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北 주민 관련 사건 재판 관할권 인정 여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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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법원이 최근 북한 주민이 한국법원을 상대로 유산 상속을 위해 제기한 ‘친자확인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내려 북쪽에 남겨둔 자녀가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북한주민의 각종 소송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같은 사실에 미국내 실향민 동포사회를 포함해 이산가족을 둔 동포들이 크게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는 미국에 있는 실향민 부모를 상대로 북한에 있는 자녀가 소송을 할 수도 있는 판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 법원에 가족 소송을 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으며 실제로 북한 주민에게 유산을 배분 하라는 판결도 나왔다.  이같이 남북 주민들간의 재산권 문제와 관련해 북한에 재산을 둔 대한민국 국민의 재산권 문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미주에 있는 이산가족이나 실향민들이 크게 관심을 두고 있다. 이같은 문제는 분단국가인 대만에서도 발생하고 있으며, 과거 동,서독 분단 때도 많았다. 한편 한국정부는 지난해 5월 정부 입법으로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 관계와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전면 시행하고 있으나 많은 동포들이 모르고 있다.
<성진 취재부 기자>

LA근교 동부 로렌 하이츠에 거주하는 B씨(78)는 6.25전쟁 때 황해도에서 살다가 남쪽으로 피란을 왔다. 북쪽에서 살때는 집안이 대지주로서 ‘만석꾼 집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최근 한국 대법원에서 북한 주민이 낸 소송에 승소판결이 나왔다는 소식에 “통일이 되야 그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면서 “우리같은 실향민이 두고온 북한 고향땅 재산권은 어떻게 되는가”라며 관심을 나타냈다.



남가주재미이북도민총연합회장을 지낸 최창준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미주홍보국장은 “우리 실향민으로서는 매우 관심 갖는 사항이다”면서 “북한 주민의 소송도 한국법원이 받는다면, 북한 측도 한국 국민의 소송도 받아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앞으로 실향민들에게 홍보활동으로 법 내용을 알리겠다”고 밝혔다.
남북한간의 재산권 문제가 부각된 것은 북한에서 살다가 남한으로 피난와 정착하고 새로 결혼하여 살아가면서 재산을 모았다가 사망한 경우, 이 재산의 일부를 북한에 있는 자녀들이 양육 받을 수 있는가 등에 사항이 논란이 되어 왔다.


미국 동포들 상대 소송도













이같은 문제들은 지난동안 남북이산가족상봉을 통해 북에 있는 가족들이 남쪽으로 간 부모들이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남쪽의 부모들은 두고온 북쪽 가족들의 생계비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 정권은 이를 이용해 남쪽 부모들이 북쪽에 기부를 하도록 유도해왔다.
한편 한국의 역대 정권들, 특히 ‘10년 좌파정권’ 시절인 김대중-노무현 정권시절에는 북한의 이런 공작들을 눈감아 주었다. 이후 좌파정권이 물러난 이후 한국 법무부는 독일, 대만 등 해외 사례를 참고해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관계와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을 만들어 작년 5월부터 시행 중이다.
정부입법으로 2011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관계와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이 지난해  5월 11일부터 전면 시행됐는데 이법에 따라 북한주민이 남쪽에 있는 피란간 부모나 형제들의 재산권 상속 등에 대한 법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이런 법 시행과정으로 북한 주민에게 상속하거나 증여할 남한 내 재산은 법원이 선임한 재산관리인이 관리하게 되고, 처분 및 반출에 대하여 법무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북한주민의 남한 내 재산의 보호와 관리가 가능하게 됐다.



법원에서 선임한 재산관리인을 통하지 않거나 법무부장관의 허가를 받지 않고 북한주민의 남한 내 재산을 거래하는 행위는 무효로 하는 한편, 북한주민 소유의 부동산은 등기부에 주소를 북한으로, 구분가능한 고유번호를 등록번호로 각 기재토록 함으로써 거래 안전을 보호하는 장치도 마련되었다.
결국 원칙적으로는 남한 재산이 북한에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유 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에 남한 재산을 보내면 현실적으로 가족에게 모두 가기 보다는 김정은 정권이 이용할 가능성이 많아 한국 정부는 허가 절차를 매우 까다롭게 만들었다. 법조계는 윤씨 동생들이 탈북해 남한에서 유산을 분배받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이 특례법에 따라 북한에서 결혼했다가 남쪽으로 와서 다시 결혼 한 중혼의 경우 후혼의 취소가 제한되었다. 그리고 북한주민이 남한주민을 상대로 상속 등을 원인으로 재산 반환을 청구하는 경우 남한주민의 기여분이 인정되고 반환범위가 제한되는 등 남북주민 사이의 신분관계 안정과 재산관계의 합리적인 조정을 위한 특례규정들이 적용된다.
이 법과 관련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을 원하면 한국 법무부 통일법무과 박상진 검사( 02-2110-3225)에게 연락하면 된다. 아울러, 법무부는 동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제정을 통해 재산관리인의 신고 사항, 북한주민 재산의 처분과 반출 허가절차 등을 마련하여 위 특례법이 차질없이 시행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북한가족 대리 소송 가능













 ▲ 북한주민 소송맡은 한국법원
이법에 따라 첫 특례법 적용으로 지난달 30일  한국 대법원이 북한에 사는 주민이 친자임을 확인하는 첫 확정판결을 내림에 따라 유사 소송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에서 보듯 친자로 인정받기까지는 힘든 과정이 필요했다. 친자임이 확인되고 고인의 유산 상속도 확정됐지만, 이 유산이 실제로 북한 주민에게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전달될지는 아직은 불투명하다.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던 윤모(1987년 사망)씨는 지난 1951년 1ㆍ4 후퇴 때 아내와 자녀 5명(1명은 나중에 사망)은 북한에 남긴 채 장녀 윤모(78)씨만 데리고 남한으로 피란했다. 고인은 1959년 서울에서 다시 결혼해 자녀 넷을 더 낳았고 병원을 운영하다 지난 1981년 뇌출혈로 쓰러져 몇년 뒤 세상을 떠났다.
장녀 윤씨는 2008년 한국에서 미국 선교사를 만나 북한 동생들의 소재를 파악하고 이들에게 소송 및 재산 관리권을 위임해 줄 수 있는지 확인을 요청했다. 미선교사는 그 후 수차례 평양에 가 윤씨 동생들로부터 자필 진술서와 소송위임장 등을 받아 장녀에게 건넸다.
2008년 12월 100억원대 유산이 남한에 있는 가족에게만 상속되자 장녀 윤씨는 지난 2009년 북한 동생들을 대신해 법원에 친자 확인 및 상속 회복 소송을 냈다. 이에 2011년 7월 서울중앙지법의 조정을 통해 북한 가족에게도 유산을 나눠주도록 했다. 그러나 법원은 북한 가족 몫의 유산을 장녀가 아닌 국가 가 정해준 재산관리인(변호사)이 관리하도록 결정했다.
우선 북한 주민과 관련된 사건의 재판 관할권이 우리나라 법원에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법원은 ‘당사자 또는 분쟁이 된 사안이 대한민국과 실질적 관련이 있으면 국제재판 관할권을 가진다’는 국제법에 따라 대한민국 법원이 재판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원고들은 남한 내 친자관계의 법적 확인 등을 위해 대한민국 민법을 근거로 소송을 냈다. 법원은 대한민국 민법을 적용해 이 사건을 판단할 수 있다고 봤다.
북한 가족이 낸 소송위임장 등 서류의 진위에 대해 법원은 “서류를 자필로 쓰는 등 소송을 위임한 사실은 분명해 따로 공증이 필요하지 않다”고 인정했다. 이어 “재판부에 제출된 모발 및 손톱 등을 감정 기관에 보내 분석한 결과 북한 가족이 고인의 자녀인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북한의 윤씨 동생들이 받을 수 있는 재산은 비공개 대상이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줄잡아도 20억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동생들은 이 재산을 곧바로 전달받을 수 있을까.
법무부는 작년 5월에 시행된 특별법에 따르면 법원은 재산관리인을 선임해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재산을 관리하도록 했고, 이 재산을 북한에 반출할 때에는 법무장관의 사전 허락을 받도록 했다.






북한 주민 관련 소송 사례 거의가 재산관련한 소송

2001년 황해남도에 거주하는 손모씨 등 3명은 서울에 사는 맏형을 통해 “2000년 사망한 아버지의 친생자임을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북한 주민이 남한 법원에 낸 최초 소송이었다.
당시 손씨 등은 “6ㆍ25 때 월남한 아버지가 북한에 있는 아내와 자식들에게 재산 절반을 물려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주장했다. 이후 손씨 등은 이듬해 아버지의 후처 및 후처 자녀와 재산 분할 문제를 합의했다.
2005년에는 북한에 사는 벽초(碧初) 홍명희의 손자 홍석중씨가 자신의 동의 없이 ‘황진이’’를 출간ㆍ판매했다며 남한의 출판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이 사건은 출판사가 홍씨에게 1만달러를 지급하는 조정으로 마무리됐다.
북한 주민 이모(86)씨는 “경기 김포의 땅(450㎡)이 부정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고 현재 김포시 등이 소유하고 있다”면서 2008년 김포시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이씨는 2004년 7월 이산가족 상봉에서 만난 남한의 아내가 수절하며 어렵게 사는 사실을 알고 남한에 있는 둘째 딸을 재산관리인으로 내세워 소송을 진행해 2011년 승소 판결을 받았다.
재산 상속을 위해 탈북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산가족 상봉에서 만난 할아버지로부터 매달 생활비를 송금받아온 손녀가 할아버지가 죽고 새할머니가 생활비를 보내지 않자 재작년 탈북해 법원에 상속회복 소송을 냈다.
독일에서도 1990년 통일 전까지 동독 주민이 서독에 상속 재산을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유욱(50) 변호사는 “1979년 동독 주민이 승용차 구입을 위해 서독 은행의 상속 예금을 쓰려다 연방은행으로부터 불허 처분을 받자 소송을 냈고, 서독 연방헌법재판소는 동독 주민의 손을 들어줬다”며 “이 사건을 계기로 ‘개인적 소비’를 위한 거래에도 반출이 가능해지며 허가 기준이 완화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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