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집안 한진가, ‘남매의 난’ 경영권 분쟁 막전막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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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에 KAL을 댄다

하늘에선 탈선飛行
지상에선 엽기非行

대한항공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이 가족 간 막장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게 됐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동생 조원태 한진 회장의 그룹 운영에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고(故) 조양호 전 한진 그룹 회장의 자녀로 조 전 부사장이 첫째 조 회장이 둘째다. 셋째로는 조현민 한진칼 전무가 있다. 세 자녀와 그 모친 이명희 여사는 최근 몇 년 간 각종 갑질 논란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삼남매는 대외적 갑질 이외에도 남매간에도 견원지간이나 다름없이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고 조양호 회장이 별세하기 전까지만 해도 가족 내 갈등은 수면 아래에 잠복해 있었다. 조양호 회장이 갑작스럽게 별세한 것을 계기로 삼남매 간 갈등이 봉합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으나 결국 장녀와 장남은 회사 경영권을 두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 이런 한진가 경영권 분쟁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란 말이 많았다. 일단 한진칼의 경영권을 쥐고 있는 조원태 회장이 마치 경영권 승계가 완료된 것인 양 기세등등하게 지내면서, 지금의 한진을 만든 조양호 회장의 측근들을 하나 둘 제거하려고 했다. 그들은 조원태 회장 주변에서 경영권 승계가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려 했던 인물들인데, 이들을 쳐내려했던 것은 결국 부친의 유언은 무시하고 회사를 자기 멋대로 좌지우지 하려했다는 증거다. 누나인 조현아 조 전 부사장도 조원태 회장의 이런 행동들을 보고 자칫하면 자기 몫까지 날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조원태최근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갑질 논란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웠던 것은 조원태 회장이다. 조 회장의 모친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누나 조현아 전 부사장은 외국인가사 도우미 불법고용 등으로 함께 재판을 받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은 이미 ‘땅콩회항’ 논란으로 한바탕 크게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조 회장의 동생인 조현민 전무 역시 거래서 직원에게 물컵을 던지는 등 갑질논란을 일으켰었다.

그렇다고 조원태 회장이 이들과 다른 삶을 산 것은 아니다. 그는 과거 지난 2005년 난폭 운전을 하다 이를 나무라는 70대 할머니에게 폭언과 함께 폭행까지 하는 등 거친 행동으로 입건돼 물의를 빚었던 것으로 전했다. 당시 폭행을 당한 할머니는 손주로 추정되는 아기까지 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2009년 경에는 자신을 단속한 교통경찰이 다른 사람에게 뇌물을 받았다는 허위 제보를 해서 논란이 일었던 적도 있다. 최근엔 2012년엔 인하대 운영 부조리를 비판하는 시민단체에 폭언을 하다 원색적인 비난을 받았던 사실이 공개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런 과거의 행동들은 조원태 회장 역시 다른 오너 일가와 다르지 않는 좌충우돌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회장직을 맡으면서 대한항공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조원태의 막장 과거

지난 11월 말 있었던 한진그룹 인사는 한마디로 고 조양호 회장들의 퇴진으로 정리할 수 있다. 조원태 한진 회장은 자신이 취임한 지 7개월 만에 이뤄진 첫 번째 정기 임원 인사에서 고(故) 조양호 회장의 ‘오른팔’이라고 불린 석태수 대한항공 부회장을 비롯한 조 전 회장의 측근 집단이 물러났다. 이 인사에서 석 부회장은 대한항공 대표이사 부회장직에서는 물러나고, 한진칼 대표이사 사장직은 유지했다. 석 부회장은 올해 초 한진칼 주총에서 한진 대주주 일가와 경영권 분쟁 중인 2대 주주 KCGI(일명 강성부펀드)의 반대에도 사내이사에 재선임됐다. 또 지난해 4월부터는 대한항공 부회장직도 맡고 있었다. 대한항공의 경우 임기가 꽤 남은 셈이고, 한진칼의 경우 KCGI와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대표이사직을 내던질 수는 없는 상황이다. 결국 지주사인 한진칼 대표이사직은 수행하는 모양새지만, 현업에서는 손을 뗄 것이라는 분석이다.

석태수 전 부회장과 함께 조양호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인사는 원종승 정석기업 대표다. 원 대표는 현재 강성부펀드와의 싸움을 사실상 진두지휘하고 있다. 하지만 벌써부터 조 회장에게 용퇴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강성부펀드와의 전쟁이 끝나면 자리에서 물러날 것으로 보인다. 본국 언론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 전 회장의 경복고 동문이란 이유로 한진그룹 고문직을 몇 년 간 맡아왔던 원로언론인 이모씨도 최근 고문을 그만뒀다. 이런 일련의 흐름들은 조원태 회장이 아버지 가신들을 쳐내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석태수 부회장이나 원종승 정석기업 대표이사는 수십 년 간 조양호 전 회장의 곁을 지키며 그룹 운영을 해온 인물들이다. 이들은 조 전 회장의 별세와 함께 더 이상 한진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지만, 조 전 회장의 유훈에 따라 조원태 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가 원만히 마무리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선친의 유훈을 받들고 있는 이런 가신들을 예우해도 모자랄 판에 찬밥대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반란도 이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엄마한테 꽃병도 던졌나

아버지 가신들도 쳐내는 마당에 조현아 전 부사장으로서는 동생 조원태 회장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인사에서 조 전 부사장의 측근까지 전부 물갈이하고 자신의 측근으로 세대 교체를 단행한 것도 기름을 부었다는 분석이다. 조 회장이 그룹의 ‘군살빼기’에 나서며 호텔 부문을 정리하려고 한 것도 조 전 부사장을 자극했다는 후문이다.

12월 23일 조 전 부사장은 법무법인 원을 통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이 고(故) 조양호 회장의 유훈과 다르게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 전 부사장은 “조원태 대표는 공동경영의 유훈과 달리 한진그룹을 운영했고 지금도 협의에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거듭된 요청에도 최소한의 협의 없이 경영상 중요 사항들이 결정되고 발표됐다”고 밝혔다.

조 전 부사장이 주장은 크게 두 가지다. 조 회장이 상속인들 간의 합의 없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대규모 기업집단의 동일인으로 지정됐고, 본인의 복귀 등에 대한 합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항공업계에서는 조 회장이 단행한 한진그룹 인사에서 5년 만에 조 전 부사장의 복귀를 예상했다. 하지만 끝내 조 전 부사장의 복직은 이뤄지지 않았다.

조현아누나 조현아 전 부사장이 이런 내용을 법무법인을 통해 발표하자 급기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성탄절인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어머니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의 자택을 찾았다가 이 고문과 언쟁을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캐스팅보트’를 쥔 이 고문이 이번 조 전 부사장의 ‘반기’를 묵인해 준 것 아니냐는 일부 언론 보도를 언급하며 불만을 제기했고, 이 고문은 “가족들과 잘 협력해서 사이좋게 이끌어 나가라”는 고(故) 조양호 회장의 유훈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목소리를 높이며 이 고문과 말다툼을 벌이던 조 회장이 화를 내며 자리를 뜨는 과정에서 거실에 있던 화병 등이 깨지고 이 고문 등이 경미한 상처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는 조현민 한진칼 전무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명희 고문의 지인 A씨는 본국 언론 등에 “조원태 회장이 이명희 고문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집안의 유리를 박살 냈다”며 “이명희 고문이 직접 자신의 상처와 깨진 유리 등을 찍어 회사 일부 경영진에게 보내 보호를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조원태 회장은 당시 부인 및 3자녀와 함께 이명희 고문의 집을 방문했다가 이런 일을 벌였다고한다. 이 사실은 이명희 고문이 자신의 상처 입은 팔과 집안의 깨진 유리 등 피해 상황을 휴대전화로 직접 촬영해 한진그룹 최고경영진 S씨 등 회사관계자에게 보내고, 이 중 일부가 공유되면서 외부에 알려지게 됐다. 조 회장이 모친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은 그의 부인과 어린 자녀 3명 외에 회사 경영권 지분 갈등을 겪고 있는 조현민 한진칼 전무도 이를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조원태 회장과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이 가족 간 ‘소동’에 12월 30일(본국 시간) 사과문을 발표하며 여론 수습에 나섰지만 이번 일이 남긴 파급력은 적지 않다. 집 안의 화병이 깨지는 등 격렬한 언쟁이 오갔고, 이에 대한 가족간 일들이 고스란히 외부로 전해졌다. 그만큼 조 회장에 대한 나머지 가족간 불협화음이 상당하다는 방증이다.
이 때문에 일단 사과 모양새는 취했지만 경영권 분할 문제가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태이기에 조원태 회장과 나머지 여성 가족들 간 신경전이 계속될 여지가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궁 속으로 빠진 경영권

한진 총수 일가는 올해 4월 조양호 회장의 별세 이후 계열사 지분을 법정 비율(배우자 1.5 대 자녀 1인당 1)대로 나누고 상속을 마무리했다. 이에 따라 지주회사인 한진칼의 지분은 조 회장과 조 전 부사장이 각각 6.52%와 6.49%로 두 사람의 지분율 차이는 0.03%포인트에 불과하다. 막내 조현민 한진칼 전무의 지분은 6.47%, 어머니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은 5.31%로 ‘캐스팅보트’를 쥔 상태다.

내년 3월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이 달린 만큼 조 회장 입장에서는 우호지분 확보를 위해 가족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조 전 부사장의 ‘반기’가 어머니인 이 고문과 교감 아래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조 전 부사장 측은 입장을 내기 전 가족과 협의한 바는 없다고 했지만 최근 조 전 부사장과 이 고문이 외국인 가사도우미 불법 고용 혐의 등으로 함께 재판을 받으며 사이가 돈독해졌다는 얘기가 한진그룹 내부에서 나온다. 게다가 이 고문은 이재철 전 교통부 차관의 딸로서 손아래동서인 최윤영 전 한진해운 회장도 회장직을 수행했다며 스스로 한진그룹 회장을 하겠다는 야심이 있다는 관측도 있다.

만약 오너 일가가 손을 잡을 경우 우호지분은 41.07%까지 늘어나 경영권을 확보하는 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조 전 부사장과 이 고문이 조 회장에게 등을 돌릴 경우 다른 주주들의 지분마저 장담할 수 없어 경영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지만 KCGI와 남매 중 한쪽이 손을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장에서는 KCGI가 엑시트를 준비하며 지분을 매각할 것이라는 루머가 돌고 있는 가운데 일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KCGI의 지분을 인수한 기업이 한쪽과 손을 잡는다면 반대쪽은 한진그룹의 경영권에서 손을 떼야 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가능성이 크지 않지만 남매의 난이 한진그룹의 주인을 바꿀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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