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위안부 매춘’ 논문 논란 램지어 교수의 사과를 받아내기까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

전범기업 일본의 미쯔비시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으며 미국내 대표적인 친일 교수인 하바드 법대의  마크 램지어(Prof. Mark Ramseyer) 교수의 ‘위안부 망언’ 논문에 대하여 일부 학자들과 하바드법대 한인 학생회 등에서 문제를 제기해 주로 초기에는 한일간의 논쟁으로 번졌는데, 이 논쟁이 최초로 미주류의 언론 뉴요커(New Yorker)와 뉴욕타임스(NT)가 크게 관심을 갖고 보도 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됐다. 이같은 배경에는 램지어 교수가 속한 하바드 법대의 한인 석지영 교수(동양인 최초 종신 교수)가 고증을 통한 광범위한 학술적 증거들로 램지어 교수와 학구적 논쟁을 통해 램지어 교수의 사과를 받아 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미투’ 문제를 클로즈업 시킨 잡지로 유명한 뉴요커는 지난 2월 26일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석지영 교수의 장문의 논문을 톱기사로 실었다. 미주류 매체에서 처음으로 램지어 교수 논문을 의제화 시킨 것 이다.

rytn

▲ 위안부 망언 논문 저자 마크 램지어 교수

대학 캠퍼스에서 동료 교수의 논문을 비판한다는 것은 학자로서 교수로서도 매우 힘든 과제이다. 더군다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하바드 대학의 로렌스 바카우 총장까지 ‘학문의 자유’라는 주장을 펴면서 램지어 교수를 옹호하는 환경에서 동료 교수의 논문을 공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 이다. 석지영 교수는 “위안부 문제는 종종 한국과 일본의 문제로 여겨지지만, 이는 사실 학자적 책임이 핵심이다. 학문을 연구하고 주장을 입증해야 하는 학자가 이렇게 근거 없이, 날조된 논문을 발간 해도 된다면, 이는 학자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전세계 수많은 학자들의 목소리가 모이지 않았다면, 램지어는 자신의 주장을 조금이라도 굽혔을까요?”라고 반문한다. 램지어 교수는 자신의 논문이”새로운 지식”이라는 주장을 굽히지는 않았다고 한다.

“위안부, 진실을 찾아서.” (Seeking the True Story of the Comfort Women)’ 라는 제목을 글을 뉴요커에 기고한 석 교수는 한일간의 위안부 관련 역사적 논쟁, UN등에서 보고서를 낸 일제 만행 자료, 전세계 학자들과 램지어 교수의 논문 을 검증했던 내용, 램지어 교수와의 대화, 램지어를 지지했던 학자들의 입장 변화, 논문을 발간한 저널 측의 입장까지 객관적으로 분석해 램지어 교수의 논문의 왜곡과 거짓을 낱낱이 지적했다. 석 교수는 이 논문을 위해 “한 달간 매달렸다”고 밝혔다. 일본에 학자들에게도 관련 자료와 증거물들을 수집했다. 석 교수 논문의 소제목은  ‘하버드대 교수의 논문이  어떻게 한국과 일본 사이에 불신의 역사를 재점화 시켰는가’였다.  하바드 법대에서 가정법을 강의하는 석 교수는 램지어 교수 논문 파장이 있기 전 최근 한국 법원 에서 일제 강압시절 위안부에게 가하진 학대에 대한 배상판결과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응을 연구 하던차, 램지어 교수의 논문 파장이 자신에게도 다가와 역사적 시각과 정의 그리고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매달렸다.

석 교수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일본의 입장을 옹호하였고, 이것이 한국과 다른 나라에도 파급이 되어 한일간 외교분쟁의 소지가 되었다면서, ‘그것의 역사를 왜곡하고 진실을 은폐했다면 이를 시정해야 하는 것이 학자들의 몫’이라고 강조한다. 뉴요커는 석 교수가 쓴 기고문을 온라인 홈페이지 첫 화면에 게재했으며, 누구든지 무료로 이 기사를 볼 수 있도록 조치했다. 유료 잡지인 뉴요커가 무료로 볼 수 있게 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문제가 된 램지어 교수의 논문 ‘태평양 전쟁에서의 성을 위한 거래’(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은 역사적 사실과 진실을 망각했다. 논문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1차 증거도, 2차 증거도, 심지어 이를 증언하는 내용(3차 증거)도 없었다. 한국인들이 분노할 뿐 아니라 전세계의 내노라 하는 학자들 1천명 이상이 비판 대열에 나섰다. 한 논문에 대하여 이처럼 많은 학자들이 나선 예는 드물다.

석교수,  역사 왜곡을 방관할 수 없었기에

protest

▲ 뉴요커 잡지에 1면에 위안부 사진이 자리 잡았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일본 정부가 조선 여성에게 매춘을 강요한 게 아니라, 매춘 모집업자와 예비 매춘부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유로운 계약을 맺고 일본 고객을 상대로 장사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같은 논문이 온라인 초록에 실리자 해당 논문을 검토한 하버드대 역사학과 앤드류 고든 교수와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카터 에커트 교수는 지난 2월17일 성명을 내고 “램지어 교수의 인용문을 살펴본 결과 그가 위안부 피해자 혹은 가족이 모집책이나 위안소와 체결한 실제 계약을 찾아보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며 비판을 제기했다. 이어 램지어 교수가 ‘계약서’라며 인용한 문건은 중국 상하이 위안소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일본인 여성용 표본 계약서였다고 했다. 이를 한국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 경제학자들도, 일본 내의 역사학자들도 가세했다. 석 교수는 일본의 교수들의 협조로 램지어 교수가 “자발적 매춘부”의 예로 든 열 살 소녀 오사키의 증언 원본을 찾아본 것이다. 램지어의 논문 중 열 살 매춘부 채록에는 “오사키가 열 살이 되었을 때, 한 신병 모집인이 그녀에게 들러, 만약 그녀가 해외에 나가겠다고 하면, 그녀에게 300엔을 선불로 주겠다고 했다. 채용 담당자 는 열 살 때 조차 그 일이 무엇을 수반 하는지 알고 있었다.”고  램지어 교수는 기록했다. 석 교수는 “램지어는 열 살 짜리 아이의 성접대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담담히 서술 하며 실제 오사키의 증언록은 다음과 같다 라고 부연했다. “그녀와 다른 소녀들이 저항했다. 당신은 그런 종류의 일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우리를 여기로 데려왔고, 이제 당신은 우리에게 손님들을 데려가라고 말한다. 이 거짓말쟁이! 소녀는 더 나아가 첫 번째 밤을 보낸 후, 우리는 두려웠다. 우리는 이것이 남자와 여자가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너무 끔찍해서 믿을 수가 없었다”

석 교수는 램지어 교수가 논문에서 든 사례가 거꾸로 쓰였다고 했다. 램지어 교수는 열살짜리 일본 소녀가 자발적으로 매춘하러 갔다고 주장했지만, 동료 학자들이 램지어 교수가 열 살 소녀의 증언을 반대로 해석했다는 문제를 제기 했다. 이에 램지어 교수는 “혼란스럽고 당황스럽다(puzzled and troubled).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 겠지만, 실수를 한 것은 맞는다”고 석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이어 석 교수가 “한국인 위안부의 계약서를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도, 램지어 교수는 “없다. 있었으면 좋았을 걸!” 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석 교수는 램지어 교수가 자신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논문 내용을 입증할 수 있는 계약서가 없다” “일부는 실수다”라고 인정했다고 썼다.‘그렇다면 왜, 계약서도 없는데, 자발적 계약이라고 썼느냐’는 석 교수의 질문에 램지어 교수는  “1931년도 일본 계약서를 근거로 추론한 것”이라고 했다. 사실상 증거가 없었다는 걸 인정한 것이다.

램지어, 드러내놓고 일본 정부 앞잡이 노릇

램지어 교수가 논문에서 주장한 내용의 골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포주와 계약을 한 자발 적인 매춘부였다.”는 것이고 “한국인 위안부에 일본 정부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같은 논조에 하버드 역사학자인 에커트와 고든 교수 두 사람은 논문 출간 예정인  저널 측에 “철회해야 한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저널 측에서 “우려가 된다”는 두어 줄 짜리 글을 추가한 것에 불과했다. 이는 다른 학자들의 행동을 불러왔다. 에커트와 고든을 포함해 스탠리 교수, 코네티켓 대학의 역사 학자인 더든 교수, 호주 국립대학의 테사 스즈키 교수 등 동아시아 역사 연구로는 세계에서 권위 있는 학자들이 동참했다. 에커트 교수와 고든 교수는 “램지어 교수가 인용한 계약서는 1938년 일본의 바(주점) 계약서 다” 면서 “전쟁 당시의 상황에 맞지 않을 뿐더러, 위안소의 계약서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램지어 교수는 자신을 지지하는 한국의 학자들과 일본 학자들의 서신을 석교수에게 보내며 “관점이 다른 이들이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석 교수는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찾아봤다. 이중 누군가는 기자의 뺨을 때린 사람이었고, 다른 누군가는 집회에서 망언을 일삼는 사람이었다고, 일본 학자들은 극우로 이름난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여기에 석 교수는 미국에서 저명한 교수임에도 램지어 교수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는 2명의 교수에게는 사실을 알렸다. 버클리 대학의 명예교수인 메리 베리 교수, 컬럼비아대학의 데이비드 와인스타인 교수는 학자들이 램지어 논문을 검증하고 반박한 내용을 본 뒤, 지지를 철회하고 입장 을 바꿨다. 이들은 ‘램지어 교수는 오류를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저널은 해당 논문을 철회하는 것 이 맞다’는 방향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 석지영 교수

▲ 석지영 교수

석 교수는 램지어 논문을 이미 온라인에 출간했고, 실제 인쇄본도 출간을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저널 ‘국제법경제 리뷰’에 대해선 이렇게만 썼다. 노스웨스턴 로스쿨의 알렉스 리 교수는 해당 저널의 편집자 중 하나인데, 해당 논문의 리뷰에는 관여하지 않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되자 “끔찍하다”며 저널 편집자에서 사임했다. 리 교수는 “저널이 이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이는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인 행동이다. 수정주의 역사 주장 조차 걸러내지 못한다면 학술지로서 자격이 없다” 는 내용을 저널에 밝혔다. 한편 이에 대해 학술지 ‘국제법경제 리뷰’측은 “답변하기를 거절했다”고 뉴요커는 전했다. 석 교수는 램지어 교수의 입장에서 지난 한 달 간 모든 문장들을 여러 번 벼리며 읽어보고, 또 검증 했다고 했다. 그리고 일본 학자들의 도움까지 받아 일본어로 된 자료까지 수합해 검증이 끝나갈 무렵, 램지어 교수에게 마지막으로 다시금 연락을 취했다.

“이제 서로 간에 발전된 논거를 가지고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지 않았을까요?”라고 석 교수가 묻자 램지어 교수는 “이번 대화는 패스하겠다. 나름의 시간을 통해 설명하겠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석 교수는 “위안부, 진실을 찾아서”라는 긴 글의 마무리로 이용수 할머니의 목소리를 빌어왔다. “그랜마(Grandma) 이용수”라고 표현된 이용수 할머니는 램지어 사태에 직접 나서 “일본이 역사를 부정하면 부정할 수록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며 “그 친구 덕분에 위안부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이 쏟아 졌으니 간악한 축복”이라고 말했다는 대목이다.

일본 정부 잔악상을 옹호하는 친일파 교수

이번에 뉴요커에 기고한 석지영 교수(47, Jeannie Suk Gersen) 서울 출신으로 하버드 로스쿨의 교수 이다. 석 교수는 예일 대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하여 1995년 학사 학위를 받고, 옥스퍼드 대학교 에서 1999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2002년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무박사 학위를 받은 후, 2006년 하버드 로스쿨 조교수(assistant professor)가 된다. 2010년 테뉴어를 받아, 최초의 동양 계 여성 하버드법대 종신 교수가 되었다.(별첨 기사 참조: 사람이야기) 문제의 램지어 교수는 어린시절 대부분 일본에서 보냈으며 미국에 돌아와 법대 진학전에 일본 역사도 배웠다.  그는 1982년에 하바드 대학 법대를 졸업했으며,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동경대학 에서 연구했다. 미국에서 UCLA와 시카고 대학에서 강의한 후 1998년에 하바드 법대로 왔다.  그 기간에도 그는 수개의 일본 대학에서 일본어로 강의할 정도로 일본어가 능통했으며, 법과 경제 분야를 전문으로 연구했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2월 26일자에서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전세계적으로 논란을 벌이고 있다며 최근 위안부 이용수 할머니가 하바드법대 한인학생회가 조직한 줌 세미나에 참석해 논문을 강하게 비난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램지어 교수는 계속 인터뷰 요청을 거부하고 있고,  문제의 저널측은 논문이  3월호에 개재될 예정이라며 저널의 대변인이 “현재 최종 심사 단계”에 있다고만 밝혔다고 전했다. 하버드대 로렌스 바카우 총장 측은 “논문은 학문의 자유 에 포함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 졌다. 그리고 바카우 총장은 “대학 내에서 학문의 자유는 논쟁적인 견해를 표현하는 것을포함한다” 며 “논쟁적인 견해가 우리 사회 다수에게 불쾌 감을 주는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또한 바카우 총장은 이어 “램지어 교수의 의견은 개인의 의견임을 밝힌다”고 덧붙였다. 한편 도산 안창호 선생의 손자인 필립 커디씨가 최근 램지어 교수의 역사왜곡 논란을 빚은 하버드 대학측에 강력히 항의했다.  필립 안 커디 씨는 2월18일 연합뉴스와의 이메일, 전화 인터뷰에서 로런스 배카우 하버드대 총장에게 서한을 보내  현재 도산 역사자료를 하바드 대학에 기증하기 위한 협의도 중단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

선데이-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