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입수] 미국비밀해제문서로 살펴본 박정희의 멀고 먼 미국방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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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포-동경- 앵커리지-시애틀-시카고 거쳐 워싱턴DC에 도착
■ KNA–노스웨스트민항기- 미군수송기순 4차례나 트랜스퍼
■ 중간 기착지에서는 국가수반불구 2시간이상 씩 무작정 대기
■ 1965년 5월 두 번째 방미에선 존슨대통령 대통령전용기까지

본보가 미국무부에서 입수한 박정희의장 방미관련 문서철, 1961년 11월 9일 미국무부는 박정희 의장의 방미일정을 정리한 8페이지짜리 보도 자료를 발표하고 이날 오후 6시 30분까지 엠바고를 걸었다. 이 자료는 11월 12일부터 23일까지 케네디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공식 방미하는 박정희 의장과 공식수행원 명단, 그리고 세부일정을 시간대별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미국까지 오는 여정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가원수의 고난의 방미길

61년 전 한국국가원수의 미국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는 고행을 떠올리게 하는 멀고도 험난한 여정이었다. 박의장이 미국방문을 위해 출국한 것은 1961년 11월 11일 정오. 당시 국내언론은 1961년 11월 12일자 신문을 통해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수원 13명[수원: 공식수행원을 의미한 듯]과 15명의 동행신문 통신기자들과 함께 11월 11일 정오 KNA 사발전세기 편으로 김포공항을 떠나 일본으로 향하였다고 보도했다. 이때 박의장은 회색 싱글에 검은 모자 그리고 옅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박의장일행은 국적항공사인 KNA 사발전세기[록히드사의 컨스털레이션으로 추정]를 타고 김포를 출발, 일본으로 갔고 일본에서는 미국 민항사인 노스웨스트오리엔트항공으로 갈아타고 미국으로 출발, 알래스카시간 11월 12일 일요일 오전 9시 34분 앵커리지 공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한국 국가원수는 1시간 40분을 기다린 뒤 오전 11시 15분 다시 앵커리지를 출발, 태평양시간 [미서부시간] 오후 4시 15분 미 서부의 관문 시애틀의 타코마공항에 도착했다. 여기서도 한국국가원수는 미국 민항기를 이용하는 탓에 또 다시 1시간 15분을 기다린 뒤 오후 5시 30분이 돼서야 시애틀을 출발, 시카고 오헤어공항으로 떠날 수 있었다. 노스웨스트오리엔트항공 10편이 시카고 오헤어공항에 도착한 것은 미 중부시간 그날 밤 10시 49분, 그야말로 모두가 곤히 잠든 한밤중에야 도착했고 숙소인 시카고 드레이크호텔에 다다른 것은 자정이 가까운 11시 45분이었다. 일본에서 시카고로 향하는 민항기는 무려 2번이나 중간기착을 했고 한국국가원수는 비행기가 설 때마다 1시간 반 남짓씩 비행기 안이나 공항에서 멍하니 기다려야 했으니 그 심정이 어쨌을지 짐작이 간다.

거의 새벽 무렵에야 잠자리에 들었을 것으로 보이는 박의장은 이튿날인 11월 13일 월요일 오전, 새벽같이 일어나 시카고동포들을 만나는 등 간단한 일정을 소화한 뒤 이번에는 미국정부가 제공한 미 공군 수송기 신세를 진 것으로 확인됐다. 박의장은 이날 정오 미 공군 수송기편으로 시카고 미드웨이공항을 출발, 수송기에서 주는 기내식으로 점심 끼니를 때우면서 3시간 비행 끝에 마침내 미 동부시간 11월 13일 오후 4시 워싱턴DC에 입성했다. 미 동부시간 11월 13일 오후 4시이니 한국시간으로는 11월 14일 새벽 6시였다. 11월 11일 정오, 사발전세기로 김포를 떠나 11월 14일 오전 6시에야 미국수도 워싱턴DC에 도착했으니, 무려 사흘, 시카고 체류 12시간을 제외해도 꼬박 이틀이상이 걸린 것이다. 동경, 앵커리지, 시애틀, 시카고 등 4개 도시를 경유한 다음에야 비로소 워싱턴 DC에 도착할 수 있었고 국적기인 KNA, 노스웨스트 오리엔트항공, 미군군용기 등 외국 민항기와 미군 군용기를 빌려 타야 했었다.

박의장일행은 케네디대통령면담 등 워싱턴 DC일정이 끝난 뒤 11월 17일 뉴욕이동, 11월 19일 샌프란시스코 이동 에는 미국 측이 제공한 미공군수송기를 이용했고 11월21일 샌프란시스코를 출발, 하와이 호놀룰루로 떠날 때는 다시 미국 민항기 신세를 져야했다. 이때 이용한 민항기는 팬암 843편이었다. 박의장일행은 11월 23일 하와이일정을 끝내고 일본 동경으로 갈 때도 팬암기를 타야 했고 11월 25일 동경에서 서울로 올때는 다시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을 이용한 것으로 돼 있다. 11월 11일 서울을 떠나고 11월 25일 서울로 돌아왔으니 방미기간은 무려 15일, 대통령전용기는 물론 변변한 국적기 1대 제대로 없던 시절이라 15일중 오고 가는데 걸린 시간만 엿새가 넘었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주미한국대사관의 방미발표다. 미국무부 발표와 같은 날인 1961년 11월 9일 주미한국대사관도 박의장일행의 방미일정을 소개하는 보도자료[NO.94105]를 발표했지만 동경-앵커리지-시애틀를 경유하는 일정 등은 모두 생략했고 귀국길에 일본에서 노스웨스트를 타고 서울로 들어오는 내용도 밝히지 않았다

존슨, 카퍼레이드로 영빈관까지 직접 안내

미국무부 발표 방미일정은 8페이지, 주미한국대사관 발표 방미일정은 4페이지로 주미대사관은 국가위신을 위해 워싱턴DC까지 오는데 사흘이 걸린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정확히 61년 전 오늘 국가원수의 미국방문길은 당시의 국력을 보여주듯 외국 민항기와 군용기를 번갈아 빌려 타고 며칠씩 가야하는 쉽지 않은 고행의 길이었던 것이다. 61년 전 대한민국 국가원수의 ‘간난신고’의 방미 길을 기록한 국무부 문서는 지난 53년간 국민의 피땀 어린 노력이 대한민국을 얼마나 발전시켰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단서가 되고 있다. 57년 전인 오늘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 국빈방문길에 오를 때 존슨대통령은 대통령 전용기는 물론 의전, 경호, 공보담당자까지 한국으로 보냈던 것으로 미국무부 비밀전문을 통해 밝혀졌다. 또 존슨대통령 일정표를 확인한 결과 존슨대통령은 박대통령과 카퍼레이드를 하며 숙소인 영빈관까지 직접 바래다주는 등 극진한 대접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대통령이 워싱턴으로 출발한 날은 5ㆍ16혁명 4주년인 1965년 5월 16일로, 57년 전이다. 본보가 입수한 비밀전문에 따르면 1965년 5월 12일 사무엘 킹 미국무부 의전부국장은 브라운 당시 주한미국대사에게 보낸 전문을 통해 존슨대통령 전용기의 한국도착일정 및 전용기편으로 한국에 가서 박대통령을 미국까지 수행할 요원 명단을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3페이지짜리의 이 비밀전문에 따르면 존슨대통령 전용기는 워싱턴 DC 현지시간 5월 13일 오후 3시 앤드류스 공군기지를 출발, 5월 14일 밤 11시 30분 서울에 도착하며 5월 16일 오후 2시 55분 서울을 출발, 앤드류스 공군기지에 같은 날인 5월 16일 오후 5시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기록돼 있다. 한국과 미 동부지역의 시차가 13시간임을 감안하면 워싱턴의 5월 16일 오후 5시는 한국의 5월 17일 오전 6시여서 비행시간은 약 15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이 전문에는 이 전용기에 탑승, 직접 한국까지 가서 박대통령을 미국까지 수행할 미국요원들의 명단을 통보하며 숙소 등을 차질 없이 준비해달라고 브라운대사에게 요청했다. 이 수행원 명단에는 줄리안 니콜라스 국무부 의전관과 이반 싱클레어 공보관, 프랜시스 툴리와 루이스 디너 등 경호원 2명, 그리고 국빈방문을 취재한 기자와 사진기자, 촬영기자등 미 공보원 직원 4명과 보이스 오브 어메리카 기자 2명도 포함돼 있었다. 존슨대통령이 자신의 전용기는 물론 의전, 경호, 보도까지 국빈을 모시기 위해 빈틈없는 준비를 한 것이다. 특히 존슨대통령 전용기 운항을 책임지는 대통령 공군보좌관 쿠크 중령도 동행했으며 조종사 2명, 항법사 2명, 무전사 2명, 엔지니어 3명, 스튜어드 4명, 비행기 경비요원 3명등 모두 19명의 전용기 운용요원 명단도 통보됐다. 사무엘 킹 의전부국장은 이 같은 비행일정과 수행원 명단을 통보하면서 5월 14일 한국에 도착한뒤 5월 15일 토요일 저녁에는 대사관저에서 간단히 한잔하고 미스터 윤과 함께 저녁을 한다고 기록돼 있으며 다른 전문을 확인한 결과 미스터 윤은 우리 외교부의 의전장이었다.

존슨, ‘용감한 동맹, 믿을 수 있는 친구’

또 5월13일에는 더욱 상세한 비행 일정이 주한미국대사에게 통보됐다. 박대통령을 태우고 갈 전용기는 5월 13일 오후 1시 30분 앤드류스 공항을 출발, 앵커리지의 앨멘도르프 공군기지에 같은 날 오후 2시에 도착하며, 같은 날 오후 4시 10분에 이륙 5월 14일 오후 6시 30분 일본 요코타공항에 도착한뒤 같은 날 오후 8시 이륙해 오후 10시에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라며 변경된 일정을 통보했다[모든 시간은 해당지역 현지시간]. 즉 워싱턴을 출발, 한국까지 오기 위해 공군기지 2곳을 경유, 17시간 30분이 걸렸다. 또 박대통령을 태우고 갈 전용기의 서울출발시간을 두고 혼선이 생겨 브라운대사가 이를 다시 물어보기 도 했다. 브라운대사는 국무부가 통보한 서울출발시간은 오후 2시 55분이지만 주미한국대사관이 제시 한 스케줄은 이날 오후 1시 환송식을 갖고 오후 1시 55분 출발하는 것으로 돼 있으니 이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브라운대사가 이같은 전문을 보내자 13일 국무부가 상세한 일정을 다시 한번 통보한 것이다. 당시 보도 등을 확인한 결과 박대통령을 태운 전용기가 이륙한 시간은 오후 2시 55분으로 미 국무부가 브라운대사에게 통보한 시각 그대로였다.

존슨대통령의 일정표를 통해서도 박대통령이 월남전에 한국군을 파견한 미국의 동맹국으로써 큰 환대를 받은 것을 잘 알 수 있다. 한국군의 월남전 참전은 1964년 9월 11일 이뤄졌고, 그로부터 약 8개월 뒤, 5ㆍ16혁명당일이라는 뜻깊은 날에 방미가 이뤄졌고, 미국은 극진한 예우를 한 셈이다. 이 일정표에 따르면 존슨대통령은 5월 17일 백악관에서 박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 국빈만찬을 통해 우의를 다졌으며 특히 박대통령과 카퍼레이드를 함께 하며 숙소인 블레어하우스까지 직접 안내한 것으로 확인됐다. 존슨 대통령내외는 백악관 및 행정부 참모들과 함께 1965년 5월 17일 오전 11시 40분 백악관 사우스그라운드로 나가서 박대통령일행을 환영했다. 존슨대통령과 박대통령은 환영사 등을 교환했고 미연방정부 공무원들이 일렬로 도열해 태극기와 성조기로 열렬히 환영하는 가운데 사우스그라운드에서 디플로매틱리셉션룸으로 함께 걸어서 이동했으며 이곳에서 잠시 환담을 나눈 것으로 돼 있다.

그로부터 약 40분 뒤인 낮 12시 18분 존슨 대통령과 박대통령, 그리고 양국 영부인이 2대의 링컨컨티넨탈 무개차에 나눠 동승하고 백악관을 출발, 숙소인 영빈관 블레어하우스까지 약 20분간 카퍼레이드를 펼치면서 연도의 위싱턴 DC시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존슨대통령과 박대통령은 12시 40분 블레어하우스에 도착했으며 입구에서 대기 중이던 워싱턴DC의 시장격인 커미셔너 월터 토브리너가 박대통령에게 행운의 열쇠를 증정하고 블레어하우스 내부로 안내했으며 존슨대통령은 박대통령이 들어갈 때까지 떠나지 않고 이를 지켜본 것으로 돼 있다. 그 뒤 존슨대통령은 긴급한 법안에 서명하기도 하고 에드가 후버 FBI국장을 세 차례 만나고 맥조지 번디 국가안보보좌관의 보고를 받았고 잠시 수영장에 들리고 신문을 읽기도 했다고 일정표는 기록하고 있다.

두 번째 방미는 깍듯한 국빈 대접 환영

존슨대통령과 박대통령간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은 오후 5시 15분부터 약 35분간 대통령집무실에서 열렸으며 이때는 공식수행원등을 물리치고 양측에서 통역관 1명만 배석했다. 존슨대통령 일정표에는 전 대한체육회장을 지낸 조상호 당시 대통령 의전비서관 이 박대통령의 통역을 담당했다고 돼 있다. 정상회담이 끝난 뒤 오후 5시 51분 양국정상은 백악관 내 사우스론으로 옮겨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회담내용을 설명했으며 그 뒤 박대통령은 다시 블레어하우스를 돌아갔다 오후 8시쯤 국빈만찬을 위해 다시 백악관을 방문했다. 오후 8시 5분 존슨대통령은 박대통령과 그 일행을 맞이했고 정식 만찬에 앞서 2층 라운지에서 칵테일타임을 가지면서 양국정상 간에 선물을 교환했다. 당시 국내신문 등에는 백악관 국빈만찬이 끝난 다음 선물을 교환한 것으로 보도됐지만 존슨대통령 일정표에는 백악관 국빈만찬 전 칵테일타임에 박대통령내외에게 선물을 증정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존슨대통령이 박대통령에게 증정한 선물은 대통령 문장이 새겨진 티파니 은제 탁자, 나무상자로 포장된 낚시대, 존슨대통령이 서명한 자신의 사진, 역시 존슨대통령이 서명한 자신의 저서 ‘미국을 위한 나의 소망’이었다.

특히 존슨대통령은 자신의 사진에 ‘용감한 동맹, 믿을 수 있는 친구, 박정희 대통령에게’라고 서명한 것으로 돼 있다.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국빈만찬에는 양국정상을 비롯해 모두 137명이 참석했고 칵테일타임을 포함해 3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이날 만찬에는 새끼 랍스터, 비프 필렛 스테이크 등이 제공됐고 만찬 뒤에는 밤 10시 20분부터 커피를 함께 마시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줄리아드음대교수인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가운데 화기애애하게 진행된 국빈만찬은 밤 11시에 끝났고 박대통령일행은 11시 10분 백악관을 떠났다. 또 박대통령을 배웅한 존슨대통령은 혈맹과의 정상회담에 만족했던지 밤 11시 15분부터 백악관 로비에서 영부인과 20여분 간 춤을 즐긴 뒤 11시 40분 2층 숙소로 올라간 것으로 돼 있다. 이처럼 57년 전 미국은 대통령 전용기 제공, 카퍼레이드 등 혈맹인 한국의 대통령에게 깍듯한 예를 갖추며 양국의 우의를 다졌음을 알 수 있다. 박대통령이 4년 전인 1961년 11월 케네디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민항기와 미공군수송기 등을 몇 번이나 갈아타고 약 4일 만에 워싱턴에 도착했을 때보다는 한층 더 격상된 대우를 받으며 한미관계가 더욱 굳건해 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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