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훈 칼럼] 박근혜와 ‘지만 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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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 (언론인)

LA동포 미세스 김이 한국 방문 길에 Q영사 부인을 만났습니다. Q는 LA총영사관 경찰영사로 근무하다 귀국해 경찰청의 고위직에 앉아 승승장구하고 있었지요. Q의 부인은 LA에서 친하게 지낸 미세스 김한테 강남의 한 최고급 한식집에서 빵빵하게 한턱 쐈습니다.
LA에서 살던 때 얘기를 하다 그녀는 갑자기 ‘서울 사는 얘기’로 화제를 돌렸습니다. “우리 영사님, 요즘 매일 술타령이라우. 맨날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지요. 이 양반이 잠들면 나는 바빠져요. 윗도리 안주머니를 뒤지고, 바지 뒷주머니를 훑고…”
남편이 바람피우는 얘기를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뭔가 꼬투리라도 잡았느냐”고 서슴거리며 묻자, 그녀의 입에선 뜻밖의 얘기가 야지랑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그게 아니구요. 이 양반이 술 마시고 들어온 날은 대박이에요. 얘기하긴 좀 뭣하지만, 흰 봉투가 여기서 나오고, 저기서 나오고…” 천기(天機)누설이었지요.
입에 담아서는 결코 안 될 고위 공무원 남편의 수치스런 일탈(逸脫)을 부인은 자랑스럽게 떠벌렸습니다. 술 취해 잠든 남편의 주머니에서 ‘보물찾기’하는 재미에 산다고 말하던 Q부인의 그때 얼굴은 “정말 행복에 겨운 듯 보였다”고 미세스 김은 내게 들려 줬습니다.
미세스 김은 그 일이 있은 후부터 한국신문을 열독하는 습관이 생겼다지요. 검찰청 포토라인에 카메라 플래시 세례 받으며 서있는 비리 공직자들의 모습을 TV에서 보면, 혹시 Q영사가 아닌가 싶어 다시 한 번 화면을 바라보게 됐다고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Q영사(사실은 국장)의 수갑 찬 모습이 검찰 포토라인에서 잡히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는 ‘무사히’ 정년퇴임했지요.
은퇴 후 Q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소식이 한때 들려 왔습니다. 봉투는 커녕 밥 한끼 먹자는 전화도 없고, 술 한 잔 사겠다고 해도 옛 부하직원들은 갖은 핑계를 대며 슬슬 꽁무니를 빼더라는 겁니다.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사랑하던 부인은 온종일 집에 틀어 박혀 세끼 밥만 축내는 얼간망둥이 같은 은퇴한 남편을 더 이상 존경도 사랑도 할 수 없었지요. 남편 주머니 뒤져 대박 터트리는 재미까지 잃은 Q의 부인도 신경쇠약 증세를 보였습니다. 한참 전 얘기입니다. 요즘 이런 경찰 대한민국엔 없으리라 믿습니다.
 
곳곳에서 ‘비리 올림픽’


며칠 전 법원 포도라인에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이 섰습니다. 골프 카트업체로부터 2억여원의 불법 자금을 받은 혐의로 징역 8월에 추징금 1억 6,000여만원이 선고돼 의원직을 잃었지요. 같은 당 현경병 의원도 이튿날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만원, 추징금 3,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돼 의원직을 내 놨습니다.
18대 국회에서 각종 부정비리로 의원직을 잃은 정치인은 모두 21명으로 역대 최고입니다. 공성진 의원은 한나라당 최고의원까지 지냈고, 한때는 차차기 대권 후보 반열에 스스로 올려놓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그의 부인도 술 취해 잠든 남편의 주머니 뒤지는 취미를 즐겼는지, 공의원은 진작부터 돈 밝히는 금배지라는 소문이 여의도와 인터넷 공간에서 왁자했습니다.
달포 전 검찰에서 포토라인에 섰다가 구치소 철창 안으로 홀연 사라진 은진수 전 감사위원은 이른바 ‘이명박 아바타’의 젊은 기수입니다. 회계사 시험-행정고시-사법고시를 모두 패스한 수재형으로, 이명박 대선 후보의 최대 고비였던 2007년 BBK 스캔들의 법무 팀장을 맡아 공을 세운 인연으로 MB맨이 됐지요.
화려한 스펙에다 40대의 창창한 나이 등 미래의 정치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기대주였지만 수천만원 짜리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뇌물로 받은 죄로 물방울 같이 덧없는 정치 생명을 끝냈습니다.
한국사회는 지금 곳곳에서 마치 ‘비리 올림픽’이라도 열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연초부터 해외에선 외교관들의 요상한 스캔들이 터지고, 계속해서 금감위 등 정부 공공기관의 도덕적 해이와 전 ? 현직 고위공직자와 금융계가 결탁한 저축은행 비리, 국회의원과 시군 단체장들의 독직 사건, 삼성과 금호 등 재벌기업의 비리, 프로축구 K리그 승부조작 부정 등 각종 부정비리 사건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공직자 윤리법을 개정하고 알선 청탁, 전관예우 같은 비리에 연루된 고위 공직자에게는 법원이 집행유예 대신 실형선고 비율을 높이는 등 청렴사회 구현을 위한 나름대로의 사회적 자정(自淨) 노력이 진행되고 있기는 합니다. 헌데 어찌된 셈인지 공직사회의 독직사건은 날로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지난해 한국의 부패인식 지수는 10점 만점에 5.4점으로 2008년 5.6점 이후 2년째 계속 악화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부패지수는 더욱 올라 아시아 16개국 중 부끄럽게도 9위였습니다.
‘고소영’과 ‘강부자’로 상징되는 대통령 자신의 도덕 불감증이 국가 부패지수를 끌어올리는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대기업 CEO출신으로 성과주의를 우선시하는 그는 ‘능력만 있으면 과거는 불문’이라며 초대 내각과 첫 번째 청와대 참모 인선부터 각종 비리 연루 경력이 있는 인사들을 마구잡이로 불러 썼지요.
‘MB의 아바타’라는 은진수를 감사 위원으로 보낸 것은 이명박 인사의 난맥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감사원은 조선왕조 시대의 사간원 격으로 정부를 추상같이 감시 감독하고 대통령의 잘못에도 주저 없이 바른 말을 하는 가치중립적인 인사를 임명해야 합니다. 40대의 야망찬 MB맨이 갈 자리는 아니었고, 결국 그는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지요.
 
서향희 변호사가 뜬다


저축은행 사건은 국회 국정감사로 넘겨졌습니다.
“… 기가 막힌다. 필자가 20여년간 화폐유통론 분야의 연구자로 살아왔지만 이런 황당한 경우는 본적이 없다. 총자산 10조원, 총여신 7조원으로 업계 1위에 올라있는 회사가 어떻게 법에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대주주 관련 대출을 5조 3,000억원이나 할 수 있고, 어떻게 감독당국이 이를 까맣게 모를 수 있는가…” 한성대 김상조 교수가 경향신문에 쓴 칼럼의 일부입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기가 막히고 황당하기 그지없는” 부산-보해-삼화 저축은행 관련 비리의 실체가 상당부분 밝혀질겁니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동생 지만 씨와 그의 부인인 서향희 변호사의 삼화저축은행 관련 의혹을 반드시 밝혀내겠다고 야당은 벼르고 있습니다.
서 변호사는 한때 삼화저축은행 고문 변호사를 지내는 등 여러 기업의 고문 변호사와 사외이사를 맡았습니다. 그가 관련된 기업들은 증권가에서 ‘박근혜 테마주’로 분류돼 느닷없이 주가가 치솟기도 했지요.
여의도에서는 박지만 서향희 부부의 수상쩍은 행보가 박근혜의 대선가도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여권 인사들은 “박지만 부부가 박근혜 의원의 후광을 업고 나쁜 사람들과 어울려 다닌다는 소문이 나돈다”고 전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박근혜 의원이 동생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조카를 너무 귀여워해 올케인 서향희 변호사와의 관계가 각별하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습니다. “기업들로서는 유력한 차기 권력인 박근혜한테 줄을 대려면 서변호사에게 고문 변호사를 맡기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는 얘기도 공공연히 나돌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봉하대군(형 건평 씨),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영포대군(형 상득 씨)이라는 최고 친인척 권력자가 있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땐 지만대군이 천하를 호령하는 시절이 오지 않을런지요?
박지만 씨가 구속된 삼화저축은행 신삼길 명예회장과 친해 이 은행의 로비에 연루된 의혹이 짙다고 야당이 주장하고 나서자 박근혜는 이렇게 응수 했습니다.
“본인(박지만)이 아니라고 하니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냐?” 박근혜의 도덕 불감증도 이쯤 되면 MB 뺨치게 생겼습니다.
                                                                                                                             2011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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