉽다”고 짧게 언급한 뒤 버스에 올랐다
이에 앞서 지난 24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에서 출발, 4시 경 봉하마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봉하마을 주변까지 도착,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방문의사를 전달했지만 문 실장 등 장례위원회 관계자들이 경황없음을 이유로 서울 분향소에서 조문할 것을 권유했다. 박 대표가 이를 받아들여 방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오 국회의장도 이날 일행과 함께 마을 입구에서 도보로 걸어 조문 방문을 시도했으나, 노사모 회원 등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에 의해 제지당해 발길을 돌렸다.
이 외에 한승수 국무총리,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등도 조문을 거부당했다.
조문객들의 분노는 보수 정치인들 뿐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의 기반이었던 민주당 등 진보진영에도 불똥이 튀었다.
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조문을 마친 뒤 분향소를 나서다 한 지역주민에게 붙잡혀 노 전 대통령 서거를 왜 막지 못했느냐는 하소연을 듣는 등 고역을 치렀다.
민주당 출신인 무소속 정동영 의원도 23일 조문을 거부당했으나 24일 다시 방문해 조문할 수 있었다.


통제불능


문제는 지지자들의 이런 행동이 통제 불능이라는 것이다. 기자가 현장을 지켜 본 결과 지지자들은 거의 정신적 공항상태여서 논리적인 설득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누구 한 사람이 정치인을 알아보고 ‘누구다’라고 외치면 군중심리에 의해 지지자들이 모여들어 폭언을 퍼붓는다. 장례위원회나 노사모 측도 이런 상황에 애로상황을 호소한다.
가장 우려할 만한 상황은 이명박 대통령이 조문을 왔을 경우다. 현재 지지자들은 이번 사건의 책임을 현정부에 돌리고 있다. 현 정부의 전 정권 죽이기가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당연히 현 정권을 책임지는 이 대통령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한 상황. 이런 상황 가운데 이 대통령이 봉하마을에 왔을 경우 불상사가 벌어질 가능성은 다분하다. 게다가 봉하마을은 편도 1차선 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경호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 대통령의 조문을 하지 않는 것도 예의성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이 직접 조문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장례가 국민장으로 치러지는 만큼 예우 차원에서 그렇게 하는 것.
그러나 이러한 결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봉하마을에 있는 노 전 대통령 지지자와 마을 주민 등은 노 전 대통령 서거의 책임이 현 정부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 상당수 정부 여당 관계자들이 현지 조문을 거부당했다.
이렇게 심정적 거부감이 작지 않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직접 방문은 거센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1991년 6월 정원식 당시 국무총리가 한국외대에서 학생들에게 밀가루 세례를 받은 것과, 1995년 7월 조남호 당시 서초구청장이 삼풍백화점 희생자 위령제에서 유가족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사건 등을 거론하기도 한다. 자칫 큰 혼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얘기다.



언론에 적개심 나타내


일부 봉하마을 주민들과 노사모 회원들은 또 “언론이 노 전 대통령을 죽였다”며 특히 ‘조중동’을 겨냥한 적개심을 나타냈다.
이날 동아일보 소속으로 추정되는 한 여기자는 장례위원회 측의 출입금지 조치에도 불구, 진입을 시도하다 주민들에게 발각 돼 곤욕을 치렀다. 그는 주민들에게 붙잡혀 내쫓겼음에도 재 신입을 시도하다 일부 흥분한 주민들에게 발각돼 폭행당할 위기에 처했지만 질서유지 자원봉사 중인 노사모 회원들에 의해 구출되기도 했다.
한 조선일보 기자는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20분간 폭언을 듣기도 했다. 조중동 기자들은 이후 연합뉴스 기자등을 사칭하며 취재를 계속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주민들과 노사모 회원들은 “언론이 노무현을 죽였으니 다 내쫓자”, “조중동이 밉지만 폭력은 안된다”는 등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하나같이 특정 언론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보수 언론에 대한 분노는 온라인상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마련한 인터넷 상의 추모게시판은 몸살을 앓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추모게시판을 만든 조중동 가운데 중앙일보는 현재 추모 게시판을 닫은 상태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추모게시판에는 “조선일보나 해체하시오. 내 그러면 기꺼이 당신들을 위한 추모글 올리오리다. 당신들은 노무현을 추모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들이오. 당장 가증스러운 게시판을 닫으시오” “제목은 추모게시판이지만 안티글을 위한 의도의 게시판이 아닌가 의심이 가져집니다” 등의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추모게시판을 만든 것을 ‘거짓 애도’로 해석하는 이들의 분노가 담겨 있다. 허나 “대다수 국민들이 이번 사건을 ‘시원섭섭’ 하게 생각할 것이다” “많은 사람을 분열시키고… 유아독존하며, 봉하에 아방궁을 지어 상황 노릇하려고 국가 기록을 무단반출하고 헌법을 깔보고, 가족을 동원해 증거인멸과 폭탄 돌리기를 하시던 분이 이 땅을 떠났네요. 씁쓸합니다” 등과 같이 ‘추모’가 아닌 ‘독설’이 담긴 글들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나만 죽으면 모두가 편해지지 않겠느냐”(노무현 전 대통령), “노 전 대통령은 (내가 돈을 받은 것을) 전혀 몰랐는데 나 때문에 이렇게 됐다.”(권양숙 여사)
노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는 노 전 대통령 서거를 전후해 서로 자신을 강하게 자책했으며 이같은 심경을 가족회의나 주변 인사들에게 공개적으로 피력했다고 노 전 대통령의 한 가까운 친척이 25일 전했다.
이 인사는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소환조사를 받은)이후 자신 때문에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고 자신이 죽으면 모두 다 편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다”며 “가족회의 때 노 전 대통령이 ‘나만 죽으면 편해지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 인사는 또 “권 여사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그 사람은 (내가 돈을 받은 사실을) 전혀 몰랐는데 나 때문에 이렇게 됐다’며 심하게 자책을 했고 그 충격으로 걸음을 걷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노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노 전 대통령이 1988년 정치 입문후 20여년 동안 가족이나 친척들을 돌보지 않았고, 모든 것을 권 여사님이 책임지셔야 했는데 그런 와중에 어려움도 토로하셨고, 그런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였는데 어쨌든 본인의 문제라는 것을 많이 자책하는 모습이 보며 많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으로 인해 가족이 고통받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했음을 유서를 포함, 여러 경로를 통해 표시해왔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이 친형인 건평씨를 비롯,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이광재 전 의원, 박연차 태광실업회장,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등을 구속한 데 이어 권 여사와 아들 건호씨, 딸 정연씨 등이 검찰 조사를 받자 끊었던 담배를 다시 찾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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