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타운 설정 주민의회 투표만이 최후의 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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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끼리 헐뜯고 물고 싸우는 동안…

‘그들은 우리의 심장부를 파고 들었다’

4·29폭동 이래 코리아타운의 최대 위기 사태라는 ‘코리아타운 구역과 방글라데시 구역 설정 투표’와 ‘코리아타운 노숙자 임시셸터 선정’을 두고 LA한인사회는 5월 한 달을 시위와 투표 캠페인으로 지냈다. 이제 6월 중에는 코리아타운 구역 설정도 19일 투표로 확정되고 노숙자 셸터 문제도 LA 시의회 전체회의에서 판가름 날 예정이다. 이 시점에서 한인사회는 지금까지의 활동을 평가해 앞으로의 방향 설정을 해야 할 것이다. 요즘 흉흉한 소문도 나도는데 만약 방글라데시 타운 투표에서 패배하면 한인들은 5가 북쪽에서는 식당을 운영해도 돼지고기 음식은 팔 수가 없다는 소리다. 방글라데시 사람들 대부분이 믿는 이슬람 종교에서 돼지고기를 안먹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인타운이 이 지경에까지 왔는지 우리 스스로가 반문해야할 시점이고 문제다.
<성진 취재부 기자>

‘코리아타운’(KoreaTown)의 경계

현재의 코리아타운 구역에 방글라데시 타운 설정 관련 투표로 불거진 사태는 주류사회로 볼 때는 코리안이라는 소수 인종과 방글라데시라는 소수 인종이 서로 “땅 가르기” 전쟁으로 비쳐지고 있는 실정이다. 양 커뮤니티 어느쪽도 유익하지 않는 현실이다. 하지만 현행 법 규정으로 구역 설정은 주민의회 투표라는 마지막 방법으로 결판이 나는 지경에 도달한 것이다. 지난 일을 되돌아 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정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애초 방글라데시 커뮤니티가 자기들의 타운 구역을 설정해 달라는 요구는 10년 전부터 제기된 것이다. 당시에 한인 커뮤니티가 방글라데시 커뮤니티와 제대로 대응이나 교섭을 마무리 짓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애매모호한 ‘코리아타운’의 경계

10년 전인 2008년 12월 12일 당시 LA 한인회(당시 스칼렛 엄 회장과 이창엽 이사장)를 포함해 한미연합회(KAC), 한인타운 청소년회관(KYCC)등으로 구성된 ‘한인타운대책위원회’는 한인회관에서 방글라데시 대표단 12명과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양 커뮤니티의 입장을 밝혔다. 방글라데시 커뮤니티는 당시 한인사회와 정식으로 만나기 2개월 전 2008년 10월 LA시의회에 제출한 계획서에 남북으로 3가~윌셔, 동서로 버몬트~웨스턴에 이르는 구역을 ‘리틀 방글라데시’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말하자면 지금의 코리아타운 중심 지역을 자기들과 함께 공유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한인 ‘대책위’ 측은 한인타운 주변에 방글라데시 타운 설립을 추진한다면 적극 지원에 나서는 등 공존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겠지만 한인타운 안에 들어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면서 “105년 이민역사 속에 4·29 폭동을 막아내는 등 한인들탐라본지이 지켜 낸 코리아타운을 분할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주장했었다. 또한 대책위원회는 남북으로 베벌리~피코, 동서로 후버~윌튼 플레이스 까지 코리아타운의 지정학적 구분이 명시된 ‘위키피디아’, LA시 도시개발국의 지도 등 각종 자료를 수집해 LA시 주민의회, LA시 정부, LA 시의원 사무실 등에 제출, 한인타운의 범위를 명확히 한다는 복안이다. 또 코리아타운을 지역구로 둔 허브 웨슨 제 10지구 시의원, 에릭 가세티 시의회 의장 등 친한파 시의원들에게도 협조를 요청하기로 했다. 당시 KAC 그레이스 유 사무국장은 “방글라데시 커뮤니티의 요청은 리틀 도쿄와 차이나타운에 한인 거주자들이 있는 만큼 그 안에 한인타운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라며 “한인들이 힘을 모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똘똘 뭉쳐 공동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방글라데시 커뮤니티 대표들은 한인 커뮤니티의 반대 입장에 대해 “오해가 있다”며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LA 방글라데시 총영사관의 샤밈 아메드 부영사는 “코리아타운 내에 약 1만 5,000명의 방글라데시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현재 이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구역 지정을 요청한 것일 뿐 코리아타운을 차지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다”라며 “다만 ‘리틀 방글라데시’라는 표지판을 설치해 방글라데시 이민자들에게 모국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이 취지”라고 해명했었다.

라본지 ‘리틀 방글라데시’ 지정 반대

한편 당시 방글라데시 커뮤니티가 요구하는 구역을 관장하는 탐 라본지 의원(4지역구)과 허브 웨슨 의원(10지역구)이 이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당시 라본지 시의원은 방글라데시 LA총영사관에 리틀 방글라데시 커뮤니티 명칭 추진에 반대한다는 서한을 공식 발송하기도 했다. 이 서한은 웨슨 시의원과 에릭 가세티 LA시의장 앞으로도 함께 발송됐다. 라본지 시의원은 서한에서 방글라데시 커뮤니티가 타운이름을 지정하려는 구역은 한인타운의 중심이라며 LA시가 정식으로 이름을 지정하지 않았어도 이곳은 한인타운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지도에도 명시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라본지 시의원은 LA시에 다양한 커뮤니티와 출신 국가들이 존재하나 이미 존재하는 코리아타운 구역 일부에 ̒리틀 방글라데시ʼ로 지정하는 건 반대 한다고 입장을 명확히 알렸다. 그후 기존 계획을 변경해 버몬트와 4가 동쪽 인근에 ̒리틀 방글라데시̓를 추진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방글라데시 커뮤니티 관계자들이 2008년 12월 30일 LA한인회를 비롯한 커뮤니티 리더들을 만난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한인사회의 도움을 요청했다. 방글라데시 커뮤니티 대표 자릴 칸은 한인타운안에 리틀 방글라데시를 추진했지만 한인사회와 시의원들의 반대에 부딪쳐 포기했다며 구역을 새로 설정해 추진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선 한인 사회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인 커뮤니티 대표들은 ̒리틀 방글라데시̓를 베벌리 북쪽 또는 버몬트 동쪽으로 위치를 옮긴다면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방글라데시 커뮤니티측에 밝혔다. 이날 양 커뮤니티 대표들은 구역설정에 대한 서로간의 입장을 공감하며 향후 상호간의 교류를 발전시키기 위한 양해각서 (MOU)를 체결하기로 했다. 한편 방글라데시 커뮤니티 대표 일부는 웨스턴과 버몬트 사이의 3가 선상이 방글라데시안 밀집 거주지역이라며 새롭게 설정되는 구역안에 포함시켜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으며 이에 한인 커뮤 니티 대표들은 ̒불가’ 방침을 밝혔지만 원만한 해결을 위해 함께 해당 3가 지역을 방문하기로 했다. 2008년이 지나고 2009년 1월 새해 벽두 LA한인회는 버몬트와 4가 인근 ̒샤토 레크라에션 센터’ 지역에 ̒리틀 방글라데시̓를 설정하는 것으로 양측이 잠정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후 이 합의는 무산됐다. 이후 한인사회 대표들과 방글라데시 대표들은 2009년 1월 6일 윌셔센터-코리아타운 주민 의회를 방문해 ̒리틀 방글라데시̓ 구간(Corridor) 설정에 대한 지지를 당부했다. 당시 주민의회 의장은 현재 LA한인상공회의소 하기환 회장이었다.

한인사회 지도력 부재

2008년 이후 방글라데시 커뮤니티와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 한인사회는 놀랄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코리아타운(Koreatown)’의 구역이 과연 어디까지인가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시의회 기록 어디를 보아도 ‘코리아타운’의 경계를 지정하는 결의안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시의회 기록에 따르면 1980년에 LA시 지역에 ‘코리아타운 섹션’(Koreatown Section)이 설정됐으나 경계 구역을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리고 1982년에 처음으로 ‘Koreatown’이라는 표지판이 올림픽과 웨스턴 코너에 부착됐으며 인근 프리웨이 출입구에도 부착됐다. 이후 한인사회는 ‘코리아타데이빗류운’이 남쪽으로는 피코 블루버드, 북쪽으로는 멜로즈 애비뉴, 서쪽으로 윌튼 플레이스, 동쪽으로 후버 스트릿이라고 주장해왔다. 이처럼 ‘코리아타운’이라는 행정적인 경계령이 확정되지 않았던 지경이라 방글라데시 커뮤니티가 자신들의 구역을 제기하는데 대하여 사실 법적으로 이를 제지할 명분이 없었다.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식으로 LA한인회는 지난 2009년 2월 LA시의회에 LA코리아타운 구역안을 제기했다. 이같은 청원서에 따르면 코리아타운 구역은 동서로는 후버~크렌셔까지 남북으로는 피코~멜로즈까지로 정했다. 이후 1년 가까이 끌어온 한인타운 커뮤니티와 방글라데시 타운 지정 문제가 일단락 됐다. 한인 커뮤니티와 방글라데시 커뮤니티관계자들과 논의한 결과 ‘방글라데시 타운’보다는 ‘거리’(Corridor)조성이 타당할 것 같다는데 양측과 의견을 모았다. 따라서 방글라데시 커뮤니티는 ̒리틀 방글라데시 거리(Little Bangladesh)̓ 명명 청원서에 ̒코리아 타운 안(in Koreatown)̓이라는 문구를 삽입한 재조정 수정안을 시의회에 다시 제출했다. 한편 LA시의회는 2008년부터 불거진 방글라데시 타운 지정 요구에 대하여 탐 라본지 제4지구 시의원을 중재자로 내세워 코리아타운 문제와 병합해 조정에 나섰다. 그 결과 양 커뮤니티와의 조율로 3가 길 알렉산드리아-뉴햄프셔 사이를 ̒리틀 방글라데시 거리(Corridor)̓로 확정시켜 LA시의회로 상정하게 됐다.

리틀 방글라데시의 승리

드디어 2010년 8월 20일 LA시의회는 두가지 결의를 통과시켰다. 하나는 공식적인 코리아타운 구역을 북쪽으로 3가,남쪽으로 올림픽 블루버드, 동쪽으로 버몬트 애비뉴, 서쪽으로 웨스턴 애비뉴로 확정한 것이다. 또 하나는 ‘리틀 방글라데시’ 거리를 3가의 알렉산드리아와 뉴 햄프셔 구간으로 승인한 것이다. 당시 LA시의회 에릭 가세티 의장은 “지금까지 코리아타운의 구역이 정하여진 것으로 알아 온 많은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뉴스”라고 말했다. 한인과 방글라데시를 중재했던 톰 라본지 시의원은 “오늘의 결의는 방글라데시의 승리이다”라고 평가했다. 그동안 우리 한인들의 대변자로 알아왔던 라본지 시의원은 사실은 방글라데시 편에서 활동했던 것이다. LA 시의회에서 코리아타운 구역이 공식적으로 승인되고, 리틀 방글라데시 거리가 승인된 이후 한인사회는 이에 관심을 두지 않했다.

8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무엇보다 코리아타운 지역을 관장하는 윌셔 센터 코리아 타운 주민의회는 한인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었으나 한인 커뮤니티 권익 보다는 개개인들의 명예나 이해상관에 몰두했다. 그나마 최근들어 이 주민회의의 의장이

었던 스캇 서씨는 사퇴하여 사라지고 그 자리에 방글라데시 관계자가 의장으로 주도권을 잡았다. 한인사회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방글라데시 커뮤니티는 ̒리틀 방글라데시 구역 획정 요구 청원을 제기했으며 이에 대한 주민의회 공청회도 거처 지난 3월 23일 LA 시로부터 ̒리틀 방글라데시’ 구역 획정 요구 청원서를 승인받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오는 6월 19일 주민 투표로 판가름을 내기에

▲ 2008년 당시 방글라데시 대표단을 마주하고 한인회 관계자들이 대화하고 있다.

▲ 2008년 당시 방글라데시 대표단을 마주하고 한인회 관계자들이 대화하고 있다.

이르렀다. 한인사회는 이런 사실을 지난 2일 에릭 가세티 시장이 허브 웨슨 시의장과 함께 전격적으로 코리아타운 지역에 ‘노숙자 임시 셸터’ 설치를 발표하면서 충격을 받은 한인사회가 시당국의 조치를 파악하는 과정에 ‘리틀 방글라데시’ 문제가 터져 나오게 됐다. 왜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아야 했는가? 한인들이 그동안 주도해온 주민의회 관계자들은 이런 사실을 인지했을 것인데 무엇을 했을가? 우리의 대변자인 데이빗 류 시의원은 시정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인지했을 것인데 왜 사전에 한인사회에 알려주지 않았을까? 주류사회와의 연계를 한다는 한인회나 상공회의소 등등 관련 단체들은 시정부와의 교류에서 왜 소외를 당했을가? 이같은 물음에 답변을 찾는 것이 일차 과제이다. 그 답변에서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바를 제시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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