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국 정치권 핫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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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하이라이트는 민주당 예비선거였다. 그 과정은 드라마틱했다. 당초 강세는 힐러리 클린턴 쪽이었다. 그녀는 다른 당내 경쟁자들을 10~20%포인트 이상 멀찌감치 따돌리고 선두를 질주했다. 그녀가 러닝메이트 부통령 후보로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가 관심사일 정도였다.
하지만 클린턴을 반대하는 민주당 세력은 경선을 클린턴 대 ‘반(反)클린턴’ 구도로 몰고 갔다. 반클린턴 진영에는 버락 오바마, 존 에드워즈, 존 케리 등이 포진하고 있었다. 셋 중에 오바마의 지지율이 점점 오르면서 클린턴의 유력한 대항마로 떠오르자, 존 케리가 오바마 지지 선언을 했다. 뒤이어 존 에드워즈마저 오바마 지지 선언을 한 뒤에 후보를 사퇴했다. 결국 클린턴 대 오바마의 맞대결 구도로 가면서 분위기를 탄 오바마가 대역전에 성공했다. 이 기세로 결국 오바마는 본선에서 공화당 매케인 후보마저 간단히 꺾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상황이 아주 같다고 할 수 없지만 최근 비슷한 일이 한국 정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도 지사 간의 맞대결이 그것이다. 특히 여권의 대권 경쟁 구도에서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정가에서는 벌써부터 두 사람의 맞대결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서로 비슷한 스타일을 지닌 두 주자의 무기는 무엇이며 아킬레스건은 어떤 것인가.
<한국지사 = 박희민 기자>



지금껏 여권의 ‘차기 대선 구도’를 말할 때 늘 ‘상수’는 박근혜 전 대표였다. ‘변수’가 항상 문제였다. 즉 ‘박근혜 대항마’들이 너무 유약했다. 처음에는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나섰으나, 강인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정운찬 전 총리는 결과적으로 변죽만 울리고 만 형국이 되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계속 가능성을 보이고 있으나, 좀처럼 치고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 빈 공간을 지금 김문수 지사가 채우고 있다. 여권의 차기 대권 구도가 결국 박근혜-김문수 대결이 될 것이라고 점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김 지사의 대중적 지지율은 아직 박 전 대표를 크게 위협하거나 다른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김 지사의 지지율은 지금 차곡차곡 기초를 다지며 올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문수의 약진

자연히 정가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김문수 지사의 이름이 여의도 여기저기서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6월 지방선거가 분수령이었다. 그는 지방선거에서 현재 야권의 대선 주자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을 비교적 여유 있게 제쳤다. 이후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뉴스가 되었다. 김지사 스스로도 달라진 위상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듯했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지방 행정 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안 대토론회’에 참석해서 기조연설을 했는데, 이 행사 역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이 날 토론회에는 박희태 국회의장, 김무성 원내대표 등이 다 나왔다. 무엇보다 기자들이 많이 왔다. 언론이 김 지사의 행보를 예전과 다르게 보고 있다는 반증이다. 실제로 최근 본국의 매거진이나 시사지들을 앞다투어 김 지사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김지사 공관을 찾는 서울 정치인들의 발걸음도 잦아지고 있다고 한다.
친박계 인사들이 말하는 김지사의 강점은 ‘소탈함’과 ‘깨끗함’이다. 사람 자체가 서민적인 데다가 이권 개입이나 불법 같은 스캔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김 지사측 역시 비슷한 점을 꼽았다. “서민적 이미지, 정직함, 그리고 소신과 뚝심이다”라는 것이다. 게다가 TK(대구·경북) 출신이면서도 정치적 기반은 수도권에 두고 있고, 주변 참모에 호남 사람들이 더 많은 점도 장점이다. 김 지사는 처가인 전남 순천도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김 지사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조직이다. 그런 면에서 정치권에서는 이재오 특임장관을 주목한다. 전문가들은 김 지사의 비전에 이재오의 조직이 더해지면 상당한 파괴력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친박계측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도 바로 이런 구도이다. 이재오 장관이 스스로의 대권 꿈을 접고, 김지사를 밀어주기로 작심했을 경우이다.




박근혜 위기론

김 지사에게도 단점은 많이 지적된다. 투박하면서도 거침없이 쏟아내는 직선적인 언행들은 늘 주변 참모들을 불안케 한다. 민중당 출신의 전력도 김 지사에게는 핸디캡이다.  한나라당의 대권 주자로 부각될수록 김지사는 이에 대해 철저한 검증에 시달릴 것이다.
반대로 김지사측에서 말하는 박 전 대표의 단점 역시 ‘검증론’이다. 김 지사의 한 측근은 “솔직히 박근혜 전 대표는 업무 능력 면에서 하나도 검증이 안 되었다. 뭐 검증될 만한 일을 했어야 검증을 하지 않겠나. 김무성 원내대표가 말한 대로 민주적 소양이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우려도 있다. 마치 본인은 책임질 일 절대 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뒤로 빠져 있기만 한 것이 아닌가”라고 비난했다.
그래도 박 전 대표는 여전히 말이 없다. 워낙 말이 없다 보니 추측만 무성하다. 그의 지지자들은 당연히 힘들다. 무언가 ‘메시지’가 있어야 하는데 전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불안해한다. 위기를 말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근혜 위기론’은 나름으로 근거가 있다. 지지율 추락과 함께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때문이다. 특히 한나라당 지지층인 보수층 표의 이탈을 심각하게 본다. 실제 한때 60%를 넘었던 보수층의 지지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절반 정도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영남권의 친박계 재선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1차 관문은 전당대회에 있다.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아무리 1위라고 하지만,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지지층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대권에 도전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전당대회에서 친박계의 표를 다 합쳐도 34%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도 경선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이다. 위기 신호는 친박계 내부에서도 나왔다. 친박계 핵심으로 불렸던 김무성 원내대표와 진영 의원의 ‘탈박’ 선언이다. 특히 박 전 대표 비서실장을 지낸 진의원의 이탈은 찝찝하다.
그러나 지난 8월21일 청와대에서 이루어진 이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비공개 단독 회동을 ‘돌파구’로 여기는 시각도 많다. 이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의 정권 재창출을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데 합의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와 국내외 경제 문제도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두 사람의 회동 이후 국정원의 움직임에 주목한다. 예전과 달리 박 전 대표의 움직임을 체크하는 국정원의 활동이 줄었다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김문수의 인맥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TK(대구·경북)’ 출신이다. 학교도 경북고와 서울대를 졸업했다. 이 정도 되면 지연과 학연에서 대한민국 인맥의 최고 중심에 서 있음직하다. 하지만 김지사의 인맥은 ‘주류’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 ‘골수 운동권’ 출신이었던 그의 주변에는 아직도 과거 운동권 현장에서 맺어졌던 인연들이 많다. 심지어 경북고 출신 인사들 중에서 “김지사가 경북고 출신이었어?”라는 반문이 나올 정도이다. 김지사 역시 경북고 동문회에는 거의 나가지 않는다.
김지사의 인맥은 크게 민중당 출신과 ‘비(非)민중당’으로 나뉜다. 그만큼 민중당 출신들이 많다. 한나라당 내에서 이른바 ‘김문수계’로 일컬어지는 차명진·임해규 의원이 모두 민중당 출신이다. 1990년 당시 민중당 노동위원회에서 활약했던 차의원은 거기서 김문수 노동위원장을 모셨다. 이후 차의원의 정치 행보는 그야말로 김지사의 그림자였다. 김지사의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을 지냈고, 이후 김지사의 지역구(부천 소사)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임의원 역시 민중당 출신이다. 그 자신은 “민중당이라는 조직 속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한 적은 없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김지사가 민중당에 몸담았을 당시부터 보좌했던 탓에 ‘범민중당’ 출신에 포함되고 있다.
역시 ‘친(親)김문수’로 통하는 김용태 의원도 민중당 출신이다. 그는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92년 총선 당시 장기표 민중당 정책위의장의 서울 동작 갑 선거를 도왔다. 그때 장의장의 선거사무실 사무장이 바로 김지사였다. 김지사의 최측근으로 손꼽히는 허숭 경기도시공사 감사는 민중당 서울시 청년학생위원장 출신이다. 최근까지 경기도 대변인을 맡는 등 지근거리에서 김지사를 보좌하고 있다. 허감사와 함께 김지사를 밀착 보좌하고 있는 최우영 현 대변인, 노용수 전 비서실장 등도 모두 민중당 출신이다. 환경 분야에서 김지사에게 정책적 조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조춘구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사장도 역시 민중당 출신이다. 하지만 무어니 무어니 해도 김지사 민중당 인맥의 핵심 인물은 이재오 특임장관이다.
김지사는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홍준표 최고위원 등과도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안대표에게는 스스럼없이 “형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전재희 전 보건복지부장관과는 동향(경북 영천)으로 상당히 친하다.
교통개발연구원 부원장 출신으로 교통공학 전문가인 그는 경기도지사 정책특별보좌관을 역임하며, 특히 김지사가 교통 정책에 두각을 나타내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 거시경제팀장과 한국경제연구원장을 지낸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은 김지사의 경제 브레인으로 활약 중이다. 경기신용보증재단 상임감사를 지낸 전문순씨는 금융 전문가로, 한나라당 의원과 복지부장관을 역임한 서상목 경기복지미래재단 이사장은 복지 전문가로 각각 김 지사와 교류하고 있다.




박근혜의 인맥


“박근혜의 그림자를 찾아라.” 한때 국정원에서 나돌았던 얘기이다. 국정원 직원들 사이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멘토’를 찾으면 1계급 특진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는 소문도 곁들여졌다. 그만큼 박 전 대표의 자문 그룹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국정원의 ‘그림자 찾기’는 박 전 대표의 발언 때문이다. 미디어법과 세종시 문제를 거치면서 박 전 대표가 이따금씩 툭툭 던진 한마디가 국정원의 눈을 시뻘겋게 만들었다.
친박계 의원들은 박 전 대표의 그림자에 대해 한마디로 정리한다.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의 정책 조언 그룹으로 남덕우 전 총리 등 제3공화국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노(老)정객들을 꼽는다. 지난 대선 경선 당시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인사들이다. 학자들 중에서는 방석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와 표학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거론되지만, 요즘 활동이 뜸하다는 소식이 들린다.
친박계 주변에서는 “자문 그룹보다는 박 전 대표의 ‘공부’에 도움을 주는 전문가들이 존재하지 않겠느냐”라고 예상한다. 이 전문가들의 명단은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정계에 입문할 때부터 함께 일해 온 일부 인사들만 알고 있다고 전해진다. 박 전 대표와 전문가들은 이름을 외부에 흘리지 않는 조건으로 연구 모임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전문가 일부를 추천했다는 소문도 있다. 제3공화국 때 재무부장관을 역임한 김용환 전 의원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박 전 대표가 분야별로 1 대 1로 공부하는 ‘스터디’도 있는데, 역시 명단은 베일에 싸여 있다. 자칫 공약 자문 그룹으로 알려지면 대권 구도가 조기 과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박 전 대표가 굉장히 신중을 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대선 경선 당시 실무팀으로 활약했던 일부 인사들도 은밀히 활동한다. 최근 박 전 대표의 팬그룹을 온라인과 오프라인 조직으로 활성화시키려는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친박계 의원들이 ‘그냥’ 활동한다. ‘세종시 수정안 투표’를 통해 드러난 친박계 의원들의 수는 50명을 넘지 않는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으로 불리는 이정현 의원이나 비서실장을 맡았던 유정복 의원의 존재감에 대해서도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 이들 외에 홍사덕 의원, 서병수 최고위원, 최근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맡은 이학재 의원, 이성헌 의원 등이 대표적인 ‘친박 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박 전 대표에게 조언을 하기는커녕 눈치만 살핀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박 전 대표에게 곧잘 ‘쓴소리’를 하는 것으로 알려진 한 친박계 의원은 “건의를 해도 ‘알았다’는 대답만 돌아오니까 힘이 빠지기도 한다. 박 전 대표가 의원들의 조언을 듣고 행동에 나서는 일은 잘 없다. 일부는 개인적으로 잘못 판단해 박 전 대표와 엇박자를 보이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구심점도 없다. 특정인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는 박 전 대표의 스타일이 만든 현상이다.
양측 관계자의 말처럼 서로 비슷한 스타일인 박 전 대표와 김 지사, 이 두 ‘잠룡’이 때가 되었다고 선언하고 본격적으로 나서기까지 장외 신경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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