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과 배려의 90년 인생을 뒤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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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배려로 90년 인생을 미주한인사회의 정의구현과 봉사로 참된 삶을 살아온 고 민병수 (William P. Min, 03. 05,1933-06. 01, 2023) 변호사의 추모예배가 지난 10일 코리아타운 소재 남가주새누리교회(담임 박성근 목사) 새성전에서 200여 조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임스 이 목사(Pastor James Lee)의 집례로 엄숙하고 경건하게 거행됐다. 이날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하여 김영완 LA총영사(Korean Consul General Youngwan Kim)는 조사를 통해 ‘고인은 평생 정의로운 변호사로 미주 한인사회의 인권과 민권을 옹호하는데 공헌했음을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하여 심심한 경의를 표한다’면서 ‘우리 한인사회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더욱 번영된 커뮤니티를 이어 나갈 것’이라고 추모했다.

‘정의로운 사회 구현’ 기억해야

추모예배 성전에는 아름다운 꽃 장식에 담겨진 고 민병수 변호사의 유골함과 영정 사진, 그라고 평생 활동한 추억의 사진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한 LA총영사관 조기와 고인의 모교인 경기중고교 조기도 함께 자리 잡았다. 이날 추모예배는 오전 10시 집례자 제임스 이 목사(Pastor James Lee)의 사회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주 기도문’(The Lord’s Preayer)을 영 키 마컴(Young Kee Markham)씨가 그랜드 피아노로 연주해 하느님의 보호하심으로 추모 예배가 시작됐다. 이어 평소 민 변호사를 도와 봉사활동을 한 캐롤라인 심(Caroline Sim)씨가 평소 검소함과 겸손으로 한인 동포동포들을 섬긴 민 변호사의 신앙과 삶을 조명하는 기도로 조객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기도는 평생 남을 섬기는 민 변호사에 대한 추억과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지금 민 변호사의 육체는 먼지로 돌아갔지만, 그의 영혼은 주님과 함께 천국에 있음을 기도했다.

이 같은 믿음이 민 변호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로해 줄 거라고 기도하면서 마지막으로, 캐롤 라인 심씨는 우리 모두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도 역시 언젠가는 먼지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따라서 우리들이 이 땅에 있는 동안 주님께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억 하라고 기도 했다. 이어 고인의 손자인 올리버(Olive Min)와 봉사자 홍연아(Yonah Hong)씨가 고인이 평소 삶의 목표로 삼은 생명의 말씀인 시편 23장(Psalm 23) “주님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를 낭송하여 조객들을 미음을 더욱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평소 고인이 좋아했던 노래 “오 미오 바비노 카로”(O Mio Babbino Caro)를 줄리 앤 민(Julie Ann Min)이 놀랍도록 아름다운 목소리로 조객들을 매료시켰다. 한편 김영완 총영사는 추모사에서 “민 변호사는 우리 동포사회 권익 옹호 뿐만 아니라 정치적 신장 을 위해 힘쓴 시민 운동가였다”고 추모하면서 “민 변호사는 오래전 초대 LA총영사의 차남으로 미국에 와서 차별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변호사로서 동포사회를 위한 진정한 봉사자였다”고 기억 했다.

한미사회 각계 200여 조객 애도

이어 윤 해나(Hanna Kim Yoon)씨와 고인의 초등학교 교사 시절의 제자인 윌리엄 시아스 변호사 (William Sias, Esq.)도 추모사로 고인을 업적을 기억했다. 시아스 변호사는 “특히 민 변호사는 한인 동포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마음속에 새긴 법조인 으로 금전을 떠나 한인동포들의 어려움 자체를 도와준 진정한 변호사”였다며, “더욱 기억나는 일은 이혼을 상담하려 왔던 한인 부부를 상담을 통해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도록 만든 진정한 크리스천 변호사”라고 기억했다. 또, 시아스 변호사는 과거 인종차별이 심한 시기에 교사로서 봉직한 민 변호사는 겸손과 인내로 인종차별을 극복하도록 학생들을 가르쳤다며, 당시 제자인 자신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민 변호사는 약자를 돕는 변호사이며, 커뮤니티 인권을 옹호하는 리더였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민 변호사는 지역사회 봉사에 적극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가족을 사랑하는 데는 결코 소홀함이 없을 정도로 사랑의 크리스천이 그의 기반이었다고 추모했다. 이날 추모 예배 장소에는 신임 재외동포청장 이기철 전 LA총영사의 조화를 포함해, 고인의 모교 경기 중고교 동창회, 고인이 처음 조직한 한인변호사협회, LA한인회, 고인이 회장으로 봉사한 미주 국군포로송환위원회 등을 위시한 한인 사회 각계로부터 약30개의 조화가 놓여졌다. 이날 추모예배가 끝난 후 조객들은 용수산 식당에서 추모 오찬회를 통해 고인과 함께 했던 추억의 시간을 되새겼다. 고인의 미망인 캐롤 민(Mrs. Carole Min)여사는 추모예배에 참석한 조객들과 조화와 조의를 표해 주신 분들과 단체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리며, 특히 고인을 위해 기도하여 주신 한인 커뮤니티에 감사한다고 전했다.

민병수 변호사는 1933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중학교 3학년이었던 대한민국 건국 해인1948년 LA총영사관이 처음 설치되면서 첫 총영사로 임명된 부친 민희식 총영사를 따라 미국에 왔다. 그 당시 LA에는 이민자와 자녀를 합쳐 한인 인구가 1,000명이 안돼 차별과 경제적 고통을 이겨 나갔다. 1960년 포모나의 라번 대학을 졸업했지만 당시 차별적 정서로는 아시안 학생의 법대 입학 이 거의 불가능했다. 웨스트 코비나 통합교육구에서 15년간 교사로 일하며 꿈을 접지 않았던 그는 1975년 마침내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백학준 판사, 장병조 판사에 이어 캘리포니아주에서 3번째 한인 변호사로 형법 변호사로 출발했다. 1992년 LA 사이구 폭동으로 상처받은 한인사회의 권익보호에 더 큰 봉사자로 기여했다.

누가 고인의 자리를 메꿔줄까

2003년에 미주이민 100주년 기념 후 ‘코리안-아메리칸 데이’ 위원장을 지내며 LA시와 가주에서 ‘미주 한인의 날’을 제정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특히 1.5세, 2세들과 함께 일을 하는 것에 큰 보람을 느꼈다. 민 변호사는 1.5세와 2세들과 함께 LA교육구 산하 ‘찰스 호 김 초등학교’ ‘영옥 김 아카데미 (중학교)’ ‘새미 리 차터스쿨’ 등 3개 학교에 최초로 한국인 이름으로 명명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그는 2011년에 안구암 수술로 한 쪽 눈을 잃는 고통에서도 이를 극복해 봉사활동을 계속 정진해 주위를 감동하게 만들 었다. 추모예배가 끝난 자리에서 한 조객은 “민 변호사님이 가시고 나니 이제 우리LA동포사회에 진정한 롤-모델을 찾기가 힘들게 됐다.”면서 “오늘 추모 예배에서 평소 한인사회 리더이고 봉사자라고 자처하는 소위 커뮤니티 지도자들의 모습들도 많이 안 보였다”고 말을 듣고 ‘과연 누가 민 변호사의 지난 자리를 채울 수 있을가’라고 생각했는데, 떠 오르는 인물이 보이지 않는 것이 슬프다. <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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