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취재> 자고나면 무참히 파기하는 朴의 대선 공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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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희 전 청와대 비서관(박스 사진)이 검찰복귀와 관련 현직 검사는 청와대 파견근무를 할 수 없다는 검찰청 조항을 무시하고 재 임명하여 논란이 일고 있다. 후임 우병우 변호사는 대표적인 공안통 검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장본인으로 공안정국을 예고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9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해 사과하며 후속 대책을 발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해경의 해체와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의 역할 축소다. 또한 박 대통령은 관피아를 척결하기 위한 각종 대책도 발표했다. 그런데 다음날 재미있는 언론기사가 보도됐다. 박 대통령 임기 중 임명된 공공기관장 중 절반이 낙하산 출신이었다는 것.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공공기관 낙하산 철폐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정권을 잡고 보니 무차별 낙하산을 공공기관장에 임명하고 있었던 것. 그가 내세운 공약이 헌신 버리듯 버려졌다. 뿐만 아니다. 이미 논란이 일었던 기초연금 뿐만 아니라 의료정책 등 그가 대선에서 내세웠던 공약들이 소리 소문 없이 폐기되거나 뒤바뀌고 있다. 반값 대학등록금과 같은 이슈는 아예 꺼내지고 않고 있다. 그는 이런 공약들을 내세워 노년층을 비롯한 중년층 더 나아가 젊은층의 표심까지 잡았으나 주요 공약을 지키지 않으면서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한 셈이 됐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의 눈물을 국민들이 신뢰하지 않는 것도 다 이런 전례 때문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 신뢰를 가장 중요시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대통령이 정작 대통령이 되고나니 자신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현실에서 대한민국은 의망을 찾기가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선데이저널>은 본국 언론에서 주목하지 않았지만, 이미 뒤바뀌거나 폐기된 박 대통령의 공약들을 파헤쳐봤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지난주 본지에서 보도했던 우병우 민정비서관 인사와 관련해서도 대통령의 공약은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 우 비서관 전임이었던 이중희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검찰에 복귀한 것도 공약파기 사례 중 하나다. 이 전 비서관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에 대한 청와대의 특별감찰을 실무적으로 주도한 인물이다. 법무부는 19일 “최근 검사 임용을 신청한 이 전 비서관에 대해 통상의 검사 임용절차를 거쳐 이날 서울고검 검사로 임용했다”고 밝혔다. 이 전 비서관은 당분간 법무부 산하 법무연수원에서 연구위원으로 활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지검 부장검사로서 예금보험공사 금융부실책임조사본부장으로 파견나가 있던 이 전 비서관은 지난해 2월 검찰에 사표를 낸 뒤 현 정부 초대 민정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1년3개월간 일하다 이달 초 물러났다. 법무부가 이날 이 전 비서관을 검사로 재임용함에 따라 17년간 현직 검사를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보내기 위해 편법으로 활용해 온 ‘검사 사표-민정비서관 근무-검사 재임용’이라는 관행이 또다시 되풀이된 것이다.




이중희 전 비서관 검찰 복귀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검사의 외부기관 파견을 자제해 정치권 외압을 차단하겠다”고 약속했다. 박 대통령이 검사 파견을 자제하겠다고 한 외부기관에는 청와대도 포함돼 있었다. 박 대통령의 공약은 종래 관행처럼 되풀이돼 온 검사의 편법적 청와대 파견을 근절하겠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졌다. 이 때문에 이 전 비서관이 민정비서관에 임명되는 과정에서 “민정비서관을 그만둔 뒤 검찰로 복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이날 이 전 비서관을 검찰에 재임용함으로써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깨버렸다.













▲ 지난 2011년 대선당시 공약집을 발표하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 그러나   대부분의 공약들이 실현되지 않거나 폐기되어 거센 비난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현직 검사는 청와대 파견근무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의 검찰청법 조항은 1997년 만들어졌다. 검사가 청와대 파견근무를 하면 청와대의 의중을 검찰에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하게 되니 그걸 막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그 후로 정권마다 검사에게 일단 사표를 쓰게 해 신분을 세탁한 뒤 청와대 근무를 시키다가 슬그머니 다시 검사로 임용하는 식의 꼼수로 법 조항을 깔아뭉갰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권에서 검사 수십명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행정관으로 일하다가 인사 특혜를 받아 법무부 장·차관이나 검사장, 부장검사 같은 요직을 맡으며 검찰로 되돌아갔다. 이런 검사 가운데 일부는 정권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며 검찰 조직은 물론 스스로를 망가뜨리곤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검사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외부 기관 파견을 제한해 정치권의 외압을 차단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약속은 검사의 청와대 파견을 받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중희씨의 검사 재임용은 편법으로 그때의 공약을 피해간 것이다. 청와대가 법 규정과 대선 공약을 우습게 본다는 뜻이다.


헌신짝 버리듯 내버리는 공약


세월호 침몰 참사는 여객선과 승객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 부처와 감독 기관, 선사인 청해진해운 등이 법과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일어났다. 검찰은 이런 잘못을 바로잡겠다며 대대적으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대통령도 그런 오랜 적폐를 바로잡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참사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대책을 발표하는 바로 그날 법무부는 대선 공약을 파기하고 법을 무력화하는 꼼수 인사를 결행했다.
인사 문제와 관련해서 공약을 파기한 것은 비단 이런 사례 뿐만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이던 지난해 1월 공공기관 인사와 관련해 “새 정부에서 낙하산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하지만 정권이 출범한지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 새로 선임된 공공기관들 가운데 절반가량이 낙하산 인사인 것으로 드러났다. 20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2월 25일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선임된 공공기관장 153명 중 상급부처나 정치권 출신, 대통령 측근 등 소위 낙하산 인사로 분류할 수 있는 인사는 전체의 49.0%인 75명에 달했다.












 ▲ 부통령으로 불리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공안정국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김옥이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이사장, 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 박영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 손범규 정부법무공단 이사장, 원희목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원장, 이상권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김성회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김선동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원장, 정옥임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이사장, 박보환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등은 모두 친박인사들로 꼽히는 공공기관장이다. 또한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 변추석 한국관광공사 사장처럼 교수 등 순수 정치권 출신은 아니지만 박 대통령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나 당선인비서실 등에 참여한 인물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 내용을 담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지만 이런 약속들이 지켜질 것이라고 보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 비단 이번뿐만 아니라 이미 수차례 공약들을 밥 먹듯 뒤바꿨기 때문이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의 공동대표인 안철수 대표가 기초공천 폐지를 주장했다가 파기하면서 여론의 역풍을 맞았지만 사실 기초공천 폐지는 박 대통령의 주요 대선 공약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 부분에 대해서 한 마디 언급도 없이 당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며 모른 체 했다. 오히려 안 대표가 이를 추진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새누리당은 이를 폐기하면서 최 원내대표가 사과했을 뿐이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그런 점에서 사과를 하려면 대통령이 사과해야 했다. 사과의 논리 역시 수긍하기 어려웠다. 최 원내대표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가 “수많은 후보들이 난립해 선거를 혼탁하게 하고 지역사회를 혼란에 빠뜨린다”고 했다. 이런 부작용은 누차 지적된 만큼 새누리당도 안다. 새누리당은 그런 부작용을 알고도 국민에게 정당공천 폐지를 약속한 셈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지키지 못했다”는 최 원내대표의 말과 달리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공약이 처음부터 지킬 생각이 없었던 약속이었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박 대통령의 공약은 이런 식으로 대부분 폐기됐다.



진정성 없는 사과도 지겹다


더 큰 문제는 공약파기에 대한 대통령의 자세다. 대통령은 이처럼 많은 공약들이 폐기되거나 수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과한 것은 단 한 차례뿐이다. 그는 지난해 9월 26일 기초연금 공약 파기와 관련해 국무회의 석상에서 “어르신들 모두에게 지급하지 못하는 결과에 죄송한 마음”이라고 사실상 사과의 뜻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공약 포기는 아니며 실행에 옮기지 못한 부분은 임기 내에 반드시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은 당시에도 이번 세월호 참사 때처럼 국무회의에서 한 차례 사과하는데 그쳤다.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노인 복지 공약의 전면 후퇴는 대통령이 국민 앞에 직접 나서서 대국민 사과를 해도 모자랄 사안이었다. 사과 대상도 당연히 전체 국민이 돼야 했다.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 마무리 발언 형식으로 간접사과의 뜻을 밝힌 것부터가 공약파기에 대한 안이한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모든 공약을 수정하기 전 공약 이행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흔적도 찾기 어렵다. 여러 가지 대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취임 몇 개월 만에 공약을 포기하는 것은 결국 공약을 지킬 의지나 능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박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인 지난 1월 “공약을 발표할 때마다 재원이 어떻게 소요되며, 실현 가능한지 따지고 또 따졌다”고 말했다. 공약을 철저히 준비했다는 것인데, 불과 8개월여 사이에 많은 공약이 공수표가 돼가고 있다. 박 대통령이 금과옥조처럼 내세운 신뢰와 원칙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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