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LA방문 성사여부 관심사 ‘오자니 불안하고, 안오자니 찜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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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쪽으로 갈라진 민심만큼이나…
‘지지’ ‘항의’ 충돌 예상 청와대 고심

문재인 대통령이 내달 16일-17일 남미 칠레 산티에이고에서 개최되는 ‘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APEC)정상회담에 문재인참석차 순방길에 LA에서 잠시 기착하는 동안 동포간담회를 계획하고 있는 가운데, 현 시국 상항 때문에 청와대나 LA총영사관 측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대통령은 지금까지 미국을 수차례 방문했지만 역대 대통령들과는 달리 한번도 LA 동포사회를 방문해 동포들과 만난적이 없다. LA는 해외 최대 ‘코리아타운’이 있는 “미주독립운동의 1번지”이며, 해외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지역으로 상징적으로도 유서깊은 지역이다. 대한민국의 초대 이승만 대통령을 포함해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노태우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등 모두 LA 동포사회를 방문했으나, 문재인 대통령만 오직 아직까지도 LA한인사회를 만나지 못해 방문 계획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성진 취재부 기자>

대통령의 일정은 원칙적으로 비밀사항에 속한다. 그리고 해외공관으로서 자국 대통령을 맞이하는 행사는 공관 업무에서 최우선 순위에 속한다. 그동안 LA총영사관(총영사 김완중)은 문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계획할 때마다, LA가 방문 도시가 될 것을 대비하여 사전 준비를 진행시켜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취임 3주년 단 한차례도 LA를 방문한 적이 없는 문재인 대통령의 LA방문이 성사될 경우 진보파와 보수파 간에 적지 않은 충돌이 예상되고 있어 청와대 조차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쪽으로 갈라진 LA민심

문대통령의 LA동포 간담회가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약 300명 정도 한미 동포 인사들을 초청할 계획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진보성향 인사들은 서로 초청장을 받으려 분주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대통령들의 LA 방문시 동포간담회 초청 대상은 우선 평통위원들을 중심으로 당시 정권의 지지층으로 되었다. 만약 이번에 계획대로 LA 동포간담회가 열린다면, 과거의 관례를 중심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칠레 APEC회의를 앞두고 문 대통령이 LA를 기착한다면 대충 12일-14일 사이가 될 것으로 보이며, 현재 선발대 일부가 LA에 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A동포간담회 준비에 나서고 있는 LA총영사관 측이 고심하고 있는 사항은 대통령과 동포사회와의

▲ 대통령 외국 순방 중 동포간담회는 많은 화제를 뿌린다. 사진은 1981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 LA 방문 모습

▲ 대통령 외국 순방 중 동포간담회는 많은 화제를 뿌린다. 사진은 1981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 LA 방문 모습

만남의 성과를 어떻게 보람있게 이루는 것에 있다. 문 대통령의 LA동포와의 만남은 LA 동포 사회로서도 최초의 만남이라 의미가 있으며, 국내 동포들로서 관심을 두게되는 만남이다.

특히 최근의 ‘조국 사태’ ‘평양 월드컵 예선전’ 등을 두고 국민들의 갈등이 고조됐던 상황이라 이런 사태에 대하여 문 대통령이 직접 동포사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다. 특히 LA총영사관이 고심하는 사항은 동포간담회에서 돌발적인 사항이 발생할가이다. 따라서 동포간담회 초청 대상자 선별에 최대한 신경을 쓸 것으로 보인다. 현재 LA한인사회에 문대통령 지지층은 환영 준비를 조심히 진행하고 있으며, 문 정권 반대측은 항의 시위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예상돼 과연 문대통령의 LA 방문이 순조롭게 진행될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지지와 항의 시위 예상

APEC은 전세계 인구의 약 40%, GDP의 약 59%, 교역량의 약 50%를 점유하는 세계 최대의 지역 협력체이다. 의사결정은 컨센서스 방식에 따르며, 비구속적(non-binding) 이행을 원칙으로 함으로써, 회원국의 자발적 참여 또는 이행을 중시하고 있다. 정상회의는 Retreat 형식으로 진행됨으로써, 정상들간에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협의, 보다 내실 있는 결과 도출에 역점을 두고 있다. APEC은 1989년 호주 캔버라에서 대한민국을 포함한 12개국간 각료회의로 출범하였다. 이어, 미국의 클린턴대통령의 제안으로 1993년부터 정상회의로 격상되어 오늘날의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창설멤버 12개국은 한국, 미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ASEAN 6개국(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싱가포르, 필리핀, 브루나이)등이다. 한국 등 포함 태평양 연안 21개국이 참여하는 APEC은 아ㆍ태 공동체의 달성을 장기 비젼으로하여 아ㆍ태 지역의 경제 성장과 번영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1994년 정상회의에서는 보고르 목표(Bogor Goal)를 채택하였으며, 이에따라 선진국은 2010년, 개도국은 2020년을 시한으로 하여 무역 및 투자 자유화를 달성하기로 하였다. 아ㆍ태 공동체 비전 달성을 위한 이행 프로세스로서 APEC은 보고르 목표로 대표되는 무역ㆍ투자 자유화(TILF: Trade and Investment Liberalization Facilitation)와 함께, 경제기술협력(ECOTECH: Economic and Technological Coopera-tion), 비즈니스 원활화 (BF: Business Facilitation)를 3대 축으로 설정ㆍ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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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대 대통령들의 역사 속 LA나들이

광주학살 유명세 ‘전두환’…관제동원 환영행사 으뜸
외환유치 투자길 ‘김대중’…성공적인 투자유치 만족

1981년 1월 새해 들어 LA총영사관의 박민수 총영사를 포함 전공관원들은 무척이나 바빴다. 당시 서슬이 시퍼런 신군부의 수장 전두환 대통령이 2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한 방미의 첫 기착지가 LA였기에 ‘대통령 초청 교민 간담회’ 등등의 준비로 연일 밤을 새울때다. 이미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씨가 대통령 방미 선발대로 와서 대통령이 묵을 센추리 플라자 호텔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당시 박민수 제 7대 LA총영사와 이민휘 LA한인회장을 포함 40여 한인단체 대표들로 구성된 ‘전 대통령내외 범교포환영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총영사관 동포담당 영사는 1월 28일 저녁 센추리 플라자 호텔에서 개최될 ‘전두환 대통령 교민 간담회’에 참석할 동포 인사들 명단을 최종 점검하고 있었다. 애초 청와대와 외교부에서 시달된 공문에는 교민간담회에 참석자를 50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었다. 당시 LA에 한국의 대통령이 방문은 근 18년만에 처음이라 화제가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1980년 광주민주화 항쟁으로 전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던 전두환 대통령이기에 더욱 유명세(?)가 따랐다. 하여간 교민간담회에 너도나도 초청을 받으려고 공관이나 외교부 그리고 청와대까지 줄을 대었다. 한편으로는 ‘한인단체장이 우선적으로 초청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총영사관에 한인단체현항 보고서가 밀려들었다. 당시 총영사관에는 불과 100여개 단체 현항서만 보존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대통령 초청교민간담회에 초청을 받으려고 단체 현항보고서가 총영사관으로 약 300통이 한꺼번에 접수됐다.

이런 보고를 들은 당시 청와대는 ‘교민 단체장은 모두 초청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애초 500명 예상의 초청객이 두배로 늘어나 약 1,000명이 센추리 플라자 호텔에 몰려들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1981년 1월 28일부터 11일 동안 레이건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공식 방문하기 위해 워싱턴DC로 가기 전 LA를 첫 기착지로 삼았다. 역대 대통령 중 전두환 대통령의 LA방문은 여러 기록들을 양산했다. 한인들은 버스 20대를 대절해 2,500여명이 LA공항 환영 행사에 나갔다. 사상 최대 인파였다. LA총영사관은 환영객들을 위해 LA공항에 10개의 간이화장실까지 차렸다. 전대통령이 숙소로 가기 전 코스인 코리아타운 중심인 올림픽 불러바드 선상 노먼디와 웨스턴 구간에 태극기 180쌍이 꽂혔고 플랫카드까지 내걸렸다. 거리에는 2만명의 한인들이 나왔다. ‘광주민주화’ 학살에 대한 동포들의 항의로 관까지 올림픽가에 나오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 때 기증한 우정의 종도 전두환 대통령이 첫 타종했다. 인도의 시위대 물결은 “전두환 물러가라 하야하라! 5·18 광주 학살의 우두머리 전두환 x새끼를 죽이자!…” 시위대는 욕설을 외치고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 일행은 미국 경호대의 협조로 시위대의 함성을 뚫고 다운타운으로 사라져 갔다. 신속한 미국경호대의 행동으로 전대통령 일행을 놓친 한인동포 시위대는 좀 더 본때를 못 보여줘 아쉬운 표정으로 길가에 주저앉고 말았다. 현재 LA총영사관 웹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가장 중요한 연혁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들의 LA 방문 연혁>란에 오류가 너무나 많다.

전두환대통령 방문이 가장 화제

우선 초대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각각 LA를 방문했으나, 이같은 역사적 사실은 아예 빼버리고, 전두환 대통령 방문이 대한민국 정상으로는 1985년 4월 처음 LA를 방문한 것으로 소개했다. 이것도 잘못된 기록이다. 이것은 두번째 방문 기록이다. 전두환 대통령의 첫 번째 LA방문은 1981년 1월 28일이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전 정전 협정 이듬해 1954년 7월 25일 LA를 방문해 LA시의회 주최 환영행사서 미국 시민들에게 “여러분들의 아들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LA방문 시기는 베트남전 전투병력 파견 결정 직전이었다. 1965년 5월

▲ LA총영사관 사이트에 나와있는 정상 방문 오류 기록

▲ LA총영사관 사이트에 나와있는 정상 방문 오류 기록

25일 동포 유학생 300명을 초청한 조찬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인내와 노력으로 실력을 배양하라”고 ‘실력론’ 을 앞세웠다. 미국의 파병 요구에 고민했던 당시 심정을 읽을 수 있다. 신군부의 수장인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레이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주한미군철수계획의 백지화, 한-미 안보협의회의 즉각 재개 등 양국 간의 현안을 타결하고 나아가 한-미관계에 새로운 동반자 인식을 불어 넣었다. 그때 레이건 대통령은 80년 대선에서 현직 카터 대통령을 밀어내고 당선되어 81년 1월 20일 대통령 취임선서식을 마친 다음 처음으로 초청한 외국 원수가 바로 전두환 대통령이었다. 이를 두고 미국 언론들은 당시 ‘김대중 미국 망명’을 끌어내기 위한 한미간 밀약이라고 보도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4년 뒤 1885년 4월24일 두 번째 LA를 방문했다. 2일후 DC에서 레이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전두환 대통령은 두번째 LA 방문에서 새벽에 8가의 할매집을 찾아가 LA한인타운을 찾은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은 해장국을 먹던 안인식씨에게 담배를 권하며 한갑을 기념으로 줬다. 할매집은 그 후 대박식당이 됐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9년 10월 18일 한미정상회담(10월 16일)을 마치고 귀국길에 LA를 방문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4·29폭동(1992) 이듬해인 1993년 11월 17일 LA를 찾았다. 폭동의 영향으로 당시 김 대통령의 메시지는 ‘인종간 화합’이었다. 3년 뒤 1996년 9월 2일 중남미 순방길에 다시 LA를 찾아 동포간담회에서 김 전 대통령은 한국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재외동포 재단을 설립하겠다”고 약속했다. 재단은 이듬해 1997년에 설립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6월 12일 외환위기 때 LA를 방문했다. 투자 유치가 급선무였다. 다행히 성공적인 투자 약속을 받아냈다. 그는 동포간담회에서 “올 때는 빈 가방으로 왔지만 갈 때는 두둑히 가져간다”고 웃었다. 이후 한국대통령의 LA방문은 2004년 11월 노무현대통령, 2008년 11월 이명박 대통령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전인 2013년 5월 LA를 방문했었지만 당선 직후는 한번도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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