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훈 칼럼]‘종결자’들이 설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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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인터넷에서 겨울 올림픽이 열릴 평창을 검색하다 한사람의‘종결자’를 만났습니다. ‘국회의원 막말 종결자’로 소개된 이 지역 출신 최종원 의원입니다. 그는 취미가 뭐냐고 물으면‘술과 욕’이라고 당당히 대답하는 사람이라지요. 지난해 8월 민주당 강원도당 연수회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고매한’ 취미생활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원래 내 특기와 취미는 술과 욕이다. 연극계 후배들은 내욕을 쌍소리로 듣지 않고 뭔가 (내용이)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연예인 출신 최종원 의원을 이 시대 최고 고수(高手)의 정치적 막말 종결자로 만든 발언은 지난 4월 24일 강원도지사 보궐선거 지원유세에서 나왔습니다.
“대통령 집구석 하는 짓거리가 전부 이것이다. 형도 돈 훔쳐 먹고, 마누라도 돈 훔쳐 먹으려고 별짓 다 한다. 우리가 총선에서 승리하면 감방 줄줄이 간다. 김진선이도 가고 엄기영이도 간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감방 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김진선 평창올림픽 유치위원회 특임대사와 이명박 대통령을 따라, 최종원은 지난달 겨울 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는 남아공 더반으로 날아갔습니다. 다 차려놓은 밥상에 젓가락 하나 달랑 들고 주빈으로 끼어든 거지요. 자크로게 IOC위원장의 입에서‘평창’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한국 유치단은 함성을 지르며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막말 종결자 최종원과 기쁨을 함께 나누려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야당이 집권하면 감옥에 가게 생긴 이명박 대통령도, 김진선 특임대사도 술과 욕이 취미라는 이 평창 출신 국회의원과 얼싸안고 감격을 나누기는 거북했겠지요.
평창이 안됐더라면 하마터면 큰 일이 벌어질 뻔 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막말 종결자가 자신의 특기라는 술 한잔 걸치고, 취미라는 욕설 한마디 안 뱉었을 리가 없지요. IOC 위원들에게 말입니다.
“IOC 집구석 하는 짓거리가 이꼴이다. 위원이라는 자들이 전부 돈 훔쳐 먹고 놀아나고… 이번에 평창 안찍은 사람들은 감옥가야 한다….”
 
‘못난 재벌 2세 종결자’
 
요 몇 달 새 한국에서는 종결자라는 말이 대유행입니다. 인터넷과 TV 예능프로, 스포츠 신문의 연예기사 등에서 주로 쓰이다가, 요즘은 일상의 대화에서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사용합니다. 잔소리 심한 마누라는 졸지에‘바가지 종결자’로 찍혀 기가 팍 죽어버리지요.
인터넷에 떠있는 종결자의 뜻은‘절대적으로 우위를 점할 만큼 월등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뜻하는 말’로 풀이 돼 있습니다. 영화 <터미네이터>를 중국에서는 종결자(終結者)로 번역해 제목을 달았는데 여기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구요, <와우>라는 인터넷 게임의 아이템에 종결자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는데 여기서 차용됐다는 설도 있습니다.
<종결자 닷컴>이라는 인터넷 카페도 등장했습니다. 캐치프레이즈로“대한민국은 지금 종결자 열풍”이라는 구호를 달았더군요. 꿀벅지 종결자, 장례식장 종결자, 간큰 직업 종결자, 거짓말 종결자 등등… . 별의 별 종결자가 하루에도 수백개 씩 새로 만들어져 나옵니다.
요즘 주목받고 있는 종결자는 ‘못난 재벌2세 종결자’입니다. 바로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이지요. 재벌2세나 3세 중에는 철부지 궁도령(宮道令) 스타일의 기행(奇行)으로 국민의 눈총을 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조남호 회장은 대기업 오너 경영자가 가져서는 안 될 무능·무책임·무항심(無恒心)의 치명적 결점을 고루 갖춘 재벌 2세 같습니다.
한진 중공업 사태로 국회 청문회가 열리게 되자 그는 지난 6월 17일 청문회 직전 수빅 조선소가 있는 필리핀으로 도피성 출국을 해 두 달 째 돌아오지 않다가 며칠전 비밀리에 귀국했습니다. 회장이‘야반도주’를 해 버리는 바람에 쉽게 해결될 것 같던 한진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판이 커졌지요. 이제는 기업의 문제나 경제의 문제에서 사회 문제와 정치의 문제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사측에 다소나마 동정적이던 시중 여론과 정부 여당의 입장도 돌변해 조남호는 고립무원에 갇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조남호 올라오고 김진숙 내려와야
 
민주당 정동영 최고의원은 요즘 한진중공업 때문에 바쁩니다. 시위근로자들을 위로방문하거나 희망버스를 타고 당내에서는 라이벌인 손학규 대표한테 버스를 타지 않는다고 삿대질을 하는 등 한진사태를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영리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가 온다면 크레인 위에 올 것이다. 김진숙 민노총지도위원이 고통스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85호 크레인이 예수가 오실 곳이다.”
정동영 의원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예수까지 끌어들이며 김진숙 영웅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예수님이 시쳇말로 어디 아프지 않다면 여자 혼자 세상을 향해 증오와 분노의 주먹질을 해대고 있는 지상 35미터 고공 크레인에 설마 강림하시지는 않겠지요.
한진중공업 영도도선소는 객관적으로 봐 거의 회생이 불가능한 기업입니다.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 같은 거대 조선소와 비교할 때 이미 경쟁력을 잃었습니다. 잭 웰치나 마스시다 고노스케같은‘경영의 귀재’들을 모셔와 회사를 맡긴다 해도 해법은 대량 해고를 통한 구조조정이나 직장 폐쇄 같은 극단적인 선택 밖에 달리 뾰족한 방도가 없어 보입니다.
한진의 영도조선소는 8만평 땅에 독(dock)이 네 개 밖에 없는 데다 길이도 300미터 내외여서 대형 컨테이너선을 수주해도 배를 만들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한진은 2007년 필리핀 수빅에 영도의 9배 규모인 새 조선소를 건설했지요. 영도는 지난 3년간 한건의 수주실적도 올리지 못했고, 한진중공업의 영업이익은 대부분 부가가치 높은 대형선박을 건조할 조건을 갖춘 수빅에서 나왔습니다.
지난해 12월 회사가 영도 조선소 전체 노조원 1,200명 중 400명에 대한 구조조정 방침을 밝히자 노조는 곧 총파업에 들어갔습니다. 3년 동안 사실상 식물상태에 빠져있던 회사의 어려움을 노조원들이라고 모를지 없겠지요. 이들 중에는 전망 없는 회사에 남아 투쟁이나 벌이는 것보다 퇴직금과 위로금을 챙겨 다른 일자리를 찾는 게 낫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많아 노사분쟁은 어렵지 않게 실마리는 찾는 듯 보였습니다. 헌데 노조원도 아닌 김진숙이라는 열혈 노동꾼이 끼어들고 강경 좌익 노동단체와 시민단체, 일부 야당이 이를 정치 문제화하면서 일이 복잡하게 꼬였습니다.
그때 조남호 회장이 국회 청문회에 참석해 회사가 처한 어려운 경영상의 애로를 진솔하게 설명하고 국민과 정치권의 이해와 협조를 구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국민 여론, 특히 영도 주민들의 우호적인 여론을 등에 업고 근로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노사협상을 마무리 할 수 있었을 겁니다. 글로벌 시대의 국제 경쟁력을 잃은 영도 조선소가 회생할 수 있는 제3의 길이 모색될 수도 있었겠지요. 헌데 이 황당한‘재벌 2세 종결자’는 비겁하고 무책임하게 야반도주를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는 8월 17일 국회는 청문회 일정을 다시 잡고 조회장에게 출석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조남호는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올라오고, 김진숙은 고공 크레인에서 지상으로 내려오고… . 해법은 예수님이 아니라 이 두사람에게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허망한 미국이민 종결자
 
앞집의 제임스 아빠도, 옆집의 리차드 아빠도 잡을 잃었습니다. 건너 집 잔의 부모는 10년이나 해온 세탁소를 폐업하고 실업자가 됐습니다. 미국의 실업률은 9%대라지만 일자리를 잃은 한인의 비율은 이보다 훨씬 높은 것 같습니다. 한인 자영업소의 폐업율도 옆집에 한 집 꼴로 10%는 넘을 것이라고 한 부동산 에이전트는 전하더군요.
Living(생활)이 아니라 Surviving(생존)을 위해 숨 가쁘게 달려 온 금융위기 이후의 지난 3년이 S&P의 미국 국가신용등급 하향조정이 몰고 온 전 세계적 경제불안으로 막바지 파국을 향해 치닫는 모습입니다. 200만 재미교포들은 이제 가엽게도 ‘미국 이민의 허망한 종결자’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제임스 아빠도, 리차드 아빠도 달랑 lay-off 통고 한마디로 직장을 잃었습니다. 퇴직금도, 연금도 없는 ‘알몸 해고’지요. 한국 노동계가 만악(萬惡)의 근원이라 매도해 마지않는 임시직-구조조정의 잔혹한 미국 버전입니다. 한국 근로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하면 수천만, 수억원의 퇴직금과 명퇴 위로금을 받습니다. 해고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걸고, 파업을 할 때는 조업방해, 무단검거, 기물파손, 심지어 자기가 다니던 회사에 불까지 지르며 행악을 부립니다. 그래도 감옥 가는 일은 거의 없지요. 미국에서는 해고에 불만을 품고 회사 문짝하나만 걷어차도 수천달러의 벌금에 잘못하면 jail 구경까지 하게 됩니다.
‘1인 시위 종결자’김진숙 씨가 고공 크레인에서 내려오면 미국에 한번 초청하면 어떨까요? 억울하게 퇴직금도 못 받고 직장에서 쫓겨나도 회사 문짝하나 걷어찰 자유도 없는 불쌍한 재미교포 근로자들을 대신해 여기서 고공시위 같은 퍼포먼스를 한번 화끈하게 열어주면 어떨까요?
‘종결자’들은 많은데 뭐하나 시원스레   ‘종결’되는 일은 없는 참 스산한 세상입니다.
                                                                                                                           <2011년 8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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