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미국 대선의 ‘불복’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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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선 불복으로 124년 승복 전통 붕괴

걸어내려 올까?
끌려내려 올까?

2020년의 미국 대선은 미국 현대사에서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현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나트럼프서면서 선거 기간 중에 미리 “불복”을 선언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결과가 밝혀 졌어도 계속 헌법에 정한 ‘평화적 정권 이양’을 위한 계속 거부하고 있어 미국민은 물론 세계인들 이 미국에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이같은 ‘불복’은 미국의 “아름다운 전통”으로 불리는 ‘승복 연설’ 124년 역사에 처음 나타난 사건이다. 미국이란 나라는 그동안 “민주주의의 교과서”로 불려 왔지만 오늘의 사태는 “막장의 나라”로 추락하고 있는 중이다. <성진 취재부 기자>

트럼프 대통령은 불과 4년전 2016년 대선에서 자신이 대부분 언론의 예측과는 달리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이겼을 때의 피터지게 싸웠던 힐러리의 승복 연설을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당시 힐러리는 트럼프 후보보다 전국 득표에서 약 280만 표나 더 얻었지만, 미국의 특이한 선거 제도인 선거 인단수에 밀려 패배했다. 그러나 힐러리는 이를 깨끗이 승복하면서 국민들에게 “트럼프가 우리 대통령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에게 마음을 열고 나라를 이끌 기회를 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헌법의 민주주의는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보장한다”며 “우리는 이걸 존중할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간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힐러리는 “헌법의 민주주의는 존중을 넘어 소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얼마나 멋진 자세인가. 당시 오바마 대통령도 트럼프 당선인을 즉각 백악관을 초청하고 평화적인 정권 이양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미국에서 신뢰를 받고 있는 공영 라디오 방송인 NPR에 따르면 패자의 승복 연설은 1896년 대선에서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당선인인 윌리엄 매킨리에게 축하 전보를 보낸 것이 시초였으며 이후 124년 동안 한번도 끊어지지 않았다가 올해 2020년 대선에서 파탄이 난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정평이 있다는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그간 다양한 승복 연설이 있었지만 공통 적으로 담긴 내용은 유권자의 선택에 대한 존중과 승자를 위한 기도나 지지 메시지 그리고 지자들 간의 분열을 치유하려는 노력 또는 순조로운 권력 이양 약속 등이었다.

̒대통령사’를 연구하는 로버트 달렉은 LA타임스에 “평화로운 권력 이양에 힘쓰겠다는 걸 보여주는 승복 연설은 단순한 연설이 아니다”며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에게 패배를 같이 받아들이라고 보내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민주주의의 교과서’와 같은 미국이지만,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보듯이 모든 제도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대선에서 패자의 ‘승복연설’과 승자의 ‘승리선언’으로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약속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하지만 이번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트럼프 대통령이 불복 의사를 밝히면서 지금 미국에선 124년간 이어진 ‘민주주의 승복’의 전통마저 깨버렸다는 비판이 계속 나오고 있다.

패자의 ‘승복연설’은 민주주의 전통

▲ 힐러리클린턴(왼쪽)과 미 도널드트럼프 대통령

▲ 힐러리클린턴(왼쪽)과 미 도널드트럼프 대통령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미국 역사에서 2000년 민주당 앨 고어와 공화당 조지 W. 부시가 맞붙었던 대선이 미 역사상 가장 박빙의 승부를 펼친 선거로 기억된다. 당시 고어는 전국 득표수에서 53만 7천여 표를 더 얻고도 부시에게 패했다. 부시는 전체 선거인단의 절반에서 1명을 더해 271명을 확보해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부시가 플로리다 주에서 불과 537표 차로 승리해 선거인 단(25명)을 가져간 게 결정적이었다. 고어는 플로리다 주 개표 논란이 일자 패배 인정을 번복하고 재검표를 요구했다. 결국 연방대법원이 재검표 중단을 결정 하자 고어는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당시 그는 “조금 전 조지 W 부시에게 전화해 43대 대통령이 된 것을 축하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전화 걸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며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이어 “법원의 판결에 강하게 반대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인다”며 “국민으로서 우리의 단결과 우리 민주주의의 견고함을 위해 양보 하겠다”고 말했다. 또 “나는 이제 부시 당선인에게 당파적인 감정은 내려놓고 신이 그가 이끄는 나라에 축복을 내리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WP는 앨 고어의 연설이 유머, 축하, 기도와 분열 회복에서부터 패배의 씁쓸함까지 담겨 있는 승복 연설의 가장 훌륭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20년전 부시에 승복했던 앨 고어 전부통령은 이번 대선 결과를 두고 과거 플로리다 선거전 과 비교해 “이번

▲ 2000대선에서 겨룬 엘고어(왼쪽)와 부시 후보

▲ 2000대선에서 겨룬 엘고어(왼쪽)와 부시 후보

선거는 완전 다르다”고 말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지난 5일 NBC 뉴스에 “이번 선거는 20년 전 선거와 완전히 다르다(completely different)”라고 말했다. 2000년 대선에서 조지 W 부시와 맞붙은 앨 고어는 최대 경합주 플로리다에서 개표 결과에 불복했지만, 승자가 한 달 넘게 결정되지 못해 나라가 마비되자 고어는 개표 중단을 수용하고 승복했다. 고어 전 부통령은 “20년 전 내가 옹호했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조 바이든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옹호하는 것이다”라며 “합법적으로 투표한 모든 표를 세어 미국민의 뜻에 따르자” 고 말했다.

고어는 이날 “선거가 도용됐다”는 트럼프 대통령 주장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트럼프는 당일 오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대선에서 합법적인 투표로 계산하면 내가 이긴다”며 “그러나 뒤늦게 도착한 표를 불법적으로 계산하면, 그들이 우리로부터 선거를 훔쳐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고어는 “트럼프 대통령이 표가 모두 집계되는 상황에 직면하고 그가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판명된다면, 나는 그에게 올바른 일을 하도록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만이 멋진 ‘승복’ 연설을 한 것이 아니다.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와 반목을 겪었던 미국의 전쟁 영웅 고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의 승복 연설도 ‘우아한 승복’의 전형으로 꼽힌다.

2000 엘 고어 승복 연설은 최고 기념비적

2008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매케인 전 의원은 “이번 선거는 역사적인 선거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겐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 미국은 잔인하고 교만한 과거의 미국과는 다른 세계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만큼 더 좋은 증거는 없을 것”이라며 단순한 승복을 넘어 역사적인 의미까지 부여했다. “오바마에게 축하 전화를 보냈다”는 대목에서 야유를 보내는 지지자들에게 매케인이 “제발” 이라며 다독이는 모습도 당시 화제가 됐다.

한편 부시는 2004년 재선에 성공했을 때도 민주당 후보 존 케리의 승복을 어렵게 받아냈다. 마지막까지 접전을 펼쳤던 오하이오주 개표 결과 부시가 13만여 표 차이로 앞선 상황에서 케리는 승복 결정을 내렸다. 개표되지 않은 잠정투표와 부재자 투표 숫자를 확인하고 이길 가능성이 없다 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2004년 대선 후 한 달여가 지난 시점에 오하이오에서 공화당의 투표 부정을 주장한 단체들은 대선투표 결과를 재검토해 달라고 요구하는 소송을 대법원에 냈지만 대선 결과를 바꾸는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에서 “40대 기수”로 불렸던 민주당의 존 F. 케네디와 공화당의 리처드 M. 닉슨이 맞붙은 1960년 대선에서도 아슬아슬한 승부가 펼쳐졌다. 두 후보 간 치열한 접전으로 투표 다음 날 오전 6시가 돼서야 케네디는 선거인단 과반수 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닉슨은 그날 정오에서야 패배를 받아들였다. 닉슨이 패배를 인정하기까지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와이주의 첫 개표에선 닉슨이 141표가 더 얻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재개표 결과 케네디의 득표 수가 115표 더 많은 것으로 번복됐다. 2차 재개표를 요구할 법도 했지만 닉슨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재검표가 이뤄지는 동안 대통령의 운명이 담보 잡힌다는 이유를 들며 케네디의 승리를 인정했다. 앞서 1960년(닉슨)과 2000년(고어), 2004년(케리) 대선이 아깝게 패한 후보 본인이 패배를 받아들이기까지 순탄치 못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면 지지자들이 상대진영 후보의 당선을 인정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1860년 공화당의 후보로 나서서 제16대 미국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대선이 끝났지만 남부의 백인들은 노예제 폐지에 나선 링컨의 당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예제 폐지에 반발한 남부 주들은 연방에서 이탈했고 이후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링컨은 북부의 여러 세력을 조정하면서 점진적으로 노예해방을 단행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 었다. 미 예일대의 베벌리 게이지 미국학 교수는 미 공영방송 PBS에 대선에서 이의 제기 사례들이 있긴 했지만 평화적 정권 이양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면서 예외적인 단 하나의 사례로 링컨의 당선 을 꼽았다. 게이지 교수는 “1860년 남부의 백인 대다수는 링컨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남북전쟁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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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트라다무스의 예측자
올해 미국 대선 “트럼프 패배”

바이든 트럼프미국에서 지난 30년 동안 대선 결과를 정확히 예측, ‘미 대선의 노스트라다무스’ 라고 불리는 역사 학자가 올해 대선 예측에서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에게 패배한다고 예측해 그의 실력을 다시한번 과시했다. 앨런 릭트먼(73) 아메리칸대 정치역사학과 교수는 지난10월에 트위터에 올린 ‘2020년 대선 예측’ 동영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릭트먼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대선 판세의 13가지 핵심 요소’ 로 승패를 예측하는 모델에 따라, 바이든이 간발의 차로 트럼프를 이길 것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그는 120년간의 미 역대 대선을 분석해 이 모델을 개발했으며, 이 모델에 따라 1984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재선을 시작으로 모든 대선의 투표 결과를 정확히 맞췄다.

특히 그는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예측한 몇 안 되는 전문가 중 한 명이다. 당시 대선 직전까지도 트럼프 후보가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모든 여론조사에서 크게 뒤져 ‘클린턴 대세론’이 퍼져 있었지만, 릭트먼은 “트럼프는 총득표에선 지지만 결국 45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정확히 예측했다. 또 트럼프의 탄핵까지 예측했다. 릭트먼은 올해 대선에서 13가지 요소를 트럼프와 바이든 중 누가 가져갈지 하나하나 대입시켰더니 바이든이 7가지, 트럼프가 6가지를 확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1.대선 직전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당:바이든, 2.현직 대통령이 여당 내 경쟁 없이 후보 지명 됐는가:트럼프, 3. 현직 대통령의 재선 도전 여부:트럼프, 4.제 3후보의 존재:트럼프, 5.단기 경제 실적:바이든, 6.장기 경제 실적:바이든, 7.현 정권이 이전 정권의 정책을 뒤집었는가:트럼프, 8.대규모 사회 불안:바이든, 9.심각한 스캔들:바이든, 10.외교‧군사적 실패:트럼프, 11. 외교‧군사적 성공:바이든, 12. 현직 대통령의 카리스마:바이든, 13. 야당 후보의 카리스마:트럼프 등으로 평가한 결과다. 다만 릭트먼은 “올해 유권자에 대한 투표 방해, 그리고 러시아의 대선 개입이란 두 가지 변수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현실화된다면 모두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요소라고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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