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샤인(구두닦이) 올드맨’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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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미화원은 우리가 흔히 ‘구두닦이’(영어로는 슈샤인)라고 부르는 직업의 명칭이다.
보통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이 ‘구두닦이’라는 직업에 대해 흔히 갖는 감정은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구두를 닦아 벌이를 한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지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때로는 사람 좋은 아저씨가 비좁은 구둣방 안에 앉아 인생을 이야기하는 훈훈함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제는 구두를 닦아주는 기계까지 등장한 세상이고, 외국에서는 구두닦기 기업까지 나타나는 세상이 되었지만 구두닦기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별로 달라지 않았다. 코리아타운에는 쇼핑몰, 사우나 등지에 ‘슈사인 맨’들이 있다. 한때는 50여명 이상이 타운에서 영업(?)을 했지만 이제는 쉽게 만나 볼 수가 없어 구두를 닦으려해도 딱히 찾아갈 곳이 없다.
LA한인타운의 애환이 얼키고 설킨 올드 슈샤인 보이들의 현주소를 찾아가 보았다.
<성진 취재부 기자>

코리아타운 8가에 자리잡은 큰가마 식당 주차장 입구에 한 70대 노인이 열심히 구두를 닦고 있다. 노인의 옆 자리에는 이미 윤기가 빤짝이는 구두 서너 켤레가 놓여있다.  벌써 40여년째 타운에서 구두를 닦고 있는 엄 할아버지는 자신을 LA코리아타운에서는 ‘아마도 가장 고참’이라로 여기고 있다.
요즈음은 하루에 20 켤레를 닦는 일이 드물다고 한다. 그는  “하루에 20켤레 이상을 닦게되면 살아가는데 별로 문제가 안된다”며 “요즈음은 구두닦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며 한숨을 쉰다. 한 켤레 닦는데 5 달러를 받고 있다. 부츠인 경우는 좀 더 받는다고 한다.
지난 70년대부터 구두닦이를 시작했으나, 어떤 때는 다른 직업을 가져 보기도 했으나 적성이 맞지 않아 구두닦이를 아직도 하고 있다. 그에게도 단골손님이 있다. 여러번 자리를 옮겨도 용케도 소문을 듣고 찾아준다며 고마와 한다. 구두를 오래 닦다보니 구두를 보면 주인의 스타일도 어느 정도 짐작을 하게된다고 한다. 깔끔한 사람인지, 급한 사람인지를 분간한다.


구두는 주인의 신체 일부분


엄 할아버지는 “구두를 오래도록 신고싶다면 구두관리를 잘하라”라며 “마치 자동차를 오래도록 타고 싶다면 관리가 중요한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따라서 구두에 광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적당한 구두를 닦아 구두의 수명의 연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엄 할아버지는 “구두도 사람 피부처럼 관리를 잘하면 오래동안 멋있게 신고 다닐 수 있다”면서 “구두닦는 것도 화장하는 것으로 생각해서 닦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기술로 구두약과 물만으로도 광택을 내고 있다. 그리고 그는 구두에 광을 내는 작업은 구두관리의 일부분이라며 구두가죽을 오래 가도록 하는 것과 흠을 덮는것 등은 또 다른 손질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타운에서 40여년을 구두를 닦다보니, 이 분야에 이름이 알려져, 가끔 젊은 사람이 찾아와 ‘한 수’ 배우겠다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한다. “대부분 중국 동포들이 아르바이트 겸으로 구두를 닦으려고 하지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며 “구두닦이에도 정성이 담기지 않으면 구두가 제대로 광택을 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엄 할아버지는 우선 구두를 닦기전에 구두끈을 풀고, 솔로 먼지 깨끗이 털어버린 다음 클리너 헝겁으로 구두 곳곳에 오염을 제거한다. 그런다음 구두약을 바르는데 이를 ‘영양 공급’이라 한다. 이 부분에서 정성을 들지 않으면 나중 광택이 나질 않는다.  영양공급 후 일단 구두에게 휴식을 취한다.
다음 구두약이 잘 흡수될 수 있도록 강하게 솔질하고, 구두 손질용 헝겁으로 여분의 크림을 중간에 수시로 물을 적시는 데, 깊이 있는 광택을 내기 위한 수단이다.
구두닦이는 구두약이 좋아야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노하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다양한 구두 가죽의 종류나 질을 파악하여 거기에 알맞는 약칠과 기술이 병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구두와 함께 평생 한길


어느날 누군가 ‘LA공항에서 닦으면 큰 수입이 생길 것’이라고 하여, 구두통을 새로 만들어 공항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공항경찰이 다가와 “유 아 아웃!”이라고 하여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대로 물러설 수가 없어 공항에서 구두를 닦는 방법을 물었다.  알아보니 공항내에서 영업을 할 수 있는 라이센스 등을 구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백 달러의 돈을 들여 라이센스 등을 구비해 공항 한 구석에 자리를 폈다. 한 3일 정도 구두를 열심히 닦았는데, 또 시큐리티 가드가 다가와 ‘청소비를 내지 않았다’고 “유 아 아웃!” 이라고 하는 바람에 아예 공항에서의 꿈을 걷어치웠다.
그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의 기술을 계승한 제자(?)가 없다는 점이다. 인생의 황혼길에 아직도 구두를 놓지 못하는 엄 할아버지는 “그래도 구두에 광택을 내고 있으면, 내 마음에도 윤기가 흘러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현재 LA한인타운 내에서 슈사인 보이를 만나려면 동서사우나 현대사우나 윌셔사우나 등 사우나 업소와 엄 할아버지처럼 가마솥 식당 앞과 인근 쇼핑센터에서 만날 수 있지만 여간해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최근에는 구두약 성분이 좋고 구두의 재질이 좋아 약만 바르고 문질러만 줘도 광택이 나서 과거처럼 구두닦이를 찾아가는 번거로움이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구두닦이에 대한 향수를 찾는 애호가의 발길들이 슈샤인 보이를 향한다.








일본인으로 약관의 나이에 길거리 구두닦이로 인생의 첫 발을 내딛은 후 구두닦이 장인의 꿈을 향해 가는 하세가와 유야씨를 “슈 샤인 마스터(shoe shine master)”라고 부른다.  그의 꿈은 ‘세계적 구두닦이 장인’이 되는 것이다.
그는 2003년 초,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하세가와는 가난한 집안살림을 돕기위해 구두를 닦는 일에 뛰어들었다.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고 어머니를 모시는 집안 상황때문에 제철소와 영어회화 교재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건강이 나빠져서 퇴직하게 되면서 남은 돈이 바닥을 드러낼 무렵, 뭘 할까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게 구두를 닦는 일이었다.

통장 잔고 5천엔을 들고 슈크림과 손질을 위한 수건, 의자 2개를 구입한 후 도쿄역 입구에서 그의 인생을 바꾼 대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도 초보라는 한계가 드러나 손님들로부터 불평을 들었다.  구두닦이의 마무리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손님들의 불평이 이어지면서 고민 끝에 다른 구두닦이들의 기술을 염탐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부실한 구두약과 장비에도 있었지만, 구두 손질의 노하우가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구두닦이 수행에 나섰다. 우선 의류회사에 취직하여 주중에는 회사 근무, 주말에는 구두닦이 수행을 계속하게 됐다. 유명 구두 케어 샵을 찾아 기술을 습득했고, 각종 강습을 통해 구두와 가죽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고 자신만의 구두약 레시피를 개발하는 등 부단한 노력을 통해 실력을 키웠다.












 
노력한 결과로 호평이 이어지고, 출장서비스 제의가 들어오자 의류회사를 퇴직하고  본격적으로 길거리 영업을 시작했다.  주위 기업들과 출장서비스 계약을 체결하기도 하고, 택배 수선 서비스도 개시하고, 백화점 VIP 이벤트, 출장 등을 통해 이름이 알려지면서 언론으로부터 각종 인터뷰, 출연 요청이 쇄도해 구두를 닦기 시작한 지 3년여 만에 그는 일약 업계의 스타로 발돋움하게 됐다.
그러나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 왔다. 길거리에서 구두를 닦기 위해서는 관할 경찰서와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신규 허가가 사실상 봉쇄된 상황이라 그 역시 무허가 영업을 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집중 단속이 시작됐다. 영업을 중단하게 될 처지에 놓이자 그는 아예 새 살림을 차리기로 결심해  Bar 형태의 구두 관리 전문점을 열었다.
그 아이디어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아늑한 공간에서 누릴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와 함께 구두 상태에 따라 집중 케어, 수선을 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를  다양화시키면서 고객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슈사인 뿐만 아니라 구두에 대한 종합적인 관리가 가능한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지난 2010년 그는 직원을 데리고 휴가 차 영국 런던을 찾았다.  구두 애호가들이 꿈꾸는 세계 최고의 비스포크(Bespoke, 주문 제작) 슈즈 메이커 존 롭 런던과 영국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의류 브랜드 해킷 런던 등 두 곳을 방문했다.
존 롭에서는 구두 제작의 최종 마무리를 맡는 피니싱 담당 장인에게 영국과 이탈리아식 관리의 차이를 배우고, 해킷에서는 직접 구두 관리 서비스 타임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2011년에는 뉴욕 길거리에서 구두를 닦는 시범도 보였다.
누구도 걷지 않은 미지의 길을 헤쳐 나가는 청년 하세가와 유야는 진정 구두를 닦는 데 인생을 건 사람이다. 고작 30대에 불과한 청년이지만 ‘세계적 구두닦이 장인’이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이같은 하세가와 유야의 이야기가 한국에도 소개되자 많은 네티즌들이 감탄했다.
한 네티즌은 <처음 보고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감탄했어요 ㅋ 우리나라에도 누군가가 시도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글을 올렸다.  또 다른 네티즌은 <저런 사람을 보고 선구자 라고 하던가… 존경할만하군요. 짝짝짝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생각나더라구요.
오늘부터라도 열심히 살아야 겠습니다^^>(출처: toffifee.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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