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E.K. 아트 갤러리 ‘후니훈’초청 송년 특별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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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타운의 독특한 문화예술공간인 E. K. 갤러리(대표 유니스 김)에서 아주 특별한 전시회를 갖는다. 지난해 한국 영화사 101년 역사에서 최초로 아카데미 최고의 작품상등 4개 부문 상을 획득한‘기생충’에서“자화상” 등을 포함 특출한 미술 작품을 그려 화제에 오른 후니훈(본명 정재훈)이 E. K. 갤러리에서 그의‘기생충’작품 전시회를 갖는다. 전시회는 12월 3일부터 19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 특별히 12월 3일 리셉션에서는 오후 6시에 실지로 그림을 직접 그리는 모습도 보여주게 되어 기대를 모으고 있다.‘기생충’은 아카데미 후보작품 발표 때 미술 부문도 올라 관심도 받았다.

정재훈 아티스트와 기생충의 인연

지난해 2월 LA에서 열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은 작품, 감독, 국제영화, 각본의 네 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 역사상 아카데미상을 받은 것은 ‘기생충’이 최초이며 영어가 아닌 언어로 나온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도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이며 한국 영화 101년 역사상 아카데미상을 받은 것도 ‘기생충’이 처음이다. 그리고 92년 역사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어가 아닌 언어로 된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도 ‘기생충’이 최초였다.

▲ E.K. 아트 갤러리 실내 모습

▲ E.K. 아트 갤러리 실내 모습

한 영화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한 것은 델버트 맨 감독의 ‘마티’(1955년작) 이후 역대 두 번째이자 64년 만이었다. 아시아계 감독이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것은 대만 출신의 리안 감독이 ‘브로크백 마운틴’과 ‘라이프 오브 파이’로 두 번 감독상을 받은 이후 처음이었다. 이 같은 영화 ‘기생충’은 국내에서1000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으로도 명성을 지니고 있다. 그 영화 ‘기생충’에는 박사장(이선균) 아들 다송이가 그린 그림이 14점 등장 한다. 다송이가 스케치북에 혼자 크레파스를 끄적이는 장면부터 기택(송강호)이 도주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다송이의 그림은 영화 곳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린아이의 서툰 그림 같지만 작가는 따로 있다. 1998년 데뷔 한 20여년 경력 래퍼 후니훈(40·본명 정재훈)이다. 그가 영화 ‘기생충’과 만난 인연은 독특하다. 미술을 그리게 된 동기도 특이하다. 그의 이름 정재훈, 지비지 그리고 후니훈으로 세가지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원래 비트박스로 한국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후니훈’은 ‘지비지’라는 예명으로 영화<기생충>에 일러스트레이터로 참여했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정재훈이라는 아티스트가 존재한다. ‘비트박스 신드롬’의 장본인에서 칸영화제 수상작의 참여 작가가 되기까지, 그의 예술 스펙트럼에 제한선은 없다. 후니훈은 1998년 힙합그룹 유니티로 데뷔했다. 하지만 회사 사정으로 1년 만에 그룹은 해체됐고 후니훈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했다. 이후 2004년 김조한 프로듀서를 만나 그룹 투데이로 새 출발을 알릴 수 있었다. 그리고 활동 시작과 맞물려 한 통신사 광고에 출연했다. “비트박스를 잘 하려면? 두 가지만 기억하세요! 북치기 박치기” 중독성 있는 외침과 참신한 연출은 비트박스의 대대적인 유행과 함께 커다란 파급력을 몰고 왔다.

‘북치기 박치기’ 세상 밖으로

유행어와 함께 각종 방송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인지도를 쌓았지만 후니훈에게는 말 못 할 고난의 시기도 있었다.
그는 “투데이라는 그룹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에 광고를 먼저 찍게 됐다. 투데이가 준비한 음악은 알앤비 장르였는데 내가 광고로 비트박서 겸 래퍼로 완전히 이미지가 굳어졌다. 어떻게 보면 콘셉트 자체가 엉켜버린 거다.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투데이로도 활동을 오래 하지 못 했다”고 털어놨다. 이후 짧은 방송활동을 이어가다가 후니훈은 사회공무원으로 군 복무를 가게 됐다. 그는 “소집 해제 이후에 싱글 앨범 및 드라마 OST에 참여하며 활동 했다. 또 2015년까지 JYP, SM, 스타쉽 엔터테인먼트에서 신인그룹, 연습생들에게 랩을 가르쳤고 Mnet <쇼미더머니1>에 참가하기도 했다”며 당시를 기억했다.

군병역 소집해제 이후 나름대로 음악활동을 이어오던 후니훈이 돌연 그림에 눈을 뜬 것은 2015년. 당시 음악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으며 잠시 음악을 내려놓았을 때, 그가 새롭게 잡은 것은 다름 아닌 종이와 마커였다. 후니훈은 “미술을 시작해야지! 하고 마음먹은 게 아니라 뭔가 동물적인 감각에서 시작된 것 같았다”라며 운을 뗐다. “2015년 랩 레슨을 한참 할 시기였다. 혼자 나와 살면서 자아 성찰하는 시기였다. (웃음) 음악을 잠시 내려놨고 나름대로 재밌기도 한 시간이었다. 레슨을 마치고 집에 혼자 있을 때 ‘뭘 해야 하나’ 하다가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더라. 원래 랩 가사를 쓸 때 그림을 자주 그리긴 했었다. 그래피티를 좋아하기도 했고 사인을 연습하면서 그림을 그린적도 있었다. 그렇게 그리다보니 본격적으로 도구를 사서 제대로 그리고 싶더라. 곧바로 문구점을 가서 좋은 마커를 구입했다. 아무 생각 없이 푹 빠져들면서 그림을 그렸다. 모든 스트레스와 잡념이 지우개로 지우는 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신세계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지 않을까.”

“미술은 동물적인 감각에서 시작”

web3후니훈은 그림을 통해 잡념을 지우며 힘든 시기를 버텼을 지도 모르겠다. 당시까지만 해도 그림은 취미생활 중 하나였고 몇 가지의 색으로 단순한 캐릭터를 그리는 게 다였다고. 그런 그에게 부스터를 달아준 것은 한 전시였다. 후니훈은 “어느 날 가우디 전시를 보러간 적이 있다. 하나하나 전시를 보는 와중에 벽에 새겨진 가우디의 글귀 하나가 마음속으로 확 들어오더라. ‘직선은 인간의 영역이고, 곡선은 신의 영역 이다’라는 글이었다”며 “그 글이 너무 좋았다. 그때부터 미친 듯이 그림을 더 그리기 시작했다. 만물은 직선과 곡선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고 곡선이 신의 영역이라니, 그걸 내가 그리고 있다니, 너무 신나지 않나. 그때부터 마커에서 물감, 오일파스텔 등 다른 도구들이 믹스되기 시작했고 그림의 스타일도 지금처럼 직, 곡선으로 발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후니훈은 ‘지비지’라는 예명의 일러스트레이터로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지금까지 작업한 작품만 1000개가 넘고 전시 및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아티스트로서의 새 영역을 펼쳐나갔다. 그런 그에게 또 한 번 황금빛 기회가 찾아왔다. 영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과의 만남이었다. <기생충> 이하준 미술감독과 스탭들이 기생충에 쓰일 그림 작가들을 물색 중이라더라. 스탭이 인스타그램에 올려놓은 내 그림을 보여줬다고 했다. 사실 그때는 그냥 아, 그렇구나 싶었다. 나와는 먼 세상인 것 같아서 아예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 그렇게 신경을 안 쓰다가 친구랑 태국여행을 갔는데 영화 연출팀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미팅을 하고 싶다고 하더라. 아직 여행 일정이 많이 남아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너 미쳤냐, 빨리 한국 들어가라’고 말해서 들어오게 됐다. 첫 미팅이 있던 날 봉준호 감독은 후니훈에게 <기생충>의 시나리오를 건네며 “이 부분이 중요한 그림이 될 거니까 잘 부탁드린다”라는 말 딱 한마디만 남겼다.

그후 봉 감독은 그에게 그림 오른쪽 하단에 특별한 상징을 넣어 달라는 주문도 했다. 기정이 다송이의 심리 상태를 설명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용어 ‘스키조프레니아 존(schizophrenia zone·조현병 구역)’을 표현하려는 영화적 장치였다. 후니훈은 “별, 사람 눈, 세모까지 별의별 모양을 다 그렸다가 결국 눈에 두드러지지 않는 편이 낫겠다 싶어서 검은색으로 칠했다”고 했다. 후니훈은 “감독님 제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약 5개월간 죽어라 <기생충>을 위한 그림만 그렸다. 정말 많은 피드백이 오고 가면서 미친 듯이 작업을 했다. 오기의 끝이랄까. 감독님이 내 가능성을 보고 뽑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에 맞는 그림을 그려야 하다 보니까 정말 신경 써야하는 부분이 많았다. 굉장히 힘든 시간이기도 했다. 하도 많이 그리다 보니까 나중에는 내 그림에 10번까지 번호를 매기고 ‘1번과 5번을 섞어보라’, ‘7, 8번을 섞어 보자’ 라는 지시가 나오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선택된 그림은 보내기 전에 나도 감이 조금 왔었던 것 같다. 정말 힘들었지만 만족스러운 과정이었다”며 미소를 보였다. 그는 “<기생충>을 총 11번을 봤다. 가장 처음 봤을 때는 내 그림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느라 내용을 아예 보지도 못했다. 생각보다 너무 중요한 역할이어서 굉장히 놀라면서도 기뻤다. 초반에는 아내에게도 숨겨야 하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기쁨을 감추느라 힘들었다.”

지비지, <기생충>을 인연처럼 만나다

후니훈은 영화 <기생충> 홍보 차 LA에서 배우 박소담, 봉준호 감독과 함께 ‘한국 콘텐츠 할리 우드 교류회’에 참석했다. 뿐만 아니라 개봉에 맞춰 CGV LA등 총 3곳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일러트스레이터로서 굵직한 업적을 남긴 후니훈은 이번 경험을 토대로 또 다른 목표점을 내세웠다. “미국에서 보고 느낀 것들이 많다. 발판 삼아 활동영역을 넓히려고 계획 중이다. 그는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 제 스타일의 공간을 그때 그때 발견해서 소통을 위한 전시를 하고 싶다. 그곳이 해외든 국내든 경계는 없다. 다양한 그림과 음악으로도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소통을 하고 싶다.” 2020년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 이후 그는 o visa(아티스트비자)를 받고 Downtown LA에서 활동 중이다. 그의 제한없는 예술 스펙트럼이 LA에서부터 펼쳐지고있다.

E.K. Art Gallery
1125 Crenshaw Blvd. Los Angeles,CA 90019
[email protected]
(213) 268-1177/ (213)760-2953
Mon-Sat: 10 AM to 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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