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민간인 해킹 의혹에 대한 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고 있지 않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민간인 해킹 의혹이 확산되자 국회 정보위원회에 참석해 “(해킹 프로그램인) RCS 프로그램 관련 모든 일은 임 과장 주도로 해왔고, 임 과장이 모든 책임을 져왔다”라며 “임 과장이 사망하면서 그 전모를 알 수 없게 됐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지난주 본지가 보도했던 것처럼 임 과장이 해킹 파문의 핵심 인물이 아니라는 정황은 이곳 저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해킹 프로그램을 판매한 이탈리아 ‘해킹팀’에서 유출된 자료를 살펴보면, 국정원은 해킹 관련 장비 운용 권한을 1명이 아니라 5명에게 부여했다. 또 이탈리아 ‘해킹팀’과 접촉할 때도 국정원 측 인사는 2명 이상이 나섰다. 즉, 임 과장 외에도 해킹 프로그램 도입·운용에 관여된 직원들이 더 있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병호 원장의 해명은 국정원이 이미 고인이 된 직원을 ‘희생양’ 삼아 해킹 의혹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의심을 주기 충분한 상황이다. 사태 더 꼬이게 만든 국정원 해명 국정원의 해명은 오히려 더 큰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가관이 투철해서 자살을 택했다면 그가 평소에는 조직의 위계질서나 원칙에 충실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그가 자신한테 파일 삭제 권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독단으로 결정해서 파일을 삭제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실무자에게 대테러 및 대북 관련 자료를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민간인 해킹사건 윗선은 누구냐 결국 국정원이 임 과장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덮어씌우려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것과 다르게 해킹은 조직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해킹팀의 움직임이 대선을 앞두고 빨라진 것을 보면 이런 의심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대선을 보름도 채 안 남긴 2012년 12월 6일. 나나테크가 해킹팀에 보낸 메일 첨부파일을 보면 한 달간 쓸 수 있는 추가 라이센스 30개를 긴급 요청한다. 나나테크 측은 유지 계약에 새롭게 추가되는 내용을 고객의 보스, 즉 상관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이메일에 적었다. 즉, 대선 직전 감청 대상을 늘릴 때 국정원의 윗선이 개입됐거나 최소한 보고했을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다. 2011년 해킹팀 방문 계획에 대해 얘기할 때도 보스의 허가를 얻어야 방문단의 규모를 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4급 직원이 독단적으로 이 일을 했다면, 국정원은 방문단의 규모마저 4급 직원이 정할 수 있다는 희한한 결론에 맞닥뜨리게 된다. 윗선이 있다는 의혹은 이미 국정원 해명이나 직원 명의의 성명서에서도 드러난다. 국정원은 지난 17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담당하는 국정원 직원은 그 분야의 최고 기술자일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임 과장의 사망 이후 국정원 직원 명의로 발표한 성명에는 “순수하고 유능한 사이버 기술자였던 그가 졸지에 우리 국민을 사찰한 감시자로 내몰린 상황을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있다. ‘순수한 기술자’라는 말에는 해킹 전반을 지휘하고 정치적 책임을 지는 ‘윗선’이 있음을 함축한다. 정보위 여당 간사인 이철우 의원은 지난 19일 “이 직원(임 과장)은 자기가 어떤 대상을 선정하고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니었다. 대상을 선정해 알려주면 기술적으로 이메일을 심고 보고하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임 과장이 해킹을 주도했다는 국정원 보고와 어긋난다. 불리하면 국가안보 핑계 공개거부 의혹을 해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삭제된 자료를 공개하는 것이다. 안보 문제와 관련이 된 것이라고 한다면 야당 의원들의 동의를 구하고 그들에게만 비공개로 보여주면 된다. 국가안보 때문이라는 주장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지만 실제로 국가안보와 관련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권안보와 관련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은 “(야당이 요구하는) 로그파일 원본 제출하면 모든 국정원 보안 누출돼서 불가하다”면서 “(로그파일 공개)하면 세계 각 정보기관에서 우리 국정원을 조롱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경민 의원은 왜 국정원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다고 하느냐? 는 질문에 “국가안보 때문이라고 한다”면서 “국정원이 국가 안보와 관련 없는 다른 여러 자료도 역시 내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국정원은 대선개입 의혹을 밝힐 댓글수사 때도 국가안보를 주장했고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서도 국가안보를 내세웠다. 그런데 국정원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사태 때 비밀등급을 급조하면서까지 대화록 전문을 공개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었지만 국정원은 감행했다. 국정원은 유리하면 국가기밀도 망설임 없이 공개하지만 불리한 자료는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비공개를 고집한다. 문제는 국정원이 ‘국가안보’를 내세우며 자료 제출을 거부할 경우 야당의 힘만으로 자료제출을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고발한 이번 사건을 검찰은 서울중앙지검 공안 2부에 배당했다. 하지만 공안 2부에 배당했다는 얘기는 사실상 수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 공안 2부는 2005년 7월 발생한 ‘삼성 X파일’ 사건 당시 국정원 수사를 했던 곳이다. 공안부와 국정원은 기본적으로 업무상 협력 관계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기 어렵다. 공안2부에 배당, 사전에 의혹 차단 앞서 공안 2부서 수사했던 삼성 X파일 사건과 이번 사건은 외부에서 먼저 의혹이 시작됐고, 민간인 사찰 등 정권 차원의 민감한 부분을 확인해야하는 점 등 여러모로 시작이 비슷하다. 공안2부는 2002년 대선 직전에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폭로한 도청 의혹을 수사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한 상태에서 2005년에 터진 삼성 X파일 사건을 다시 맡았다. 삼성엑스파일 사건은 MBC 이상호기자가 안기부 내 미림팀의 도청 원본 파일을 입수해 보도한 것으로 국정원의 충격적인 도청 실태는 물론 삼성 그룹의 대선자금 지원 의혹과 검찰의 금품수수 의혹까지 불거진 사건이다. 공교롭게도 황교안 국무총리가 공안2부장부터 2차장까지 역임하며 사건에 관여했는데 이때 수사결과는 국민적인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
<실체취재> 국정원 민간인 해킹 의혹 ‘갈수록 꼬이는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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